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98)
098 협잡질
에스프레소 드링킹을 끝내고 회사에 돌아오니, 홍보부장으로 전락한 덕준이가 짜증 가득한 표정이다.
“왜? 여기저기 전화 와?”
“지역 언론 몇 군데서 전화 왔는데, 이런 말도 안 된 기사에 해명해야 하는 사실이 짜증이 나네.”
“좋게 잘 설명해. 행여나 어설프게 기사 쓰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도 풀어 놓고. 수위 알아서 잘 조절해서.”
기업과 관련된 기사이다 보니 뭐라도 떨어질 줄 알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모양이다.
기업들이야 언론에 오르내려 봐야 좋을 것이 없다. 그래서 기자들이 달려든다 싶으면, 상품권 쥐여 주면서 침묵케 하는 것이 관례 아닌 관례였다.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은 구두 상품권은 역효과를 내니까 꼭 백화점 상품권으로 줘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직원들 주기도 모자랄 판인데, 뭐 이쁘다고!
“사장님, 저번에 보육원이랑 협약 맺은 거 보도 자료로 만들었잖아? 그거 실어 준 신문사 기억나?”
“광주시민일보?”
“역시 기억력 짱이야. 암튼 거기 기자한테도 연락 왔는데, 자기가 사겠다고 밥 한번 먹자고 하네?”
“기자가 자기 돈으로 밥까지 산다고 하고, 웬일이래?”
“뭔가 냄새를 맡았나 봐. 그 기자는 좀 괜찮은 사람 같더라. 저번에 기사 실어 줘서 고맙다고 저녁 한 끼 사 줬는데, 김영란법 걸린다고 싼 것 먹자고 하더라고.”
이 동네에서 영향력 좀 있다는 광주시민일보 기자가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이 사람을 이용하면 내 손에 오물을 묻히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약속 잡았어?”
“아니. 일단 알았다고만 하고 끊었지. 왜? 그 기자랑 얘기 좀 해 보려고?”
“내가 괜히 나섰다가 정치권이랑 얽히면 골치 아프잖아. 오랑캐 무찌를 때는 오랑캐를 활용해야지.”
“오케바리. 무슨 말인지 알았어. 시나리오나 잘 쓰셔. 내가 약속 잡아 둘게. 아예 오늘 저녁 어때? 말 나온 김에 바로 가야지.”
체력 회복해서 부산 달려갈 계획이었는데 일그러졌네. 태인산업 사장 만나야 하는데!
짜증이 확 났다. 방학식 전날에 선생님한테 제출한 하루일과표처럼 계획을 짜 놨다. 그런데 날파리, 양아치들의 방해로 차질을 빚으면 몹시 화가 난다. 같잖은 것들 때문에 사업에 전념하지 못하다니!
연가시 같은 양아치부터 족쳐야겠다. 최대근 사장에게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동양경제 김태섭 기자입니까? 프라임일렉트릭 사장입니다.”
“프라임일렉트릭요? 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이 자식도 어이를 밥 말아 잡쉈군. 기자 특유의 ‘곤조’라는 것이 이것인가? 연가시 주제에 기자 흉내 내기는.
“기자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써야지, 소설을 쓰면 됩니까?”
“다짜고짜 무슨 말씀입니까? 대단히 무례하시네요.”
“무례라니요. 우리 회사에 대한 취재도 없이 그런 기사를 쓴 것이 더 무례 아닙니까?”
어디까지 곤조를 부리는지 보자. 봉투 좀 쥐여 주면서 입막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나를 아주 우습게 본 것이야.
“저는 제 나름대로 취재를 했습니다. 기자가 취재도 없이 기사를 쓰겠습니까?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하하. 사실을 근거로 써야 기사죠. 하다못해 반론도 취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나 봅니다?”
“아니, 그래서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저 바쁘니까 별 얘기 아니면 끊으시죠?”
하룻강아지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짖어 대기는. 연가시에게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게 해 줘야지. 지렁이야 밟으면 꿈틀거릴지 몰라도, 연가시는 밟으면 죽지.
“김 기자님. 명백한 허위 사실을 적시하셨으니, 그에 따른 책임은 져야겠죠?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는 물론이고 민사로도 손해 배상 청구하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아니, 사장님. 기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반론을 요청하셔야죠. 이렇게 전화해서 다짜고짜 소송 걸겠다고 하는 것은 협박 아닙니까?”
