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03)
103 개벽의 꿈
금요일 오후 해운대는 인파로 북적인다. 녹산산단의 무지막지한 퇴근 행렬과 주말 특수까지 겹치니 교통 체증이 짜증을 유발한다.
혼자서 시간을 보낸 최유리는 아주 알찬 시간이었다는 행복한 표정이다. 30억 원을 쓴 나도 행복하다, 행복해.
“혼자 뭐 하면서 시간 보냈어?”
“오빠랑 못 간 동백공원 산책했지. 같이 산책하자더니 아주! 산책하고 해변도 걷고, 커피숍에서 정적도 즐기고, 바빴어.”
“혼자서 신선놀음하셨네? 잘했어. 혼자서 뭐 하고 있으려나 괜히 걱정했네.”
“정말 걱정한 것 맞아? 하하. 미팅은 잘하고 왔어?”
“30억짜리 쇼핑 잘하고 왔지.”
30억 소리에 최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말이 30억이지, 그 돈이면 평생 느긋하게 살 수 있다.
“회사 인수하기로 한 거야? 컨설팅이랑 자문도 없이 그렇게 결정해도 되는 거야?”
액수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구나. 역시 예비 법조인답네.
“에이, 나를 뭘로 보고. 나름 기업 가치 평가했어. 자산이라고 해 봐야 공장 정돈데, 부채가 많아서 많이 못 쳐주겠더라고.”
“오빠 회사 돈 많네. 나 진짜 운 좋게 변호사 되면 오빠네 회사 들어갈까? 내가 법률 자문 잘해 줄게.”
“하는 것 봐서. 이력서도 봐야 하고, 면접도 봐야지.”
“어휴, 진짜.”
거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광주 여인의 손바닥 스매싱이 매섭다. 살짝 휘두른 것 같은데, 스냅이 장난 아니네.
“해운대 섭렵했으니까, 광안리로 이동해서 바다 보면서 회 한 사라 할까?”
“회 좋지! 아주 좋아요!”
드라이브도 할 겸 광안대교를 선택했다. 다행히 해운대에서 진입하는 길은 남천동 진입길보다 수월했다. 광안대교 진입 못해서 헤맸던 슬픔은 저 멀리 사라졌다. 부산운전 해볼 만하다!
한 상 가득 차려진 회를 바라보니 술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금요일 밤이라는 설렘과 술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급 계획 변경으로 하루를 더 머물렀다. 짐승 같았던 이틀 밤.
“오빠, 덕분에 힐링 제대로 했어. 몸도 힐링되는 것 같고.”
“난 왜 이렇게 피곤하지?”
“푸하하. 무리했지, 무리했어. 진짜 성령의 힘이 대단하긴 하나 봐.”
“주말 잘 쉬고, 다음 주부터 또 빡세게 살아 보자고.”
“으으,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놀고먹으면서 살면 최고지. 그러기엔 아직 갈 길이 멀지?
사업 시작한 지 2년도 안 됐는데, 기분은 20년은 지난 것 같다. 앞으로 200년은 더 달려야 한다. 분주히 달리자.
회사는 여전히 분주하다. 나도 분주한 한 주를 보냈다. 은행 문 벌컥 열고 들어가, 묵직한 실탄을 마련하고, 회사 인수에 따른 서류 준비도 끝냈다.
작년 매출이 300억이 넘어서인지, 운전 자금 대출에 은행 금고가 활짝 열렸다.
준수율도 100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졌다. 전에도 대접이 나쁘지 않았지만, 돈 벌고 나서 찾아갔을 때는 루이 14세 부럽지 않을 융숭한 대접이다. 돈이 이리 무서운 것이었네.
인수 자금 실탄이 통장에 꽂히기 무섭게, 태인산업 윤희웅 사장이 회사로 찾아왔다. 고민치고 꽤 길었군.
“사장님, 어서 오세요.”
평온한 표정이다.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서 슬픔이 읽히지 않는다. 내 손길을 받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고민의 결과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네요. 내가 잘하는 일을 해야지, 사업은 체질이 아닌 것 같네요. 하하.”
“지분 매각하시기로 결심하신 것입니까?”
“그렇게 좋은 조건이면 받아들이는 것이 맞죠.”
문자님 미션 컴플리트! 뒷수습할 일이 산더미이지만,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난 문자님을 믿으니까.
