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really good RAW novel - Chapter 157
157
제157화: 실행(2)
추락을 막는 생명줄도 없는, 완전히 맨손으로 하는 절벽타기이다.
한번만 삐끗하면 여지없이 떨어져 즉사할 것이다.
어둠이 깊어지면서 발아래 파도는 거세졌다.
한 번씩 거센 파도가 절벽을 때릴 때마다 웅웅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캐서린의 한국 정착 소식은 파란을 일으켰다.
여성으로서는 현존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평가받는 거물이 한국 땅에 정착한다는 사실은 하루 이틀 만에 마무리 될 뉴스가 아니었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평창동 집 앞 대문에는 기자들이 진을 쳤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기획사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단 한번만 인터뷰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한 달 동안 캐서린은 일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기자들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외신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아우성이다.
캐서린은 오늘도 피아노에 빠져 있었다.
치고 또 친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흑백의 건반 위를 눈부시게 넘나들었다.
무아의 지경에 빠진 듯 때로는 힘을 주고, 때로는 봄날의 나른함이 배어나는 작은 소리로 피아노를 다스려간다.
어느 평론가는 캐서린을 향해 폭 넓게 곡을 해석하고, 여자이면서도 남자 이상의 파워풀한 연주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쾅쾅쾅!
힘차게 건반을 내려치더니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손을 떼었다.
뚝!
건반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슬픔을 버릴 길이 없어 그토록 미친 듯 건반을 두드린 것이다.
원래 약속대로라면 조태수는 이미 자기 옆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늦어질수록 불안하고 두렵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는데 일하는 가정부였다.
가정부는 쟁반에 한약이 담긴 사발을 받쳐 들고 있었다.
캐서린이 너무 불안해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자 가정부가 잘 아는 한의원을 찾아가 약을 지어 온 것이다.
“어서 드세요.”
캐서린은 쓰디쓴 약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마셨다.
그러더니 가정부가 입에 넣어준 사탕을 빤다.
“또 우셨어요?”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은 금방 오실 거예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냥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정리가 길어지는지 귀국이 늦다고만 말해주었다.
딸 같은 캐서린을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가정부가 돌아섰다.
“아줌마.”
“네!”
“성당에 가고 싶어요.”
성당을 찾아가 기도하고 싶었다.
아니면 신부라도 만나 위로를 받고 싶다.
“그래요. 내일 새벽 미사 같이 가요.”
가정부는 미소를 짓고 나갔다.
캐서린은 사탕을 빨며 벽에 걸린 결혼사진을 바라본다.
“오빠, 사랑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고개를 들자 불과 5미터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일백여 미터 가까운 절벽을 기어오른 것이다.
손끝이 떨어져 나갈 듯 아프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양 다리가 후들거린다.
조태수는 이를 악물고 전진한다.
거친 숨소리가 혹시 절벽 위 저택을 지키는 경호원들 귀에 들릴까봐 눌러 삼켰다.
툭!
오른쪽 손에 잡힌 바위조각이 떨어져 나가며 푸드득! 오른발이 미끄러졌다.
“우훅!”
왼손에 체중이 쏠리며 손끝이 끊어질 것 같다.
재빨리 다른 바위조각을 잡으며 체중을 분산했지만 한번 휘청한 것으로 인해 급속히 체력이 떨어진다.
덜덜덜!
왼발은 움푹 파인 부분을 딛고 오른발은 튀어 나온 부분을 밟고 있는데 앞부리로 지탱하다보니 무릎이 심하게 흔들렸다.
잠시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안정된 공간이 아닌 곳은 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다.
조태수는 이를 악물고 속도를 냈다.
한시라도 빨리 오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이다.
타타탁!
위로 뻗은 오른손이 잡을 곳을 찾지 못해 더듬거린다.
그 바람에 체중을 지탱하는 왼손이 흔들렸고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잡을 곳이 없다.
손이 닿을 만한 곳은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대리석으로 깎아 놓은 것처럼 매끄럽다.
유일한 길은 더 위쪽, 즉 절벽의 끝부분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10여 센티미터의 거리가 있다.
