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49
149. 그가 이끌던 부대를 우린 그렇게 불렀었지2016.04.06.
“여기입니다. 분부하실 것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불러 주십시오.”
“고맙소.”
전각 앞에서 청년은 광휘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멀어져갔다.
광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건물 안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문을 열자마자 빼곡히 들어선 책장이 시선을 압도했다.
허나, 삐뚤게 걸려 있는 면경.
책장은 정리되지 않았고 방 안을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바닥은 지저분했다.
주위를 훑던 광휘의 시선이 책상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무려 세 개의 책상이 있었는데 가장 앞쪽은 문방사우(종이, 붓, 벼루, 먹)가, 다른 한쪽엔 지도로 보이는 약도가.
마지막 책상에는 수량을 기록해놓은 듯한 문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르신…….’
그 모습에 광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장씨세가를 이끌고 나가던 그의 무거운 짐을 눈으로 확인한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놀라운 얘기가 있네. 자네가 도움을 받았던 황 노인이란 자, 조부가 첨사부(詹事府) 관직에 있다고 하네.”
“첨사부? 거긴 황태자를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까?”
“그래.”
“헌데, 왜 홀로 떠나 장씨세가에 있는 겁니까?”
“가문이 망했거든. 세상에는 엄한 스승에게 앙심을 품는 제자가 많지. 그리고 귀한 신분이 된 후에 스승에게 앙갚음을 하는 경우도 많아.”
보고로 받았던 내용.
귀한 자제로 살다 가족을 잃고 장씨세가로 들어온 것이 그의 과거였다.
그리고 그 보고 안에는 노인의 이름이 황충삼이라는 것도 들어 있었다.
“숙부는 아직까지도 중요 관직에 있는 모양이더라고. 첨사부 소속으로 파악되고 있으니.”
터억.
광휘는 문방사우가 있는 책상에 슬쩍 앉아 붓을 들었다.
사람이 쓰지 않은 지 꽤 시일이 지나, 벼루는 마른 밭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광휘는 한숨을 쉬며 문방사우를 정리하고 붓을 들었다.
슥슥슥.
사람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림이 어느 순간 멈췄다.
오래된 붓이라 선이 매끄럽지 않고 거칠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눈을 그리는 순간 저절로 멈춘 것이다.
– 괜찮은가? 눈을 떠보게.
광휘는 언뜻 눈앞에 황 노인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모습에서도 여전히 그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 하아. 정말 다행이구만. 난 꼭 죽는 줄만 알았네.
일면식 없는 사람이 살아나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눈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귀히 여기는 한없이 자상했던 눈이.
– 그럼 해야지. 강호를 구하는 일이라고? 수많은 목숨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보고 싶은 눈인데 선명하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하아.”
붓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를 훑어보다 머리를 뒤흔들었다.
발작이 아니었다.
환각 또한 아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두근거린 것이다.
‘그런 것이었나.’
술에 더는 의존하지 않았던 이유.
장련의 따스한 눈빛에 발작과 환각을 멈춘 이유.
바로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 때문이었다.
그것은 살수의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위험한 것이었지만 지금 자신을 살게 해준 목숨 같은 것이기도 했다.
– 자넨 살인마가 아니지 않은가?
“어르신 말이 맞소.”
광휘는 거부하지 않았다.
더는 피하지도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소.”
평생 신검합일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다시 감각이 둔해지고 무뎌질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더는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니까.
– 내가 자넬 만난 걸 자랑스러워해도 되겠는가?
“꼭 그렇게 만들겠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소중히 지키려고 했던 것을 이제는 내가 지킬 것이오. 사람으로서.”
광휘는 택했다.
살수나 병기가 아닌, 이제는 사람과 살아가는 길을.
살수의 감각을 죽이고 인간으로서 사는 길을.
“그게 내가 가장 잘하는 게 아니겠소.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광휘는 창가로 걸어가 하늘을 보았다.
유난히 오늘따라 맑고 푸르렀다.
“보고 싶소. 황 노인…….”
*
마차 두 대가 고급 주루(酒樓) 앞에서 멈춰 설 때였다.
