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4)
074 물갈이
대한전력 2번째 납품까지 무사히 마쳤다.
다행히 3번째 발주, 그러니까 11월 3일 납품분부터는 발주량이 3천 대 수준으로 줄어 현장에 숨통이 돌기 시작했다.
변압기 생산은 공장장을 필두로 원년 멤버 베테랑들이 확실하게 잡아 주고 있는 데다, 관수 발주가 조금이나마 줄어 살 만해졌다.
이러다 또 언제 물량이 확 터질지 모르는 판이라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래도 어두컴컴한 밤까지 공장을 훤히 밝힐 필요가 없어진 것은 다행인 상황이다.
그러나 설비 제작은 여전히 죽어 나가고 있다. 유재준 부장을 포함해 인원 8명이서 아주 뺑이뺑이좆뺑이를 치는 중이다.
자동권선기 10대를 겨우 채워 놨더니 대한전력 물량이 터져 버렸다. 추가로 5대를 급하게 만드느라, 거짓말 보태서 새벽 별 보기 운동에 여념이 없었다. 5대 만들고도 갈 길이 멀다.
부싱체결기, 코아제작기도 틈틈이 만들어야 했으니, 다들 얼굴이 사시사철 구리스 범벅이다. 금성전기와 안성파워에 넘길 자동권선기 10대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내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것은 위로뿐이다. 인원 10명을 추가로 채용하기로 했으니, 입사하고 교육 마칠 때까지는 달래 줄 수밖에 없다.
회사 차리고 나서 현장엔 가급적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예전 같았으면 틈틈이 현장 내려가서 뭐라도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사장이 되고 나니까 못 그러겠더라. 사장이 현장 가면 직원들이 퍽도 좋아할 테니까.
그래도 갈 때는 가야지. 마당으로 내려오니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담배 한 대 후딱 피우고 가자.
담배에 불을 붙여 한 입 쭉 빠는데, 벤틀리 한 대가 정문을 통과해 주차장에 멈춘다. 벤틀리를 여기서 다 보네. 저거 5억은 될 텐데…… 검사동 추가 공사 비용이 저기 다 들어 있네.
외함 업체 태진기업 김근배 사장이다.
그 멀리서 여기까지 온 것 보면 몸이 달은 것이 분명하다. 자꾸 외함 가지고 장난을 치는 통에 내가 외함을 직접 제작해 버렸으니 말이다.
난 장난치는 놈한테는 얄짤 없다. 내가 사업가 생활을 31살에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나 죽이겠다는 놈 제치고 못난 놈 보내고 당신같이 장난치는 새끼들 다 죽였다. 여 와서 담뱃불이나 좀 붙여 보소.
그러게 거만 떨지 말고 공장 완공식 때 10만 원짜리 화분 보내지 그랬냐. 벤틀리 타고 다니는 양반이 조잔하게 4만 원짜리 화환이 뭐냐.
“어이, 지 사장. 나 오는 줄 어떻게 알고 밖에 나와 있었나? 하하.”
보자마자 어이 지 사장? 첫마디부터 거만이 줄줄 흐르네. 물론 법인 차겠지만, 철깡통 팔아서 벤틀리 타고 다닐 정도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장님, 이 멀리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미리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요 근방 올 일이 있어서 말이야. 여기 왔는데 지 사장 얼굴은 보고 가야지.”
“안으로 들어가시죠.”
담배 한 대 피우고 설비 제작동 가서 뺑이 치고 있는 유재준 부장 달래 주려고 했는데, 글렀네.
“지 사장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 인사 됐던데?”
“제가요? 저야 뭐 나주에 공장 세운 것 말고는 한 것도 없는데요.”
“조합 반 토막 내 버렸지, 태양전기 보내 버렸지, 아주 스타가 됐어. 하하.”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원. 돈을 엄청 밝히긴 해도 변압기 업계에 대해서 누구 편이라고 할 만한 성향을 보이지 않았기에 아리송하긴 하다. 거래 업체들이 반 토막 난 중전기조합 소속이라 타격을 입긴 했을 터.