조태수는 두려움을 느꼈다.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체력이 빠진 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움직인다.
‘할 수 없다.’
1분, 아니 30초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왼손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우웃!”
도박이다.
조태수는 혼신을 다해 오른손을 뻗어 올리며 점프를 했다.
절벽 끝을 잡지 못하면 떨어진다.
탁!
걸렸다.
오른손이 절벽 끝을 거머쥐었고 재빨리 왼손을 뻗어 나란히 두 손에 힘이 걸렸다.
양발은 디딜 곳이 없어 허공에 대롱거렸다.
좌우로 움직이며 벽을 더듬었지만 밟을 만한 곳이 없다.
양손에 힘이 빠지고 손에 힘이 빠진다.
가볍게만 여겨지던 권총과 소총이 무척 부담스런 무게로 다가온다.
척!
조태수는 이를 물고 오른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조금씩 절벽 끝을 향해 뻗었는데 발을 올리지 못하면 추락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투툭!
발끝이 절벽을 건드리며 조금씩 올라가 기어이 올라갔다.
오른발이 어느 정도 매달리며 받쳐주는 효과를 보이자 한결 양팔의 부담이 적어진다.
오른팔을 높이 들어 걸친 채 잠시 한숨을 돌린 조태수는 양팔을 힘껏 잡아당기며 상체를 끌어올린 뒤 오른발을 지렛대 삼아 올라서고야 말았다.
조태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골랐다.
금방이라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손가락이 저절로 꿈틀거린다.
그 와중에도 조태수는 왼손으로 입을 막았다.
거친 호흡 소리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사방은 고요했다.
조태수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택을 보며 가볍게 숨을 조절했다.
한때 문턱이 닳을 만큼 드나들었던 곳이다.
맥그리거는 자신에게만은 이 집을 완전히 오픈시켰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올 수 있고 집 안에 있는 고가의 술과 쿠바산 시가도 마음대로 피울 수가 있었다.
조태수가 갖고 싶다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그냥 주었다.
살면서 두 사람은 그렇게 핏줄 이상으로 서로를 생각하고 챙겼으며 아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아름다웠던 일들이 조그만 추억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밤 죽어야 한다.
오늘밤 이곳에는 과거 마가디노가 죽을 때보다 더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어쩌면 내일이면 이곳의 주인이 바뀔지도 모른다.
갑자기 담배가 한 개비가 피우고 싶었다.
사막을 건너온 목마른 사람처럼 니코틴을 섭취하고 싶은 욕구에 몸을 떨었다.
조태수는 일단 칼을 뽑아 들고 오른쪽으로 2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10여 미터 높이의 거대한 측백나무를 바라보았다.
측백나무가 워낙 커서 가리고 있는 초소가 있었다.
알파 초소로 불린다.
해안가 쪽을 살피는데 거의 불가능한 침투 지역이기 때문에 그다지 경계를 삼엄하게 하지는 않는다.
오래전, 마가디노 이전 보스 시절 바다에서 로켓포 공격이 발생하면서 만들어진 초소였다.
조태수는 낮은 자세로 다가갔다.
투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먹구름이 머리위에 있다.
큰비가 올 징조이다.
조태수는 한바탕 미소를 지었다.
비야말로 누군가를 죽이는데 가장 적절한 환경을 준다.
버언쩍!
대지가 대낮처럼 환해지더니 거센 굉음이 대서양을 가로지르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태수는 초소와 2미터 가량을 남기고 조그만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조태수는 적외선 쌍안경을 얼굴에 썼다.
초소 안에 있는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두 명이었는데 백인들이었고 체격이 당당했다.
‘대니, 제이미.’
안면이 있는 사내들로 스파키가 중간보스로 있을 때 데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쉬워야 한다.
작은 정에 얽매이다 보면 큰일을 망칠 수가 있었다.
조태수는 칼을 집어넣고 소음기를 끼운 권총을 꺼냈다.
이윽고 비를 맞으며 초소로 다가가 번개처럼 문을 열었다.