점소이들이 급히 나오더니 일렬로 서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을 거느린 루주가 대표 격으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운화객잔입니다.”
복장엔 격식이 느껴지고 행동엔 기품이 묻어 나왔다.
바로 이곳이 하남 운산에 위치해 있는 전국 팔대 주루 중 한 곳인 운화객잔이었다.
“빨리 나오시지요. 여기가 운화객잔이 아닙니까. 예약 잡기도 그리 어렵다는. 하하하.”
가장 먼저 내린 모용상이 뒤를 향해 손짓을 했다.
간만에 회포를 풀 요량인지 그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개해 있었다.
“흘흘흘. 노부가 이런 호사를 피할 수야 없지.”
능시걸 역시 기분 좋은 웃음으로 마차에 내렸다.
그러고는 모용상을 향해 재차 말을 건넸다.
“그런데 모용가주께선 산동에 오래 거주하신 걸로 아는데 어찌 이곳을 아십니까?”
“소싯적에 많이 들르곤 했었지요.”
“하긴, 사람이 그리 바뀔 리가…….”
“예?”
“아닙니다.”
능시걸은 배시시 웃으며 장원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모용상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 능시걸의 말뜻을 떠올렸는지 급히 손사래 쳤다.
“여긴 그런 곳이 아닙니다. 술과 가무(歌舞)만 합니다.”
능시걸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모용상은 약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다 이내 능시걸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헌데 말입니다.”
“……?”
“오늘 일은 비밀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본가의 무사들은 제가 통제할 테니, 개방에서 조금만 힘써 주신다면 오늘은 그저 좋은 객잔에서 하루 묵는 날로 전해지지 않겠습니까?”
“…….”
“아시겠지만 제 안사람 성격이 워낙…….”
“알겠습니다.”
능시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모용상은 표정이 확 밝아지며 고개를 숙였다.
“믿고 있겠습니다.”
그러고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쯧쯧. 저분은 언제쯤 철이 들지…….”
능시걸은 혀를 차며 모용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들어가시게나.”
그러고는 뒤늦게 내린 장원태에게 한마디 건네고는 모용상을 뒤따라 들어갔다.
*
띵. 띠링 띠리링.
금(琴)의 운율이 주루의 분위기를 달구고 있던 늦은 시각.
주루의 이 층은 노랫가락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호쾌하게 외치던 처음과 달리 두 시진이 지나자 다들 자리에 머리를 처박고 주욱 늘어졌다.
특히나 모용가주가 가관이었다.
“쯧쯧쯧. 데리고 가거라.”
능시걸은 모용상의 안위를 살피러 다가온 무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처의 강짜를 벗어나 오늘은 밤새 마시자고 열을 올리던 그는 초저녁도 안 되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마음은 여전히 이십 대 젊은 날을 그리고 있는 모양인데, 몸이 받쳐줄 리가 없지 않은가.
“방주께는 면목 없습니다.”
무사들이 그를 대신해 사과를 하곤 모용상을 급히 둘러멨다.
그러고는 이내 줄행랑을 치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장원태가 조용히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소인은 조금 믿기지 않습니다. 저렇게 소탈하고 성격이 좋으신 분이 적수대제(赤手大帝)란 무서운 별호를 가지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능시걸이 지그시 웃으며 말을 받았다.
“거기에다 마누라 얘기만 나오면 흠칫흠칫 놀래니 더 그렇겠지?”
“하하하하.”
쪼르르륵.
능시걸은 피식 웃어 보이며 한 잔을 들이켰다.
“천성이 밝은 사람이었네.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공자였지. 하지만 강호의 삶이란 게 어디 그런가.”
장원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의 삶이라.
누구보다 자신이 절실히 느끼고 있지 않는가.
“그럼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방주?”
“뭘?”
“이 자리를 만드신 건 제게 따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던 듯싶습니다만.”
“……아, 그거라면.”
짝짝.
능시걸이 손바닥을 마주치자 근처에 머물러 있던 거지 몇 명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주위를 물리거라. 한동안 사람을 들여보내지 말고.”
