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5)
075 바다를 건너라
외함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자재를 손 볼 때가 됐다.
대한전력 물량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건 공장장을 필두로 한 현장 직원들에게 맡기면 된다. 난 나대로 사업을 키울 준비를 해야지. 몇 년 반짝하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코아 원단은 기존보다 kg당 80원이 떨어졌다. 덕준이가 포스코 대리점끼리 경쟁을 붙이며 쇼당을 거는 과감한 기술을 선보인 덕이다. 한동안 레벨 업을 하며 길렀던 승부사 기질이 여기서 발휘될 줄이야.
낮아진 원자재 가격에 유재준 부장이 만든 코아제작기가 높은 생산성을 보여 주고 있으니, 만족하고도 남을 상황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아몰퍼스 코아이다.
변압기는 코아 재질에 따라 규소강판 코아를 쓰는 일반 변압기와 아몰퍼스 코아를 쓰는 아몰퍼스 변압기로 나뉜다.
아몰퍼스 변압기는 가격이 비싸지만, 일반 변압기 대비 효율이 높아 앞날이 유망한 녀석이다. 대한전력이 약간의 효율 개선을 위해 억만금도 쓰는 판이니, 아몰퍼스 변압기 사용이 확대될 것이란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아몰퍼스 코아 자체가 아주 얇은 수천 장의 원단을 겹쳐 만드는 것이라 소음이 심하다는 것이다. 전기가 투입되면 습자지같이 얇은 아몰퍼스 메탈이 부르르 떨면서 수면 장애를 유발하는 고통을 선사한다.
아몰퍼스 변압기가 설치된 동네에서는 밤낮으로 민원 전화가 빗발친다. 아몰퍼스 코아가 부르르 떨면서 우우웅 울부짖는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으면 사람 미치는 것 금방이지.
그만큼 어설프게 아몰퍼스 코아 제작에 들어갔다가는, 나중에 하자 처리하느라 만든 회사도 미치고, 주민도 미치고 다 미쳐 버리는 것이다.
“한 과장님!”
“네! 사장님!”
직원 하나 뽑아 줬더니 얼굴에 생기가 도는 덕준이. 그동안 온갖 일 다 떠안느라 고생했으니, 이왕 고생한 것 조금 더 고생해 보자고. 푸훗.
“철학과는 일 잘해?”
“아름 씨? 철학과가 뭐냐 진짜. 처음 왔으니까 모르는 것투성인데, 시간이 약이라고 있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뭐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일 시작했으니까.”
“도망갈 것 같진 않지? 힘든 건 없대?”
“이 동네가 편의점 하나 없잖아. 불편하긴 하겠지. 가끔씩 원두커피 그립다고 얘기는 하더라.”
편의 시설과 대중교통은 모든 공단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혁신산단에 공장이 우리 하나뿐이니 언감생심이다. 직원 더 늘어나면 회사에 슈퍼라도 하나 차려야겠네.
“암튼 잘 가르쳐. 아주 씩씩한 것이 일 잘할 것 같더라. 그건 그거고, 우리 저번에 아몰퍼스 코아 얘기하다가 말았잖아? 이제 시작해 보려고. 준비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잖아.”
“저번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시작을 하는군. 까라면 까야지요.”
좋은 자세야. 이게 다 회사에 득이 되고 직원에게도 득이 되는 길이야.
“사장님아, 근데 아몰퍼스 코아가 우리 코아 제작 라인하고 완전 딴판이잖아? 설비도 새로 들여와야 하고 기술자도 영입해야 하고 말이야. 완전 맨땅에 헤딩하는 것인데…… 혹시 그 쩐주가 뭐 보내 줬어?”
“아니. 우리가 언제까지 쩐주한테 의존하면서 살아야겠냐! 지금이야 아몰퍼스 변압기가 발주 얼마 안 나오지만, 앞으로는 발주 늘어날 거야. 소음 잡는 기술도 많이 좋아지고 있잖아. 우리도 미리미리 준비해 놔야지. 이참에 중국에 끈도 만들어 놔야 해.”
아몰퍼스 코아 자체 제작은 앞으로 늘어날 아몰퍼스 변압기를 준비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새로운 먹거리를 마련한다는 뜻도 있다.
바로 수출이다. 그것도 중국!
“사장님, 설마 중국 수출 정말 추진해 보려고?”