“협박 아닙니다. 바로 법률 검토 거쳐서 진행할 것입니다. 이미 기사가 나왔는데, 반론 요청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와 회사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피해를 보상받아야죠.”
“사장님, 그러지 말고 만나서 얘기하죠?”
관공서나 업체 돌아다니면서 삥이나 뜯는 양아치이지만, 소송은 무서운 일이지. 아니다. 양아치니까 무섭겠지.
“만나서 할 얘기가 뭐 있습니까? 저는 할 얘기 다 했습니다. 바쁘다고 했죠? 이만 끊겠습니다.”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끊어 버렸다. 이런 양아치들까지 상대해야 하다니, 이거 급이 좀 떨어졌군.
저런 야비한 것들은 돈 앞에서 꿈쩍을 못한다. 거마비로 쥐여 주는 돈에도 꿈쩍을 못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손해 배상이다.
몇 푼 벌겠다고 몇 글자 썼는데, 그것 때문에 몇백, 몇 천만 원 날아갈 상황이 생기면 온갖 생각이 들 것이다.
말로야 손해 배상 청구액이 기자의 몸값이라고 허풍 떨지만, 막상 겪으면 바들바들 떨기 마련이지. 변호사 비용 마련하는 데도 등골이 휠 것이다. 송사가 얼마나 사람 피곤하고 짜증 나게 하는 일인지 겪어 보시라.
최유리가 해 준 얘기가 생각났다. 색다른 경험을 했던 크리스마스 이브 때 말이다.
“오빠. 기자는 안 건드리는 것이 좋은데, 그래도 못 참겠다 싶으면 바로 기자 상대로 민사 소송 거는 게 좋아요. 기자한테 걸어야 효과가 좋은 게, 회사는 배임으로 걸려서 못 도와주거든요. 기자만 죽어나는 거죠.”
“허위 사실이란 것만 확실하면 이길 가능성은 있는 거지?”
“소송에서 이기려면 반론권 요청, 언론 중재위 제소도 하는 것이 좋은데, 그냥 소송만 걸어도 효과가 좋아요.”
“이런저런 절차를 밟으면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 줘야 이길 확률이 높다는 거네?”
“맞아요. 그런데 그 고생해서 이겨 봐야 배상액 얼마 안 나와요. 승소하면 변호사비는 패소하는 쪽이 내긴 하는데,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별로 없죠.”
“아하! 그래서 이길 생각보다는 내가 널 이렇게 귀찮게 하겠다는 걸 보여 주란 말이네?”
“역시 오빠는 영특해요. 이거 머리 쓰담쓰담해 줘야겠네.”
보고 싶군. 뭐 서로 시간 나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 일단 양아치부터 처리하자.
아니나 다를까 양아치가 회사까지 찾아왔다.
엄청 쫄긴 한 모양이다. 엄포를 놓은 지 1시간 반 만에 찾아온 연가시. 개나 소나 기자가 되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기자라고는 못 부르겠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거뭇거뭇한 머리가 언발란스한 50대 아저씨였다. 검은 패딩 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비듬이 블랙 앤 화이트 패션을 완성해 준다. 누가 봐도 시정잡배네.
“사장님, 동양경제 김태섭 기자입니다. 이게 진즉 찾아왔어야 하는데, 많이 늦었죠? 하하.”
꼴에 기자라고 수첩을 펼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을 건넨다. 잔뜩 쫀 주제에 허세는.
“김태섭 씨. 나는 할 얘기 다 했습니다.”
“사장님, 저 취재하러 왔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이 혁신산단에 처음 입주한 회사 아닙니까? 스케치 정도로 기사 풀어내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요? 하하.”
허세 부리면서 가오 세우는 것은 이 바닥 일만이 아닌 것 같다. 어디든 일단 허세부터 부리는 저 못된 습성. 그래 봐야 본인만 비참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김태섭 씨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바쁜데 이만 돌아가시죠?”
“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로 해결하시죠?”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모를까, 유불리 계산해 가면서 고개 수그리는 놈하고는 할 얘기가 없다. 나라 팔아먹은 일제 앞잡이 같은 부류, 경멸한다.
“한 부장님!”
“네! 사장님.”
“자문 변호사 언제 오기로 했습니까?”
