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6)
076 수직계열화
좁은 우리나라 시장이 아닌, 넓디넓은 시장으로 나가겠다고 맘먹었으니 해야 할 일이 많다.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많다.
그 시작은 아몰퍼스 변압기에 들어갈 아몰퍼스 코아를 직접 제작하는 일부터이다.
아직은 소음 문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사용량이 많지 않지만, 중국이나 동남아는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효율만 높으면 장땡으로 치는지라, 주민들이 변압기 소음으로 고생하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패기란.
설비도 설비이지만, 역시 핵심은 사람이다. 기술자가 괜히 기술자가 아니다. 이 바닥 마당발인 공장장부터 찔러 보러 가자.
“공장장님, 요즘 정신없죠?”
대한전력의 계속된 물량 공세에 공장장 얼굴에 다크서클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한전력 10월 발주는 1차가 3,200대, 2차가 3,300대로, 9월에 비해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줄긴 했다.
그러나 9월 발주, 그러니까 10월 납품으로만 9,500대를 만들어 내보내고 나서도, 한숨 돌릴 틈도 없이 11월에 납품할 6,500대를 만들어야 했으니 직원들이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급하게 월 8천대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비를 갖춰 놓긴 했는데, 사람이 달렸다. 바쁜 것도 한철이라지만, 사람이 기계가 아니니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이런 상황이니 생산을 총괄하는 공장장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한 상황이래도, 다들 수긍하며 넘어갈 지경이었다.
“지금 정신이 있으면 제정신이 아니지. 내 생전 변압기를 이렇게 많이 만들어 보긴 또 처음이네.”
“그나마 이번 달에 발주가 조금 줄어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이거 뭐 대한전력이 다음 발주 얼마 줄지 알 수 없으니 원.”
“사장님이 800억 번다고 그래서 좋아만 했지, 막상 변압기 뽑아내려니 이거 사람을 잡는구만.”
공장장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다. 천하의 베테랑이라도 대한전력 물량전을 이겨 내기는 쉽지 않은 법.
이 고생을 해서 납품하면 법인 통장이 아주 두둑해지겠지만, 직원들의 근골격계 질환도 두둑해리라. 안마사라도 초빙해야 할 판이다.
“고비만 잘 넘기면 되는 것 아시잖아요? 내년 봄에는 물량 확 줄어들 테니까 진짜 몇 달만 이 악물고 버텨 보자고요.”
“그래야지. 별수 있나. 버티는 놈이 이기는 놈이라고 하지 않나? 그나저나 사장님이 고생한다는 말 하려고 온 것은 아닐 텐데?”
다크서클이 얼굴을 휘감고 있지만, 공장장의 귀신같은 눈치는 여전하다. 아니면 내가 얼굴에 써 놓고 다니거나.
“전 가끔씩 공장장님이 귀신이 아닌가 놀랄 때가 있다니까요. 하하.”
“그래, 또 뭘 추진해 보실라고? 내가 이 고생을 해도 우리 사장님이 똥으로 메주를 쑤라면 그렇게 해야지, 암.”
“뭐 정신없는 와중에 좀 그렇긴 한데요. 아몰퍼스 코아를 직접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요. 일반 코아야 어려울 것 없지만, 아몰퍼스 코아는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여력만 있다면야, 뭐든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 좋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까 이 많은 물량도 어찌어찌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고.”
이 희망적인 말은 해답을 가지고 있단 뜻인가? 역시 마당발 공장장을 찾길 잘했군.
“그래서 말인데, 아몰퍼스 코아 기술자 아는 분 있으신가요?”
“나야 없지.”
설레발을 부리면 이 꼴이 난다. 우리말은 끝까지 듣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 젠장.
“음, 설비야 사면 되겠지만,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면 쉽지 않잖아요. 혹시나 공장장님이 아는 사람 있을까 했는데, 이거 쉽지 않겠네요.”
“아몰퍼스는 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러. 그러지 말고 상무한테 물어보지그래?”
“상무님요?”
“그래, 김 상무가 이 바닥 내놓으라 하는 마당발이잖아. 그 들고 다니던 수첩에 온갖 업체들 숟가락 개수까지 다 적혀 있다니까?”
“이거 생각도 못했네요. 제가 이리 정신머리가 없네요.”
“하하. 돈 들어올 때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나야 경영은 모르지만, 대한전력 납품하면 돈 바로 들어온다고 정신 못 차리다가 나중에 고생한 업체들이 많더라고.”
우리 회사는 사장인 내가 정신 못 차릴 때 싸다구 매섭게 날려 줄 직원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참 든든한 일이다. 싸다구 맞을 일 없도록 차분하게 잘하자.
상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무님! 회사 언제 들어오시나요?”
