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01)
101 부산 진출
조금 일찍 나와 부산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여전히 바쁜 공장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1월 대한전력 발주가 생산 캐파 이하로 줄어들었다. 여유를 찾긴 했지만, 2월 폭풍 발주에 대비하려면 연초부터 바쁘긴 매한가지다.
매일 엄청나게 실려 오는 원자재와 부품만으로도 공장이 정신이 없다. 만들어야 할 물량 자체가 워낙 많다 보니, 이것저것 체크하고 결재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가 버렸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차를 몰고 광주로 향했다. 최유리 비서 싣고 부산으로 달려가자!
“오빠, 정말 저녁 안 먹고 가도 괜찮아?”
“최대한 빨리 가서 돼지국밥 먹자. 이왕 가는 거 부산 맛집은 다 섭렵해야지.”
“돼지국밥 좋지! 당면국수도 먹고 싶고 씨앗호떡도 먹고 싶고.”
“그거 먹지 말라던데? 별 맛도 없는데 TV 몇 번 나와서 유명해진 거라고.”
“같이 먹을 것도 아니면서! 나 혼자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먹을 겁니다요.”
부산 가는 내내 대화가 멈추지 않는다. 어제오늘 받은 스트레스가 차 창문을 통해 날아가 버렸다.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유리 손 위에 얹으니, 평온이 찾아온다. 순간순간 해면체로 선지가 몰려왔지만, 운전에 집중했다. 안전 운전!
누가 봐도 갓 연애 시작한 사이였지만, 굳이 우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유리가 지곤조기를 외치며 선을 그어 버렸으니, 서로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지.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서두른다고 움직였는데도 10시가 넘어서야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다.
우리나라가 코딱지만 하다고 하지만, 운전해 보니 의외로 넓다는 것을 깨닫는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운전해 주는 차는 언제 나오려나.
부산역 앞에 있는 돼지국밥집이 괜찮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시간 때문에 숙소가 있는 해운대로 향했다.
괜히 부산역 진입하려다, 그 무시무시한 도로들을 만난다면 빠져나갈 자신이 없기도 했다. 육거리가 말이 되는가! 인천 운전도 손에 꼽지만, 부산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작년에 상무와 설 앞두고 거래처 인사 돌았을 때 겪은 공포가 생각난다.
부산 온 김에 광안대교 한번 타고 기분 좀 내 보자고 나섰다가 진입에 실패했던 충격 말이다. 부산에서 깜빡이는 옆 차선 차에 속도 내라는 신호였단 말인가!
그 충격과 공포가 생각나 바로 해운대로 직행했다.
“와, 좋다. 바람부터가 다르네. 히히, 신 난다.”
“뭔가 쌓인 게 풀려?”
“아직 멀었어. 밤바다를 봐야 풀릴 것 같은데?”
유리가 마냥 신이 났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한겨울인데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라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음, 돼지국밥 맛있네! 현지에 와서 먹어서 그런가?”
“오빠, 겉절이도 먹어 봐. 진짜 맛있어.”
이집 돼지국밥은 다른 데와 다르게 설렁탕 느낌이 난다. 투명한 국물에 돼지고기 향이 살짝 나는 국밥을 기대했는데, 소면까지 나온 것을 보니 설렁탕인가 싶다.
여기에 돼지 부속이 들어가면 순대국이고, 소 양지가 들어가면 설렁탕이고, 돼지 수육이 들어가면 돼지국밥이겠지 뭐.
워낙 유명한 음식이라 전국 어디서든 맛볼 수 있지만, 부산 현지에서 먹으면 확실히 맛있다. 나주에서 나주곰탕 먹었을 때 그 감동이랄까? 역시 음식 맛은 분위기가 좌우하는 것 같다.
“오빠도 지방에서 온 애들한테 명절 때 시골 가냐고 물어봤지?”
“나 같은 서울 촌놈이야 서울 아니면 다 시골인 줄 알지 뭐.”
“동기 중에 서울에서 내려온 애가 있는데, 광주도 크다고 놀라더라고. 부산에서 온 애는 걔 보면서 지방 무시하지 말라고 난리야.”
“옛날에는 지방 살면 다 농사 짓고 그런 줄 알았어. 우물 안 개구리였지 뭐.”
“그래서 나주 내려와서 살아 보니까 어떻습니까?”
“나주는 시골이 맞더라. 하하.”
