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9
019 은혜는 반으로, 복수는 두 배로
“예나, 일어났어?”
“우웅···.”
“그럼 언니랑 씻으러 갈까?”
“언니랑?”
“싫으면 말고.”
“아니, 좋아!”
헤헤-
예나의 웃는 얼굴을 본 강바다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비록 김하늘을 꼬셔보려던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진짜 가족 같네.’
예나의 옷을 벗겨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엄마가 된 기분이랄까.
“바다 씨, 물 받아놨어요.”
“고마워요.”
역할 분담이 착착 되는 게 진짜 부부 같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어느정도 풀린 강바다는 예나를 데리고 욕실로 향했다.
성인이 된 이후, 다른 사람과 함께 욕실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지만. 어린아이니까 크게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와아아-!”
“···그렇게 보면 언니가 부끄러운데?”
“예나도 이렇게 될 수 있어?”
“그럼. 쑥쑥 자랄 거야.”
“쑥쑥!”
예나와 함께 목욕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특히 욕조에 들어갔을 때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언니, 말캉말캉해.”
“···너무 만지면 안 된다?”
아이다운 호기심이 조금 곤란할 때도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예나, 오늘 재밌었어!”
“언니도 예나 덕분에 재밌었어.”
“정말!?”
“그럼.”
혼자였다면 절대로 해보지 못했을 경험이다. 반평생 연구실에 틀어박혀 살았고, 큰 이변이 없는 한 계속 그렇게 살았을 테니까.
‘다른 곳도 가보고 싶네.’
평범한 놀이공원도 좋고, 일반적인 관광지도 좋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김하늘과 다시 만난 것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많은 변화를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예나야, 우리 다음에 또 올까?”
“응응!”
“앗, 물장구치면 안 돼!”
“푸하하하-!”
···
꽤 다사다난했던 목욕이 끝나고, 강바다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바깥으로 나왔다. 이후 예나와 머리를 말리며 대화를 나눴다.
“예나는 여기에서 자면 돼.”
“언니는?”
“언니는 저 방에서 잘 거야.”
“그럼 오빠는 어디서 자?”
“···오빠도 저기서 잘 거야.”
“왜 예나만?”
예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똘망똘망한 두 눈에 살짝 물기가 맺혔다. 그를 보며 당황한 강바다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예나는 공주님이니까···.”
“싫어.”
“응?”
“언니랑 오빠랑 다 같이 잘래.”
“으으음···.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우으-
예나의 눈동자에 맺힌 물기가 방울지기 시작했다. 강바다가 난감해 하는 사이, 때마침 김하늘이 거실로 나왔다.
“다 끝나셨어요?”
“오빠! 나랑 같이 자!”
“응?”
잠시 분위기를 살피던 김하늘은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듯했다. 그의 눈빛에 순간 고민이 어리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나는 오빠랑 자자.”
“언니도!”
“엉?”
“다 같이!”
“그건 좀···.”
그러면서 김하늘이 슬쩍 강바다의 눈치를 살폈다. 그 눈빛이 마치 ‘나는 괜찮지만 쟤는 싫어할 텐데?’라는 것만 같아서, 강바다가 입술을 삐죽였다.
“전 괜찮은데요?”
“예?”
“같이 자는 게 뭐 어때서요. 그치, 예나야?”
“응응!”
눈에 맺혀있던 물기는 전부 연기였는지, 예나가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양손을 뻗었다.
혹 마음이 변할까, 한 손에 각각 한 명씩 붙잡은 예나가 얼른 두 사람을 침대로 이끌었고. 그 사이 김하늘이 강바다에게 눈빛으로 메시지를 날렸다.
‘진심이에요?’
‘애초에 이게 누구 탓인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예나한테 싫다고 해보시든가.’
‘······.’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김하늘이 한숨을 삼켰다. 그렇게 세 사람은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킹사이즈의 침대라지만, 아무래도 세 사람이 충분한 거리를 두고 눕기에는 비좁았다.
때문에 세 사람은 예나를 가운데 두고 가족처럼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예나가 두 사람의 손을 붙잡은 터라, 등을 돌릴 수도 없어서. 강바다와 김하늘은 의도치 않게 서로를 마주 보게 됐다.
‘예나, 또 성공!’
미묘해진 분위기에 홀로 신이 난 예나. 그녀는 자신의 작전이 성공하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따뜻해.’
