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7)
****************************************************
[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77화>077 사람의 힘
“반갑습니다. 사장 지정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신우입니다.”
상무가 초대한 아몰퍼스 코아 기술자 김신우가 나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연락한 지 이틀 만에 찾아온 것을 보면 일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이런 사람이 귀농하겠다고 귀농 교육을 받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솔잎은 가득 있으니, 제대로 된 송충이인지 보겠다.
“저희 상무님께 얘기 들으셨죠? 저희가 아몰퍼스 코아 제작에 나서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로 미흡한 부분이 많아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라뇨. 전에 회사에서 부장이었으니까 그냥 김 부장이라고 불러 주세요.”
전형적인 월급쟁이의 냄새가 진동한다. 청운의 꿈은 오간 데 없고, 처자식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만 남은 소시민 냄새 말이다.
또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자신을 버리는 대가로 받은 월급에 감사해하며, 주말에 외식할 생각에 기쁨이 차올랐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이엔드급 그래픽카드 하나 감히 지르지 못하는 현실에 씁쓸해하며 얇디얇은 담배 하나 꺼내 불을 붙이겠지.
자신을 버리고, 자존심을 버리고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원들이 자식을 키우면서도 청운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비전을 보여 주고 희망을 노래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 하는 것이 사장의 책무가 아닐까?
“아모피스에서 아몰퍼스 코아 제작을 총괄하셨다고 들었는데, 해당 사업을 접어서 섭섭한 마음이 크시겠습니다.”
“월급쟁이가 파리 목숨 아니겠습니까? 허허. 중국하고 단가 경쟁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죠.”
“중국에서 아몰퍼스 메탈을 수입했다면 타산이 맞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하면 가격 낮출 여력이 충분했는데, 사장이 국산화가 중요하다고 고집을 부려서 도저히 비벼 볼 상황이 안 됐습니다. 변압기 쪽은 1원이라도 비싸면 사질 않으니, 점유율 확대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짠내 펄펄 나는 이 바닥에서 고생 좀 했겠군 싶다.
신토불이라면서 애국심 부르짖어 봐야 돈 앞에서는 국경 따위가 없는 것이 사업의 세계 아닌가?
지금 단가인 kg당 3,500원도 엄청나게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보다 더 비쌌다면 솔직히 나라도 엄두가 안 날 것 같다.
“저는 kg당 3,000 초반 대까지 단가를 낮춰 볼 생각입니다. 이 가격이면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에도 장사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전제로 말입니다.”
“저야 일만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죠. 이게 좀 주책 같지만, 아몰퍼스 코아에 대해서는 제가 우리나라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내년에 둘째 아들이 대학에 간다지?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니 몸이 달았을 것이다. 우리 회사 들어오겠다는 의사는 분명하다.
문제는 조건이겠지. 최고라고 자부하는 기술자에게는 응당 합당한 대우가 있어야겠지만, 기존 직원들과 형평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합당한 대우. 이게 참 어려운 말이다.
“아모피스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선생님을 상무보, 이사라고 하죠? 이사로 대우하고자 합니다.”
“전 자리 욕심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사 대우해 주시면 감사하죠.”
“우리 회사가 창립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많이 올릴 생각이지만, 아직 급여가 넉넉하지 않습니다. 이사라고 해도 연봉이 5천만 원인데 괜찮으신지요?”
솔직히 임원이라면서 연봉 5천 운운은 부끄러운 일이다. 중소기업이 직급 인플레가 심하긴 해도, 임원이면 걸맞은 대우를 해 줘야지. 일단 돈부터 벌자.
“부끄럽지만, 저 아모피스 있을 때 고작 4천만 원 받았습니다. 그거에 비하면 저를 아주 좋게 봐 주신 것이죠. 연봉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년부터는 대우가 확실히 달라질 것입니다. 저희 상무님께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무조건 지킵니다.”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 아니겠습니까?”
올해 56세면 한참 활동해야 하는 시기인데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고마워한다. 몇십 년의 짬밥이 회사 결정에 한순간에 짬되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했다. 뭐 우리 회사 와서 실력 발휘 제대로 안 하면 나도 가차 없을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김신우 이사의 취업이 결정됐다. 새로운 희망에 부푼 얼굴을 바라만 봐도 뿌듯하다. 나도 뭐 태양전기 입사 때 저런 표정이었지. 희망을 무참히 짓밟는 짓을 안 할 테니 기대해도 좋소이다.
“그런데 사장님. 혹시 설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람만큼 중요한 것이 설비죠. 직접 만들 수는 없고, 쓸 만한 것으로 살 생각입니다.”
