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73
173. 내가 지금 꿈속에 있다고.2016.06.29.
달달달.
마차는 대나무 숲을 지나 점점 대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봄이 찾아왔음에도 날씨는 선선했다.
길은 얼어 있었고, 꽃은 새싹을 틔우지 못하고 언제 내렸는지 모를 눈으로 덮여 있었다.
다라락.
때마침 마차 한 곳에 난 작은 창문이 열렸다. 왜소한 몸에 주름진 얼굴의 노인.
그는 스쳐가는 경관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은자림과 손을 잡으신 겁니까?”
팽인호의 물음에 팽석진의 자세가 조금은 경직되었다.
여유 있던 미소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대인, 소인은 한배를 탄 몸입니다. 그러니 대인의 솔직한 대답을 꼭 들어야겠습니다.”
부담스러운 질문 때문이었을까.
팽석진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인호야.”
그러다 잠시 시간이 경과된 후에야 팽인호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이 세상에 은자림은 존재하지 않아.”
“대인, 제가 드리고 싶은…….”
“세상에는 말이야. 두 종류의 인간들밖에 없어.”
팽인호가 반사적으로 부정하려 하자 팽석진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나라에 충성하는 자, 그리고 충성하지 않는 자들이지.”
“그 말씀은 대인께서 은자림과 손을 잡았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허허. 인호야!”
쾅쾅.
팽석진은 처음으로 언성이 높아졌다.
“이 나라가 지금 어떠냐? 과거에는 주(周)가 왕권을 틀어쥐었어. 그리고 수(隋)나라였지? 이후 당(唐)나라였고 그 다음은 원(元)이, 지금 명(明)이지.”
“…….”
“은자림도 원 말기에는 우리의 우군이었던 자들이다. 함께 달자(韃子: 몽고인)들과 싸웠던, 같은 한인들이고 같은 명의 창업 공신이다. 그들이 어떤 출신이고 어떤 짓을 한 게 뭐가 그리 중요하느냐?”
“…….”
“고 황제께서 마교를 적대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이 황군과 싸울 일은 없었을 것이야. 무림맹이 황실의 편을 들지 않았다면 그들과 우리가 적대할 일도 없었을 것이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봐라. 마교의 입장에선 외려 우리가 그들의 원수이지.”
“…….”
“한때 은자림의 거두였던 이들은 이미 무덤에 들어간 지 오래이다. 언제까지 옛날 이름 때문에 적대를 유지하는, 그런 소모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려 하느냐? 아니라고 나는 믿고 싶구나.”
당상관은 차갑게 웃었다.
팽인호는 그것이 우회적이지만 분명한 경고임을 알 수 있었다.
‘왜, 왜 하필 은자림인가…….’
창가를 향하고 있던 팽인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은자림이 원래 뭐 하던 곳인가 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팽가의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팽진운(彭眞運)과 팽설웅.
팽가의 가장 중요한 비기를 잇고 있던, 두 정예를 앗아갔다는 것이다.
팽가는 그날 가문의 최고수 둘과 선대의 찬란했던 무공 지식을 함께 잃었다.
그 뒤로 팽가가 겪은 일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수백 년을 이어오던 비기와 깨달음의 전승자가 끊어졌다. 그런 팽가에게 당상관은 더욱 가혹한 말을 했다.
– 그저 비극이라 생각하게. 그쪽은 그쪽대로 살기 위해서 투쟁했을 뿐이니까.
‘그저 비극으로 받아들이라고?’
트득!
팽인호가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오로지 하북의 팽가.
그 이름만을 위해 평생을 걸었고 극악한 죄까지 지은 팽인호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니 잊으라는 말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상관과 손을 잡지 않으면…… 팽가는 당장 앞으로 몇 년도 기약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과거의 원한을 씻자니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팽가의 이름을 위한 것이 팽가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후우우…….”
팽인호는 지독한 모순에 빠져 괴로운 한숨만을 내쉬었다.