오늘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 탓일까. 처음 느껴보는 침대의 푹신한 감촉에 예나는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새근새근-
순식간에 잠들어버린 예나. 그녀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강바다와 김하늘은 반대로 숨을 참았다. 까딱하면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
“······.”
방은 지나치게 고요했고.
예나를 통해 전해지는 서로의 심장 소리만이 나지막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날 두 사람은 오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 * *
“피곤해 보이네? 괜찮아?”
“잠을 제대로 못 자서요.”
“어머머.”
“그런 거 아닙니다.”
나는 박선생의 오해를 일축했다. 애초에 이런 말이 나올까 봐 예나를 데리고 들어온 거다. 중간에 애가 끼어있는데 엄한 생각까지는 안 하겠지.
“누나, 안녕!”
“민철이도 안녕.”
스윽-
자연스레 시선이 뒤쪽으로 움직였다. 어김없이 예나에게 한 손을 붙잡힌 강바다가 아이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예쁘긴 해.’
어지간한 배우는 뺨 때리는 수준이라서, 그녀와 한 침대에 누운 미묘한 상황이 자꾸만 남자의 본능을 일깨웠다.
– 우와아아! 언니 말캉말캉해!
생각보다 방음이 좋지 않았던 화장실. 문 너머로 들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해버렸고.
이후 함께 침대에 눕는 지경에 이르자, 행복회로가 제멋대로 불타오른 것이다.
‘···생각보다 침대가 너무 좁았어.’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던 강바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새벽에는 오죽했을까. 예나가 없었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정신 차리자, 운전해야지.’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애초에 일정을 여유롭게 잡은 덕분에, 늦게나마 잠들어서 퇴실 직전까지 푹 쉬었다는 것이다.
평생 불면증을 달고 살았기에 이 정도 피로감은 익숙하다. 에너지 드링크 하나 마시면 운전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자, 이제 버스 타자.”
“네에-”
아이들을 빠짐없이 모두 태운 나는 엑셀을 밟았다. 잠이 부족했는지 곧바로 잠들어버리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데리고 서울 근교로 향했다.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졸음이 밀려올 법했으나, 조수석에 앉은 강바다가 계속 말을 걸어준 덕분에 생생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서울 근교에 있는 수련원이요. 보육원이 리모델링 되는 동안 거기서 지내게 될 거예요.”
“학교는 어떻게 하고요?”
“운전사랑 같이 통학 버스를 지원해준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는 걸어 다녔으니까 통학 시간 자체는 비슷할 거래요.”
강태양의 지원은 확실했다.
대체 뭘 얼마나 해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리모델링까지 대략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며. 그동안 아이들이 머물 공간을 통째로 빌렸다.
‘어제 쓴 돈만 천만 원은 될 텐데.’
버스비와 숙박비만 더해도 엇비슷할 거다. 거기에 식비나 기념품 구매, 대대적인 리모델링 비용까지 더한다면 억 소리는 우습게 나겠지.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니.’
부자들이 클럽에서 제대로 놀면 술값으로만 하루에 몇천만 원씩 깨질 텐데. 접대 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싼 편이 아닐까.
물론 내가 접대받을 만한 위치는 아니다만, 알아서 기부해준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우습다. 이럴 때는 그냥 ‘감사합니다’하고 받아야지.
“봐요. 저희 둘째 오빠 착하다고 그랬죠?”
“그러네요.”
“우와, 영혼이 하나도 없네.”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운전 중이라···.”
“오빠한테 다 이를 거예요.”
“그건 봐주세요. 진짜로.”
살해당할지도 모릅니다.
뒷말을 애써 삼켰다.
다행히 강바다도 장난으로 꺼낸 말이었는지 가볍게 웃으면서 화제를 전환했다.
“덕분에 요즘 즐거운 일이 많아졌어요.”
“그런가요.”
“좀 제대로 받아주면 안 돼요?”
“우와, 그거 정말 기쁜 소식이네요!”
푸흡-
짐짓 과장된 리액션을 보여주자 강바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이전에는 어땠는데요?”
“음. 글쎄요. 무채색 같은?”
“무채색?”
“네. 사는 게 별로 재미없었달까. 저 사실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겉으로 티는 잘 안 내지만.”
그건 좀 의외다.
