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09
109 쪽쪽쪽쪽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형수님하고 대화했을 때.”
“···얼마나 기억하는데요?”
“그렇게 물어보시니까 제가 무슨 기억상실이라도 걸렸던 것 같네요. 솔직히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바다 씨가 저한테 고백했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그런 적 없거든요!?”
하아-
강바다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은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 상황이 웃겨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근데 왜 웃어요.”
“이렇게 바다 씨를 보는 건 또 처음이라서요. 흔히 ‘각도의 중요성’이라고들 하잖아요? 근데 바다 씨는 이렇게 봐도 예쁘시네요.”
“또. 또. 그런 식으로 또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강바다가 짐짓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으나, 나는 그녀의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역시 예쁘다는 말은 언제든 옳다.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뻔뻔함’. 자기 세뇌라도 해서 예쁘다는 말에 진심을 가득 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나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놀랍게도 강바다는 이 각도에서조차 굴욕이 없었다. 도리어 ‘황녀’라는 소설 속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평소 내게 보여주던 순딩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였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여기 생각보다 편해요. 한 번 누워보실래요?”
톡톡-
바닥을 두드리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는데, 강바다가 한참을 말없이 노려보더니 대뜸 내 옆에 드러누웠다.
이에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녀가 몸을 반 바퀴 굴리며 내 가슴팍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바다 씨?”
“말씀하신 것처럼 편안하네요.”
씨익-
내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강바다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어때, 내가 이겼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버린 나는 두 손을 들며 순순히 항복했다.
“제가 졌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협상을 해야겠네요.”
“···협상이라뇨?”
“본인 입으로 직접 패배를 인정하셨잖아요. 그 순간 저에게는 승자로서 전리품을 획득할 권리가 생긴 거예요.”
짓궂은 미소와 함께 승리 선언을 외치는 강바다. 어린아이의 투정과 다를 것 없는 이야기였으나, 일단 들어는 볼까.
“원하시는 게 뭔데요?”
“으음···.”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지 입술을 오므리며 고민하기 시작하는 강바다.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더니, 별안간 그녀가 눈을 번쩍 뜨며 나에게 말했다.
“머리 쓰다듬어주세요.”
“예?”
“빨리.”
두 번 말하지 않겠다는 듯 그대로 눈을 감아버리는 강바다. 이에 나는 웃음을 삼키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으음~
그러자 만족스럽다는 듯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는 강바다.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았다.
“이제 만족해요?”
“아뇨, 제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하세요.”
“아유, 마님. 소인에게 머리를 맡겨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요! 헤헤. 어떻게 쇳네가 귓밥도 같이 파드릴깝쇼?”
“그래, 네가 정 원한다면 그리하거라.”
···이거 봐라?
평소의 강바다라면 귓밥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귀를 가리며 부끄러워했을 텐데. 설마 여기까지 맞받아칠 줄이야.
“···제법이네요. 바다 씨.”
“제가 계속 당하고만 살 줄 알았어요?”
“적어도 결혼식 하기 전까지는요.”
“후후. 그럼 저를 너무 얕보셨네요.”
강바다가 여유롭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조금 전까지 우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어색한 벽은 무너진 지 오래.
이제는 그 잔해조차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오, 저 방금 하늘 씨 심장 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잠깐만 가만히 있어 볼래요?”
“그거 들어서 뭐하시게요.”
“쉿! 조용히.”
“······.”
쿵쿵쿵-
강바다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괜히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왠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데. 혹시 하늘 씨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흐흥. 입이랑 다르게 심장은 솔직하네요.”
재미가 들렸는지 강바다는 짓궂은 미소와 함께 더욱 바짝 귀를 붙이며, 곁눈질로 내 표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계속 그렇게 놀리시면 저도 못 참습니다.”
“흐음. 못 참으면 어쩔 건데요?”
“똑같이 갚아줄 겁니다.”
“···똑같이?”
그녀의 훌륭한 두뇌는 순식간에 내 말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했다. 이에 강바다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나를 매도했다.
“···변태.”
“제가 뭘 했다고요.”
“하늘 씨가 제 심장 소리를 들으려면 제 가슴에 직접 귀를 대야 하잖아요.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정확하네요.”
“이젠 부정하지도 않네!?”
강바다가 고개를 휙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볼을 사과처럼 붉게 달아오른 상태.
그제야 내가 평소에 알던 강바다와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주도권이 다시 넘어왔음을 깨달은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지금 바다 씨가 저한테 하고 있는 행동을 똑같이 되돌려주는 것뿐인데 뭐가 문제예요? 여자는 되고, 남자는 안 돼요?”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저도 할래요. 읏차-”
“자, 잠깐!”
몸을 뒤집으려고 하자 강바다가 당황하며 얼른 내 몸을 끌어안았다.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듯 힘을 꽉 주기까지.
그래 봤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봐주기로 했다.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거고.’
새삼스럽지만 강바다는 굉장히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콩깍지를 떼고 봐도 외적으로 이보다 더 완벽하기는 힘들겠지.
가슴에 있는 피부와 심장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는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두 귀로 직접 그녀의 심장 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꽤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셈이다.
