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97)
097 양아치 연가시
꿈을 향해 정진하리라 다짐하고 나주로 차를 몰았는데, 역시 30대라는 것을 속일 수가 없다.
이거 참 피곤하네. 마음은 여전히 갓 제대한 20대이지만, 몸은 정직하다. 아르기닌이라도 부지런히 챙겨 먹어야지.
혁신도시 스위트 홈에 도착해 옷만 갈아입고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집에서 뭉그적거리다가는 무거운 눈꺼풀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늘 그렇듯 회사 정문에 서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환한 미소로 인사하는데, 다리가 후달린다. 이 짐승! 대체 어제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사장님, 좋은 아침! 어? 사장님 어디 아퍼?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네?”
“아니에요. 어제 잠을 좀 설쳐서.”
“어젯밤에 뭐 했길래! 하하. 몸 관리 잘해. 아침마다 나와서 인사하는 것도 그만하라니까 그 고집이네 진짜.”
상무는 여전히 귀신같은 눈치를 선보인다.
극성스런 형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아닌 척하자. 황미연 사장 귀에 들어갔다면 오늘부터 당장 함 보낼 준비 하겠다고 오동나무 자르기 시작할지 모른다.
회사에 왔으니 일 생각만 하자. 여전히 머릿속에는 부산과 폴리머부싱이 자리하고 있다.
“상무님. 혹시 태인산업 아세요? 부산에 있는 폴리머부싱 만드는 회사예요.”
“태인산업? 아니. 난 처음 들어 보는데. 아니다.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확실치 않은 것은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회사라는 뜻일 것이다. 아무래도 무작정 찾아가서 헤딩하는 수밖에 없겠네. 일단 기력 좀 회복하고.
요즘 회사가 알아서 잘 돌아가니, 오전엔 좀 쉴 생각이었다. 역시나 오산이지.
“사장님! 이거 봤어?”
“이거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아냐?”
“이 새끼 저번에 그 새끼야. 아우, 이 새끼 어떻게 조지냐?”
덕준이가 흥분이 가득한 채로 사장실에 벌컥 들어왔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목숨 연명하겠다고 촛불 켜 놓고 하늘에 기도하는데, 허겁지겁 달려와 촛불을 꺼 버린 위연이 이랬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인데? 흥분하지 말고 자초지종을 얘기해 봐.”
“이 기사 좀 읽어 봐. 이거 되게 기분 나쁘네.”
덕준이가 출력한 종이 두 장을 건넸다.
“총선 앞두고 자격 없는 예비 후보자 난무? 이건 뭐냐? 나주ㆍ화순 예비 후보의 혁신산단 특혜 시비 잇따라 제기돼? 이거 우리 얘기야?”
“어. 우리 회사 뭐 있나 싶어서 검색하다가 본 건데, 듣보잡이라 당연히 포털엔 안 걸린 기사야. 뭐 파급력 따위는 없겠지만, 기분이 나빠. 아주 나빠.”
“이거 최대근 사장 얘기하면서 우리 회사까지 도매금으로 넘긴 것 같네?”
“맞아. 최대근 사장 얘긴데, 최 사장이 나주 지역 지지를 얻기 위해 혁신산단 사장으로 있으면서 특혜를 남발했다는 거야. 개 같은 새끼. 이 새끼는 진짜 뭐 하는 놈인데 계속 이러냐?”
총선을 앞두고 모사꾼들이 설치기 시작했군. 이놈들이 기어코 나를 끼워서 재미를 보시겠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이 새끼들 또 혈압 오르게 만드네.
“한 부장아. 흥분할 필요 없어. 동양경제 김태섭 기자 맞지? 저번부터 지랄하길래 뭐 하는 곳인지 알아보니까 완전 허접이야. 신경 쓸 것도 없어.”
“너도 찾아봤구나? 바이라인에 광주라고 써 놨길래 지역 주재 기자인 줄 알았는데, 그냥 광주에서 혼자 활동하는 놈이더라. 말이 좋아 기자지, 그냥 블로거야.”
동양경제라고 해서 경제지에 지역 주재 기자까지 있으면 규모 좀 있나 싶었는데, 그냥 이름만 걸어 둔 수많은 언론사 중 하나에 불과했다.
딱 보인다. 동네 관공서나 협회 돌아다니면서 밥 얻어먹고, 중소기업들한테는 삥 뜯으면서 먹고사는 존재. 시끄럽게 하면 귀찮으니까 오냐오냐해 주니, 자신이 대단한 권력자인 양 착각하는 이들.
