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really good RAW novel - Chapter 48
48
제48화: 아들 죽다(2)
네바다 주립대학 병원으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FBI 지부 소속 차량이었다.
차는 병원 입구에 멈췄는데 병원장을 비롯한 의사 몇 명이 FBI 요원들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멈추고 뒷좌석 문을 열고 후버가 내렸다.
후버는 병원장과 악수를 했다.
“빨리 오셨군요.”
“그런가요?”
공항에서 후버를 태우고 왔던 데커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듣기에 따라 병원장의 말에는 ‘남의 사건이었다면 이렇게 일찍 왔겠냐’ 하는 약간의 비아냥거림이 섞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의미로 던진 말은 아닐 것이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걸핏하면 백악관 주인과 마주 앉는 저 사람을 야유하거나 조롱한다는 건 당장 병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고백이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자 후버는 멈칫했다.
1층에 응급실이 있고 5층에 수술실이 있다고 들었다.
죽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다.
그래서 1층이나 5층으로 가기를 기대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건 곧장 지하 영안실로 직행한다는 것이었으므로 가슴 한쪽이 뻥 뚫려 버리는 것 같았다.
휘청!
현기증에 상체를 비틀거리자 데커가 부축을 했다.
비로소 아들의 죽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일행이 들어섰다.
문이 닫히고 예상대로 발밑이 꺼지듯 엘리베이터는 내려갔다.
후버 국장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엘리베이터가 덜컹 소리를 내며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문 밖에는 병원 관계자와 FBI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시체실로 들어선 후버는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추위와는 또 다른 오싹한 냉기가 목을 휘감았다.
직원 한 명이 시신이 안치된 서랍을 잡아당겼다.
드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천에 덮인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후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후버는 시트에 덮인 시신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데이비드가 아니길 바라면서 떨리는 손으로 시트를 걷었다.
움찔!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이마 한가운데 있는 붉은 사마귀였다.
그건 시신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데이비드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신분증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르륵!
상체가 드러나도록 시트를 젖혔다.
멈칫!
양팔을 가슴 앞으로 포개놨는데 후버의 시선이 데이비드의 좌측 팔뚝에 고정되었다.
이십여 개의 검은 점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다면 붉게 나타나겠지만 생명이 끊어졌으므로 검게 드러나는 주사바늘 자국은 흔히 마약을 주사했을 때 보이는 현상이었다.
“설마?”
“맞습니다. 몸에서 다량의 코카인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시신을 검안한 의사가 말했다.
“허면?”
“마약 중독에 의한 돌발성 발작에 의한 사고입니다.”
“코카인을 맞고 발작을 일으켜 호텔에서 뛰어 내렸단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이번에는 수행한 데커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같이 한 놈들은 어디 있나?”
후버의 목소리에 한기가 낀다.
“이곳 경찰서에 넘겨졌습니다.”
후버는 다시 한 번 죽은 데이비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며 아빠 하고 일어날 것 같았다.
콱!
시트를 쥔 후버의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손등의 힘줄이 터질 듯 불거졌고 두 눈에서는 살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누구라도 용서 않겠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FBI 총책임자이다.
후버는 이를 악물었다.
***
데이비드와 같이 마약을 투약한 일행은 일남 일녀였다.
둘 모두 스물세 살이며 남자는 185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다소 마른 체격이었고 여자는 트레이닝복 바지를 걸쳤는데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졌다.
두 사람은 약 기운이 떨어진 듯 멍한 얼굴로 유치장 구석에 쭈그리고 있었는데 후버가 다가가도 흘깃 바라보더니 고개를 떨군다.
전형적인 마약 중독자의 행동이다.
며칠 굶주린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지만 약 기운이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폭발적인 힘과 광기를 보일 것이다.
후버는 데커가 가져다 준 의자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로젠.”
남자가 힘없이 바라본다.
“어떻게 우리 데이비드와 알게 됐나?”
히죽!
남자, 로젠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클럽에서 만났어요.”
“클럽!”
