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99)
099 긴 하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아침부터 신경을 잔뜩 쓰다 보니 피로가 더 가중된다. 오늘 하루 참 길다.
양아치에게 벌을 줘야 하니, 당장 변호사부터 알아봐야겠다.
태양전기 연놈들한테 건 민사 소송을 맡아 준 변호사가 딱인데, 인천까지 가서 의뢰할 수는 없지. 최유리가 일한다는 로펌에 알아볼까나.
사업을 하다 보니까 주변에 아는 법조인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왜 예전부터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 고시 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덕준이 자식, 공부 제대로 해서 합격 좀 하지.
그나저나 덕준이 이 자식은 왜 안 와? 양아치 배웅해 준다면서 둘이 쎄쎄쎄라도 하는 것인지 원.
“사장님! 사장님아! 일어나!”
잠깐 사이에 잠이 들었나 보다. 몸의 피로는 정신력으로 버티기 이리 어렵다.
“아휴. 깜빡 잠들었네.”
“어제 뭘 했길래 아침부터 이리 잠을 자? 내가 잠 확 깨게 해 줄까?”
“또 무슨 일인데 그래?”
덕준이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니 잠이 절로 달아났다. 이 자식 무슨 짓을 하고 온 것이야?
“김태섭 기자 아주 푸욱 구워삶아 왔지. 음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같이 밖으로 나가는데, 계속 툴툴거리더라고. 내가 우리 사장님은 단호하셔서 생각이 바뀔 분이 아니라고 썰을 풀었더만, 애가 대학 들어가는데 등록금이 어쩌고 하면서, 세상 불쌍한 척을 다 하더라고.”
꼴에 기자라고 내 앞에서 있는 폼, 없는 폼 다 부르더니, 뒤에서 찌질하게 굴었나 보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지 모르겠다. 제발 잘못했으면 바로 반성하고 살자.
“그래서 어르고 달래 주니까 뭔가를 얘기해?”
“내가 누구야? 어깨 두들겨 주면서 담배 한 대 줬지. 민사 소송 안 거는 쪽으로 잘 설득해 보겠다, 최 사장과도 자리 마련해 보겠다면서 한참을 허풍 떨었더니, 술술 불더라고.”
“그렇게 해 주겠다고 얘기하면 어떡해? 그런 놈은 분명히 나중에 가서 칼 찌를 놈이라고!”
“나중에라도 문제없도록 교묘하게 허풍 쳤으니까 걱정 마셔. 나를 믿으라니까. 그래서 일단 얘기나 들어 봐.”
역시나 정무부지사 하다 잘린 박철원 그놈이 배후였다.
“무슨 행사 때 부지사 비서가 인사를 하더니, 혁신산단 얘기를 한참 하더래. 먹잇감을 던져 준 거지. 김태섭 기자가 돈이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연락했더니, 익명 제보자로 해서 기사 하나 써 달라고 했다는 거야.”
“공짜로? 돈도 줬을 것 아녀?”
“당근이지. 전에 광고 달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100만 원짜리 광고를 3번이나 받았대. 구독료도 200이나 받고.”
“어휴. 스케일이 너무 추잡하지 않냐?”
“듣보잡 언론한테 저 정도면 꽤 짭짤한 거지.”
고작 500만 원에 영혼을 팔아 나를 씹어 댔다 이 말이네. 씁쓸하네. 그런 놈한테 1억 손해 배상 운운했으니, 눈앞이 캄캄해졌을 것이다. 연민이 들 정도이다.
“그게 저번에 쓴 기사야? 아니면 이번에 쓴 기사야?”
“저번 것은 그냥 쓴 것 같아. 대놓고 얘기는 안 하는데, 몇 번 만나서 술도 마셨나 봐. 기사 쓸 타이밍까지 알려 줬다고 그런 것 보니까 이번 것이 그렇게 대놓고 써 달라고 한 기사 같아.”
정치는 잘 모르지만, 내가 봐도 지금이 딱 타이밍 같다. 새 당을 만들었으니 분위기 확 일으켜야 할 때가 지금 아닌가! 나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작업이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추접한 것들.
“말로만 그러는 것은 의미가 없잖아? 물증이 있어야지.”
“맞어. 그래서 뭐라도 있으면 보내 달랬더니, 완강하데. 진짜 장사 밑천인가 봐. 그래도 이 정도면 시나리오 쓰기 충분하지 않겠어?”
“그래 뭐. 그렇게 쉽게 진상이 드러날 것은 아니니까. 광주시민일보 기자랑 오늘 저녁 약속 잡은 것 맞지? 나머지는 그 사람한테 맡기자. 우리는 소송 준비나 하자고.”