“수출은 당연히 해야지. 동남아는 테스트 삼아 해 보고, 진짜 승부처는 중국이지.”
아몰퍼스 코아 원단은 국내에서도 제작을 하긴 했지만, 중국과 도저히 경쟁이 안 됐다. 지금은 전량 중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중국 원단 제조사가 현지 대리점에 넘기고 대리점은 무역상에 넘기고, 무역상은 국내 코아 제작사로 넘기고. 유통에서만 여러 단계를 거치니 kg당 2,500원 수준이던 것이 완제품으로 입고될 때는 3,500원까지 뛰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 원단 제조사와 직접 거래해서 원단을 싸게 들여오고, 그걸로 아몰퍼스 코아를 자체 제작하겠다? 그렇게 하면 제작 단가도 낮추고, 중국과 거래선도 만들 수 있겠다, 이거로군?”
“그렇지. 역시 우리 한덕준! 중국 거래선을 잘 지켜 내면, 중국에 변압기 수출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 다른 회사들이 동남아에 올인하고 있지만, 진짜 큰 시장은 중국이잖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장이지만, 단가 때문에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중국 시장. 우리 경쟁력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내가 인마! 수출하면서 외화도 벌고! 어! 직원들 많이 채용하고! 어! 다 할 거야!
“내가 보니까 전력용 변압기같이 대형들은 조금씩 들어가긴 하던데, 우리가 하는 배전용 변압기는 단가 때문에 중국은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뭘 하겠다고 하면 늘 걱정거리부터 던져 놓는 덕준이. 참모로서 더없이 잘해 주는군.
“중국 시장 진입하려면 대한전력 판매 가격보다 넉넉잡아서 20프로는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우리가 불가능할 것 같아? 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중국의 엄청난 물량을 생각해 봐.”
“20프로라. 쥐어짜면 손해는 안 보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안전빵으로 동남아 수출에 힘쓰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말이야.”
“동남아 수출 짭짤하다는 것도 옛말이야. 이제는 단물 다 빠진 껍데기밖에 안 된다고. 개나 소나 다 뛰어들어서 우리끼리 경쟁하다가 단가 개판됐잖아. 그건 그것대로 하겠지만, 물량 확실한 중국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수출품은 부가세 환급해 주는 걸로 그러는 거지? 수출 잘하라고 세금 들여 지원해 주니 남의 나라에 고스란히 퍼주는 격이네. 그렇게 해서 매출 높인들 뭐 좋다고 그러는지 원.”
부가세 환급 혜택을 믿고 너도나도 가격을 낮추다 보니, 100원짜리를 90원에 파는 덤핑도 난무하는 실정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매출 높이겠다는 욕심에 동남아 전력 회사들만 재미 보고 있는 것이다.
경쟁 심화로 단가가 떨어지자 온갖 사기술까지 등장한다. 변압기를 100퍼센트 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해 변압 용량을 몰래 낮춰서 팔기도 한다. 자재 값이라도 빼돌리겠다는 심산이겠지. 비싼 구리 대신 알루미늄을 쓰고는 구리인 척 사기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진짜 나라 망신이다. 다른 업계도 별반 다를 게 없겠지만서도, 이 바닥이 너무 유난스럽다.
유난스럽다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핸드폰이 유난을 떨며 소리를 질러 댔다.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이 또?
“박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덕분에 안녕합니다. 수출품 제 날짜에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뭐 500대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또 급하게 물량 처리해야 할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사장님! 혹시 이러려고 자동권선기 안 파시는 것 아니에요?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에요!”
자동권선기 팔겠다고 한 지가 반년이나 지났다니. 시간 참 빠르다. 대당 5억 넘게 떨어지는 효자인데도 제 코가 석자라 1대도 보내지 못했으니, 박 사장이 애간장이 탔을 것이다.
“하하. 저희 것 추가로 급하게 만드느라 사정이 그렇게 됐습니다. 이제 막 박 사장님네 것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완성되는 대로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착수하셨으면 연락을 주시지 그러셨어요? 착수금은 50프로 드리면 되나요?”
찐 사업가와 안 찐 사업가의 차이가 이것이다. 제대로 된 사업가는 거래가 성사되면 돈 몇 푼에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업가는 돈 얘기는 일절 꺼내지도 않고 잔금도 차일피일 미루며 사람 미치게 만든다. 박 사장 역시 찐이야.
“안 주셔도 되는데, 보내 주시면 여유롭긴 하죠. 계약서도 안 썼는데 돈부터 보내 주시려구요?”