“우리가 약을 하는데 자신도 참여할 수 없느냐고 그러더군요. 당연히 오케이했어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바보 데이비드와 어떤 사이죠?”
여자, 에이미가 끼어들었다.
“바보?”
“네! 바보 데이비드라고 우린 불러요. 우리가 약을 살 땐 항상 데이비드가 지불해요. 자기 집 부자라고 했어요.
이곳 경찰이 조사한 두 남녀의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중퇴이다.
후버가 화난 이유는 차이였다.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할렘가 출신 아이들과 FBI 국장의 아들이 혼숙하며 마약을 했다는 것이다.
이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지독한 수치이자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 어때요? 10달러만 주세요.”
그러면서 에이미는 주위를 살피며 고무줄로 된 트레이닝복 바지를 슬쩍 들춘다.
“9달러.”
후버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1달러를 깎으면서 가까이 다가온다.
“어서요.”
노골적으로 옷을 벗으려고 한다.
빠악!
후버의 구둣발이 에이미의 복부를 찍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퍼억!
후버는 앉았던 의자를 들어 에이미를 내려찍었고 달려드는 로젠의 얼굴에 재차 구둣발을 박았다.
로젠이 벌렁 넘어지며 피를 토했다.
그러나 후버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죽어라!”
의자로 로젠을 두들길 때 소란을 듣고 달려온 데커가 재빨리 막았다.
“진정하십시오.”
“비켜!”
“국장님 저거.”
구석에 설치된 CCTV를 가리켰다.
그러나 후버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남녀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데커가 차고 있는 권총을 뺏으려 했다.
데커는 재빨리 권총을 쥐며 뒤로 물러나왔다.
“뭐 하는 거야! 동영상 삭제해!”
데커는 밖에 서 있는 두 명의 경관을 향해 소리쳤다.
***
버번은 술이다.
주로 옥수수로 만들어지는데 도수가 높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들이 즐겨 마신다.
한두 잔만 마셔도 금방 알코올 기운이 온몸을 적시기 때문이다.
데커는 마시는 척 잔을 들어 올리지만 입술만 축이고 내려놓는데 반해 후버는 직접 마셨다.
그다지 술을 좋아하지 않는 후버가 독한 버번을 망설이지 않고 열심히 잔을 비운다는 건 그만큼 그의 심정이 지금 불타오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 사람입니다.”
데리고 나간 로젠이 가게로 막 들어선 흑인 한 명을 가리켰다.
사내는 레게 머리를 했는데 드러난 양 팔뚝에 전갈과 코브라 문신을 했다.
손가락 굵기의 쇠사슬 목걸이를 목에 감고 있었는데 짝짝 소리가 나도록 껌을 씹고 있었다.
“확실해.”
“맞습니다.”
데이비드에게 마약을 판 사내라는 것이다.
후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의 손에는 어느새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너 이 새끼!”
후버는 막 자리에 앉은 흑인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
사내는 깜짝 놀라며 왜 그러느냐며 소릴 질렀다.
“죽여 버릴 거야!”
철컥!
안전장치를 푸는 순간 데커가 말렸다.
“이성이 필요합니다. 이놈은 맨 밑에 있는 쓰레기일 뿐이죠.”
어느새 사내의 양손에는 데커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다.
“가지!”
“당신…….”
퍼억!
데커가 권총 손잡이로 뒤통수를 찍었다.
순간적으로 사내의 눈동자에 힘이 풀렸고 데커에 의해 끌려 나가고 있었다.
***
뒷골목 마약팔이로 십 년을 살았다.
흑인 사내, 쿠퍼는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뭔가 이상하다.
자신이 아는 미국 경찰은 상대가 너무 얄미우면 정당방위 차원이라는 핑계로 방아쇠를 당기지 붙잡아 이토록 무자비하게 때리지는 않는다.
때려도 너무 때린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다.
코가 깨지고 이빨이 부러졌고 아랫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렀지만 후버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쿠퍼는 살고 싶다는 본능이 생겼다.
