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53
053 네가 왜 여기 있는데?
“···이건 말도 안 돼.”
“무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한 판. 딱 한 판만 더해요!”
“결과에 승복하시죠?”
이익-
뒤에서 강바다가 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아예 VR 고글을 벗어버렸다.
그러자 강바다가 입술을 삐죽이며 솔랭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하면 질뻔했네.’
등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강바다와의 내기는 7판 4선으로 진행됐는데. 처음 두 판은 무난하게 내가 이겼으나, 세 번째 판부터는 그녀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탄을 정확한 궤도로 연속 사격하여, 한 발을 막아내도 뒤에 한 발이 더 있는 총알을 쏘거나. 도탄과 도탄이 부딪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각도로 공격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미 하이랭커 수준이야.’
그 증거로 지금 강바다와 매칭되는 상대들은 문자 그대로 ‘학살’을 당하고 있다.
근거리 무기류는 접근하기도 전에 죄다 머리통에 구멍이 뚫렸으며, 총을 주무장으로 선택한 이들은 넘을 수 없는 격차를 느끼고 있겠지.
‘점점 정확도가 올라가는군.’
싸움을 복기하며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 두 판은 연습을 위해 아예 버리기로 작정한 판이었고. 세 번째 판부터가 진짜였다.
심지어 마지막 판에는 포탄 세례를 뚫고 강바다에게 접근하던 중, 어깨에 총알이 박히면서 큰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니.
‘다음에는 장담할 수 없겠는데.’
그래도 승률은 내가 더 높겠지만, 100% 이긴다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로키의 위엄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익절해야겠지.
나를 대신하여 분노의 총질을 감당하고 있는 이름 모를 뉴비들에게 조용히 애도를 표했다.
“아씨···. 진짜 한 판만 더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몇 명인가 게임을 접게 만들어버린 강바다가 고글을 벗었다. 한창 싸우던 중이라 그런지 나를 향하는 눈빛이 강렬하다.
“전형적인 패자의 변명이네요.”
“다시 한 판 붙자니까요?”
“패배자의 말이라 잘 안 들리는데요?”
“쫄?”
“4전 4패.”
강바다가 입술을 삐죽였다.
같은 레퍼토리에 몇 번이나 당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이미 난 명백한 승자이므로 도발에 응해줄 필요가 없다.
“···언젠가 꼭 갚아줄 거야.”
“먼저 소원부터 갚으셔야 할걸요?”
“아, 정말 그럴 거예요!?”
“워워. 일단 여기 앉아서 좀 쉬어요.”
더 놀리면 진심으로 삐져버릴 듯했기에, 나는 얼른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이후 음료수와 간식을 가져다주며 열기를 잠재웠다.
“근데 도탄 계산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번에 붙었던 랭킹 2위 팀이 총을 좀 신기하게 쏘더라고요.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게임이라 그런지 입사각과 반사각이 완전히 같아요.”
“···그래요?”
“응. 팔의 각도랑 격발 타이밍만 맞추면 되는 거라서 생각보다 쉬워요. 게임에서의 총은 그냥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거니까요.”
그게 말이야 쉽지.
분당 수백 발씩 쏴대는 게임에서, 각도를 하나하나 계산해 쏘는 순간부터 일반인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정작 랭킹 2위도 성공률이 1할도 안 됐던 기술 같은데, 강바다는 눈대중으로만 봐도 이미 3할을 넘어섰으니까.
“이 정도라면 결승전도 문제없겠네요.”
“그러고 보니 대회 방식이 좀 특이했었죠? 팀별 1:1로 한 판씩, 총 4판을 붙은 다음에 2:2를 붙는다고 그랬었나?”
“맞아요. 일종의 대장전인데. 오늘 정도의 폼이면 소울 파이터 내에서는 저를 제외하곤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왜 자기는 은근슬쩍 빠져요?”
“4전 4패.”
“······.”
싱긋-
강바다가 전에 없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길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만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에휴. 됐어요. 클라우드 진이라는 사람들의 특징이나 좀 알려주세요.”
“저도 잘 모르는데요?”
“엥?”
“제가 활동할 때는 없던 사람들이거든요. 음, 자세한 건 몬스터 형님한테 여쭤보는 게 낫겠네요. 아마 분석을 해두셨을 거예요.”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카운터로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영철이 방으로 들어왔다.
“너도 많이 느슨해졌구나?”
“형님을 믿고 있던 거죠. 공대 당시 2파티장으로서 참모 역할도 겸하셨잖아요.”
“하여간 그놈의 입은···. 됐다. 일단 내가 알아본 부분만이라도 설명해줄 테니까, 두 사람은 거기 앉아있어.”
“넵.”