“사장님, 제가 설비 설계도 좀 했는데, 직접 제작은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저 멀리 언덕에서 호박이 굴러오는데, 자세히 보니까 넝쿨째 굴러오고 있다.
이제 보니 이 사람이 왜 회사에서 팽당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나이 50이 넘어가면 능력보다는 정무적 감각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이 일반적 아닌가.
회사 내에서 정치질이 짜증 난다고 해도, 임원까지 승진하려면 정치질을 잘해야 하는 법이지. 아랫사람 갈궈서 성과 뽑아내고 윗사람한테 굽실거리는 양면성도 갖춰야지. 흔한 사장은 그런 사람들을 맘에 들어 하니까.
아직 근로 계약서 사인도 안 했는데 자신의 무기를 내놓은 사람이라면 전 직장에서 참 힘들었을 것 같다. 난 본전 뽑겠다는 심산으로 당신을 이용해 먹지 않을 테니, 최고라고 자부한다는 그 실력만 확실하게 발휘해 보셔.
“하하. 아직 계약서 사인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일 생각하십니까?”
“좀 오래 놀았더니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 모습이 드라마에서나 보던 전형적인 패턴임에도 너무 자연스럽다.
사회의 편견으로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이들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일하고 싶은데 나이가 걸려 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보람차다. 마냥 착한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혜택을 받으니 사업가로서 더없이 좋지 않겠는가!
“그럼 바로 일 시작하시죠. 근로 계약서는 준비되는 대로 사인해 주세요.”
“저기 사장님. 혹시 설계자는 안 필요하십니까? 김희철 상무님이 설계자도 뽑을 생각이라면서 아는 사람 있는지 물어보던데요.”
“변압기 설계자요? 설계야 다다익선이죠.”
“이거 염치가 없어 보이는데, 제가 전에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동생 하나가 지금 놀고 있어서요. 변압기 설계는 안 해 봤지만, 코아 설계를 해 봤으니 조금만 익히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당장 데려오시죠!”
면접 보러 온 자리에서 이런 얘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황당하다 싶으면서도 우리 회사를 정말 좋게 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지경이다. 이 사람 잘만 대우해 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 같다.
기술자 영입이 속전속결로 마무리됐다. 이제 아몰퍼스 코아 원단 수입과 설비 제작 들어간다면 내년부터는 모든 코아를 직접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일을 저지르고 나면 뒷수습은 덕준이 차례다. 우리 불쌍한 덕준이. 내년에 부장 달아라.
“사장님, 아무 말도 하지 말어. 내가 관심법을 써 보겠다.”
이건 또 무슨 콘셉트인 줄 모르겠지만, 그래, 어디 한번 해 봐.
“코아 기술자 영입했으니 이제 원단 수입 알아볼 때지?”
용하다 용해. 넌 정말 부장 달아라.
“안 그래도 저번에 얘기한 것이 있어서 내가 미리 알아 놨지. 우리 절연지 수입해 주는 업체 있잖아? 혹시나 해서 거기에 물어봤더니, 난퉁전기유한공사? 여기가 중국에서 제일가는 회사라고 하더라고.”
“벌써 그렇게까지 알아봤어?”
“내가 아무 말 하지 말랬지! 암튼, 절연지 수입 업체가 난퉁 거기랑 거래를 한대. 지금 거래하는 품목이 코아는 아닌데, 난퉁 거기가 코아 원단으로 유명한 업체라 거래 뚫기는 어렵지 않을 거래. 맡겨만 달래. 최저가로 공급해 주겠대.”
“아주 좋아. 야 이거. 너 말야. 아주 좋아.”
나도 모르게 김구라 빙의된 듯 아주 좋아를 연발했다. 오늘따라 왜 이리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지 모르겠다. 눈빛조차 보내지 않았는데 한덕준 부장(진)께서 알아서 레드카펫을 깔아 주셨으니, 내 할 일은 손 흔들면서 플래시 세례 받는 것뿐이네.
띠링.
문자다!
덕준이를 급히 내보내고 문자를 확인했다. 이 타이밍이면 100프로 문자님이시다. 문자님 조력 없이 자립해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문자님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혹시 아몰퍼스 코아 제작 설비인가? 적재적소에 도움 주시는 문자님이시니 제발!
-순간압력저감장치. 신속히 상용화할 것.
에잇, 김샜네. 순간압력저감장치? 순간적으로 치솟는 압력을 저감해 주는 장치인가? 생소하다.
변압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빼주는 것은 개당 2천 원짜리 방압장치가 해결해 주는데, 이건 또 뭔가?
변압기는 열을 식히기 위해 절연유가 들어간다. 건식 변압기라고 절연유 없는 변압기도 있지만, 가격도 비싸고 수명이 길지 않아 여전히 절연유 들어간 유입식 변압기가 대세이다.