“조용히 회사나 키우며 지내고픈데, 자꾸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회사 명운을 걸 일이면 확실하게 해야죠.”
“뭐 내가 변압기 쪽에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것은 아니지. 요새 많이 바쁘지? 대한전력 변압기 다 쓸어 갔다고 말이 많던데.”
아리송한 것이 명확해졌다. 이건 비아냥이었군. 변압기 다 쓸어 갔는데, 자기한테 들어오는 주문은 왜 이것밖에 안 되냐는 것이겠지.
대한전력 1차 납품은 시간 문제로 태진기업 외함을 사용했다. 재고 생산품이 있어서 천 대만 추가 생산했는데도, 외함이 제때 입고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태진기업의 만만디에 빡친 우리는 밤을 새워 가며 외함 자체 제작을 서둘렀다. 결국 2차 납품분부터는 자체 제작한 외함을 사용하고 있다.
기흥기업 출신 2명에 추가로 5명을 붙여 최대 월 8천 대까지 만들 수 있는 생산 체제를 구축해 놨다. 우리를 빡돌게 한 태진기업과 거래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게 다 문자님이 주신 외함 제작기 덕분이다. 감사합니다!
물량 쏟아지는데 자재 공급 늦어지면 정말 미쳐 버린다. 전화해서 살살 달래 줘도, 악을 써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장은 현장대로 자재 없다고 아우성이지, 자재 업체는 돈 안 주면 물건 못 보낸다고 강짜 부리지. 끔찍한 기억이다.
회사 차리면서 어지간한 자재는 직접 소화할 것이라고 계획했고, 그중에서도 외함을 제일 먼저 하리라 다짐했었다. 외함이 제일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태진기업 아니면 우리 물량 소화할 곳이 없어서 손을 잡았지만, 곤조 부리는 꼰대 사장이 멋대로 행동하도록 놔둘 생각은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이 허풍 많은 것 아시지 않습니까? 다 쓸어 갔을 리가 있습니까?”
“대한전력에서 한 번에 몇 대씩 발주가 나오나?”
이거 변화구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로군. 변화구는 볼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지켜보고 있으면 되겠네. 바쁜데 그냥 직구 날리지 말이야.
“저희 먹고살 만큼은 나옵니다.”
“뭐 한 납기에 만 대씩 나온다고 하던데?”
“그 정도 나오면 먹고살 만큼이 아니라 배터질 정도겠죠.”
“뭐 비밀이라고 그리 꽁꽁 숨기나? 나한테 뭐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이건 직구냐, 아니면 제구 안 된 변화구냐? 나랑 싸우러 왔으면 빨리 싸우고 가라. 나 바쁘다.
“제가요? 제가 아니라 사장님이 저한테 잘못하시지 않았습니까? 하하.”
네가 변화구로 승부하겠다면, 난 직구로 승부한다. 자, 이제 할 얘기 본격적으로 해 보셔.
“잘못이라니?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는가? 아니, 내가 외함을 안 만들어 주기를 했어, 우리 외함에 문제가 있기라도 했어? 거참, 섭섭하네.”
문제 많았지. 납기 제대로 지킨 적도 없잖아? 그것도 전화로 사정사정해야 온갖 싫은 소리 다 하면서 겨우 갖다 줬잖아. 나주 멀다고 단가도 올려 받았잖아? 나도 그렇지만, 자재 발주하는 덕준이는 속이 다 타들어 갔다고!
“지금까지 그리 문제가 많았는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조차 모르시는 것을 보니 제 판단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장님, 저희 이제 외함 자체 제작합니다.”
“뭐? 외함을 자체 제작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우리와 거래를 끊겠다는 얘기인가?”