“예, 방주.”
삽시간에 주위가 깨끗해졌다.
하지만 능시걸은 뭔가 맘에 안 들었는지 조금 전 불렀던 사내를 다시 불렀다.
“저기 저 여인들도 내보내야지.”
조금 떨어진 곳에 곱게 차려 입은 두 여인.
한 명은 금(琴)을 연주하고 한 명은 춤을 추던 여인이었다.
한 여인이 방주의 말을 들었는지 조용히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저는 내려가겠으나 이 아이는 농자(聾者-귀가 먹은 사람)이니 연주를 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웃기지 말고 썩 꺼져.”
능시걸이 단칼에 거절하자 여인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다른 여인을 데리고 내려갔다.
그렇게 모두 주위를 물리자 능시걸이 말했다.
“점소이, 마부, 기녀, 창부. 가릴 것 없이 주루나 기방은 전부 하오문의 눈과 귀지.”
“하오문이라 하시면……?”
“밑바닥에서 정보를 사고파는 놈들. 일단은 경계를 하는 것이 맞네. 중요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장원태는 얼굴이 굳어졌다.
역시나 이 늦은 밤에 까닭 없이 주루 같은 곳을 들른 이유가 있었다. 능시걸이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그만큼 주의를 요하는 것일 터였다.
“말해보게. 대충 조용해진 것 같으니.”
능시걸이 운을 떼자 장원태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간 답답했던 속내를 털어내듯 물었다.
“본가가 처한 일이 대체 무슨 일이옵니까, 방주?”
장원태는 작금의 상황이 대체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파에 이어 팽가는 결국 맹까지 개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씨세가를 개방과 모용세가가 지키는 와중에서도 한 발짝도 물러섬이 없었다.
그 모습이 마치 섶을 쥐고 불에 뛰어드는 것처럼 죽자 살자 덤벼드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쯧쯧쯧.”
능시걸은 혀를 차며 담뱃대를 꺼내 물었다.
“질문이 틀렸어. 가문이 제일이 되는 가주의 처지는 이해하네만 여기서는 이렇게 물었어야지.”
“어떻게?”
“자네 집안은 강호에서 그리 쳐주는 곳이 아니야. 그런데 석가장과의 싸움을 이겼고, 팽가에서 모욕당하고도 멀쩡하고, 운수산에서 적사문과 귀문 등 사파 단체를 막았고, 나중에는 본가 장원을 급습한 밀영대와 야월객도 모두 물리쳤네.”
“……!”
장원태의 눈이 커졌다.
능시걸의 지적대로 장씨세가는 이 모든 것을 버텨냈다.
구대문파도, 오대세가도 아닌, 무력이 기반이 아닌 상재가 기반인 약한 세가에서.
강호의 누구도 장씨세가가 이토록 분투하리라고, 여기까지 살아남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터.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내는, ‘광 호위라는 이는 대체 누구입니까.’라고.”
*
드르륵.
잠시 대화 없이 침묵이 일 때쯤 문이 열렸다.
묵객의 시선이 가늘어지며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뭘 쳐다봐? 불렀으면 왔나 보다, 생각할 것이지.”
키가 작고 등이 굽은 노파였다.
턱이 약간 비틀어지고 눈도 좁쌀처럼 조그마하지만 목소리는 앙칼졌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세가 은근히 흐르고 있었다.
까닭 없이 툴툴거리던 노파가 묵객 앞에 놓인 빈 잔을 보고 말했다.
“꼴에, 해독제는 미리 처먹였군.”
“해독제?”
묵객의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노파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여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맘에 든 게냐?”
“…….”
대답 없이 가만히 노파는 인상을 쓰며 재차 말했다.
“그랬으니 해독제를 준 게 아니냐.”
‘해독제라면 언제 독을…… 아!’
순간 묵객은 감각을 집중해서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자 미세한, 아주 약한 거부감이 그가 앉은 자리에서, 그리고 탁자에서 느껴졌다.
‘자리에…… 독이 스며 있었다?’