내가 본 강바다는 매사에 웃으면서 남들과 손쉽게 친해지는 전형적인 인싸의 이미지였는데.
“전혀 몰랐죠?”
“아뇨, 알고 있었는데요.”
“그짓말하네, 또.”
“평소에 보내는 문자만 봐도 답 나오죠.”
“제 문자가 뭐 어때서요?”
“제 눈에는 다 보입니다.”
“···웃겨, 진짜.”
피식-
가벼운 웃음을 삼킨 강바다가 입을 다물었다.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다.
“왜 사람을 싫어하는데요?”
“···그냥 앞뒤가 너무 달라서.”
“어떤 점이요?”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웃다가도, 잠깐 사라지면 온갖 뒷담을 늘어놓는 다거나.”
말을 꺼내는 강바다의 낯빛이 어두워진 걸 보니 경험담인가 보다. 생각보다 주변을 많이 신경 쓰는 모양.
“그 외에도 그냥 제 겉모습이나 배경만 보고 다가오는 사람도 많고. 아니, 그런 게 사실상 거의 전부겠죠. 거기서 오는 약간의 회의감이랄까?”
“······.”
“학생 때는 잠깐 그런 생각도 했어요. 차라리 집안이 확 망해버리면, 정말 내게 소중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
사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나오는 우정이나 사랑 등이 가치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것들이 실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삶에, 시간에, 때로는 돈에 치여서 덧없이 사라지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던가. 보험금 때문에 가족마저 등지는 판국에.
‘···뭐,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진구나 태식이, 혹은 철수가 도와달라고 하면 가능한 모든 것을 내줄 테니까.
만약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그들의 아이만 덩그러니 남겨진다면, 내 자식으로 키울 수도 있을 만큼 녀석들을 아낀다. 아마 반대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믿음 자체가 없다는 건가.’
강바다는 태어날 때부터 거의 모든 것을 가졌다. 그렇기에 오히려 가장 중요한 마음을 잃어버린 걸지도.
나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한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돈’이라는 것은 그녀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단단한 신뢰의 상징일 테니.
“후후. 엄청 배부르고 철없는 걱정이죠? 정작 제 자신도 깨끗하지 않으면서. 그냥 한번 해본 말이니까 신경 쓰지···.”
“신경 쓰여요.”
“네?”
“좀 더 듣고 싶네요. 바다 씨의 고민.”
옆에서 빤히 바라보는 강바다의 시선이 느껴졌다. 허나 나는 시선을 전방에만 고정한 채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왜요?”
“그야, 우리는 부부니까?”
“···농담이라면 정말 최악인데요.”
“농담 아니에요.”
버스가 신호에 걸렸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강바다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마주 봤다.
드득-! 부우웅-!
녹색불이 들어왔다.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며 기어를 넣었고, 엑셀을 밟았다. 버스가 다시금 도로 위를 질주했다.
“제가 바다 씨를 만난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뭔 줄 아세요?”
“뭔데요?”
“부모님의 전화가 두렵지 않다는 거.”
“······.”
그것은 ‘돈’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고를 많이 쳤던 나는 가족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버지의 병도,
어머니의 눈물도,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그래서 되도록이면 부모님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했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이나 통화할까 했는데, 최근에는 거의 삼 일에 한 번씩 해요. 대부분 엄마 쪽에서 걸어오는 거지만, 저도 싫지가 않더라고요. 항상 웃고 계셔서.”
“······.”
“맨날 돈 걱정만 하시던 분이 오늘은 병실에 둔 화분에 꽃이 피었네, 아버지가 방귀를 뀌었네.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웃으시니까. 저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랬어요?”
“네. 바다 씨 덕분이죠.”
그뿐이랴.
당장 뒤쪽에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들만 해도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
자연스레 그들을 지켜보는 내 마음에도 조금씩 햇빛이 스며들었다. 살면서 요즘처럼 맘 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
“바다 씨는 빚지고는 못 산다 그랬죠?”
“네, 그랬죠.”
“저도 똑같아요. 예전에 어떤 인터넷 방송 BJ가 ‘은혜는 반으로, 복수는 두 배로’라고 하더군요. 그게 지금은 제 좌우명이 됐습니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진심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는 강바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거 맞아요?”
“제가 속이 좀 좁아서.”
“방금 건 좀 웃겼네요.”
“진짠데.”