“네, 맞습니다. 돈 벌자고 사업하는 것이지, 태진기업에 굽실거리라고 사업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김 사장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 말을 해 주길 기다렸다는 표정이다. 뭐 올가미라도 펼쳐 놨다는 뜻인가? 내가 올가미 걸려 줄 테니까 어디 해 보셔.
“허허. 내 이럴 줄 알았네. 나도 이 바닥 30년인데, 딱 보면 보이지. 이봐, 지 사장. 사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사업을 그렇게 하면 안 되네. 내가 자네를 태양전기 때부터 봐 온 사람으로서 조언해 주는 것이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트인데? 이 바닥은 참 조언해 주는 사람도 많다. 사업을 모르는 사람이 올해에만 매출 300억은 거뜬히 찍을 것 같은데, 대체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지 원.
“조언이라고 하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조언이 비싼 돈 주고 산 외함이 늦게 들어오든 말든, 치수가 안 맞든 말든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은 아니겠지요? 저는 사장으로서 자재에 문제가 있으면 대안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업은 그렇게 해야지요.”
“아니, 우리 외함이 뭐 문제라도 있었냐고! 내가 물건 안 보내 줬어? 하도 난리여서 직원들 밤새워 만들어 보내 줬는데, 이렇게 나오면 안 되는 것 아니야?”
도리어 큰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까, 돈이 무척 아쉬운 모양이네. 돈이 아쉬워서 찾아왔으면 고개라도 조아리든가. 누가 이 바닥 전형적인 곤조통 아니랄까 봐, 꼭 저렇게 나온다니깐. 깡통집 곤조통 진짜 징글징글하다.
“하하하. 외함 삼사일씩 늦게 보내 놓고, 야근 수당 주고 나주까지 배달해 주고 나면 오히려 손해라고 죽는 소리 엄청 하더군요. 이거 뭐 돈 주는 사람이 오히려 미안해질 판이라 거래를 지속할 수 없겠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는 것이지. 뭐 물건 한두 번 늦어졌다고 이럴 수 있냐 말이야. 내가 이래서 사업 처음 하는 사람하고는 거래를 안 한다니까.”
어랍쇼? 잘됐네. 거래 안 할 생각이니까 거래하지 말자고. 뭐 더 이상 할 얘기도 없네.
“말씀 잘하셨습니다. 납품 늦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 제때 들어온 적이 한두 번이죠. 그뿐입니까? 금형 없다고 우리보고 설계 바꿔 달라고 하고, 나주 내려갔다고 다른 업체보다 가격 높게 받기까지 했죠. 뭐 거래 생각 없다니 저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나 참. 이 사람 이거 참 말이 안 통하네? 어른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조언해 줬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여야지. 이거 원.”
그냥 욕을 하세요, 사장님아. 사업하는데 찬물 위아래 가리는 소리 하고 있네 진짜. 어쩜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만 저리 골라서 하시나.
“네. 조언 감사합니다. 앞으로 사업 번창하길 빌겠습니다.”
“하하. 나 원, 최 사장이 나한테 와서 그리 하소연을 하더니만. 이거 참.”
최 사장? 최현아 말이야? 아나, 진짜 이거 파플로프의 개처럼 자동으로 뚜껑이 열리네. 최현아 넌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살 생각이냐?
“뭐 최 사장이 누군지 모르겠구요. 제가 외함 때문에 연체 맞을 수는 없으니, 저는 저대로 준비해야죠. 사장님께서 연체료 대신 내 주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이, 지 사장. 이렇게 나오고도 사업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나? 나 김근배야. 태진기업 김근배라고.”
뭐 이대라도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김근배인 것 나보고 대체 어쩌란 말인지. 당신은 방역이 필요한 수준도 안 된단 말입니다. 내가 좋게 타일러 줄 테니 얌전히 반성하면서 가던 길 가셔.