기레기라는 표현도 아깝다. 기레기는 그래도 기사라도 쓰지, 이놈들은 기사도 안 쓴다. 그냥 연가시 같은 기생충이랄까? 그런 놈이 기사까지 썼다?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기사 내용은 뻔하지? 보나 마나 최 사장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혁신산단을 이용해 먹었다는 내용일 것 같은데?”
“귀신이네. 맞아 맞아. 그것 때문에 우리가 대한전력 지역우선배정 20프로 혼자 다 먹으면서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고.”
“허접한 놈이 허접한 기사 썼네, 뭐. 우리 공장도 최 사장네 회사가 지어 줬다고는 안 썼디?”
“당연히 썼지. 누가 보면 뇌물이라도 준 줄 알겠네.”
혹시나 해서 동양경제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역시나였다.
기사라고는 보도 자료 ‘복붙’밖에 안 보인다. 가끔 직접 쓴 것 같은 기사가 있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회사 관련 기사다. 중전기조합이 대한전력 앞까지 찾아와 집회를 열었다는 기사.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진 그 집회 말이다.
내용은 보도 자료 긁어다 붙였는데, 제목으로 장난을 쳐 놨다. ‘한 회사에 물량 몰아주는 대한전력, 비판 목소리 높아’.
“덕준아. 이 기사 쓴 놈이랑 같은 놈이네.”
“이거? 그래, 이거 맞아! 내가 느낌이 싸하다 싶어서 검색해 보니까 그놈이더라고.”
“그때 네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삥 뜯는 놈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었지?
“어어, 맞어. 그때야 그냥 시비 걸면서 용돈이나 받아먹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더니만, 이 새끼 신경 쓰게 만드네.”
“뭔가 거슬린다 싶더니, 이놈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어.”
“일단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지, 나도 고민해 보겠습니다요.”
피곤해서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더니, 글렀네.
당장 최대근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지정수입니다.”
“아이고, 사장님! 이거 면목이 없습니다.”
면목이 없을까 봐 안 찾아가고 전화했수다. 그나저나 로타리클럽 가입식 때 호형호제하기로 해 놓고, 그새 까먹었나 보네. 형님으로 부른 나만 민망하게시리.
“기사 보셨습니까? 동양경제 김태섭 기자, 대체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놈이야 뭐 동네 어슬렁거리면서 용돈이나 받는 기자라서 신경 쓰실 것은 없습니다. 이거 혹시 녹음되는 것 아니지요? 하하.”
“사장님의 노고가 폄훼되고, 제가 무슨 부정한 방법으로 회사 일으켰다는 듯이 써 놔서 몹시 불쾌합니다.”
“알죠, 알죠. 아주 잘 알죠.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나요, 아주 떳떳합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면 모르겠지만, 최 사장 떳떳한 것은 내가 보증한다. 공사비 잔금 20억 원도 차용증 작성하고 이자 꼬박꼬박 받아 갈 정도였지 않나?
“사장님께서 보시기에 이거 누구 작품입니까?”
연가시가 뜨거운 언론인의 사명에 몸부림치며 기사를 썼을 리가 없다. 분명 뒤에서 소스를 던져 준 놈이 있을 것이다. 최 사장에게 바로 직구를 날렸다.
“하하. 지 사장님, 예리하십니다. 이거 전화로 말씀드리기는 뭐하고, 차나 한잔 하시죠?”
“선거 사무소가 혁신도시에 있죠?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좀 쉬다가 바로 최 사장 만나러 갈 걸 그랬다. 아휴, 피곤해. 앞으로는 흥분도 나이에 맞게 하자. 너무 무리했어.
그 덕분에 아침 댓바람부터 에스프레소를 샷 추가해서 들이켰다. 그래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여기에 핫식스 하나 풀어서 마시면 딱일 것 같은데.
“지 사장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이거 죄송합니다. 우리도 기사 대응하겠다고 아침부터 난리라서.”
에스프레소가 식도를 넘어가기 무섭게 최대근 사장이 달려왔다.
예비 후보 잠바를 입고 올 줄 알았는데, 평범한 양복 차림이다. 아침부터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 누구 짓입니까?”
서로 바쁜 처지니 바로 본론이다. 최 사장이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장님, 예전에 정무부지사 하던 박철원이 기억하십니까? 사장님이 도지사님하고 면담하고 나서 짤린 양반 말이오.”
“그 사람이 여기 지역구에 출마합니까?”
“그러니 나를 죽이겠다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우리 당이 쪼개지지 않았습니까? 공천 받겠다고 거기로 넘어갔지요. 우리 당에 있다가는 공천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랬겠지요.”