– 인호야, 같이 가야지?
팽석진의 마지막 말이, 그 목소리가 아직도 팽인호의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들과 손을 잡으면 그간 팽가가 받았던 모든 수모를 되갚을 수 있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한 영예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그 달콤한 유혹은 팽인호가 살아온 세월과, 목표로 하고 있는 굳은 심지까지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같이 갈 수는 없는 길이니 문제지요.’
허나, 팽인호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척 보기에도 팽석진이 가는 길은 팽가가 지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팽가의 목표는 중원제일가이지, 당상관이 손대는 나랏일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덜컥.
팽인호가 고민하고 있던 중 마차가 멎었다. 그는 창문 밖을 한 번 보더니 마차에서 내렸다.
그곳엔 팽가의 무사 몇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팽인호는 손을 내저었다.
“고생은 무슨, 그보다 별일 없었느냐?”
“그렇습니다. 헌데…….”
한 무사가 한 발짝 나서더니 팽인호를 향해 귓속말로 나직이 말했다.
“바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공자께서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대공자께서?”
“예. 그런데 그것이…….”
사내는 한 곳을 힐끗 흘겨보더니 말을 이었다.
“기색이 심상치 않으십니다.”
“…….”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어둡던 팽인호의 얼굴을 더욱더 어둡게 하는 말이었다.
*
“단장님.”
“…….”
“단장님?”
이름 모를 산 중턱.
분명 화창한 날씨인데도 안개가 낀 것처럼 주위는 뿌옇다. 그런 풍경 속에서 장삼을 입은 중이 그 앞에 서 있었다.
“한참 찾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뭐하십니까?”
광휘는 멍한 눈으로 중을 바라보았다.
“단장님, 빨리 오십시오. 염악(閻嶽)이 조촐하게 밥 한 끼를 대접한답니다.”
“염악?”
언뜻 낯익은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광휘는 되물었다.
“예. 염악입니다.”
“…….”
“아무튼 빨리 오십시오.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목소리에 광휘는 잠시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눈을 의심할 장면을 목격했다.
‘꽃이…….’
나뭇가지 끝에 꽃이 펴 있다.
앙상할 정도로 마른 나무인데, 꽃이 피지 않는 노송(老松) 나무인데도 수많은 꽃이 만개해 있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지.’
광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몇 발짝 멀어지던 중을 불렀다.
“저기, 혹시 말이다.”
“예. 단장님.”
중이 뒤돌아보았다.
“그 염악이란 자가…… 막부단 부단주 염악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그가 막부단 부단주 염악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이게 무슨 소린가.
광휘는 급히 물었다.
“염악은 죽었다. 죽지 않았더냐?”
“죽다니요, 단장님……. 하는 짓이 모자라고 제대로 쓸데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습니다. 몇 남지 않은 천중단 생존자 아닙니까.”
“천중단 생존자?”
광휘는 또다시 혼란스러웠다.
확실히 이상하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천중단 생존자는 자신을 제외하곤 단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럼…….”
뒤돌아서려 하던 그를 향해 광휘는 다시 되물었다.
“그럼 넌 누구냐?”
“예?”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
젊은 중은 조용히 침묵했다.
광휘는 다시 한 번 묻기 위해 그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그를 또렷하게 바라봤다.
‘얼굴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그의 얼굴이, 짙게 그늘이 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단장님, 아직 여기 계셨습니까?”
그때였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자 광휘는 뒤돌아봤다.
젊은 중과는 달리 꽤 친근한 얼굴의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사내는…….’
이자의 얼굴은 확실히 보였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조금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분명 아는 자였다.
그가 도착하자 젊은 중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단장님이 좀 피곤하시는 듯하다. 내가 먼저 자리를 봐올 테니 천천히 뫼시고 오너라.”
젊은 중은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 뒤돌아섰다.
“단장님, 왜 그러십니까?”
그가 시선에서 사라질 때쯤 사내가 물었다.