문영철이 능숙하게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자 메인 화면에 클라우드 진의 아바타가 찍힌 사진이 나타났다.
“닉네임은 클라우드 진. 전적은 515승 337패로, 현재 27연승을 달리고 있는 디펜딩 챔피언이다.”
“생각보다 판수가 많지는 않네요.”
“나름 뉴페이스거든. 3개월 전에 처음 등장했어. 처음에는 전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이거지.”
달칵-
문영철이 마우스를 클릭하자, 화면이 넘어가며 웬 그래프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개월 수에 따른 클라우드 진의 승률표다.
“생각보다는 승률도 낮은데요.”
“전체 승률만 보면 그렇지. 첫 달은 승률이 절반도 안 나왔거든. 그런데 두 번째 달부터 승률이 8할로 뛰더니, 최근 한 달 사이에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어.”
“노력형인가?”
“···너희에 비하면야 누구라도 그렇게 보이겠지만. 이쪽도 충분히 괴물들이야. 주말에만 간간이 접속하는데도 이 정도 성장세를 보인 거니까.”
“흐음.”
달칵-
문영철이 다시 한번 마우스를 누르자, 이번에는 클라우드 진의 전투 영상이 떠올랐다. 그것을 본 강바다의 눈이 사뭇 진지해졌다.
“주무기는 너희랑 똑같아. 다만 여자는 검을, 남자는 총을 사용하지. 플레이 스타일도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돼.”
“진정한 실력싸움이 되겠군요.”
“그렇지. 개인적으로는 너희가 우위라고 생각하지만, 이 녀석들도 만만치 않아. 일단 별명부터가 굉장히 화려하거든.”
“별명이요?”
드르륵-
궁금하다는 듯한 시선에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문영철이 마우스 휠을 내렸다. 그러자 댓글 창에 그들의 별명이 보였다.
“무결점 지휘관?”
“여자 캐릭터 쪽은 ‘선혈의 여신’이네요.”
“육성으로 들으니까 좀 그렇다만, 아무튼 그 별명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들이라는 거야.”
“사장님, 저희 별명은 뭐예요?”
“굳이 그건 안 보셔도···.”
강바다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는 문영철이었으나, 결국 그녀의 강렬한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라플라스의 마녀]푸흡-!
강바다의 별명을 본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허나 곧바로 입을 닫아야만 했는데,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굉장히 살벌했기 때문이다.
“왜 누구는 여신이고, 누구는 마녀인가요!?”
“바다 씨, 일단 진정하시고···.”
“하늘 씨 별명은 뭔데요?”
“그, 글쎄요?”
“쟤는 ‘불사의 마왕’입니다.”
“아재!”
우리를 지켜보며 웃음을 참고 있던 문영철이 얼른 나를 팔아넘겼다. 내가 노려보자 재빨리 손을 흔들며 문밖으로 도망치는 그.
“···좋은 시간 보내라!”
크큭-
불현듯 들려오는 소리에 옆을 보자 강바다가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내 시선을 받은 그녀가 싱글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누굴 놀릴 처지가 아니셨네.”
“라플라스의 마녀보다야.”
“제가 더 나은 것 같은데요?”
“에이, 그건 아니죠.”
피식-
내 말에 입꼬리를 끌어 올린 강바다가 VR 기계를 양손에 들고 흔들었다.
“깔끔하게 단판 승?”
“안 사요~”
“해줄 때까지 숨참을 거예요.”
“기절하시면 인공호흡 해드릴게요.”
얼굴을 붉어지는 강바다. 저래서야 날 이겨 먹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여유롭게 테이블을 정리하려는데.
“오늘은 이만 갈까요?”
“······.”
“응?”
“······!!”
“아니, 진짜로 기절할 때까지 숨을 참으려고 하면 어떻게요!? 바다 씨, 바다 씨!”
약간의 해프닝과 함께 하루가 마무리됐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대망의 결승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 * *
결승전 당일.
김하늘은 보육원 인원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E-Sports 경기장에 들어와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결승전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너희는 가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큰일을 벌이는구나.”
“아하하···.”
원장님의 말에 김하늘과 강바다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들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상금 1억 5,000만 원.
메인 스타디움 전 좌석 매진.
광고주들의 치열한 자리 경쟁까지.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본래 VR방 내에서 가볍게 진행되어야 했을 1위 결정전이.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 아래 여기까지 성장해 버린 것이다.
소울 파이터 측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자고 생각했는지, 아예 공식 대회를 선언해버렸고.
덕분에 우리 말고도 몇 명의 하이랭커들이 더 참여하며, 흥을 돋우기 위한 별도의 이벤트 매치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일단 앉으세요. 비록 주 경기장은 아니지만, 여기는 저희만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편하게 이용하시면 돼요.”