“진짜로 민사 소송 걸려고? 그 사람 좀 불쌍하던데.”
“민사 소송뿐이냐, 형사 소송도 해야지. 불쌍하다고 자꾸 봐주니까 제 버릇 개 못 주고 그딴 짓을 계속하는 거야. 어설픈 동정이 이 나라를 그르칩니다요.”
“오케바리. 우리도 당한 것이 있는데 그냥 보내면 아쉽지. 내가 고소장도 쓰고, 이쪽으로 잘하는 변호사 알아볼게.”
날파리, 똥파리에 이어 연가시까지 이리 설치는데, 회사 일은 언제 전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니 내가 섣불리 연애를 꿈꿀 수가 있나. 유리 생각이 나네. 문자나 보내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자.
-출근 잘했어? 난 피곤을 이겨 내고 열일 중!
-짐승 오빠! 결국 출근 못했음요ㅠ 오늘 쉬겠다고 했더니 이번 주 그냥 쉬래ㅠ
-잘됐네! 같이 부산 놀러 갈까? 난 일하고 넌 겨울 바다 보고
-진짜? 그래도 돼? 나 혼자서도 잘 놀아!
덕준이야 바빠서 못 갈 거고, 혼자 가기 심심해서 던져 봤더니 냉큼 물어 버리네. 같이 놀아 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쁘진 않군.
당장 태인산업에 전화를 걸었다. 빨리 약속을 잡고 일을 추진해야지, 멍 때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네, 태인산업입니다.”
“프라임일렉트릭이라고 변압기 회사인데, 폴리머부싱 관련해서 사장님과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요? 실례지만 누구신데요?”
“대표 지정수입니다.”
“네, 잠시만요.”
나름 표준어를 구사한다고 했겠지만, 강한 부산 사투리 억양이 확 느껴진다. 저 억양으로 오빠 소리 하면 사람들 녹아나겠네.
“여보세요?”
“태인산업 윤희웅 사장님이십니까? 안녕하세요. 프라임일렉트릭 대표 지정수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프라임일렉트릭이면 나주에서 변압기 만드는 회사 맞지요?”
“네, 맞습니다. 제가 폴리머부싱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많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폴리머부싱을 개발해서 곧 선보일 예정입니다.”
우리 회사가 변압기 회사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기존 제품 판매가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먼저 전화를 걸었으니, 기대감이 부풀었으리라.
“신제품을 개발하셨다구요? 안 그래도 제가 우리 제품에 들어가는 부싱을 폴리머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좋은 소식이네요. 신제품은 언제 나옵니까?”
“그게…… 개발은 끝났는데, 양산에 문제가 생겨서 시간이 좀 걸리네요. 허허.”
“사장님, 혹시 자금 문제입니까?”
피곤해서 그런지 돌직구가 나왔다. 어차피 인수하기로 맘먹은 회사이니, 이리저리 말 돌리지 말고 핵심부터 파고들어 가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실례가 아닐지 모르겠다.
“하하. 아무래도 양산에 들어가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러지 말고 언제 저희 회사 한번 방문해 주시죠? 제가 공장도 보여 드리고 이것저것 소상히 설명을 해 드릴게요.”
“좋습니다. 내일모레 오전에 찾아뵈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요. 핸드폰 번호 알려 주시면 제가 명함 찍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대화가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은 이유가 딱 하나이다.
바로 돈 문제이다. 변압기 회사에 물건 팔겠다고 꽤 돌아다녔을 테니, 우리 회사가 어떤지 대략은 알고 있을 것이다. 돈 냄새를 맡지 않고서야 이리될 수는 없겠지.
우리 회사 돈을 믿고 맡겨도 될 사람인지만 판단하면 될 것이다. 그럴 가치가 있는 회사라는 것은 문자님이 보증하셨으니 말이다. 이 바닥 정치권 협잡질 빨리 손보고 부산으로 달려가자!
* * *
무쩍 짧은 겨울 해이지만, 오늘만큼은 무척 길었다. 그리 길던 해가 저물었다.
광주시민일보 오윤경 기자와 약속한 저녁을 먹으러 영산포 홍어거리로 달려갔다. 오늘 정말 강행군이네.
오늘의 피곤함을 달래 줄 맛집은 우리 로타리클럽 회원 동지 이민정 형님이 운영하는 홍어삼합집이다. 외부자들 보고 와서 그런지 이민정 형님을 보자마자 로맨스 형이 생각난다.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어서 와 동상. 어째 오늘은 얼굴이 피곤해 보이네? 사업이 아주 잘되나 봐. 하하.”
“네, 아주 하루라도 편안할 날이 없네요.”