광휘는 그에게 서서히 시선을 돌리고는 나직이 말했다.
“명호.”
“네, 단장님.”
“지금 이거 말이다.”
“예.”
“자각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예……?”
“내가 지금 꿈속에 있다고.”
자각몽(自覺夢).
꿈이란 것을 인식한 채로 꿈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
마른 가지에 꽃이 피고, 화창한 날에도 주위가 뿌연 현상.
상대방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광휘는 분명 확신하고 있었다.
“단장님, 꿈이라구요? 거참 말도 안 되는…….”
명호는 실실 웃어 보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내 광휘를 향해 나직이 바라보았다.
“눈.치.채.셨.군.요.”
말을 뚝뚝 끊으며 답하는 명호의 대답에 광휘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자각몽을 꾸고 있다는 걸 꿈속의 명호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그냥 모른 체하시고 저를 따라오시지요. 방 안에 천중단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동료?”
광휘는 명호가 한 말의 의미를 되새길 여유가 없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다 보니 어느새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왜 이리 늦게 오십니까?”
명호와 함께 허름한 목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반기는 사내를 보았다.
이 사내 역시 얼굴이 없었다.
아니 눈과 코와 귀는 보이지 않고 그저 시커멨다.
“단장께서 왔으니 그럼 내 먼저 소원을 말하겠소이다.”
‘소원?’
광휘는 궁금했지만 일단은 지켜봤다.
“녹림에 돌아가 산적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겠습니다. 노동으로 돈을 벌게 하고 뜻깊은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염악 시주가 누굴 바른길로 인도하겠다는 건지 심히 걱정이구려. 본인이 72채주 중의 하나로 산적 중의 산적인 사람이…… 끌끌.”
조금 전 자신에게 말을 건 젊은 중이 그에게 혀를 찼다.
“그럼 네 꿈은 뭔데?”
사내가 씩씩거리자 중은 웃으며 말했다.
“소생은 빈민가를 돌며 돈 없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것이외다. 이 땡중이 익힌 의술을 사바세계에 두루 펼치는…… 뭐 이 정도는 되어야 꿈이라 할 수 있지.”
“결국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약을 팔겠다?”
“참으로 말을 못 알아 처먹는 마구니로다!”
그들은 서로 손가락질하며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광휘는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 옆에 서 있는 명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사내는…… 누구냐?”
“염악입니다.”
“염악…….”
순간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희미하게 눈앞을 스쳐가는 그림들이 있었다. 메아리치던 웃음, 이야기 소리가 점차 또렷이 들렸다.
그리고 그늘 속에 가려 있던 염악의 얼굴이 선명히 드러났다.
– 단장님, 불편하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 따르겠습니다. 흑우단의 말이라면 당연히 들어야지요.
일도파산(一刀破山) 염악.
사파로 분류되는 녹림칠십이채 중의 하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천중단에 들어온 자.
막부단 부단주직을 수행했고 마지막 살아남은 대원 중 한 사내였다.
“그럼 저자는…… 방호(方浩) 대사인가?”
“예. 그렇습니다.”
명호의 대답에 또다시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 단장직이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 부담스러워 하지 마십시오. 대원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비혈랑(神秘血狼) 방호.
소림사 장경각주(藏經閣主-무공 비급과 불교의 경전들을 관리하는 장)로 천중단에 들어올 때부터 주목을 받았던 자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막부단 부단주직을 수행한 자였다.
본래 승려였던 이가, 싸울 때는 어찌나 손속이 잔인한지 명호에 혈 자와 랑 자가 붙었다. 기억이 떠오르자 이번에도 방호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보였다.
“그럼 이번엔 제가 말하겠습니다.”
이번엔 노인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지팡이를 잡고 있는 것이 어딘가 불편한 곳이 있는 듯했다.
“무관을 차릴 생각입니다. 무지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때 명호가 자신을 힐끔 보더니 말을 붙였다.
