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50
150. 바람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2016.04.08.
“전대 칠객 중 한 명이라면 믿겠나?”
“광 호위가 말입니까?”
능시걸의 첫마디에 장원태가 반문했다.
설마 하니 광휘가 전대 칠객 출신이었다니.
“칠객이긴 하지만 현 칠객과는 달랐네. 명성에서나, 무위에서나.”
쪼르륵.
능시걸은 빈 술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언뜻 취한 얼굴로 보였지만 술에 의한 취기는 아니었다.
향수가 그를 취하게 만든 것이다.
“과거의 칠객은 천중단에 들어갈 만큼 강하지 않았어. 물론 그때도 현 무림맹주 단리형처럼 대단한 자도 있었지만.”
꿀꺽.
“카야. 술맛 좋구만.”
한 잔을 들이마신 능시걸이 입가를 닦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칠객은 협객(俠客)의 상징이었지. 특히나 낭인 무사나, 빈민가의 사람들에게는 구대문파를 대표하는 최고의 후기지수보다 더 높게 쳐주었네. 그러니 경력도 나이도 부족한 광휘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게지.”
“허면, 그런 대단한 곳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입니까?”
장원태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맹주의 추천이었네.”
“맹주 말입니까? 그럼 혹시 광 호위께선 명문가의 자식이…….”
“아니. 출신조차 알려지지 않는 자였어.”
“그럼 왜…….”
“맹주의 명이긴 했지만 사실은 이중윤(李重尹)이란 자가 맹주께 그를 추천했기 때문이야.”
“이중윤?”
왠지 들은 적 있는 이름 같아 장원태의 미간이 좁아졌다.
능시걸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들어본 적 있을 게야. 금군(禁軍)의 교두로 있었고 대영반 직위까지 올랐던 자였으니까.”
“……!”
장원태는 그제야 눈을 번뜩였다.
십오 년 전,
황제의 직속 군대인 금군의 최고 직위.
대영반 이중윤을 그제야 기억해 낸 것이다.
“그럼 그 이중윤과 관련된 사람이었겠군요.”
“그건 아니야.”
능시걸은 거듭 물어오는 장원태의 질문을 반박하며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개방에서 조사를 한번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와 관계된 접점은 하나도 없었지.”
“…….”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중윤이 칠객의 몇몇 인물을 맹주께 추천하지 않았을까 그리 추정했네. 천중단 내에서도 의협심, 무공보다 강한 목적의식이 더 필요한 곳이 살수 암살단이었으니까.”
능시걸은 추가로 천중단 내에 있던 두 부대와 성격을 설명했지만 장원태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예전에 광휘에게 들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는 천중단에 들어왔고 단의 특별한 임무들을 수행했지. 그러다 일 년 즈음…… 기밀 정보가 들어왔네. 은자림이라고 불리는 살수들이 개량된 벽력탄을 사용한다는 것이었지.”
장원태는 직접 본 적이 없었으나 그 폭발이 얼마나 강한지는 예상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적들이 사용하지 않았는가.
“은자림이 가장 무서운 것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사파들을 모아 하나로 단결시킨다는 데 있었지. 같은 문파 안에서도 서로서로 다투는 게 일상인 놈들로 그렇게 연합체를 꾸린 단체가 광림총. 그 총주가 바로 대살성이라 불리는 희대의 거마였지.”
광림총과 대살성의 존재는 장원태도 알고 있었다.
상계에서도 광림총과 관계된 일은 무조건 피하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 대살성은 살수의 탈을 쓴 천하제일 고수라는 얘기가 있지 않았는가.
“서로 뜻이 맞았던 게지. 사파에게는 많은 무사들이 있었고 은자림엔 폭굉이 있었으니까. 폭굉은 그 자체도 위력적이었지만, 목표가 따로 있을 때 정말 요긴하게 쓰였네. 뛰어난 고수들을 죽일 때나, 대규모 무사들을 상대할 때나.”
장원태는 그제야 광휘가 폭굉의 존재를 어떻게 잘 알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 또 다른 궁금증이 그를 자극했다.
