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22
122 결혼식은 언제 하세요?
예나를 처음 만났던 날.
이라고 하기에는 몇 번인가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허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절대로 내 옆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당시 환경이 열악했던 보육원에서는 흔히 먹지 못했던 치킨이나 피자 등, 온갖 간식을 들고 와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혹시 자폐가 있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말을 걸어도 한번 스윽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도 없고, 다른 아이들과도 대화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부모 중 일부는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내버리는 일도 종종 생긴다고 들었으니까.
이후 검색해보니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이 매우 어렵다’라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반쯤 확신했었는데.
– 원장님. 저 아이는···.
– 음? 아, 예나를 말하는 거구나. 또래에 비하면 굉장히 성숙하지? 낯을 좀 많이 가리지만 착하고 좋은 아이란다.
– 제가 원장님보다 예나를 잘 아는 건 아니라서 이런 말을 드리기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만, 혹시 자폐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돼서요.
– 미안해할 것 없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니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지. 그리고 예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 ···그렇습니까?
예나를 바라보며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원장님. 그 눈빛은 결코 동정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에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고, 원장님은 다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더해주셨다.
– 예나는 아주 섬세한 아이란다. 그만큼 지금껏 받은 상처가 많아서 낯가림이 심할 뿐이야. 내게는 종종 당근 먹기 싫다고 투정도 부리는걸?
– 하하, 그건 좀 귀였겠네요.
– 그럼. 아주 사랑스럽지. 그러니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지 않으련? 너에게도 곧 마음을 열어줄 것 같으니 말이다.
– 그렇게 되면 저도 참 기쁠 것 같네요.
이후로 몇 개월이 더 흐르고. 여전한 예나의 무관심에 오기가 생긴 나는 그녀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덥수룩했던 머리와 수염도 정리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술이나 소재들도 연구했다.
비정기적으로 방문하던 보육원도 매주 나가게 되면서, 더욱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으며.
그것이 내 글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양판소 공장’이라는 별명을 벗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 예나야, 오빠 왔다!
– ······.
그녀는 내가 옆에서 아무리 알짱거리고 말을 걸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덕분에 그녀의 곁에 앉아서 홀로 떠들어대는 것이 일상이 됐다.
– 사실 오빠는 예전에 엄청난 악당이었어. 별명이 ‘하남 피바다’였거든? 슈슉! 하고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쓰러지고 그랬지. 대학교 때는···.
– ······.
– 그렇게 아득바득 어떻게든 기어 올라왔는데, 결국 순간의 화를 이기지 못해서 전부 잃어버렸어. 오빠 되게 바보 같지?
– 바보 아냐.
– 어?
사실상 처음 듣는 예나의 청아한 목소리. 이에 당황해버린 나는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으나, 예나는 여전히 책에 시선을 못 밖은 채였다. 혹시 잘못 들은 건가 싶었는데.
– 원장님은 욕하는 사람이 나쁜 거랬어. 예나도 나쁜 말을 들으면 속에서 부글부글해. 하지만 예나는 바보 아니야. 그러니까 오빠도 바보가 아닌 거야.
– 어···. 으응. 고마워?
– 응.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지 않는 그녀였으나, 나는 왠지 예나와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무척이나 기뻤고.
어떤 말보다 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한테 내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구나.’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가족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는 말에 화를 참지 못했던 것도, 내심 아픈 곳을 찔렸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지금껏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우리 가족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던 거다.
‘이것 참···.’
다 듣고 있었구나.
솔직히 방심했다. 몇 개월 동안 말을 걸었음에도, 이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예나의 모습에 익숙해진 것이다.
내 과거를 들으면 다들 이대리처럼 나를 혐오하거나 무서워했는데, 예나는 대나무처럼 한결같이 내 말을 들어주기만 했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 놓고 예나에게 속마음을 잔뜩 털어놓으며, 뜻하지 않던 고해성사를 해버린 꼴이다.
– 예나야, 오빠가 치킨 사줄까!?
– ······.
– 오빠가 연습한 마술 볼래? 짜잔!
– ······.
이후로 다시 말이 없어진 예나였으나, 뭔가 이전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서로의 마음이 이어진 듯한 느낌이랄까.
그녀와의 거리도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0m, 다음에는 20m, 그다음에는 10m, 5m. 종국에는 예나가 내 무릎에 앉아서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사이가 됐으니.
“사실 바다 씨를 만난 것도 예나 덕분이죠.”
“그건 무슨 말이에요?”
“소매치기를 잡았던 날 기억하시죠? 그날이 마침 예나 생일이라 선물 사러 가던 길이었거든요. 아시다시피 제가 평소에는 번화가에 나갈 일 자체가 별로 없잖아요.”
“아···.”
강바다가 탄성을 흘렸다.