“그래, 알겠다.”
주최 측의 배려로 우리는 스크린이 딸린 방 하나를 통째로 빌릴 수 있었고, 덕분에 보육원 전체가 구경을 오게 됐다.
김하늘의 지시를 따라 아이들이 차례차례 자리에 앉았으며, 그러는 와중에도 예나와 이태리는 맨 앞 중앙에 앉혀놓았다.
“지금부터 여기있는 아저씨가 음료수를 나눠줄 테니까, 다들 자리에 앉아있으렴.”
“네에-”
쿵-
문영철이 거대한 아이스박스를 들고 와서 맨 앞에 내려놨고, 함께 온 그의 와이프가 음료수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형수님은 앉아 계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에이, 지금은 적당히 운동해줘야 하는 시기에요. 도련님이야말로 경기 전에 힘 빼지 말고 쉬고 계세요.”
“그래도···.”
“이거라도 하게 해주세요. 저희는 진심으로 하늘 씨 부부한테 감사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저이는 집에 오면 맨날 두 사람 이야기만 하거든요.”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니까 부끄럽네요. 그럼 저희도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김하늘과 강바다는 얼른 문영철 부부를 도와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줬다.
그렇게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문득 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김하늘에게 다가왔다.
“오빠 싸우러 가?”
“으음. 이건 그러니까···.”
“악당들 물리치러 가는 거야.”
“악당?”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강바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는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응. 우리는 지금 지옥에 사는 못된 마녀랑 마왕을 물리치러 가는 거야.”
“마녀랑 마왕!?”
“응. 예나가 응원해주면, 언니 오빠가 힘내서 마왕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응원.”
강바다의 말에 예나가 입술을 오므렸다. 그녀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무언가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결의에 찬 눈빛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뽀로로롱-
손목시계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그 안에서 화려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예나는 강바다를 향해 양손을 펼쳤다.
“언니 힘내! 메리가 응원해!”
꼬옥-
강바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예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사랑스럽다는 듯 마구 볼을 비벼댔는데, 예나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고마워. 예나 덕분에 언니는 충전 완료!”
“충전 완료!”
“하늘 오빠한테도 해줄 거지?”
“응!”
꼬옥-
예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김하늘에게 다가가 손을 펼쳤다. 이에 김하늘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아줬다.
“오빠, 꼭 이겨!”
“그래.”
“와아아아-!!”
“언니 오빠들 파이팅!”
“지면 안 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던졌고, 김하늘은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올게.”
“응!”
그렇게 예나의 미소를 등에 업은 채 두 사람은 선수용 대기실로 넘어왔다.
아까부터 계속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김하늘, 그에게 슬쩍 다가선 강바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충전 다 됐죠?”
“덕분에요. 바다 씨가 말한 마왕과 마녀는 오히려 우리 쪽인 것 같지만.”
“적어도 예나한테는 마녀처럼 보이고 싶지 않거든요. 그건 하늘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두 사람은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긴장을 풀었다. 곧 경기장으로 나가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럼 아이들의 영웅이 되러 가볼까요?”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음?”
강바다가 대뜸 양손을 펼쳤다.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린 점만 빼면, 조금 전 예나가 보여줬던 자세와 똑같았다.
“이건 과충전 아닌가요?”
“잔말 말고 와요.”
이에 가볍게 웃음을 흘린 김하늘이 얼른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거리를 벌렸고,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스태프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두 분 입장하실 게요.”
“네.”
우리는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무대로 나아갔다. 경기장 내로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강바다가 움찔하는 것을 본 김하늘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안심을 시켜줬고, 두 사람은 무사히 무대 위에 올라섰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맞이해주십시오! Legends Never Die! 불사의 마왕 로키!! 그리고 새로운 도시 전설의 등장, 라플라스의 마녀 실비!”
“와아아아아아-!!!”
약 800명의 인원이 쏟아내는 함성이 고막을 때렸다. 머리 위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두 사람을 감쌌다.
“다음은 디펜딩 챔피언! 그들은 과연 마왕과 마녀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선혈의 여신 ‘클라우드’와 무결점 지휘관 ‘진’입니다!”
“우와아아아아-!”
반대편에서 두 명의 남녀가 걸어 나왔다. 대기실에서 무대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양 팀은 금방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엥?”
“응?”
동시에 당혹성이 튀어나왔다. 짜 맞추기라도 한 듯, 네 사람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서로가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왜 여기 있는데?”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네가 왜 편집자님이랑 같이 있어?”
“······.”
“······.”
클라우드 진.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김구름’과 내 담당 편집자인 ‘박도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