“그런데 흑우단이라는 곳은 왜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그렇게 강호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건 부대라면 행적을 더 알리고 치켜세워줘야 함이 맞지 않습니까?”
“흠.”
능시걸은 턱을 쓸었다.
그러더니 뭐가 생각났는지 슬쩍 운을 뗐다.
“자네는 천중단을 사람들이 뭐라 불렀는 줄 아나?”
“하늘 가운데 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장원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맞네. 그럼 그 이유도 아는가?”
“달은 어두울 때 가장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네.”
장원태는 능시걸이 중원 모두가 아는 질문을 왜 한 것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다음 질문을 듣자 그가 왜 그리 물었는지 알 수 있었다.
“허면, 살수 암살단은 뭐라 불렀겠나?”
*
“하늘 가운데 달을 잘못 말한 게 아니오?”
묵객이 물었다.
천중단의 비사는 나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그였기 때문이다.
“아니. 바람이다.”
노파는 짤막히 대답했다.
“왜 바람인 게요?”
“바람은.”
노파가 잠시 뜸을 들이다 주름진 눈꺼풀을 세우며 말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바람.
노파의 말대로 바람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우리들 곁에 존재하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묵객에게 바람이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 잊혀야 한다는 것.
그곳에 누가 있었는지, 무슨 일들을 해 왔는지조차 함께 묻어져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알려질 수 없었던 게야. 조사를 해봐도 당연히 남은 게 없겠지. 굳이 있다면 당시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자들의 증언뿐이랄까.”
“…….”
“그가 어떻게 천중단에 들어왔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가 하는 것도 그래. 당시 하늘 가운데 바람, 그 부대는 엄격한 개방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기에 우리가 아는 건 많지 않아. 뭐 그렇다고 해도…….”
노파가 마치 상황이 재밌다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어떤 부분에선 개방보다 많이 알기도 하지. 예컨대 천중단 들어가기 전, 그의 성격이 어떤가. 어느 규방의 규수와 염문을 뿌렸다든가. 그 외에 천중단에 살아남은 자들이 누구라든가.”
“사, 살아남은 자들이 있소?”
묵객의 눈이 커졌다.
천중단 소속으로 생존한 이는 무림맹주 단리형이 유일했다. 그 외에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처음 듣는 얘기였다.
다만 그중에 광휘가 있다는 건…… 뭐, 들으면서 바로 납득이 가버리는 게 기분이 좀 그랬지만.
“장씨세가에 있는 명호란 자 외에도 네 명이 더 있지. 광휘와 함께 지워진 사내들이.”
묵객은 그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광휘 옆에 머물러 있던 명호란 사내.
몇 수만 겨뤄보아도 비범한 실력자임을 알 수 있었던 그가 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누굽니까?”
“그걸 말하기 전에 하나 내게 약조해. 내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이야기는 없어.”
“허어.”
묵객이 눈을 크게 떴다 이내 표정을 굳혔다.
어이가 없었지만 굳이 따질 마음은 없었다.
눈앞의 노파가 처음부터 매양 친절을 베풀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무슨 조건을 내세우든 난 장씨세가의 일이 끝나기 전에는 움직일 생각이 없소.”
“당연히.”
“강호의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어야 하오.”
“물론.”
“묵객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 역시.”
“전혀.”
묵객은 크게 심호흡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받지요.”
*
“은자림은 대체 어떤 자들입니까?”
대화 중 장원태는 문득 궁금해졌다.
폭굉을 만들어냈다는 그들은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그런 물건을 만들어낸 것인가.
“솔직히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전대 방주께서도 그 이유를 내게 밝히지 않으셨으니까. 허나, 확실한 것은 은자림의 태동이 어느 장군가의 자손이라는 것과 조정을 붕괴시키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는 것이네.”
그것은 달리 말해 역모다.
나라를 뒤엎기 위해 폭굉을 만들어낸 것이다.
