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02)
102 식사(食社)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맨 뒤에 나오는 법이다. 대화가 핵심에 들어왔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판단하자.
눈이 초롱초롱 빛난 태인산업 윤희웅 사장이 입을 열었다.
“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어렵겠지요?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폴리머라는 것이 고분자 소재를 얘기하는 것이라, 종류가 여러 가지 아닙니까? 대한전력 규격에만 맞으면 굳이 비싼 소재를 쓸 필요가 없지요.”
“소재로 단가를 낮췄다 이 말씀이십니까?”
“그렇지요. 그게 무슨 뜻이냐? 부싱 전체가 폴리머이지만, 가장 최적의 소재를 선택해서 단가는 도기와 차이 없게 떨어트렸다 이 말입니다.”
“소재는 어떤 것을 택하셨습니까?”
“쉽게 얘기해서 몸통은 FRP고, 이 날개는 실리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 대한전력 규격 안으로 들어옵니다.”
윤 사장의 말에 자신감이 넘친다. 얼굴 주름까지 펴져 보일 정도다. 그런데 저 표정에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역시 문제는 돈이로구나.
“소재만으로도 단가가 그렇게 떨어집니까?”
“하하. 아니지요. 그러면 다른 업체들도 진즉 내놨겠죠. 이건 제작 노하우이긴 한데, 찍어 내는 기술 덕분에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가격을 낮췄다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혹시 도기로 만든 부싱보다 낮아집니까?”
“목표는 일반 부싱보다 낮추는 것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팔 만하지 않겠습니까?”
개당 만 원 정도 높았던 가격을 낮췄다라. 엄청난 단가 절감인데? 문제는 자금난으로 아직 상용화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겠군.
머릿속에서 분주히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데, 윤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눈이 여전히 초롱초롱 빛난다.
“또 하나 더 있습니다. 부싱이 깨지는 것도 문제지만, 누유도 문제 아닙니까? 잘못 조여서 패킹 씹히면 기름이 줄줄 샌다 아닙니까?”
“우리도 패킹 때문에 골머리 좀 앓고 있죠.”
“이건 절대 그럴 일이 없습니다. 요 안에 보이죠? 이렇게 홈이 파여 있어서 완벽하게 밀착이 됩니다.”
제품은 더할 나위 없이 맘에 든다. 외관은 아주 좋고, 성능은 성적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단가까지 괜찮다면 바로 채택해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절대 깨지지 않고, 누유 걱정까지 없다면 부싱으로서는 최고이다. 저걸 쓰면 부싱 문제로 전화 올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네, 설명 잘 들었습니다. 제품은 아주 좋습니다. 공장 한번 둘러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당연히 보여 드려야지요.”
사무실에서 나와 현장에 들어갔다. 플라스틱 냄새가 진동한다. 여기도 사람 구하기 어려운 3D 업종이네.
우리나라 제조업은 시끄럽고 냄새가 난다 싶으면 3D 업종으로 들어간다.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경영이 어려운 공장이라는 뜻이다.
“지금 보시는 설비들은 기존 제품용입니다. 새 제품 양산을 위해서 설비를 다 교체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통화했을 때 양산은 시간이 걸린다고 하셨지요? 말씀하신 단가는 양산 기준으로 추정하신 것이죠?”
“맞습니다. 양산 준비만 잘하면 단가는 더 떨어질 수도 있겠죠.”
“결국 양산이 핵심인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혹시 자금이 부족해서 그러는 겁니까?”
그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슬픔으로 바뀌어 갔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나 사업은 결국 돈이 핵심이지. 혹자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말에는 돈도 기술이라는 것이 포함돼 있을 뿐이다.
“하아. 이거 참. 네, 맞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현장 둘러보시고 사무실 올라가서 하시죠.”
현장 견학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다 교체할 설비라는데 시간 오래 쓸 필요 없겠지.
그나저나 현장 정리 잘하는 것을 보니까 사장이 허투로 있는 사람은 아닌가 싶다. 엔지니어 출신 같네.
경험해 보니까 사장은 두 부류이다. 엔지니어와 영업맨.
엔지니어 출신 사장은 기술과 꼼꼼한 성격 덕인지 회사가 안정적이다. 그러나 회사 성장이 더디다. 재는 것이 많아서 투자를 어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에 간섭도 많고, 직원들 대우도 박한 경우가 많다.
