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00)
100 하소연
거의 40시간 가까이 잠을 못 잤다. 잠만 못 잤으면 참을 만했겠지만,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될 대로 소모된 상황이다.
광주시민일보 오윤경 기사와 저녁 자리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빨리 빠져 주는 것이 내 생명이나 덕준이를 위해 좋은 일일 것이다.
“기자님. 이전에 도청에서 정무부지사 했던 박철원 씨 아십니까?”
서로 인사 나눌 것 나눴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려고 실명 토크를 던졌다.
“저는 출입처가 달라서 잘 모르는데, 부지사 임명했을 때부터 말이 많았어요.”
“이를테면요?”
“그 사람이 지금 도지사 라인이 아니거든요. 도지사야 지지세를 넓혀 보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부지사란 자리를 다른 계파한테 넘긴 것을 두고 시끌시끌했죠.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때 우려가 맞았어요.”
도지사 괜찮은 사람 같은데, 은근 사람 보는 눈이 없네. 인사가 만사라는데, 사람 잘 뽑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사업하는 사람이 정관계 내밀한 얘기까지 알고 싶지 않은데, 자꾸 엮이는 것이 몹시 불편합니다.”
“지금 나주ㆍ화순이 핫플레이스라 그래요. 여론 조사 돌려 보면 당 쪼개지고 나서 최대근 씨 말고는 확실한 우세를 보이는 곳이 없거든요. 그 정도로 바람이 거세요.”
“최대근 사장님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입니까?”
거센 홍어 냄새를 내뱉으며 덕준이가 끼어든다. 나도 그렇지만, 덕준이에게도 최 사장은 그저 말 많고 우리한테 잘해 준 사람 정도일 것이다.
“정치 신인인데, 워낙 대외 활동을 많이 해서 나주에서는 인지도가 엄청 높아요. 여기 선거구가 나주에서 이기면 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자꾸 혁신산단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기자님께서 좋은 기사로 이 어지러운 정국을 잘 수습해 주세요.”
“하하. 저 같은 경제부 기자가 무슨 힘이 있나요. 저는 그냥 혁신산단이 잘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요. 처음에 정말 우여곡절 많았거든요. 그래도 민관 합동으로 잘 진행됐고, 프라임일렉트릭을 시작으로 계속 입주하고 있잖아요.”
처음에만 우여곡절이 많았나! 내가 회사 차려 들어오려고 할 때도 우여곡절 많았다고!
슬슬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 우여곡절을 풀 때가 됐군. 오 기자, 당신이 쓰든, 다른 사람한테 넘기든 잘 좀 써 주소.
“어머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요? 사장님께서 도지사 면담 안 했으면 지금도 공장 들어서기 힘들었겠네요?”
“그렇죠. 이쪽에 정통한 관계자는 박철원 그 사람이 혁신산단 준공 늦추려고 별짓을 다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관계자가 최대근 씨 맞죠? 하하.”
“하하. 기자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겠네요.”
홍어삼합 야무지게 싸서 먹고 나서, 다시 애절한 사연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말하다 보니 중전기조합이 난리친 얘기, 태양전기 연놈들이 지랄한 얘기까지 쏟아 냈다. 어휴, 후련해.
“동상. 이거 서비스여. 뭐 자주 오라고 주는 건 아니고. 하하.”
“아이고, 형님. 감사합니다. 이건 뭔가요?”
“홍어애탕이여. 이거 먹으면 감기도 싹 달아나.”
이민정 형님이 냄새가 심상치 않은 탕 그릇을 가져왔다. 전문가도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먹어야 한다는 홍어애탕. 이거 먹고 피로 좀 물리치자.
“콜록콜록. 와우. 이거 보통이 아니네요. 기자님도 좀 드세요. 콜록콜록.”
피로가 확 달아나는 맛이다. 고추냉이를 물에 진하게 풀어 국자로 퍼마신 느낌이랄까. 예리한 덕준이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 자식 프런티어 정신이 없네.
“기자님. 사장님께서 말씀 안 하셨는데, 오늘 오전에 동양경제 김태섭 기자가 회사에 찾아왔었습니다.”
“그래요? 이런 말 하기 뭐한데, 그 선배는 돈 되는 데 아니면 찾아가지도 않는데 별일이 다 있네요.”
“저희 사장님께서 손해 배상 소송 걸고 강력 대처하겠다고 하셨으니, 따지고 보면 돈 되는 것 맞죠. 하하.”
“기자님. 저 전화가 와서 잠시만 나가 있겠습니다.”
내가 괜히 껴서 이상한 오해 받을지도 모르니, 밖에서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는 것이 낫겠다 싶다. 덕준이가 한 일이니 덕준이가 해결하도록 해야지.