“구두 계약도 계약이에요. 하하. 자재비도 만만치 않다는데 물건 하루라도 빨리 받으려면 착수금은 당연히 보내 드려야죠. 세금 계산서 바로 발행해 주세요. 계약서도 작성해서 보내 주시구요.”
이렇게 사람을 잘 믿는데 그동안 사기 안 당하고 회사를 어떻게 그리 크게 키웠나 싶다. 박 사장만의 강점일 것이다. 친근하게 굴 때 하나라도 더 배워야지.
“참. 사장님! 태양전기 얘기 들으셨어요?”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태양전기가 또 거론됐다. 태양전기가 또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인가?
“아니요. 무슨 일 있나요?”
“태양전기가 필리핀 수출 시작했어요. 관수 퇴출당하고 민수도 쪼그라드니까 수출이라도 해 보겠다는 것 같더라구요.”
“필리핀 수출요? 금성전기는 피해 없나요?”
“저희야 연간 계약 맺어서 달라질 것 없구요, 전력 회사도 저희랑 달라요. 그런데 태양전기가 컨택하려는 전력 회사가 소문이 안 좋은 곳이라 잘될지 모르겠어요. 수출이 급하게 서둔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관수 퇴출돼서 내년에 매출 크게 줄어들 텐데, 그거 만회하겠다고 필리핀 시장 엉망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뭐 지켜봐야죠. 수출 뛰어들었다가 손해 본 회사가 한둘이 아니잖아요.”
대화 주제가 수출로 넘어간 김에 중국도 한번 찔러 보자.
“왜 다들 필리핀에만 목을 매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은 시도도 안 해 보는 것 같네요. 전력용 변압기 쪽은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 같습니다만.”
“중국요? 아휴. 말도 마세요. 저희한테도 중국 쪽 브로커 몇 번 왔었는데, 단가가 너무 안 맞아요. 중국 애들하고 경쟁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죠. 필리핀이야 단가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그래도 몇 푼이라도 남는데, 중국은 도저히 계산이 안 나와요.”
“단가를 맞출 수 있다면 중국만 한 시장이 또 있겠습니까?”
“사장님 혹시 중국 수출 생각하시는 거예요? 정말 쉽지 않을 텐데. 뭐 사장님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고…….”
“저희야 지금은 관수 물량 맞추느라 정신없습니다. 나중에 여유 생기면 검토해 보려구요. 이왕 사업 시작한 것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야. 역시 사장님은 무서운 분이에요. 호호. 혹시 필요하시면 중국 브로커 소개시켜 드릴게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수출이 아니고서야 회사 키우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 레드오션 중에 레드오션인 민수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관수로 먹고살기에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이 밥 먹으면서 하하호호 하던 사람도 경쟁이 붙으면 웃으며 칼로 쑤실 수 있는 시장이다.
통화가 길어졌는데, 덕준이가 나가질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저 표정은 개소리가 가득해 빨리 퍼붓고 싶다는 표정인데?
“박 사장? 그 연예인 말이야? 왜? 프러포즈 언제 하냐고 그래?”
“넌 진짜 헛소리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태양전기가 필리핀 수출한다고 깝치고 있대.”
“태양전기면 최현아? 민수도 망하고, 관수도 망하고, 이제 수출로 살길을 찾아보겠다 그거구만?”
“이제 필리핀 시장도 엉망이 되겠네. 최현아가 필리핀 수출한다고 하다가 회사 망한다에 손모가지 건다. 사기꾼 득실거리는 바닥에서 그 멍청한 사람이 잘도 하겠다.”
“최현아까지 뛰어든 필리핀 시장은 일단 내버려 두고, 우리는 대륙에서 승부를 걸자 이거지?”
“그 시작은 아몰퍼스 코아 원단 수입해서 자체 제작하는 것이지. 자, 시작해 보자고.”
덕준이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사장님, 근데 막상 내가 딱히 할 것이 없어. 기술자 구하는 것도 그렇고, 설비도 내가 뭘 알아야지.”
“그건 내 일이니까, 맨땅 헤딩은 내가 할게. 넌 일단 아몰퍼스 코아 원단 수입하는 것 좀 알아보면서, 그때그때 서포트나 잘해 줘.
좁은 국내에서 놀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바다를 건너는 것이 해답이다. 큰길로 직진하다 보면 길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