“사업이 쉽나! 건강 챙겨 가면서 해. 방에 세팅해 놨으니까 앉아서 좀 쉬고 있어. 맞다. 다음 주에 봉사 활동 알고 있지?”
“그럼요. 로타리클럽 가입하고 첫 봉사 활동인데 꼭 가야죠.”
덕준이와 자리 잡고 앉아 있자니, 홍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몇 번 먹어 봤다고 그 맛이 떠오르니 침이 고인다. 수면욕보다 식욕이 앞선단 말인가!
식욕에 포로가 된 표정을 짓고 있자, 덕준이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잠을 못 잤으니 얼굴이 개기름으로 번지르르하고 눈이 피곤에 절었을 것이다.
“너 오늘 상태 많이 메롱 같아 보이는데 괜찮겠냐?”
“너 저번에 뭐라 그랬지? 송 뭐시기가 정신일도하사불성 어쩌고 하지 않았냐?”
“그건 진인사대천명이고.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허세는.”
죽을 것 같은 얼굴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광주시민일보 오윤경 기자가 오자마자 걱정부터 해 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광주시민일보 오윤경입니다.”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사장님 오늘 맘고생 많이 하셨나 보네요.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죠?”
이게 또 이렇게 받아들여지네. 유리야 고마워.
“기자님. 우리 사장님께서 아침부터 스트레스 엄청 받으셨어요. 아니, 언론이 그래도 됩니까?”
그걸 또 받아먹는 덕준이. 너답다.
“제가 그 선배 몇 번 봤는데, 좀 그래요. 그런 언론사가 한두 곳이 아니긴 하지만요. 과장님도 아시겠지만, 저희는 안 그런 것 아시죠?”
“이거 제가 명함을 새로 드렸어야 하는데, 인사가 늦었네요. 기자님, 저 이제 부장입니다. 하하.”
“어머, 승진하셨어요? 축하드려요. 오늘 여기 승진 축하연이네요. 호호.”
너네 둘이만 얘기하니까 졸립다야. 둘이 잘 어울리네. 덕준이 이 자식, 내가 어떻게든 올해 안에는 장가보낸다. 큐피트 화살 난사할 테니까 두고 봐라.
“기자님. 오늘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신 건가요?”
“기자가 사람 만나는 게 기사 쓰려고 그러는 거죠. 하하. 제가 안 그래도 혁신산단 준공 1주년 맞이해서 기획 기사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늘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나와 버렸네요? 겸사겸사해서 연락드렸죠.”
“기사 방향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사장님, 기자님 방금 막 오셨는데, 식사 좀 하면서 천천히 얘기하시죠.”
덕준이가 한껏 예의 차린 목소리로 페이스 조절에 들어갔다.
피곤해서 그런지 마음이 급해지긴 하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근차근 내려가야지, 예열도 안 됐는데 바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런 아마추어 같은 짓을 하다니.
“하하. 기자님,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정신없다 보니까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다. 음식 좀 드시지요.”
“아닙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사 보시면 그럴 만도 하죠.”
“기사님이 보시니까 말도 안 되는 기사라는 걸 바로 아시겠습니까?”
“그럼요. 이 지역에서 기자 생활했다면 혁신산단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었는지 다 아는데요. 그리고 중소기업 하나 유치하려고 특혜를 준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홍어 한 입 넣고 코로 시큼한 숨을 내쉬던 덕준이가 입을 열었다. 어후, 입에서 홍어 냄새가 가득이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기사죠. 혁신산단 성공을 위해서 고작 우리 같은 중소기업, 그것도 갓 창업한 회사에 특혜를 준다니요!”
“맞아요. 얼핏 그럴싸해 보이는데, 와꾸가 안 나오는 걸 억지로 짰으니, 그게 기사가 되겠습니까?”
“역시 업계에 계시니까 잘 아시네요. 기사야 엄청 냄새가 나는 것처럼 썼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바로 알죠.”
“맞아요, 부장님. 아는 사람들은 기사 보고 바로 냄새 맡았을 거예요. 이렇게 냄새나는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운 띄워 놓고 소문내면서 흠집 내려고 했겠죠. 의외로 밑도 끝도 없는 공작이 먹히는 법이잖아요?”
아주 주거니 받거니 둘이 잘 논다. 나한테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하자고 하더니, 이리 보니까 둘이 얘기하려고 그랬나 싶네.
덕준이를 바라보는 오 기자 눈빛이 꽤 호의적으로 보인다. 이것들 한두 번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피곤하니까 대충 얘기 나누다가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라고 빠져 줘야겠다.
오냐, 내가 오늘 너희들 이어 주는 뚜쟁이가 되겠다. 아우, 졸려. 오늘 하루 참 길다,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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