굶어 죽어도 서울에서 굶어 죽을지 알았는데, 세상일은 이래서 모르는 것이다. 내가 로또 당첨되고 나주까지 내려와서 공장 차려 이렇게 살고 있을 줄이야.
“자, 다 먹었으면 해운대 가서 나 잡아 봐라 좀 하실까?”
“푸하하. 아직도 복고 컨셉 유지하는 거예요? 오빠 잡아서 가만 안 둬야겠네.”
따뜻한 커피 하나씩 손에 쥐고 해운대 모래사장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꽤 있다. 한겨울 평일 이 늦은 시간에도!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에서 일 제일 많이 한다더니, 가만 보면 노는 사람도 꽤 많아.
“아! 좋다. 파도 소리 너무 좋다.”
“안 추워?”
“파도 소리 들으니까 추운지도 모르겠어. 설마 코트 벗어서 입혀 주고 옆에서 부들부들 떨려고 물어본 거야?”
“네가 입은 옷이 더 따뜻해 보인다야.”
간간이 들려오는 폭죽 소리가 방해를 하지만, 밤바다 파도 소리는 사람 마음을 묘하게 만든다.
요동치게 하면서도 차분하게 만드는 묘한 소리이다. 저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가 나를 부르는 소리 같다.
부산은 확실히 매력이 있는 도시이다. 똑같은 바닷가 도시이지만, 인천에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인천은 공장과 죽음의 경인고속도로만 생각난다. 인천 하면 성냥 공장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네.”
“그치? 시간이 좀 아쉽다. 난 그래도 내일 아침부터 돌아다니면 되니까. 오빠는 일까지 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괜찮아?”
“나야 체력 빼면 시체야!”
어제 골골대던 모습은 애써 지워 버렸다.
“추운데 숙소로 들어갈까?”
“어머. 숙소는 방 따로 잡으셨지요?”
“아니, 돌아가는 배편도 끊겼고 민박집 방도 하나밖에 안 남았데.”
“어휴, 아재 냄새.”
이 숙소는 유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동백섬 입구에 자리해 조용하면서도 모래사장과 바다를 한눈에 즐길 수 있는 호텔. 이만한 조건이면 30만 원도 전혀 아깝지 않다.
“꺄악! 오빠! 뷰가 장난이 아니야!”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동백공원 산책로 걷고 조식 먹으러 가자. 여기가 조식이 아주 좋아.”
“몇 번 와 본 것 같네?”
“예리하긴. 난 그런 삶을 살지 않았어. 인터넷에 다 나와 있잖아. 하하.”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갔지. 하루 벌어 하루 살았던 그 시절, 미래를 꿈꾸기 어려웠던 그 시절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돈 벌면 이 호텔 하나 사야겠군. 후훗.
“아, 진짜.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오늘이야 급하게 왔으니 어쩔 수 없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2월부터는 정신없이 바빠져. 개학 준비해야 하고, 개학하면 그냥 죽어 사는 거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3년 동안 잘 버텨. 고생하고 노력한 만큼 확실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잖아.”
“내 20대를 그렇게 보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렇지.”
“카르페디엠!”
“꺄악! 이 오빠 또 시작이네!”
이번엔 양말부터 벗었다.
대학 때 선배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자를 만났을 때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강으로, 계곡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도.
이러다 코피라도 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무렵에야 격한 몸부림을 멈출 수 있었다. 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어우러진 밤이었다. 동백공원에 동물원이라도 있던 모양이다.
“오빠 진짜 장난 아니다. 어디서 수도사 생활이라도 했던 거야?”
“자매님. 성령께서 내게 말과 장어 같은 체력을 주셨습니다.”
“오빠랑은 정말 잘 맞는 것 같아. 그제 그러고 갔잖아? 아침에 좀 피곤하긴 했는데, 그날따라 공부가 너무 잘되는 거야. 잡념이 싹 사라지니까 글자가 막 들어올 정도였다니까.”
“아휴. 왜 또 도발해?”
“이 녀석이 그새 기운을 차렸어? 오빠 약 먹었어?”
“돼지국밥이 이리 몸에 좋은가 봐.”
“근데 그거 없는데 괜찮을까? 꺄악.”
살과 살이 직접 닿는 이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수많은 촉수가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다가 침입한 적을 향해 일제히 달려드는 이 느낌. 방어막도 없이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다.
이번엔 새벽이 찾아오기 전에 끝을 냈다. 호기롭게 아침 산책을 공언했으니, 나도 살고 봐야지. 다행히 침대가 너무 푹신해 꿀잠을 잘 것 같다.