“네! 오후 4시에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오케이.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고소장도 작성 중이니까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덕준이 이 자식. 대본 없는 애드립에 저리 받아치다니, 눈치 하나는 인피니티 스톤급이다. 이리 훌륭한 직원들이 있는 우리 회사가 저딴 양아치 하나 때문에 스크래치가 나서야 되겠어!
“김태섭 씨 안 가십니까? 퇴거 요청을 했는데도 불응한다면 주거 침입죄 적용되는 것 알고 있습니까?”
“사장님, 제가 기사 바로 내리겠습니다. 기자가 자기 기사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시죠?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자식이 끝까지 기자 타령하며 있지도 않은 체면이라도 차릴 생각이네?
“할 얘기 없다니까 자꾸 이러십니까! 기사 내린다고 뭐 없었던 일이 됩니까?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나가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사장님, 제가 경솔했습니다. 우리 좋게 해결하시죠? 제가 당장 기사 내리고, 반론 기사도 아주 좋게 써 드리겠습니다.”
“하아, 진짜.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말고 나가라구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원하는 것 다 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대화로 푸시죠?”
진짜 양아치 같은 놈이네. 원하는 것 다 해 주겠다면, 난 녹음기를 틀 때로군.
“그래서요? 뭘 해 줄 수 있는데요? 우리 회사가 입은 1억 원 손해를 배상할 수 있습니까?”
팔짱을 낀 채 연가시를 노려봤다. 손해 배상액으로 얼마를 걸지 운까지 띄웠으니, 난 이제 할 얘기 다 했다.
잘 생각해라. 소송 그거 사람 미치게 한다. 알아서 다 불어라.
“사장님, 제가 사실 관계 확인 안 하고 기사 쓴 것 인정합니다. 제 사정도 좀 이해해 주시죠. 높은 분이 정보라고 주는데, 제가 혹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높은 분요? 누군데요?”
“에이, 사장님. 저도 기잔데 그건 말씀 못 드리지요. 취재원은 보호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와중에도 장사 밑천은 지키겠다?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그럼 정신 차리게 해 주는 것이 국룰이지.
“원하는 것 다 해 준다고 해서 무슨 얘기나 하려는지 들어 보려고 했더니, 귀한 시간만 버린 꼴이네요. 더 들을 얘기 없으니까 나가시죠.”
“사장님, 사장님. 그럼 이렇게 하시죠. 일단 기사는 바로 내리겠습니다. 대신에 저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사장님께서 끈만 만들어 주시죠?”
“지금 나랑 협상하러 왔습니까? 더 불쾌하네요.”
“사장님, 그러시지 말고. 최대근 씨랑 막역한 사이인 것 다 아는데, 왜 그러십니까? 최대근 씨랑 자리만 만들어 주시면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이참에 최 사장 쪽으로 라인을 틀겠다? 이거 발설지옥 가서도 염라대왕한테 쇼당을 걸 놈일세. 저놈이 내건 패를 받아야 녹음 돌리는 노고가 헛되지 않긴 하다.
그렇다고 내가 모사꾼이 될 수는 없지. 정도를 걸으면서 살아야지, 같이 먹물 바르면서 검어질 수는 없지. 이럴 때는 그냥 직진이야. 정공법!
“김태섭 씨. 그만하시죠.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습니다. 안 나가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제가 사장님 편에 서겠다 이 말입니다. 최대근 씨가 당선되면 사장님께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적극 노력해 보겠습니다.”
집요한 자식. 연가시인 줄 알았더니 하이에나로구나. 양아치인 것은 분명하고 말이다. 내가 보니까 너도 교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법정에서 잘 얘기해 보셔.
“한 부장님! 이분 나가신다고 하니 정문까지 잘 모셔다 드리세요.”
“사장님,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누가 소스를 넘겨줬는지 다 말씀드린다니까요.”
아휴, 듣기 싫어. 지겹다 지겨워. 미싱으로 저 주둥이를 꿰매고 싶네. 남의 생계를 뭐라 하기 그렇지만,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제발 돈은 당당하게 법시다.
“김태섭 씨.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왜곡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정정 보도를 한다면 참작해 보겠습니다.”
“아휴, 진짜.”
양아치가 한숨만 내쉬며 덕준이에게 끌려 나갔다.
수습을 잘한다면 형사 고발은 고민해 볼 생각이다. 정정 보도까지 했다면 기소는 어려울 것이니 생색 좀 내지 뭐.
그래도 민사는 고민할 것 없다. 펜대 잘못 놀린 대가가 얼마나 비싼지 경험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