부우우웅-
어느새 버스는 톨게이트를 통과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천천히 속도를 끌어올리자 기분 좋은 엔진음과 함께 차가 앞으로 내달린다.
“절반은 돌려줄게요.”
“응?”
“기브 앤 테이크. 이젠 바다 씨가 저한테서 받아갈 차례라는 거죠.”
“······.”
조금 딱딱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오히려 이 방식이 더욱 편안하게 다가오리라. 나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늘 씨, 저 대한 그룹 사람이에요.”
“그건 저도 아는데요?”
“아니요. 당신은 모르고 있어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아주 조금도.”
“······?”
의미 모를 말에 잠시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저희는 항상 베푼 것 이상을 받아내거든요.”
강바다가 이전에는 보여준 적 없던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를 걸친 채.
* * *
수련원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강태양 측 사람들이 버스를 인계해갔다. 강바다도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훌쩍 사라져 버렸고.
그녀의 차가운 미소가 잔상처럼 눈에 아른거려서 다소 찜찜하기는 했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 신경을 꺼두기로 했다.
“···글이나 쓰자.”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키보드를 잡았다. 최근에 이런저런 일로 글 쓰는 시간이 크게 줄어서 슬슬 비축이 위험하다.
이대로 꾸준히 성장만 하면, 공모전 수상까지는 어려워도 유료화 각은 충분히 보였기에. 휴재는 절대로 안 된다.
“응?”
습관적으로 들어간 내 작품 페이지. 화면에 비친 숫자를 보며 나는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다른 작품을 눌렀나?’
아니다.
확실히 내 작품이다.
그런데 선호작에 찍힌 ‘504’라는 숫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230’이었는데 왜 갑자기 두 배가 됐지?
‘···추천글이 달렸구나.’
작품 설명과 소제목들 사이에 ‘독자 추천’이라는 항목이 새로 생겨났고. 그곳에 [남녀가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보였다.
클릭해보니 누군가 정성스러운 말투로 내 작품에 대한 추천을 적어주셨다. 읽으면서 알 수 없는 감동이 차올랐다.
‘다들 이런 기분이었나?’
감정이 요동친다. 그동안 꽤 많은 작품을 썼지만 추천글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웹소설이라는 건 본디 모바일 환경에서 가볍게 읽기 좋은 장르다.
현생을 살기도 바쁜 독자님들이 굳이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하고, 추천 게시판까지 들어와서 정성스레 글을 쓰는 건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다.
‘덕분에 투베 들어서 유입이 뻥튀기됐네.’
심해 밑바닥에 파묻혀 있던 내 글이 추천글을 통해 수면에 비치면서, 평소 10~20이 고작이었던 유입이 3배로 늘어났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못 들어가던 투베 진입 장벽을 뚫어냈고, 다시 한번 유입이 뻥튀기되면서 선작이 두 배로 늘어난 것.
“······.”
무서웠다.
요즘 주변에서 왜 이렇게 좋은 일만 일어나는지. 한평생 살아오면서 세상은 단 한 번도 내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는데.
이러다 어느 순간 물거품처럼 확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재밌습니다. 파이팅!] [느낌 진짜 좋아요. 쭉 달리세요.] [댓글이 많이 없네요.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이런 댓글들을 처음 받아보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에 밟히는지. 나는 키보드 앞에 앉아 한참 동안 숨을 골라야만 했다.
“······.”
침묵이 내려앉은 방 안.
나는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잡았다.
하얗게 빈 노트를 검은색으로 하나둘 채워나간다. 작가로서 독자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기에.
나는 그날 아주 오래도록.
키보드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 * *
“···엄마, 이게 다 뭐야?”
“하늘이가 우리 가족의 사연을 써서 당첨됐대. 덕분에 너희 아빠도 편하게 지낸다.”
오랜만에 병문안을 온 김하늘의 여동생, ‘김구름’은 엄마의 답변을 듣고 머리가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연이 당첨됐다고?’
세상에 VIP 병실을 무기한으로 사용하게 해주는 그런 편리한 이벤트가 존재할 리가 없는데.
“어디에 사연을 보냈대?”
“글쎄. 그러고 보니 물어본 적이 없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엄마의 모습에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간다. 김구름은 급하게 휴대폰을 들고 관련 이벤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설마, 이 인간 또 사고 친 건 아니겠지?’
두두두두-!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그럴수록 김구름의 눈빛도 무겁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