다른 부류는 영업맨 출신이다. 안 되면 되게 하는 특전사 정신으로, 하나 얻어걸리면 회사가 빠르게 성장한다. 그만큼 사짜도 많다. 현장을 잘 몰라서 직원들에게 맡기는 것도 좋지만, 회사가 안정감이 없으니 직원들 동요가 많기도 하다.
두 부류 다 일장일단이 있다. 이 회사 현장을 보니까 저 사장은 엔지니어 냄새가 심하게 난다. 영업맨 출신이었다면 이만한 제품을 개발하고도 돈이 없어서 저리 쩔쩔매고 있지는 않겠지.
“사장님, 이 회사 차리기 전에 어디서 일하셨습니까?”
“저도 고생 많이 했죠. 설계하다가 공장장까지 했는데, 이거 사업은 쉽지가 않습디다.”
후훗. 아직 내 후각은 죽지 않았네. 엔지니어는 엔지니어 냄새가 난다니까.
다시 사장실로 들어왔다. 윤 사장이 소파에 앉자마자 한숨을 내쉰다. 난 역한 플라스틱 냄새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윤 사장은 걱정이 많을 테지.
“제품이 이리 잘 나왔는데, 참 쉽지 않습니다. 사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가장 중요한 것이 단가 아니겠습니까? 대량으로 뽑아야 수지타산이 맞도록 계산해 놨는데, 그러려면 설비며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이 말이죠.”
“양산 체제를 갖추려면 얼마를 투자하셔야 합니까?”
“기존 제품이 매출만 적당히 나왔어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이거 참. 사업이 이리 어렵습니다.”
“사장님, 그래서 얼마를 예상하십니까?”
이 양반 은근 말귀가 어둡네. 내가 투자자처럼 안 보이나? 보자마자 회사 사겠다고 할 수 없어서 살짝 돌려서 얘기했는데 말이야.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야지.
“설비랑 원자재비까지 20억이면 될 것 같은데, 좀 기다려 보시죠. 지금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양산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20억이 있으면 양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자금만 해결되면 석 달 내로 가능하죠. 저도 빨리 양산에 들어가야 돈이 되니까 서둘러야지요.”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저 사람이 믿을 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책임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맘에 든다.
좋다. 결론에 들어가자.
“사장님, 제가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네? 정말이십니까?”
그냥 놀란 표정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었을 때 나오는 그 표정 자체다.
그래, 이런 반응을 기대했다고! 돈 싸 들고 나주에서 달려왔는데, 이렇게 깜짝 놀라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고! 자, 이제 가격 흥정을 해 볼까?
“물론이지요. 저는 허언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사업하는 사람이니 말이 가지는 무게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도와주시면 이보다 더 고마울 일이 있겠습니까? 사장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회사가 요즘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것만 양산 들어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좀 안타깝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만큼 영업적인 능력이 있었다면, 희망만 가지고 있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내가 이 회사를 인수할 기회가 생겼고, 인수해서 돈 문제만 해결해 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좋습니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앞으로 논의하면 될 것이고, 오늘은 큰 틀에서 얘기를 마무리해 보죠.”
“저, 사장님. 투자라고 하면 어떤 방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윤 사장의 질문에 함의가 담긴 듯하다. 어떤 방식을 원하는지까지는 읽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창업자니까 회사를 넘긴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 않을 것 같다.
“당연히 지분 확보죠. 저는 우리 회사 자회사로 두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회사 경영에 대해서도 터치하지 않을 테니,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사장님께서 결심만 하신다면 자금 문제 없이 회사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회사 인수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논의하면서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아, 이건 생각을 못해 봤는데요. 사장님, 일단 식사하면서 얘기를 더 해 보시죠.”
담배는 안 피우는 모양이다. 이 타이밍에 밥 먹자고 한 거면, 담배 한 대 피우겠다고 하는 말과 같은 뜻이겠지?
고민 오래하지 맙시다. 나도 돈 구하려면 바쁘니까, 빨리 결론 냅시다요.
“여기가 공단이라 마땅히 대접할 데가 없습니다. 좀 이해해 주십쇼.”