“저자는…….”
“무당파 전대 장문인, 구문중(求門重).”
막부단 단주 구문중.
무당파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려가며 천중단에 들어온 노인.
세속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천중단 대원 중 누구도 그의 신분을 제대로 아는 자가 없었다.
특히나 맹인이라는 것 때문에 한동안 그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았다.
“난 말이오.”
구석진 곳에 앉아 있던 엄청난 거구의 장정.
그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하은(河恩)이란 소녀가 있소. 그 아이와 함께 설원 지역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 것이오.”
광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기억했다.
막부단 임무 도중 부모를 잃어버린 소녀가 한 명 있었다고 했다.
막부단 육 조 조장이 그 소녀를 거두었고, 자랄 때까지 보살피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진주언가(晋州彦家) 가주, 웅산군(熊山君)…….’
그리고 뒤이어 떠오르는 기억들.
그 역시 신분을 속이고 온 자로 막부단을 대표하는 고수였다.
존재를 숨겼지만 무당파 장문인이라는 구문중보다 더욱 빨리 발각되었던 자였다.
육 조 조장으로 천중단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그럼 제 차례군요.”
명호가 입을 떼자 티격태격하던 염악과 방호가 동작을 멈췄고 그를 바라봤다.
“전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제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고 둘째는…… 흑우단 단주 단리형과 단장님처럼 강하면서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허허허. 소원이 참 멋있구려.”
“그것참.”
“크큭.”
웅산군을 제외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런 그들 속에서 광휘는 심각한 고뇌에 빠져들고 있었다.
‘왜 이제껏 기억하지 못했을까.’
천중단의 임무 후에도 살아 있는 대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 기억하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천중단 생존자인 명호 역시도 기억해 내지 못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단 하나.
‘잊고 있었던 거겠지…….’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잊고 있었다는 것.
아마도 광마로 인한 후유증으로 부분적인 기억상실을 했다거나…….
“단장. 이젠, 단장의 차례요.”
“……나?”
광휘가 묻자 웅산군이 끄덕였다.
“그렇소. 입 무거운 단장. 우리가 항상 궁금했던 게 바로 단장이라오. 단장의 소원은 뭐요?”
염악이 첨언했다.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 단장이 살고 싶었던 삶. 뭐…… 나는 단장이 주루에 처박혀서 그 좋아하는 술 퍼마시면서 살 거라고 열 냥 걸었소.”
“너 이 자식아!”
방호가 염악의 머리를 끌어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언제나 아웅다웅하는 저 둘의 작태를 보고 광휘가 피식 웃었다.
원래 저랬다.
막부단은 자신이 속해 있던 흑우단과 달리 항상 밝았다.
그 중심에는 저 둘이 있었고.
“내 소원은…….”
자신이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웬만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는 웅산군조차도 노골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오래 사는 거다.”
“에…… 그게 무슨 소원입니까?”
명호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리고 염악도 합세했다.
“단장, 소원이란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 어려우면서 거창한 것 아닙니까? 천하제일미라든지 아니면 강호 제일의 거부(巨富)라든지…….”
“이 소원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소원이 아니다. 나 혼자 이룰 수 없는 것이니까.”
그는 고개를 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과 함께, 다 같이, 마음 편히 오래오래 사는 것. 그게…….”
“그게 소원이었군요, 단장.”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그리고 곧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염악, 방호, 구문중, 웅산군의 몸이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제가 이루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날아드는 음성.
광휘는 고개를 돌렸다.
“……명호?”
이상하게도 명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세상에 자신 옆에 홀로 서서 밝게 웃고 있었다.
“제가 이루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명호, 그게 무슨 말이냐.”
명호, 그만은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온몸이 흐릿하게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호야…… 그게 무슨 말인지 대답을 해줘야 할 것 아니냐.”
“…….”
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섬뜩한 불길함에 사로잡혀 광휘는 크게 외쳤다.
“명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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