허나, 장원태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그런 뛰어난 자들이 조정에 일을 벌이지 않고 왜 굳이 중원으로 와서 사파와 손을 잡은 것인가.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폭굉을 왜 곧장 황제를 죽이는 데 쓰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들겠지. 이유는 간단해. 목표가 황권 찬탈에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야.”
“……허면?”
“황제의 호위무사와 군사, 금의위와 오군도독부의 군사 일체를 날려버리려는 생각이었던 게야. 완전히 박살 내 버리려고 한 것이지.”
능시걸은 그렇게 표현했다.
그들에 대한 극한의 증오가, 모두를 멸(滅)해버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살육에 빠진 미치광이 아닌가.
“역모에 휘말린 장군의 자손으로 추정하고 있네. 그리 생각하면 짐작이 갈 테야.”
장원태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역모는 황가의 모반이나 권력을 공고히 할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또한, 역모는 구족을 멸한다.
아마 거기에 휩쓸린 자들 중 적개심이 증오로 변질된 것일 테다.
“허나, 조정에서도 이를 파악하고 있었네. 무림맹에 적극 투자를 한 것을 보면 말일세.”
“조정에서 무림맹에 지원을 해줬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조정은 무림과는 불가침이 있을 정도로 개입하는 것을 꺼려하지 아닙니까?”
황실이 무림맹에 지원을 해주는 상황이 일견 이해가 갈 법했지만 실제로 그리 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다.
천하를 바라보고 움직이는 황실이 자칫 무림맹에게 고개를 낮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징검다리 역할을 한 곳이 있었네. 조정이 폭굉과 은자림의 존재를 알게 만든 곳. 뿐만 아니라 비밀리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본 방보다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곳이지.”
“거기가 어딥니까?”
능시걸은 장원태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하오문일세.”
*
“네가 처음 궁금해했던 조정의 일은 우리에겐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왜인 줄 알아?”
노파는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묵객이 대답도 하기 전에 스스로 대답했다.
“아랫도리 놀리는 사내새끼들이란 다 똑같거든.”
“허어. 옆에 소저도 있는데 어찌 그런…….”
묵객이 난처한 듯 슬쩍 옆에 있던 여인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허나, 노파는 별것 아니란 투로 말했다.
“고관대작의 술자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다. 술자리에 사내놈들이 취기가 올라오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술술 불게 되어 있어. 그 상황에서 몇 번 들쑤셔주면 석가장의 일을 누가 진행했는지 쉽게 알 수 있겠지.”
푸우.
장죽 끝으로 퍼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묵객 얼굴을 향해 쏘아졌다.
묵객이 연기가 따가운 듯 눈을 찌푸리자 노파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천중단에 대해서 얘기할까? 장씨세가에 머물고 있는 명호 외에 네 명. 바로 방호(方浩)와 웅산군(熊山君), 구문중(求門重)과 염악(閻嶽)이란 자다.”
묵객은 묵묵히 듣다 의아한 듯 곧장 고개를 저었다.
“……다들 처음 듣는 이름들이오. 그리 유명한 자들이라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멍청한 놈! 내가 말 안했어? 천중단은 모두 지워졌다니까.”
묵객은 그제야 ‘아’ 하며 이해했다.
예전에도 그랬다면 당연히 지금도 그들의 존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통제하고 있을 터였다.
“출신이라든지, 혹은 어디에 살고 뭘 하고 있는지는 이 아이의 입을 통해 들어.”
노파가 한 곳을 가리키자 묵객은 다시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루주(주루의 주인)로 추정되는 여인이 여전히 다소곳하게 앉은 채로 홍조를 띠고 있었다.
‘거참.’
묵객이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만 쳐다보면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보자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더 궁금한 게 있나?”
“지금 당장은 없소만…… 앞으로는 꽤 많이 생길 것 같소.”
“그래. 언제든 물어봐.”
노파의 말에 묵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뭔가 꺼림칙했지만 일단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럼 이번엔 그 조건을 말하지.”
노파는 여전히 기분 나쁜 웃음을 보였다.
그러다 실눈처럼 가늘게 뜬 눈이 갑자기 커지며, 갈라진 입술이 움직였다.
“여기, 내 딸을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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