“하하. 전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했지만, 부산까지 와서 공장식 한식뷔페를 갈 줄 몰랐다. 1인분에 6천 원이면 나주보다 천 원이나 비싸네.
어떤 식이건 뷔페는 그 자체로 사람을 유혹한다. 아무리 식욕이 없어도 눈앞에 펼쳐진 음식들을 보면 어느새 접시 가득 채우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여기도 대중교통이랑 편의 시설 문제가 많죠?”
“그럼요. 공단은 어디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예전보다 버스 노선도 늘어나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면 뭐 합니까? 사람이 올 생각을 안 하는데요. 뭐 말은 월급 많이 주면 서로 온다고 하는데, 월급 많이 주는 것이 쉽습니까? 허허.”
사람이 많아서 사업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 사업 시작한 얘기, 사업하며 겪은 어려움 등을 반주 삼아 밥을 먹다 보니, 윤 사장에 대한 내 판단의 결론이 그려졌다.
“사업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남는 건 빚밖에 없더라니까요. 하하. 생각해 보면 월급쟁이 때가 편했다 싶습니다.”
“그래도 애들 키우면서 잘 지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뭐 합니까? 정작 애가 아빠 찾을 때는 일하느라 제대로 놀아 주지도 못했는데. 아 키우겠다고 이 고생했는데, 빚만 잔뜩이고. 남들은 사장님 사장님 하는데, 말이 좋아 사장이지, 월급쟁이만도 못합니다. 허허.”
윤 사장의 결정적인 문제는 영업인 것 같다.
엔지니어 출신들의 치명적인 단점. 기술을 갖췄지만,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문 닫는 회사가 수두룩할 것이다. 그간의 어려움이 얼굴에 가득이다.
생각이 바뀌었다. 윤 사장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회사를 맡기는 것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일 것 같다.
윤 사장은 기술쟁이로서 소임을 다하도록 하고, 경영은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 그러자면 회사를 확실히 먹어야겠군.
이 회사를 인수한다면 시너지가 확실해 보인다. 우리 회사만큼 확실한 물량을 가진 회사가 또 없지. 이미 머릿속으로 온갖 그림이 그려진다. 그림이 그려졌다면 빨리 마무리 짓자.
배 채우고 나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재무제표는 볼 것도 없더라. 자산에 대출 빼고 미납금 빼고 나니까 얼마 남지도 않는다. 퇴직금 조로 넉넉하게 챙겨 주면 되겠지.
“사장님, 투자 얘기는 지우세요.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회사 인수하겠습니다. 지분 전량 인수에 30억 제시하겠습니다. 이 금액이면 충분히 높게 평가해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30억 원요?”
역시나 놀란다. 많이 쳐줘도 25억 원 남짓을 생각했을 것이다. 5억 원 그냥 주는 돈 아니다. 폴리머부싱 양산 책임져 달라는 의미이다.
문자님은 인수하라고만 했다. 금액은 오로지 내 결정이다. 충분히 투자금 회수할 수 있다.
이미 그림은 그려졌다. 그림대로 된다면 오히려 너무 싸게 인수했다는 생각에 표정 관리를 할 수도 있다.
“대신 계속 이 회사 맡아 주시면서 폴리머부싱 상용화 확실하게 해 주는 조건입니다. 월 1만 개 이상은 생산해 주셔야 합니다.”
“월 1만 개요?”
놀람의 연속이다. 돈이 있는 상태에서 나를 만났다면 대박 고객을 잡았다고 좋아했을 것인데, 아쉽겠지.
“사장님, 제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네요. 시간을 좀 주시죠.”
“물론입니다. 충분히 고민해 보시되, 결정은 신속히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결정하셨다면, 우리 회사 한번 오시죠. 좋은 기술자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새 설비도 많이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찾아뵙겠습니다.”
5시간의 협상이 마무리됐다.
윤 사장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내가 제시한 금액에 회사를 안 팔겠다면 사업가라고 할 수 없지. 말이 30억이지, 빚 떠안고 투자까지 생각한다면 얼추 100억짜리 계약이니 말이다.
이렇게 또 큰돈이 나가겠구나. 인수 자금에 투자금까지, 은행을 또 얼마나 들락거려야 하나.
돈 되는 일이라면 빚지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지. 빚도 자산이다. 빨리 벌어서 갚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