담배 한 대 물고서 여기저기 연락 온 데 답장해 주고 나니, 그새 담배가 끝나 버렸다.
회사 규모가 커지고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하니, 온갖 곳에서 연락이 온다. 전화 스트레스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담배 새로 하나 꺼내고는 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장 보조하는 비서에게 일정은 알려 줘야지.
“오빠! 완전 초집중해서 공부 잘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이네. 내 주사 처방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됐나 보네.”
“푸힛. 오빠 은근히 엉큼한 데가 있다니까. 저녁은 먹었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밥 먹었는지 물어보는 저 말이 참 고맙다. 역시 사람은 옆에 누군가 챙겨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 보다.
“나야 아침 빼고는 두시두끼 잘 챙겨 먹고 다녀. 내일 일 마치고 바로 출발할 건데 시간 괜찮지?”
“응. 일 끝나고 여기로 오면 7시쯤 되겠네? 저녁은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가자. 진짜 라면!”
막걸리 한 모금 정도 들어가서 그런지, 괜히 불끈거리네. 수면욕을 이기는 것이 식욕이고, 식욕을 이기는 것은 역시.
“엉큼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 근데 내일 오전부터 일 봐야 해서 바쁜데, 정말 혼자서도 괜찮겠어?”
“바다 앞에 떨궈만 놔 줘. 혼자서도 할 것 많으니까 걱정 마시지요, 사장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서 말이지. 여튼 공부 열심히 해! 공부하다 머리 복잡해지면 연락하고.”
통화가 끝남과 동시에 담배도 끝까지 왔다. 타이밍 좋네.
다시 방으로 들어가니 덕준이와 오 기자가 대화에 열중이다. 분위기가 기시감이 든다. 생활의 발견에서 보던 그 장면 같은데?
“자리 오래 비워서 죄송합니다. 연초라 그런지 여기저기 전화 오는 곳이 많네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저도 요새 전화 폭발이에요.”
“그래서 얘기는 잘하셨습니까?”
“네네. 우리 부장님께서 좋은 기삿거리 많이 물어다 주시네요. 기사 생활하면서 이런 분 알고 지내면 정말 편하죠. 한 부장님은 기자들이 환영할 분이에요. 호호.”
이건 덕준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프러포즈인가? 덕준이 결혼하면 함은 내가 메야겠지? 밑도 끝도 없이 둘이 잘해 봐라.
“우리 한 부장이 사람도 좋습니다. 능력도 출중하고. 빨리 좋은 분 만나야 할 텐데, 제가 걱정이 많습니다.”
“사장님, 사장님도 급하면서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큐피트 화살 난사하려고 그런다! 오 기자 괜찮은 사람 같으니까 무작정 이어 주려고!
“하하. 식사 다 하셨으면 근처에서 가볍게 맥주 한 잔 어떠십니까?”
“네, 좋아요. 아직 들을 얘기도 많고. 사장님! 여기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급하게 뵙자고 했으니, 당연히 제가 내야죠. 그냥 조용히 일어나셔서 밖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니에요. 부장님한테 제가 대접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러면 안 되죠.”
한국인의 미덕이다. 계산대 앞에서 네가 내니, 내가 내니 실랑이하는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네.
지독한 구두쇠 두 명이 서로에게 돈 내라고 실랑이하다, 결국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짜증 나서 대신 내준다는 난센스 퀴즈가 생각나는 밤이다.
“그러면 둘 다 계산해!”
이민정 형님의 일갈로 실랑이가 종료됐다.
“사장님, 그러면 제가 먹은 것만 계산할게요.”
“2차를 기자님이 계산하세요. 그러면 되죠?”
기자가 식당에서 돈 내겠다고 고집 부리는 것을 보니, 덕준이 말대로 괜찮은 기자 같아 보인다. 괜찮은 기자라면 사건의 진상을 잘 파헤쳐 보셔. 나 좀 회사 일에 전념하게 해 주란 말이오.
“아이고, 기자님. 이거 어쩝니까?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급하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네요.”
“그래요? 어쩔 수 없죠. 제가 다음에 회사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한 부장 놓고 갈 테니 못다 한 얘기 마저 하시죠. 한 부장 괜찮아. 내가 가면 되니까. 기자님 잘 모시고!”
덕준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난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잘 테니까, 둘이 얘기 잘하고 오셔.
눈빛으로 신 나게 의사를 전달했는데, 영 못 알아먹는 표정이다. 이 밥통 같은 자식.
대리를 불러 집에 오는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로가 미친 듯이 밀려온다. 초딩이라면 그림 일기에 ‘나는 오늘 매우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라고 쓸 것 같다.
아주 긴 잠을 잤다.
