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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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73화>073 학이시습지
회사 세우고 처음으로 가진 내 한나절 휴가가 막걸리 폭격에 끝나 버렸다.
회사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 미친놈아! 술도 못 마시는 놈이 얼마나 마셨길래 이리 꽐라가 돼서 돌아왔냐? 그래도 대리까지 불러서 온 것 보면 참 용하네.”
기숙사에서 안락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덕준이가 혀 꼬부라진 전화 호출에 ‘쓰레빠짝’을 끌고 공장 주차장으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오늘 무슨 날이야? 뭐 좋은 일이야, 나쁜 일이야? 술 냄새 장난 아니네.”
“덕준아. 끄읍. 수른 조은 일로 마셔야 약이지. 아조은 일로 마시면 도기야. 끄읍.”
“이거 막걸리 마셨구만? 나까지 취하겠네. 정신 차리고 들어가자. 춥다고! 빨리 들어가자고!”
미안하다, 덕준아. 내 의지가 아니었어. 널 보니까 마음이 놓여서 그만. 우웨웩.
“아오. 이 미친놈아! 와! 냄새. 엄청 처드셨네 진짜. 등 두들겨 줄라니까 가만있어! 에휴. 그래, 토한 김에 다 토해라.”
덕준이 앞에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빅 사이즈 피자 한 판 부치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든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 왔지만, 그래도 좀 살 것 같다. 앞으로 술 앞에서 객기 부리지 말자.
“휴우. 죽는 줄 알았네. 덕준아, 담배 한 대 피울까?”
“너 이래 가지고 내일 일할 수 있겠냐? 낼 아침부터 면접 보러 사람 여럿 올 텐데 말이야.”
“덕준아. 나 로타리클럽도 가입했어. 이제 봉사 활동도 하면서 착하게 살라고.”
“낼 면접 보러 온다니까 웬 로타리클럽 타령이여. 아잇. 뭐야! 쓰레빠에도 튀었잖아! 아오 진짜.”
미안하다. 오늘 좀 흡입량이 많아. 내 다신 막걸리 안 마신다 진짜. 거하게 토하고 났더니 머리가 더 빠개질 것 같네.
“덕준아. 나 소개팅 한다? 최대근 사장이 조카 소개시켜 준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 말이나 막 나온다. 술이 올라와서인지, 그냥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개팅? 이야, 유명 인사 되더니 이제 선자리가 막 들어오는구만. 그래, 너도 이제 연애해야지. 그 누구였지? 수애? 수애 맞지? 걔랑 헤어진 지 꽤 되지 않았냐?”
“어. 수애 맞아. 나쁜 년. 저만 힘들었나. 난 뒤질 것 같았구만.”
가진 것 하나도 없는 처지였기에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귀던 4년 동안 내 나름 최선을 다했다. 없는 형편에 비싼 선물도 해 주고, 온갖 짜증도 넓은 아량으로 다 받아 줬었다.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 짜증 못 받아 준 건 어쩔 수 없고.
“그래, 다 잊고 새로운 사람 만나. 너도 알잖아. 여자 처음 만났을 때 그 설레는 마음. 그거 얼마나 좋냐? 사람을 힘나게 하는 거라니까.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역시 사람은 연애를 해야 해.”
“우리 덕준이도 결혼해야 할 텐데. 여자만 데리고 와. 내가 집도 해 주고 다 해 줄게.”
“내 걱정은 말아라. 하드에 내 여자 수백 명 있으니까. 내가 봤을 땐 넌 여자 빨리 만나야 해. 나만큼 너 잘 아는 애 있냐?”
“내가 뭐 여자 못 만나서 환장한 사람같이 그러냐.”
“어, 맞어. 너같이 외로움 많은 애가 아닌 척하는 것도 보기 힘들다야. 너 괜히 아닌 척하려고 회사 일에 몰두하는데, 그게 너 자신을 죽이는 거야. 일은 일이고, 니 인생은 니 인생이야.”
“야. 무슨 소개팅 한다는 소리에 인생 타령까지 하냐. 최대근 사장이 만나 보라고 하니까 그냥 알았다고 한 거지 뭐.”
술이 살짝 깨는 느낌이다. 덕준이가 정곡을 찔렀다.
일중독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나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한 외로움을 잊기 위해 회사만 생각하며 일에 몰두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덕준이, 이 무서운 자식. 근데 어째 네가 술 마신 사람 같다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엄마라는 존재. 누군가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자리했나 보다.