“제가 그럴 줄 알고 서류를 다 준비해 놨습니다. 하하. 서류 꼼꼼하게 잘 읽어 보시고 사인하면 됩니다. 인수 자금은 바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제가 회사를 넘겨도 경영권 보장하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월급쟁이를 택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회사 경영에 신물이 납니다. 십수 년을 돈 걱정만 하며 살았더니, 이게 사는 게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닙니까. 그냥 제품 개발이나 하면서 보내는 것이 낫겠다 싶네요. 내 피땀이 들어간 회사인데, 돈 받고 나 몰라라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라. 예상 못한 시나리오다. 회사 경영자로서의 능력보다 엔지니어의 능력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먼저 얘기를 꺼낼지 생각 못했다.
등이 간지러워 죽겠는데, 딱 와서는 손톱으로 시원하게 긁어 준 격이랄까?
작은 중소기업일지라도 경영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침 드라마였다면 작가에게 악플이 쏟아졌을 일이다.
“사장님은 그 전과 달라지시는 것이 없습니다. 신제품 양산 준비해 주시고, 우리 회사에 폴리머부싱 납품만 잘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자금 걱정이 많았으니, 그 걱정을 해소시켜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잘 압니다, 알지요. 저도 책임지고 양산 체제 갖추겠습니다. 그런데 경영은 다른 일 아닙니까. 저는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맘 편하고 좋습니다.”
모양새가 아주 좋아졌다. 평안 감사 자리가 싫다는 사람에게 설득하는 모양새. 계속된 고사에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 주는 모양새.
악역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지만, 악역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낫지. 윤 사장, 먼저 얘기 꺼내 줘서 고마우이.
“그 문제는 차차 논의해 보시죠. 우선은 부산 돌아가셔서 양산 준비에 매진해 주세요. 오신 김에 저희 기술진들과 미팅 어떠십니까?”
“네, 좋지요. 그럴 줄 알고 새로 만들 설비 자료도 다 챙겨 왔습니다.”
사무동 3층 R&D 사무실에 열기가 끓어올랐다. 온갖 설비를 셀프 제작한 우리 기술자들 눈이 번쩍거리며 이글이글 불타기 시작했다. 엔지니어들의 만남이 이리 뜨거울 줄이야.
“사출 속도를 높여도 될 것 같은데요?”
“수지에 기포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죄다 불량입니다.”
“분사랑 열처리를 조절하면 잘 나올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감히 낄 자리가 아닌 것 같다. 최형택 부장은 물고기가 물 만난 듯이 온갖 설계 아이디어를 쏟아 냈다. 유재준 이사도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다. 자동화와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춰 설계 변경을 요청해 댄다.
옥상 올라가서 담배나 피우려는데, 유 이사가 발길을 멈춘다.
“사장님! 이 설비, 여기서 만들죠? 그렇게 할 생각이었죠? 하하. 뭐 이 정도야 껌이지.”
일을 버는 사람답다. 일이 많아서 그냥 윤 사장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길 생각이었는데, 일 귀신들이 그냥 넘어가질 않네.
“만들 것 많은데, 이것까지 만들면 괜찮겠습니까? 이것도 이거대로 서둘러야 하는데.”
“맡겨만 주셔. 내가 알아서 척척 만들어 낼라니까. 최 부장님, 설계 수정 금방 되겠지요?”
“밥 먹고 하는 것이 이 일인데, 이 정도야 금방이죠.”
“사장님, 들었지? 바로 착수해서 낼 아침까지 뽑아낼게. 하하.”
현장 고인물들이 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네. 내 할 일이나 하면 되겠다. 윤 사장의 현장 복귀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일에 착수해야겠다.
“사장님, 저는 그럼 일단 부산으로 복귀해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회사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제가 사람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장님, 혹시 공장을 나주로 이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주요? 여기로 옮긴다는 말씀입니까?”
“네, 맞습니다. 어차피 설비도 새로 들여놔야 하고 생산량 대부분을 여기로 납품할 텐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보다 옆에 붙어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음, 나주라. 직원들도 그렇고, 애도 그렇고. 뭐 애는 다 컸으니까 상관없겠지만서도…… 이제 회사 주인이 사장님이신데 그게 낫겠다 싶으면 그렇게 해야겠죠. 네, 그렇게 하시죠.”
이럴 때는 또 부산 사나이네. 이전 기업 혜택 받아서 혁신산단에 공장 새로 짓고 사업 확 일으켜 보자. 덕준이가 또 바빠지겠네.
“한 부장님아! 내가 너 주려고 일거리 물어 왔다!”
“내가 그래서 늘 긴장하며 살고 있습니다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이시옵니까?”
“혁신산단 빨리 분양 하나 받자. 사업이 날로 확장되는데 기분 좋지 않냐?”
“폴리머부싱 공장 새로 차리려고? 돈 잔뜩 벌어도 죄다 다 빠져나가는구만.”