경계 근무 초번초나 말번초라도 배정받은 듯이 중간에 깨지고 않고 푸욱 잤다. 인간의 3대 욕구 중에서 가장 제일은 역시 수면욕이더라.
* * *
출근하자마자 덕준이를 찾았다.
“어제 어떻게 마무리됐어?”
“잘 얘기했습니다. 광주시민일보 기획 기사로 혁신산단 1년을 쓴다고 하더라고. 기획 기사 안에서 우리가 한 얘기도 잘 녹여 넣겠다고 하더라.”
광주시민일보 정도 되는 신문사가 기획 기사 써 준다면 세간의 오해는 충분히 풀릴 것이다. 문제는 우리 회사 태생부터 괴롭히던 박철원 그놈이다.
“박철원 그 자식을 엿 먹여야 하는데 그걸로 될까?”
“걱정 마셔. 그건 총선 앞두고 준비할 모양인가 봐. 정치부한테 소스 넘겨서 적당한 시기에 기사화하겠다고 하더라고.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 되면 안 된다고 흥분하더라.”
“좋았어. 다른 걸로 흥분하진 않고?”
“무슨 소리야?”
“아니면 말고.”
“너 이 자식. 그래서 어제 먼저 도망갔구만? 내가 그깟 도움 필요한 허접으로 보였냐!”
도움이라, 무차별적으로 난사한 큐피드 화살에 하나 맞기라도 했나?
“너, 너, 오 기자랑 썸이라도 있는 거야? 보니까 몇 번 만난 것 같던데?”
“비밀. 후훗. 내가 알아서 하니까 일이나 합시다. 동양경제 김태섭 기자 소송은 내가 괜찮은 변호사 찾아서 진행할 테니까 부산이나 잘 다녀오십시오, 사장님.”
“엉큼한 놈. 난 오동나무 잘라다 함 만들고 있을 테니까 알아서 잘해라.”
혹시나 해서 최대근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사장도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했으니, 대응 방안이 나왔을 법싶다.
“지 사장님! 아이고, 죄송합니다. 먼저 전화했어야 하는데.”
“정신없이 바쁘실 텐데 충분히 이해합니다. 대응 방안은 모색하셨습니까? 저도 사장님 걱정이 돼서요.”
“대장부가 칼을 뽑았으면 무조건 이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나이 먹도록 돈만 벌다가 이제 봉사 좀 해 보겠다고 이 바닥에 나왔는데, 무조건 이길 생각입니다. 하하.”
정치 신인다운 자신감은 좋은데, 출마 선언 듣자고 전화한 것이 아닌데.
당신이 이겨야 나도 방해 없이 사업 잘 이끌 수 있단 말입니다.
박철원 그 자식이 당선이라도 되면 나를 죽이지 못해서 얼마나 안달이겠나. 나 때문에 정무부지사도 잘린 사람이니, 이를 갈고 있겠지.
“듣자 하니까 모든 공격이 사장님한테로 쏠릴 것 같다고 하던데요. 기사는 내려갔고, 받아 쓴 곳도 없어서 파장이 없을 것 같은데,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각오하고 있지라. 지금 당이 어수선해서 제대로 반격을 못하고 있는데, 정비되면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지요.”
“반격을 준비하고 계시는군요?”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지요. 우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철원 그놈이 이래저래 구린 구석이 많은 놈 아닙니까?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까 화끈하게 받아쳐야지라.”
구체적인 얘기를 해 주지 않아 불안하지만,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가 없네.
사업하는 사람이 이런 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현실이 짜증이 난다. 짜증 난다고 짜증 낼 수는 없지. 아닌 척, 최 사장 걱정해 주는 척해야지.
“제가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우리 회사 간수하기도 바쁜 상황이네요.”
“하하.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누구 덕분입니까? 우리 사장님한테는 이미 많은 도움 받았으니까 그런 소리 마시요.”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해 드린 게 뭐 있다고 그러십니까?”
“나 때문에 걱정이 많은 모양인데, 내가 그 걱정 안 하게 만들어 줄라니까 염려 마시시요. 조만간에 액션이 있을 것입니다.”
늘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이고, 그 자신감대로 성과를 내며 걸어온 사람이다. 걱정 말고 있으라니 그렇게 해야지 뭐.
정치권과 거리를 두겠다고 했지만, 이미 최 사장과 나는 한배를 타 버렸다.
최 사장 당선이 내 회사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총선이 아직 석 달이나 남았는데, 이미 그쪽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어떻게든 이기시오.
난 회사 일에나 매진하자고. 꼭 중요한 일을 할 때, 벌레, 기생충 등이 창궐한다.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도 직원들이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어 회사가 수월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 부산 출장 준비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