“야야. 회사 일은 신경 안 써도 잘 돌아가니까 앞으로는 퇴근하면 놀러 다니면서 여자나 만나. 사귀기 직전의 그 꿈틀꿈틀하는 느낌 있잖아? 그거 얼마나 좋냐. 손만 잡았는데 막 불끈거리고 힘 들어가고 어? 집에 와 보면 알이 얼얼하고. 크으. 그거 짜릿하지.”
역시 나도 모르게 센티멘탈해졌을 때는 덕준이 옆에 있어야 한다. 무참히 깨 주니 말이다. 덕준의 단점은 딱 하나다. 멀쩡한 소리 하다가도 안 잡아 주면 금세 딴 길로 빠져 버린다는 것. 그것도 능력이다야.
그 덕분인지 정신이 든다. 확실히 술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법이야. 술을 멀리해야 해.
“근데 내일 면접 몇 시부터 온다고 했지?”
“사장님아. 일은 일과 시간에 합시다. 너 인마, 이렇게 일이랑 니 생활이랑 구분 안 짓고 살면 너만 힘들어진다니까?”
“아직 자리도 안 잡았고, 신경 쓸 것이 많잖아.”
“다들 뺑이 치면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신경 조금 덜 써도 됩니다요. 너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오케이? 담배 다 피웠으면 들어가자. 이젠 춥다야. 겨울인 줄 알겠네.”
어렸을 때부터 즐겨 읽었던 삼국지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오장원에 주둔한 제갈량을 두고 사마의가 새벽부터 밤중까지 모든 일을 손수 처리하니 어찌 오래 지탱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다는 대목 말이다.
덕준이 말이 맞다.
우리 회사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내가 밤낮 없이 일에 매진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직원들이 각자 맡은 업무를 충실히 잘 수행해 주었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잘해 주고 있는 직원들을 믿고 있으면 그만이다. 나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으로 분주할 필요가 없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은 그려 놨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하며 지내도록 한 것이 아닐까? 스케치를 넘어 드로잉까지 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사장이면 사장답게 스케치만 하자. 드로잉은 전문가에게 맡기자.
술김에 이렇게 나 자신을 반성하며 회사 경영의 정도에 대해 깨닫는구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라! 덕준이 저 자식. 고맙다. 쓰레빠에 묻은 토사물 잘 씻어 내라.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기분 좋게 일어나고 싶었지만, 머리가 빠개져 나갈 것 같았다. 이 지독한 막걸리! 넌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반차로 오후에 회사를 비웠지만, 이 지독한 직원들은 사장에게 전화 한 통 없더니, 역시나 아무 문제없이 저들끼리 잘해 먹고 있었다. 나는 없어도 되는 존재란 말인가. 이거 섭섭하네.
“사장님, 바람 잘 쐬고 왔어요?”
황미연 대리가 거래명세표 철을 가져오며 지출 내역서 결제를 요구했다. 확인하고 말 것도 없다.
“이거 마이너스 들어간 것은 반품이죠? 이 자재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까?”
“바람 잘 쐬고 왔냐니까, 일 얘기부터 하시네. 호호. 어제 현장 내려갔는데, 직원들이 끙끙거리고 있기에 뭔가 하고 봤더니, 치수가 살짝 안 맞아서 억지로 늘려서 조립하고 있더라구요.”
“치수가 안 맞는 것이면 자재가 잘못 들어온 것 아닌가요?”
“네. 그래서 자재가 잘못 들어온 것 아니냐, 자재 문제면 한 과장님한테 얘기해야지, 왜 그러고 있냐 했더니, 한 과장님 바쁜 것 아니까 괜찮다고, 현장에서 알아서 고쳐서 쓰겠다고 하더라구요.”
“음…… 그렇게 하는 경우도 많긴 하죠.”
“왜 사서 고생을 해요. 우리 돈 주고 사는 자재면 확실해야죠. 제가 그래서 한 과장님한테 얘기했더니, 자기도 현장에서 아무 얘기 없어서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업체에 전화해서 바로 반품 처리하고 마이너스 계산서 끊어 달라고 했죠.”
자재는 문제가 있었지만, 회사는 아무 문제가 없네. 직원들이 서로 걱정해 주고, 더 나아가 회사 생각까지 이리해 주니, 80일간 세계 일주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래, 나는 스케치 부지런히 하면서 월급이나 잘 챙겨 주자.
“그래서 어제 바람 잘 쐬고 오셨어요?”
“혁신도시 아파트 구경하고 왔어요. 새 아파트들이라 그런지 좋더라구요.”
“에이, 난 또 데이트라도 하고 온 줄 알았더니. 호호. 그래서 이제 저기 수면실에서 그만 살고 집 구하려고요?”
“저도 이제 사람답게 살아야죠. 대리님도 넓은 집 살게 해 드리고.”