‘청진기가 처음 만들어진 이유도 이거였다지?’
옛날에는 의사들이 직접 환자의 가슴에 귀를 대고 청진과 촉진을 했는데.
만약 상대가 가슴이 풍만한 젊은 여성일 경우 상당히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그러던 중 1816년 프랑스의 내과 의사인 ‘르네 라에네크’가 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간접적으로 여성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에 성공했고, 이게 청전기의 시초였다나 뭐라나.
“···하늘 씨!”
“네?”
“방금 딴생각했죠?”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제가 방금 뭐라고 말했게요?”
“···농담이었다고?”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콩콩-
강바다가 정신 차리라는 듯 내 머리를 두드렸다. 설마 질문 자체가 함정일 줄이야. 완전히 낚여버린 나는 얌전히 죗값을 받아들였다.
“제 앞에서 딴 여자 생각하지 마세요.”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응. 엄청.”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강바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웬일이에요. 순순히 인정을 다 하고?”
“···뭐, 그냥요.”
에둘러 대답을 회피하는 강바다. 원래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그냥이라고 얼버무리게 된다지.
이에 나는 말 없이 두 손을 뻗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가끔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크게 와닿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하늘 씨는 제가 밉지도 않아요?”
“응? 제가 왜 바다 씨를 미워해요?”
“따지고 보면 저 때문에 엄청 고생하신 거잖아요. 당시에 제가 네로를 구해달라고 떼를 써서 생긴 흉터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흐음.”
흉터라는 말에 잠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커플 팔찌 밑으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세 줄기의 거대한 흉터.
그것을 본 강바다가 조심스럽게 내 손목을 붙잡더니, 울적한 표정으로 흉터를 매만졌다.
다시금 가라앉기 시작한 분위기. 이에 나는 강바다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쓸데없는 걱정 좀 그만해요. 대체 그게 왜 바다 씨 탓이에요? 그 빌어먹을 조···. 길냥이가 긁어놓은 상처인데.”
“그래도 제가 부탁을 안 했다면···.”
“그랬다면 저는 이렇게 예쁘고 몸매도 좋은 신부를 얻을 수 없었겠죠. 그냥 아련한 추억 정도로 남아 있지 않으려나?”
톡톡-
강바다의 콧잔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더니, 그녀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노려봤다.
“하늘 씨는 제 외모가 좋은 거예요?”
“정확히는 외모‘도’ 좋은 거죠.”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 뽀뽀나 할까요?”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데요!?”
순간 당황한 강바다가 몸을 일으키며 나한테서 멀어지려고 했다. 허나 이쪽은 그녀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이거 놔요!”
“뽀뽀해주면.”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계속 반항하시면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진짜 짜증 나.”
쪽-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바다는 고개를 들어 수줍게 입술을 부딪쳐왔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아주 사랑스러웠다.
“이, 이제 됐죠!? 빨리···. 꺄악!?”
쪽쪽쪽쪽-!
장난기가 올라온 나는 그녀의 얼굴에 무자비한 뽀뽀를 행했다. 눈, 코, 입 등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격에 강바다가 기겁을 했다.
“자, 잠깐! 하늘 씨 진정! 진정! 제발 그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구요!”
“말이랑 다르게 몸은 솔직하시네요.”
“그 대사 엄청 수상하게 들리는 건 알아요!?”
푸흐흐-
한 차례 폭격이 지나간 후.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최근 들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것이 무색하게, 강바다는 다시금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뭐가요?”
“그냥. 전부 다요. 항상 놀이터에서 저를 기다려줬던 것도. 납치됐던 저를 구해준 것도. 소매치기를 잡아줬던 것도.”
“······.”
“무엇보다 오빠들하고 작은 언니, 태리와 원장님. 그리고 예나까지. 저 혼자였다면 절대로 이만큼 가까워질 수는 없었을 거예요.”
담담하게 진심을 전해오는 강바다의 말에 나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금 정돈해줬다.
쪽-
그러자 강바다가 대뜸 입술에 뽀뽀를 해왔다. 이에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제 인생에 이런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단언컨대 평생 제가 살아왔던 세월 중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후후. 친구들이 빨리 결혼하라고 난리 칠 때는 왜 그런지 전혀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달까? 물론 그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산더미 같지만···.”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강바다. 그녀는 이전과는 다르게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사랑해요. 하늘 씨.”
굳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바다는 눈을 마주한 채로 내 쪽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고, 나 역시 본능에 따라 그녀의 턱을 붙잡으며 격렬하게 서로의 입술을 부딪쳤다.
누가 주인인지 모를 혀가 노크하듯 상대의 이빨을 톡톡 두드리자, 수줍게 마중 나온 그것이 온몸으로 상대를 끌어안는다.
하아-
그렇게 서로의 혀가 매듭처럼 얽히고 풀어지기를 수십 번. 참았던 숨을 간신히 내뱉으며 아쉬움을 토해낼 때쯤.
“다 끝나셨나요?”
“······!?”
불현듯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더니, 문 앞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최민서가 서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우리는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