승용차에 오르자마자 눈이 가려졌기에 창문 한 개도 없는 지금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경찰서가 아닌 건 분명했다.
쿠퍼는 뭐든지 물어보면 대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교도소를 밥 먹듯이 드나들던 흑인 한 명이 사라진다고 신문에 기사가 나지는 않는다.
뚝!
마침내 길고도 긴 폭력이 멈췄다.
후버는 피투성이가 된 쿠퍼를 내려다보더니 뒤에 서 있는 데커에게 담배를 한 개 빌렸다.
이윽고 쿠퍼의 입에 물려주더니 불을 붙여준다.
쿠퍼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고 잠깐이나마 고통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살려 주십시오.”
쿠퍼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이 아이에게 마약을 팔았나?”
데이비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쿠퍼는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거래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잘 보게.”
사진을 더 가까이 대어준다.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팔았다고 말을 해야 했다.
“팔았습니다.”
“누구에게 마약을 받나? 자네가 코카인을 재배하고 제조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움찔!
쿠퍼는 몸을 떨었다.
윗선을 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죽음의 사자들이고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귀신같이 찾아내어 심판을 하는 존재들이다.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하는가.
후버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오랜 고민을 할 틈이 없다.
그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눈앞의 죽음이 더 무섭다.
“마약 도매상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네. 어느 도매상과 거래를 하는지만 말해주면 되는 걸세.”
“감비노!”
쿠퍼는 입을 열어 말하면서 순간적으로 움찔 떨었다.
자신의 입에서 믿겨지지 않는 말이 흘러나와 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입이 가볍다는 얘긴 한 번도 듣지 않았다.
몇 번의 전과가 있지만 지켜야 할 사람은 지켜주고 보호했기에 아직도 마약판에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자기 입은 이상했다.
과거 지퍼로 불리던 쿠퍼의 입이 아니었다.
그만큼 눈앞의 인물이 무서웠다.
누굴까.
누군데 이렇게 무섭단 말인가.
***
무슨 일일까.
갑자기 맥그리거가 뉴욕으로 호출되어 갔다.
다급히 불려갔기 때문에 은근히 궁금했고 이제 어엿한 상관이자 보스이기 때문에 관심이 간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은 조태수는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FBI 국장 외아들의 투신자살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있었다.
23살로 호텔경영학과를 다니는 전도양양한 청년의 투신자살은 아버지가 미 연방 경찰국 국장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경찰은 투신인지 아니면 자살을 위장한 타살인지를 놓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했을 뿐, 마약이나 다른 무엇에 관한 얘기는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후버 국장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누군가의 복수가 아니냐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도 했다.
지이잉!
핸드폰이 온몸을 흔들어 댄다.
걱정했던 맥그리거였다.
“맥!”
[집인가?]“예! 어디세요. 뉴욕이세요?”
[지금 돌아왔네. 괜찮으면 집으로 찾아가도 되겠나?]“그러시죠.”
조태수는 쌓인 설거지를 하고 맥그리거를 기다렸다.
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 맥그리거가 들어섰다. 비닐봉지 한 개를 들고 있었는데 술병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소주일세.”
오래전 한국 식당을 데리고 가서 소주에 삼겹살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후 맥그리거는 소주광이 되었다.
태어나 소주처럼 맛있는 술을 못 봤다면서 자기 집 냉장고에 소주가 가득했다.
조태수는 소주 안주로 서울식당에서 얻어온 김치와 아침에 찌개에 넣고 남은 두부 반 모를 먹기 좋게 잘라 내놓았다.
“이게 뭔가?”
“두부 김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안주입니다. 맛있죠.”
“커!”
맥그리거는 어느새 마개를 따고 잔을 채우더니 한잔 비운다.
김치에 두부를 싸서 먹는다는 조태수의 지도를 따라 한 입 넣더니 감격스런 표정을 했다.
“이럴 수가, 원더풀. 이건 꿈이야. 아 정말 맛있어.”
연거푸 두 번을 더 싸서 먹더니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좋군. 아주 좋아.”
흐뭇한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