짧지만 아주 달콤한 꿀잠 말이다.
유리와 약속했던 동백공원 산책은 결국 못했다. 산책보다는 조식 뷔페를 선택했고, 밥 먹고 나서는 또다시 선지를 풀어 버렸다. 많은 칼로리를 소모했으니 산책했다고 생각하지 뭐.
부산 녹산공단으로 차를 몰았다. 해운대에서 녹산공단까지 1시간 반. 부산 진짜 넓긴 넓네.
약속 시간 10시에 겨우 맞춰 태인산업에 도착했다. 여기 오기가 이리 힘들 것이었나 싶다.
“실례합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전에 전화했을 때 받았던 그 직원 같다. 여자가 말하는 부산 사투리는 매력이 있단 말이지.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 대표입니다. 오늘 사장님과 뵙기로 했습니다.”
“아! 사장님. 잠시만요.”
천 평 정도 되는 공장 입구에 딸린 10평도 안 될 작은 사무실이 소란해졌다.
이 정도면 얼마나 하려나? 자산은 다 해 봐야 60억 원은 안 넘을 것 같고 대출도 있을 테니까, 넉넉하게 30~40억 원이면 될 것 같다. 돈 마련하려면 은행 문 박차고 들락거려야겠네.
“안녕하십니까?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장 윤희웅입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50대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말상이라 그런지 주름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이 양반도 고생 좀 한 얼굴이네.
사장실은 여느 중소기업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3평 정도 크기에 책상과 소파가 놓여 있고, 벽에 놓인 수납장에는 상패나 인증서가 전시돼 있다.
퍼팅 연습기가 없는 것을 보니 일에 여유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자리 잡은 회사의 사장실에는 하나같이 퍼팅 연습기가 놓여 있다. 자리 잡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자리 잡고 나면 사장 하는 일이라는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퍼팅 연습이나 하다가 시간 남으면 현장 가서 잔소리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사장이 말이야,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지. 그래서 내가 여전히 바쁜 모양이다.
“프라임일렉트릭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젊은 사장님이라고 하더니 진짜 젊어 뵙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전에 통화 때 말씀드렸듯이, 우리 제품에 폴리머부싱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제가 사장님 뵈러 온 것도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네네, 잘 오셨습니다. 저희 제품은 알고 계시죠?”
“저희도 내염형 변압기 제작하니까 폴리머부싱을 쓰긴 하는데, 여기 제품은 단가가 너무 차이 나서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알죠. 이게 상위 두 업체는 중국에 가마 공장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아무리 용을 써도 도저히 그 가격을 못 맞추겠더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신제품을 개발했다 아닙니까! 이거 보시면 아주 놀라실 겁니다.”
주름 많은 얼굴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 했더니, 기쁨은 신제품에 대한 자신감이로군. 그렇다면 슬픔은 당연히 자금난이겠지?
“신제품 설명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샘플까지 다 준비해 놨습니다. 이거 보시죠. 기존 제품과는 아주 딴판이죠?”
기존 제품은 외부로 노출되는 부위만 폴리머로 처리해 놨다. 폴리머보다 도기가 더 싸게 먹히니까, 변압기 내부로 들어가는 부위는 도기로 처리해 단가를 낮춘 것이다.
그런데 태인산업이 개발했다는 신제품은 전체가 다 폴리머로 이뤄져 있다. 전부 폴리머로 돼 있으면 깨질 리가 없으니 좋긴 한데, 문제는 단가이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어도 궁금하긴 하다.
“전체를 다 폴리머로 제작하신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던져 보겠습니다.”
윤 사장이 샘플 하나를 집어서 바닥에 냅다 꽂았다. 시구하러 나온 연예인이 바닥에 공을 패대기치던 그 모습으로 인정사정없이 던졌다.
통통.
깨지기는커녕, 반동으로 튀어 올랐다. 제품은 확실하다. 단가만 맞출 수 있다면, 부싱 깨져서 누유가 생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거 보세요. 이리 씨게 던졌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지요? 이건 절대 안 깨집니다. 무게도 훨씬 가볍습니다.”
“그건 좋은데, 단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비싸면 살 이유가 없죠.”
“맞습니다, 맞습니다. 경쟁력은 결국 가격이죠. 경쟁력이 없다면 이걸 개발하지도 않았겠지요.”
윤 사장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