“나? 점심 먹고 바로 들어가려고. 왜 또 무슨 일 있어? 하긴 무슨 일 있으니까 전화했겠지 뭐. 담배 안 피우고 바로 갈 테니까 식후땡부터 하시자고.”
평소에도 안부차 전화라도 할 걸 그랬나? 직원들이 나랑 눈만 마주치면 또 무슨 일을 시킬지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습에 내가 그 정도인가 하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창업하자마자 회사가 확 커지는 통에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는 직원들. 내가 돈으로 춤바람 나게 하겠다!
점심 먹고 마당에서 바람 쐬면서 이쑤시개로 이물질을 빼고 있으니, 직원 6명이 마당에 네트를 설치하며 족구 한판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난 점심시간이면 3분 만에 밥 마셔 버리고 자러 가기 바빴는데, 젊어서 그런지 진짜 기력들 좋네.
확실히 20대가 많으니 회사에 싱싱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이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효과이지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마치 초자연적인 현상인 파오운 같은 것이라고 할까나? 부디 서로 싸우지 말고 잘만 지내라.
회사에서 이렇게 친구처럼 어울릴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다. 태양전기 시절 말상대가 없어서 담배 피우면서 담벼락과 대화해야 했던 눈물겹던 그때가 생각나는구만.
혹시나 방해될까 봐 구석에 숨어 있는데, 외근 나갔던 상무가 들어왔다. 밥 먹고 식후땡도 안 했을 테니 몸이 달아올랐을 것이다.
“상무님. 어서 오시죠. 자, 여기 담배요.”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
“아니 뭐. 밥 먹고 산책이나 할 참이었는데, 이게 상무님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네요. 하하.”
“나주 내려와서 영업 어찌하나 걱정했는데, 이거 뭐 사람들이 알아서 내려오니 걱정할 일도 없네.”
관수 물량이 워낙 많아서 민수 쪽을 현상 유지 정도로 고정시켰더니, 여기저기 거래처에서 몸이 단 모양이다. 타 업체보다 가격도 낮고 납품도 빠르고 품질도 좋으니 물건 달라고 아우성이다.
우리가 만들 여력이 넉넉지 않아서 확 치고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뭐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갈 생각이니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상무님. 요새 민수 매출이 확 안 올라서 좀 속상하시죠?”
“아이, 우리 사이에 왜 그래? 하나도 안 속상하니까 서론은 이 정도로 하자고. 할 얘기가 뭔데?”
“하하. 역시 상무님은 성격이 화끈해서 좋아요.”
“그래그래. 사장님 바쁜 거 다 아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우리 아몰퍼스 변압기 있잖아요? 코아를 직접 만들 생각인데, 혹시 주변에 아는 기술자 있습니까? 공장장님은 그쪽은 잘 모른다고 하시더라구요.”
“아몰퍼스? 그 왜 아몰퍼스 코아 제작하다가 접은 회사 있잖아?”
“아모피스 말이에요?”
지금이야 전량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합금 소재를 이용해 아몰퍼스 코아를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수입 대체 기대가 크다며 기사도 꽤 나왔었지만, 중국의 가격 공세를 이겨 내지 못했다. 애국심도 하루 이틀이지, kg당 몇백 원씩 차이가 나는데 국산을 계속 써 주는 것도 쉽지 않지.
“어, 아모피스 맞아. 내가 거기 부장이랑 밥 몇 번 먹었는데, 한번 연락해 볼까? 아모피스가 사업 접는다고 할 때 뭐 해야 하나 걱정하긴 했었는데…… 가만 보자, 연락처가 있을 거야.”
“역시 우리 상무님! 그분 기술은 확실하신가요?”
“아이, 그럼! 그 사람 이름 뭐였더라. 맞다, 김신우 부장이었지. 그 사람이 코아제작부 부장이었어. 아모피스도 나름 상장사인데, 아무나 부장 되는 것 아니잖아?”
“그럼 바로 연락해서 자리 한번 만들어 보시죠. 얘기 잘되면 바로 스카우트해서 직접 제작 시작해 보게요.”
“그래? 근데 사장님, 아몰퍼스 변압기는 발주 얼마 나오지도 않잖아? 이번 입찰에서도 일반형에 비해서 10프로밖에 안 나왔던데. 그거 괜히 한다고 했다가 돈만 잡아먹는 것 아닌가 모르겠는데?”
확실하다. 우리 회사는 나 싸다구 날리겠다고 줄 서 있는 직원들이 많다. 많은 회사들에 예스맨이 즐비하지만,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다.
시카고대학교의 어떤 교수가 ‘예스맨 이론’을 발표했었다. 영국이 아니니 일단 믿을 만한 이론일 것이다.
‘예스맨 이론’은 보스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면, 부하들은 진실을 얘기하지 않게 된다는 이론이다. 보스는 최선의 의사 결정을 위해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주관보다는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부하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이론의 결론이다.