덜컹!
문이 열리자 두 사내는 어깨에 메고 있는 총을 뽑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놀라며 움찔했다.
푸슉!
푸슉!
권총은 두 사내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퍼억!
두 사내가 바닥으로 엎어지고 조태수는 주머니를 뒤졌다.
담배가 나왔는데 다행스럽게도 자신이 즐겨 피우는 말보로 레드이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담배를 길게 빨아 삼키고 천천히 뱉는다.
시원하다.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한 모금의 담배 연기가 100미터 절벽을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수고를 모조리 날려 버린다.
찌지직!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무전기가 울렸다.
[알파 이상 없나?]스파키 목소리였다.
조태수는 무전기를 들었다.
[알파, 응답하라. 그쪽 상태는 어떤가. 비가 많이 온다.]조태수는 무전기를 뚫어져라 보더니 무전기를 쓰러진 대니의 귓가에 놓았다.
[대니!]스파키가 대니를 불렀지만 대꾸하지 않는다.
애앵!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그건 비상사태를 알리는 소리였고 파팟! 하며 사방에서 조명이 켜졌다.
캄캄하던 어둠이 밀려나고 잠깐 사이에 저택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환해지면 습격자에게는 마이너스다.
상대도 보이지만 자신도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노출이라고 해도 침투하는 쪽이 훨씬 손해이다.
조태수는 초소를 나와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알파 초소로 몰려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휘익!
조태수는 몸을 날려 커다란 정원석 뒤로 몸을 숨겼다.
불이 꺼졌던 저택도 환해졌다.
지금쯤 맥그리거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조태수는 GK99 자동소총을 움켜쥐었다.
30발들이 탄창이 꽂혀 있다.
빗줄기는 살을 뚫을 만큼 굵고 거셌다.
잔디가 채 물을 삼키기도 전에 쏟아지므로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사내들이 알파 초소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조태수는 적외선 망원경을 풀어 옆구리에 찼다.
불이 켜진 이상 적외선 망원경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드르륵!
GK99가 불을 뿜었다.
알파 초소를 향해 접근해 가던 두 명의 사내가 나동그라졌다.
“동쪽 바위 뒤에 있다!”
높은 지역에서 상황을 살피는지 스파키는 금방 알아차리고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사내들이 일제히 조태수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두두두두!
조태수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이윽고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진 가로등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파파팟!
가로등이 박살나며 불이 꺼졌다.
조태수는 그런 방식으로 눈에 보이는 가로등을 모조리 파괴해버렸다.
순식간에 저택의 넓은 정원은 어둠에 잠겼다.
정원의 가로등이 꺼지자 저택의 불도 꺼졌다.
캄캄한 가운데 저택만 오히려 환하면 맥그리거의 움직임을 노출시키는 꼴이 된다.
캄캄해지자 조태수는 다시 적외선 망원경을 끼고 움직였다.
드륵!
드르륵!
조태수는 조준 사격을 했다.
그때마다 어둠 속에 있던 사내들이 고꾸라졌다.
맥그리거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스파키는 정색했다.
“일단 자릴 피하시죠.”
“무슨 소릴 하는 건가? 그 자식이 오길 기다렸어. 오늘 밤 내 손으로 놈을 정리할 거야.”
“날씨가 좋지 않지만 헬기가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헬기?”
“조는 이곳의 구조와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쉽게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로 들어온 거야?”
“바닷가 절벽을 이용한 것 같습니다.”
“뭐라, 절벽을 통해 들어왔다고? 이런 미친놈!”
맥그리거의 눈이 커졌다.
그곳은 불가능하다.
많은 감비노 보스들이 적으로부터 기습을 받았지만 그쪽이 뚫린 예는 한 번도 없었다.
절벽으로 인해 바람까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거칠어 새들도 인근을 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드륵!
드르륵!
총소리가 짧게 들린다는 건 조태수가 조준 사격을 한다는 의미였다.
폭우가 쏟아지고 먹물 같은 어둠 속에서 조준 사격을 한다는 건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밀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