“투자할 때 확실하게 투자해야지. 그래도 혁신산단에서 혜택 준다고 할 때 받아먹어야지. 본사 공장도 3천 평이면 충분할 줄 알았더니, 어림도 없겠네. 돈 빨리 벌어서 혁신산단 다 먹자.”
“그럼 혹시 모르니까 분양은 필지 2개로 받을까? 자금은 괜찮아?”
“실탄 넉넉하게 챙겼으니까 충분해. 자, 추진하자.”
2필지 분양 받으면, 총 7천 평이다. 이 정도 공장이면 어딜 가도 ‘사업 좀 크게 하십니다’ 소리를 듣는다.
아직 멀었지. 더 키울 것이다. 변압기 관련 종합 제조 그룹 정도는 돼야 명함 내밀 만하지 않겠나!
그렇게 막 벌여 놓은 일이 하나씩 수습돼 간다. 밭에 씨를 뿌렸으니, 직원들이 흙으로 덮고 발로 밟고 손뼉 치고 사방을 둘러보면 밀과 보리가 자란다. 잘 여물어라.
대한전력 납품이 단 한 번의 불량과 연체 없이 잘 이뤄지면서 통장에 돈이 팍팍 꽂힌다. 월급 통장처럼 들어오기 무섭게 빠져나가지만, 남은 돈이 쌓이는 속도도 제법이다.
돈 엄청 벌 것이란 기대감에 부채 없는 회사를 꿈꿨지만, 어림도 없더라. 투자를 기다리며 입을 쩍쩍 벌리고 있는 아기 새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공장 확장과 신설에만 100억 원이 기다리고 있다. 부지런히 벌어서 부지런히 다 쓰게 생겼다.
그래도 투자 성과가 짭짤하니 아까워할 겨를이 없다. 내 투자로 회사를 세운 박민창 사장은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키며 슬슬 수익을 내고 있다.
우리 회사 납품만으로도 벅찰 텐데, 영업맨답게 거래처를 늘리며 회사 키우는 데도 능력을 힘껏 발휘했다.
생각난 김에 안부 전화나 해야겠네.
“아이고, 사장님! 요즘 통 연락도 없으시더니, 뭐가 그리 바쁘셨습니까?”
“박 사장님. 사업 너무 잘되시죠?”
“하하.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제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등기이사라고 월급도 주고, 수익 났다고 배당도 해 주시는데요 뭘. 이미 은혜 다 갚으신 것 같습니다.”
사업 첫해부터 배당을 해 줄지 생각도 못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박 사장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40대 가장의 눈물을 닦아 준 것이 이리 보람 있는 일이네.
“올해는 제대로 드라이브 걸어 볼 생각입니다. 사장님이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 주니까 사업할 맛이 납니다. 하하.”
“우리 회사 물량만으로도 엄청날 텐데, 이거 사장님 포부가 아주 무시무시합니다. 하하. 사업 아주 크게 번창하길 빌겠습니다. 자재만 잘 공급해 주세요.”
“사장님 주문은 무조건 1순위로 처리하니까 걱정 마세요. 회사 키워서 나중에는 원자재 수입까지 진행해 볼 생각이니 많이 도와주시죠.”
회사를 얼마나 키우려고 그러나.
그저 그런 하꼬방 회사에서 처자식 먹여 살리면서 아등바등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가슴속에 엄청난 야망을 키우고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야망을 가로막는 장벽을 부쉈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지 짐작이 갈 정도이다.
“그나저나 나주는 언제 내려올 생각입니까?”
“내려가야죠. 근데 나주 내려가면 물류비 부담도 있고, 아직 공장 새로 지을 형편은 아니라서요. 돈을 좀 더 벌어야죠.”
“올해부터는 여기도 변압기 공장 꽤 들어섭니다. 내려만 오시면 제가 영업 제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제가 사장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죠. 여기서 부지런히 벌어서 내려가겠습니다.”
박 사장까지 나주로 내려온다면, 혁신산단에 변압기 클러스터가 제대로 구축될 것이다.
코아, 외함, 부싱, SPRD에 이어 알루미늄과 구리 부품까지. 이것이 대한전력이 그리는 그림일 것이다. 그 그림을 내가 구현해 냈으니 맘껏 생색내야겠군.
클러스터가 공장만 들어선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 기관과 교육 기관도 필요하다.
전기연구원이 나주에 분원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한전력도 공대를 설립한다고 했으니, 아주 멋들어진 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십 년쯤 지나면 이곳은 천지가 개벽할 것이다. 개벽의 중심엔 내가 서 있고 말이다.
혁신도시에 있는 우리 아파트들 집값 좀 오르겠군.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