마시는 차나 음식에는 독이 들어 있지 않았다. 하오문은 그런 눈에 빤히 보이는 수단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묘한 향내가 풍기는 의자, 탁자, 그리고 이 방 안의 가구 전체가 미약한 독향을 품고 있는 것이다.
“아닙니다. 독일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는데 스스로 드신 겁니다.”
“호오?”
노파는 탁자 위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부채와 차, 그리고 그 옆에 올려진 묵객의 검.
그것을 보자 대충 상황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마음은 없고?”
“아직 마음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랄할 년. 드디어 만나고 싶던 사내놈 봤으면 치마끈 확실히 풀어야 할 것 아냐. 내가 모를 것 같던?”
“…….”
“삼 년 전, 저잣거리에서 동호 놈을 도와준 녀석이 이놈이라며?”
묵객은 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노파와 여인을 연신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해가 간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이었나.’
동호란 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말대로라면 예전 자신에게 뭔가 도움을 받은 듯했다.
그러니 여인이 호의적인 태도를 자신에게 보인 것이리라.
“허허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소. 본인은 동호라는 대협을 모르거니와 설령, 내가 도움을 줬다고 해도 기억하지 않느니 의미를 따지는 건 그렇소. 하니 소저께서는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시오.”
묵객이 오해를 풀기 위해 말하자, 대꾸할 것 같지 않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선인(善人)은 선행을 베풀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지요. 옛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으니 역시 대협께선 군자가 맞으십니다.”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하는 여인.
묵객은 그 모습이 왠지 으레 형식적인 말과는 달라 연인을 두고 부끄러워하는 처자처럼 느껴졌다.
‘어째 더 위험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묵객이 난감한 듯 노파를 다시 바라보았다.
“아주, 지랄에, 상지랄을 하는구만.”
노파는 이 상황이 지겨운 듯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렸다. 그러고는 귀지를 파며 대뜸 물었다.
“칠객의 하나가 여긴 무슨 일로 온 게야?”
“혹시 그대가 하오문주이시오?”
“빌어먹을 놈아. 용건만 말해.”
‘허어.’
무례하기로 따지면 이보다 더 무례할 수 없었다.
초면에 하대, 거기에 막말. 자신이 칠객 중 하나임을 알면서도 이런 대우를 한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노파가 원래 성격이 막 나가거나, 아니면 그러고 살아도 걱정 없을 만한 뒷배경이 있거나.
‘아니.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겠지.’
“두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생각을 정리한 묵객은 입을 열었다.
“몇 달 전 석가장과 장씨세가의 싸움 끝에 석가장의 장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소. 화기가 연관되었으니 응당 조정의 관찰이 내려올 터. 헌데 조사하던 도성부 지부대인은 사건에 손을 떼고 그 일은 조용히 묻혀 버렸소.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누가 개입했다면 어느 선에서 지시가 내려졌는지 알고 싶소.”
“하나는 그거고. 다른 하나는?”
“지금 장씨세가에 호위무사로 있는 광휘란 자가 누군지 알고 싶소. 그의 말에 따르면 맹에서 일한 적…….”
“불가능해.”
묵객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노파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허리에 찬 장죽을 꼬나물고 한 모금 빨더니 말했다.
“그건 조사할 수 없어. 그는 백(百)이다.”
“예? 무슨…….”
묵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 명 중 하나라는 걸출한 인재라는 말인가 싶어서. 하지만 노파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는 천중단. 완전히 지워진 곳의 사람이다.”
꿈틀.
묵객의 눈썹이 흔들렸다.
혹시나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그가 천중단 소속이란 말인가.
“천중단은 모두 죽은 것이 아니었소? 생존자는 오직 한 명, 단리형이라고…….”
“하늘 가운데 달(天中月).”
“……?”
“그게 현 무림맹주가 이끌었던 천중단(天中團)이고.”
푸우.
노파는 장죽의 연기를 다시 한 번 뿜어냈다.
“하늘 가운데 바람(天中風).”
그러고는 다시금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그가 이끌던 부대를 우린 그렇게 불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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