“공천 경쟁이 아니라 본선 경쟁이다, 이 말씀이네요?”
“아직 추측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양반 아니면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이 없지요. 지금 여론 조사 돌려 보면 호남 어디든 만만한 지역이 없어라.”
“그나마 사장님께서 제일 앞서 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유일하게 이 지역만 내가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이 말이지요. 그렇다면 나를 흠집 내겠다고 할 사람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만나 본 적도 없지만, 그놈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배후에서 혁신산단 준공 늦추려고 온갖 협잡을 서슴지 않았던 그놈을 잊어서는 안 되지.
“사장님, 그 정무부지사라는 사람이 가오 타령하며 안성파워에 혁신산단 1호 투자 기업 타이틀 넘기라고 한 사람이죠?”
“맞습니다, 맞아요. 안성파워가 계약하고 나서 사정이 생겨 공장 준공이 늦어질 것이라고 했었지라. 묘한 것이 안성파워 계약 건을 보고하고 나니까, 그때부터 1호 투자 협약식 가지고 계속 태클을 걸더라니까요.”
“어떻게든 혁신산단에 공장 안 들어서게 하려고 그랬을 것이란 말씀이죠?”
“그랬을 겁니다. 그때는 그냥 모양새 좋게 하려고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그게 아니더란 말이죠. 사장님께서 바로 공장 세우겠다고 하니까, 그때부터는 혁신산단 준공 가지고 얼마나 트집을 잡던지 원.”
투자 1호 타이틀 양보 요구도 그놈 짓이 분명해졌군. 죄 하나만으로도 거열형에 처해야 마땅한데, 죄가 한두 개가 아니었어. 효시형까지 해 줘야겠네.
“그러니까 사장님께서 있는 동안에 성과를 못 내게 하려고 공장 착공을 최대한 늦추려고 했다는 것이죠?”
“그게 사장님의 돌파 덕분에 무너져 버렸으니, 사장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겠죠.”
“하아, 나 참. 어이가 없네요.”
“사장님, 지금 저쪽 기세가 아주 무섭습니다. 나주야 내가 확 쥐고 있으니까 저것들이 여기에서 바람을 일으켜 보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겠다는 것이지요.”
“고작 하는 짓이 듣보잡 언론 통해서 찌라시 같은 기사 내는 것이라면, 무서울 일이 없지 않습니까?”
냉수를 벌컥 마시던 최 사장이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걸로 간을 보겠다는 것이죠.”
“간은 본다니요?”
“그 사람들이 이 바닥에서 몇십 년 해 먹었는데, 그쪽으로는 꾼이랑께요. 좀 먹힌다 싶으면 일을 키우겠다는 심산이지요. 그래서 적극 대응할지 무대응으로 일관할지 회의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야 당당하니까 꿀릴 것 없지요. 설사 꿀린다고 해도 실적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사장님 공장 세운 뒤로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하하.”
원하는 답을 한 번에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꼭 쿠션을 먹인단 말이지.
“그래서 대응 방안이 나왔습니까?”
“내가 잘 수습해 볼라니까 너무 걱정 마시시요. 이러나저러나 바쁘신데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뭐 떳떳하니까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그 기자가 확인 전화 한 통 없이 그딴 기사로 우리 회사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 불쾌할 뿐입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대응을 해야겠습니다.”
“대응을 하신다구요?”
“사장님 선거 운동에는 지장 없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이 작은 하마를 건드린 놈이 나타나다니.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느끼게 해 줘야겠구만.
그러자니 걸리는 것이 있다.
전남도청에서 정무부지사까지 한 그놈이 배후라면, 최고의 복수는 총선 탈락이다. 그것도 선거비 보전도 못 받을 수준으로 참패하게 만들고 싶다.
그렇다면 난 최대근 사장의 당선을 도와야 한다. 최 사장 인지도가 높아 여전히 당선 가능성이 높지만, 방심할 수 없다.
불출마를 선언한 현역 국회의원, 나주시장, 화순군수 죄다 그놈 편이다. 조직이 가동되면 바람이 어떻게 불지 모르는 판이다.
이거 선거 운동에 나설 수도 없고, 애매하네. 사업하는 사람이 정치인들의 권력다툼에 끼어든다? 줄 잘못 섰다가 잘나가는 회사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세상 아닌가?
대기업 해체하고 방송사 통합해 버린 군부독재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권력이 기업 괴롭힐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이거 고민이야. 정치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난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하는 묘수가 없으려나? 골치가 아파 온다. 이래서 언론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꺼려 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