우리를 보면 세상에 이렇게 복잡한 인연이 또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런 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이 아닐까 싶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만약 예나와 소통하기 전에 바다 씨를 만났다면, 지금 같은 관계가 되지는 못했겠죠.”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주위 사람들이 말하길, 예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후로 제가 훨씬 유해졌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도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그게 유해진 거였어요?”
“전에 장미가 욕하는 거 들으셨잖아요.”
아아-
강바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던 문제의 그 통화 내용이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거겠지.
“그래서 저는 바다 씨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사실 입양한다는 결심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법적인 절차나 자본의 여유를 떠나서, 내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남의 자식을 데려온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
세간에서 입양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분명 아내가 불임이다, 남편이 씨가 없다 등등 여러 말이 떠돌겠지.
‘그래서 바다 씨가 대단한 거지.’
나조차도 예나를 입양하기보다, 후원자로서 응원하자는 생각이 더 강했을 정도니까.
물론 강바다가 입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외압이 들어오기는 했으나, 강별에게 맡긴다는 편리한 선택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 예나를 입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용기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는 구태여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저도 똑같아요.”
“······?”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하늘 씨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준 덕분이에요. 예전이었다면 작은 언니의 말에 반박할 생각도 못 했겠죠.”
그녀는 예나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따스했는지 새삼 반하고 말았다.
“항상 가족에게 등 떠밀려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했던 제가, 이제는 제법 당당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제 덕분이라고는···.”
“당신 덕분이죠.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게 생겼으니까. 예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이 행복한 시간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바다 씨.”
“내심 가족들이랑 의절할 각오까지 했는데,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친해져서 얼떨떨한 기분까지 들었다니까요?”
호호-
강바다는 기분 좋게 웃었다. 최근에는 강별과 함께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예나랑 셋이서 미술관 구경도 다닌다던가.
강태양은 애초에 츤데레 같은 타입이라 딱히 먼저 표현하는 건 없지만, 장비서를 통해 알게 모르게 소식을 물어온다고.
‘강산은 뭐···.’
그 인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일하러 다니는 건지 놀러 다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제는 예나를 보겠다며 느닷없이 보육원으로 들이닥쳤으니.
– 네가 바로 그 예나구나!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귀엽게 생겼군! 나도 네 또래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커흑!
예나를 보자마자 황소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깜짝 놀란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고. 이에 최민서와 강바다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허나 그답게 기죽지 않고 열심히 선물(마법 소녀 메리의 한정판 피규어였다)을 들이댄 결과. 놀랍게도 예나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
– 조금 무섭지만 좋은 사람?
– 크하하! 사람 보는 눈이 쓸만하구나?
– ···역시 이상한 사람.
– 흠. 다음에는 메리의 주방 요리 세트를 사주려 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
– 삼촌!
돈으로 아이를 매수하는 듯한 장면에 어이가 없었지만, 사람 보는 눈이 나보다 더 뛰어난 예나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강산은 아이들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마지막까지도 보육원의 다른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다가 떠났으니.
–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보마!
– 정말 일 하시는 거 맞아요?
– 지금 이게 다 누구 때문···. 아악!
– 다음에 뵙겠습니다.
최민서에게 귀를 잡힌 채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순간 대한 그룹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긴 했다만.
저래 보여도 공식 석상에서는 철두철미한 성격과 냉철한 성격으로 평가받고 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이렇게 보면 예나가 사장님과 사모님 사이에 오작교를 놔준 셈이네요. 겸사겸사 제 인생도 활짝 피었고요.”
“우리는 그렇다 치고. 너는 왜?”
“에이, 진짜 몰라서 물으시나?”
씨익-
내 질문에 이태리가 엄지와 검지를 붙여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하긴 얘도 동화책 지분을 나눠 받은 덕에 생활이 풍족해졌지.
거기다 웹툰도 대성황 중이라, 각종 굿즈 판매 수익의 일부까지 가져가면서 평범한 대학생의 수입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런 거에 비해 평소랑 별로 달라진 것 없이 한결같다는 점이 그녀의 최고 장점이랄까.
“물론 돈을 둘째고, 저도 예나랑 그림 그릴 때가 제일 재밌으니까요. 요즘은 같이 만화도 그리고 있어요.”
“그래? 무슨 만화인데?”
“아, 그건 비밀입니다.”
이태리가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직후 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전에 예나랑 둘이 약속했거든요. 대신 완성되면 사장님들부터 보여드릴게요!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후후.”
“···네가 그러니까 왠지 불안한데?”
“사장님!”
하하하-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볕이 우리를 감싸고, 따사로운 기운이 주변을 맴돌았다.
“근데 사장님들한테 여쭤볼 게 하나 있어요.”
“음?”
그때 문득 이태리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무슨 질문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두 분 결혼식은 언제 하세요?”
“······.”
그녀의 질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강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녀 역시 이쪽을 바라보다가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이후 약속이라도 한 듯 내 손에 들린 청첩장으로 향하는 모두의 시선. 별안간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천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