“사장님, 제 딴에는 사장님과 거래 시작했으니 신의 지켜보겠다고 해 달라는 것 다 해 드렸습니다. 제가 거래하자고 찾아갔을 때 뭘 믿고 외상 거래하냐고 그러셨죠? 그래서 지금까지 다 현금 지급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주 운송비 부담된다고 해서 단가도 올려 드렸죠? 그런데 사장님은 저에게 신의를 지켰습니까?”
“아니, 그것은…….”
“마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전력 전체 물량이 7만 대가 넘습니다. 한 달 만에 9,500대 내보냈습니다.”
전체 물량이 7만 대라는 소리에 김 사장 눈이 드디어 요동친다. 돈 엄청 아쉬울 것이야. 7만 대면 70억 원이 넘으니 미쳐 팔짝 뛰겠지.
“제가 창업하겠다고 사장님 찾아갔을 때 물량 많으니까 문제없도록 신경 써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드렸습니다. 기억나시죠? 두 달 전이었나요? 저희 한 과장이 외함 입고가 계속 늦어지면 자체 제작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그 뒤로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더군요. 뭐 하실 말씀 있습니까?”
“지 사장, 자네도 우리 사정 잘 알지 않나? 외국인 애들이 말을 안 들어. 나라고 왜 물건 빨리 안 보내 주고 싶겠나. 요새 철판 공급도 잘 안 되고. 자네가 이해를 해 줘야지 않겠나?”
돈 앞에 70억 원이 아른거리는데 아주 죽겠지? 그러게 처음부터 똑바로 하지 그랬어. 신생 업체 이런 식으로 길들여서 단가 올려 받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니? 장난 칠 사람한테 장난을 쳐야지.
누가 보면 일방적인 거래 중단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돌아오는 결과가 그 모양이면 얄쨜 없다.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좋은 사람이야. 하나라도 챙겨 주고 도와주려는 사람한테는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라고. 영진기업 박 부장이 내 덕에 독립해서 사업 번창할 일만 남았다고!
“저희 다음 납품분부터는 전량 외함 자체 제작해서 사용하니 앞으로 거래할 일은 없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장님! 우리 인연이 몇 년인가! 태양전기 시절 때부터 봐 왔던 인연 아닌가! 내가 미처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네. 앞으로는 우리 사장님 주문은 제일 먼저 처리하도록 신경 쓰겠네. 앞으로 잘해 보자고.”
이건 뭐 조삼모사 만화에 나오는 원숭이도 아니고. 곤조 부리며 큰소리치더니, 이제 와서 사장님 소리 하면서 비굴하게 나온다 이건가? 꼴도 보기 싫다.
“멀리서 오셨는데, 오신 김에 공장 구경이나 하시겠습니까? 앞으로 거래 안 하겠지만, 인연이 있으니 언제든 놀러 오십시오.”
사무실 1층 출입구까지 배웅을 하는데, 굳이 나 보란 듯이 가래침을 뱉어 내는 김 사장. 가래침이 딱 안 떨어졌는지 손바닥으로 입 주위를 닦는다. 벤틀리 더러워지겠네.
더러워진 벤틀리가 굉음을 내며 공장에서 벗어났다. 화가 나셨겠지. 그러게 왜 그러셨습니까? 장난질하면서 업체 길들여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장난도 정도껏 쳤어야지. 평소에 잘했으면 외함 자체 제작할 생각조차 안 했을지도 모른다. 사업 좀 깔끔하게 합시다요 제발.
이 바닥 정말 징글징글하다. 변압기 완성품 업체부터 시작해서 자재 공급 업체까지 하나같이 저 모양이니 말이다. 좋은 회사 찾기가 손에 꼽을 정도다.
내가 이 바닥 물갈이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단 말이냐!
그런데 이 성스러운 공장에 가래침 뱉고 간 것이 계속 걸린다. 가래침을 뱉어? 내가 어떤 놈인지 모른다 이거군. 오냐, 너 이 자식. 벤틀리가 다마스로 바뀌게 해 주마.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