유입식 변압기는 절연유가 문제이다. 멀쩡한 변압기가 괜히 폭발하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변압기를 밀봉해도 공기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으니 기름이 산화돼 가스가 발생한다. 가스가 쌓이다 압력 때문에 터지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스파크라도 튀면 기름에 불 붙어 난리 나는 것이지.
예전에야 툭하면 변압기 터지곤 했지만, 20년 전부터 방압장치가 도입되면서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엄지손가락만 한 방압장치가 변압기 내부에 가스가 차면 피식피식 소리를 내면서 가스를 빼 준다.
이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순간압력저감장치라는 것을 빨리 제작하라는 지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심쩍긴 하지만, 문자님 신탁이니 못 먹어도 고해야지.
첨부 파일에 들어 있는 설계는 간단했다. 전에 보내 준 설계들은 수십 장은 기본이었는데, 이건 6장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또 얼마나 대박이려나. 이게 어떻게 쓰인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으니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일단 특허부터 걸고 보자.
“한 과장님아!”
“네휘. 뭐 와서는 안 될 문자 온 것처럼 그러더니, 뭐 또 그 쩐주가 설계라도 보내 준 거야?”
아무래도 씻김굿이라도 해야겠다. 이 공장에는 귀신이 너무 많아. 난 고작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덕준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 버린 것도 아니고. 무섭다 무서워.
“귀신 과장님아. 이거 바로 특허 내자. 빨리 만들어야 하니까 속도 좀 내 줘.”
“이젠 그러려니 해. 숙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어야지 뭐. 이번엔 뭐야? 순간압력저감장치? 이름 한번 직관적이고 촌스럽네. 이름이 맘에 안 드네.”
“우리 회사 미래 먹거리야.”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둘러댔다. 얼마나 가까운 미래의 먹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돈이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걸 두고 경험칙이라고 하지.
“맞다, 덕준아. 나 회사 하나 더 차릴라고.”
“응? 지금도 일이 미어터져서 다들 죽으려고 하는데 무슨 회사를 또 차려?”
기업 분사가 중소기업에서는 악용되기 일쑤다. 소사장제란 이름으로 외주로 돌려 위험 회피, 비용 감소 등을 노리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분사는 그 그림이 당연히 아니다.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고위직들 성취감도 주고 세제 혜택도 있고. 여러 장점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벅차기 때문인 것도 있다. 사람 몸뚱이가 하나뿐인지라 변압기 말고도 설비며 코아 제작까지 신경 쓰려니 벅찬 것이 사실이다.
사장 되고 나서 육체노동은 크게 줄었지만, 정신노동은 아주 강도가 높아졌다. 나도 좀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더라.
“뭐 사장님이 그런 뜻으로 하겠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제작과 경영은 다른 문제 아닐까?”
“경영 맡길 사람이 마땅치 않다 이건가?”
“설비를 독립시킨다고 치자고. 유 부장님이 설비 뽑는 데도 정신이 없는데, 경영까지 맡으라고 하면 할 수 있겠어? 그리고 6년간 법인세 면제인데, 정 하겠다고 하면 그 혜택 끝나고 하는 게 더 낫지.”
반대할 생각 없다더니, 이건 명백한 반대 같은데? 나도 좀 살겠다는데 살 기회를 안 주네.
“설비는 그렇다 치고, 코아는 독립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한 공장에서 다 처리하기엔 너무 분주해져. 충분한 경쟁력이 있으니까 독립해도 잘나갈 것 같단 말이지.”
“판매도 생각하는데, 변압기 회사에 파는 것이니까, 이왕이면 간판이 달라야 좋겠다 이 뜻이지?”
“그렇지. 뭐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지만, 우리 회사가 변압기 회사인 것 다 아는 상황에서 경쟁사들이 우리한테 사려고 하지 않겠지.”
“좋아. 어차피 나한테 일 시킬 것 뻔하니까 내가 다 하지. 뭐 땅 분양 받고 공장 세우고 하면 되는 거잖아? 1년 전에 했던 그 짓 그대로 하면 되는 거지 뭐. 이러려고 직원 뽑아 줬나 싶은 슬픈 생각이 들도다.”
“필요하면 내가 직원 수십 명이고 못 뽑아 주겠냐! 말만 해! 직원 더 뽑아 줘?”
“아니야. 둘이면 충분하지. 빡세게 해 보겠음요!”
다른 직원 분사시켜서 내보내도 한덕준 부장(진)만큼은 절대 못 보내겠다. 덕준아, 내 품에서 무럭무럭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