지금까지 황 대리가 웃던 모습은 다 가식이었다. 이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저 환한 표정. 저것이 찐 웃음이었다. 새 아파트는 황 대리도 춤추게 한다.
“직원들 아파트 구하겠다고 하더니, 어제 집 보러 가신 거예요?”
“대한전력 납품 대금 곧 들어오니까, 그걸로 바로 구하려구요. 슬슬 이사 준비해 두세요. 하하.”
“어머, 감사해요. 아휴. 가구며 가전제품이며 살 것 잔뜩인데 이를 어쩌나.”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나주 내려오느라 가족들과 생이별해야 했던 다른 직원들은 얼마나 더 좋아할지. 이게 돈 쓰는 재미로구나. 앞으로도 시원하게 벌어서 시원하게 쓰자.
아침부터 황 대리 기분을 좋게 해 준 것이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냈다. 입이 귀에 걸린 황 대리가 덕준이를 보조할 관리 직원 채용을 위해 회사에 찾아온 이에게 강력크한 인상을 심어 줬기 때문이다.
덕준이가 고른 후보는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24세의 여성이었다. 무려 여성! 이 자식 기어코 여자로 추렸구만.
“박아름 씨.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네요?”
“네. 철학이 취업이 잘 안 되는 과라고들 얘기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다루는 범위가 광대하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건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똑 부러지긴 하네. 솔직히 수능 점수대 맞춰서 가려다 보니 철학과 들어간 것 아니야? 내가 그랬어. 난 사회학 관심도 없었어. 경영이나 경제는 수학 잘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고, 법학은 외울 것 많다고 해서 포기했어.
“집이 나주네요? 출퇴근은 어렵지 않겠네요.”
“나주라 가까워서 좋기도 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프라임일렉트릭이 좋은 회사라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제가 더욱 좋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습니다.”
후훗, 좋은 회사라고 소문났다니, 입에 침이나 바르고 얘기하는 거지? 창업한 지 이제 1년 된 회사가 얼마나 소문이 났겠어. 열정은 보기 좋다. 너 합격! 덕준이랑 잘해 보셔.
“공장 일이 힘든 점이 많습니다. 그래도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조직에 잘 녹아들길 바랄게요. 어린 친구들이 많으니, 누나처럼 언니처럼 잘 대해 주면 좋겠네요. 한덕준 과장에게 일 잘 배우고, 어렵고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주세요. 좋아져야 할 부분이 많은 회사이니까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회사를 더욱 좋게 만들 수 있는 동력입니다.”
“저기, 사장님. 저 합격한 건가요?”
“출근은 내일부터 하든지, 다음 주부터 하든지 편할 대로 하세요. 연봉은 채용 공고에 올라온 그대로인데, 더 자세한 사항은 황미연 대리에게 들으시구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똑 부러지고 씩씩한 직원 하나 뽑았군. 남자들만 가득한 이 공장에서 잘 버티도록!
공장장이 데려온 설계자 한 명도 찾아왔다.
생산 관리만으로도 바쁜 공장장에게 그 많은 설계 일까지 떠안긴 것이 못내 안타까웠는데, 결국 설계 인력도 충원하게 됐다. 1명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차근차근 충원해 가자.
“저희 공장장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세원변압기에서 일하셨다고요?”
“네, 거기서 15년 일했는데, 뭐 쫓겨났지요. 하하.”
뻔하다. 이 바닥에서 설계자 대접을 어찌하는지 말이다.
처음에는 비교적 높은 연봉을 주며 극진한 대접을 하다가, 뽑아먹을 것 다 뽑아먹고 나서는 토끼 잡던 사냥개 취급을 해 버린다. 46세면 한참 일할 나이인데, 쫓겨나서 앞날이 암울했을 것이다.
관수변압기는 설계가 핵심이지만, 한 번 설계가 확정되면 바꾸질 않는다. 물량이 워낙 많고, 시험도 까다로워서, 함부로 설계 변경했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계 끝내고 나서 얼마나 가시방석이었을지 안 봐도 훤하다.
“캐드는 잘하시죠?”
“캐드요? 그럼요. 설계하는 사람이 캐드 못하면 되겠습니까?”
덕준아. 드디어 캐드하는 사람 뽑았다. 잘했지?
“공장장님하고 친분이 있으시니까 서로 상의해 가면서 열심히 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인데요. 혹시 자제분이 딸인가요?”
“네? 네, 딸만 둘 있습니다.”
역시 이 바닥 전설은 확실하군. 전기쟁이치고 딸딸이 아빠 아닌 사람이 없다더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웃음의 의미를 모르겠지만, 새 설계자는 사장이 웃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회사가 점점 자리를 잡아 간다. 10,000피스짜리 퍼즐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