간언하는 자를 멀리하면 교언하는 자만이 남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지만,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다.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끊임없는 성찰과 수양이 없다면 예스맨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나도 늘 경계하겠지만, 우리 직원들도 예스맨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싸다구 보호하려 검투사 헬멧이라도 써야겠다 싶지만, 이번 것은 그럴 일이 없다. 아직은 추측이지만, 돈이 될 것이라는 감이 온다.
“상무님. 잘 들어 보세요. 지금이야 소음 때문에 아몰퍼스 변압기 사용이 많지 않지만, 앞으로 2~3년 내에 발주가 확 늘어날 겁니다.”
“뭐 효율이 좋으니까 그럴 것 같긴 한데, 소음 잡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을 텐데?”
“당연히 우리도 기술 개발을 해야죠. 효율이 좋으니까 소음만 잡으면 대한전력이 사용을 늘릴 수밖에 없어요. 수출도 아몰퍼스가 많이 나가잖아요.”
“아니 50kVA 이상은 소음 때문에 아무나 못 만들잖아? 지금도 큰 업체만 독점으로 만드는 판인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하죠! 우리 실력 무시하지 마세요.”
사업은 자신감이라고 하더라. 별거 없는데도 이렇게 자신감 넘칠 수 있는 것은 역시 문자님 덕분이다. 하다하다 안 되면 문자님께서 솔루션을 주시겠지?
“그리고 지금 변압기가 고효율로 바뀌고 있잖아요? 내년부터는 일반형 없어질 것이고, 패드도 빠르면 내년부터 바뀝니다. 그럼 다음 타자가 뭐겠어요? 당연히 아몰퍼스죠. 우리가 그걸 개발하면 다들 우리한테 와서 코아 팔아 달라고 사정할 겁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식후땡이라면서 연달아 두 대를 피우던 상무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싸다구 칠 일이 아니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야! 우리 사장님. 아니 뭐 미래라도 읽고 있는 것이야? 그거까진 생각도 못했는데, 이거 우리 사장님 대단하네. 돈 냄새가 진하게 난다 이거지? 그럼 머뭇거릴 일이 아니지.”
“맞습니다. 돈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는데 어찌 외면하겠습니까?”
“하하. 내가 바로 전화해 볼 테니까 기다려 봐.”
혹시나 해서 담배 하나 꺼내 불을 붙였는데, 네 번 정도 빨고 나니까 통화가 끝나 버렸다. 대화가 아주 잘됐다는 신호렷다.
“뭐래요?”
“다행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놀고 있대. 지금 귀농하려고 귀농 교육 받고 있다길래, 사서 고생하지 말고 일단 나주 내려오라고 했지.”
“잘하셨어요. 이제 설비만 알아보면 되겠네요.”
“이 사람이 설비도 잘하니까, 말 잘해서 영입하면 설비도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소음을 잡고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전제를 맞춘다면 확실히 돈이 된다. 대한전력 발주량도 늘어날 것이니 코아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몰퍼스 코아 원단만 kg당 2천 원 초반대로 받아 올 수 있다면, kg당 500원 정도는 거뜬히 남는다. 내수 시장에서 코아 수요 40퍼센트만 먹어도 7억 원은 족히 떨어진다. 수출까지 감안한다면 아주 짭짤한 장사이다.
“근데, 사장님. 공장은 여유가 좀 있어?”
“뭐 지금은 풀로 찬 상황이긴 한데, 2층으로 나누면 공간은 충분하죠. 검사동도 2층으로 나누고 있으니까, 돈 여유 생기면 생산동도 나눠야죠.”
“뭐 그렇게 하면 좋긴 하겠네. 아예 토지 분양 더 받아서 코아 쪽을 하나 새로 차리는 것은 어때?”
“하하. 역시 제 생각을 아주 잘 아시네요.”
“아, 그럴 생각이었어?”
“그럼요. 아몰퍼스 코아만 팔면 되겠습니까? 일반 코아도 팔아야죠. 우리만큼 싸게 만드는 데가 또 있습니까?”
“좋네, 좋아. 이참에 코아 쪽 분사해서 힘을 좀 실어 주는 건 어때?”
“안 그래도 회사 자리 잡히면 설비 제작 쪽은 분사시킬 생각이었는데, 코아도 그렇게 하면 나쁘지 않겠네요.”
“혹시라도 돈 부족하면 얘기 좀 해 줘. 나도 투자하게. 저번에 투자 못하고 대출만 해서 영 걸렸거든.”
“상무님, 그 2억이 다 끌어모은 것이라면서요?”
“회사가 대출 상환하면 그걸로 해야지. 내가 무슨 돈이 있어. 하하.”
이거 사내 투자자가 줄을 섰네. 동심동력. 큰길로 뚜벅뚜벅 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