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21
21. 이 대결,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소.2015.01.14.
장련이 나간 뒤 광휘는 그녀의 처소 앞에 서 있었다.
어둠에 가려진 그의 모습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꼿꼿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임무의 위험도는 최상급이다. 삼 조, 육 조, 칠 조 조장급 이하들은 전부 투입한다. 목표는 금목상단 3광구다.”
광휘는 그 지령을 받은 다음 날, 임무에 투입되었다.
금목상단은 대외적으로는 비단과 목재를 파는 상단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원의 위험한 병기들을 모으는 거대한 살수 조직, 은자림이 보유한 세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중에도 3광구는 특별했다.
장씨세가가 석염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그곳엔 그보다 더욱 중요하고 무서운 물질이 있었다.
벽력탄을 만드는 재료, 그것도 가장 핵심적인 재료가 그 안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초석(礎石).
벽력탄은 유황, 목탄을 초석과 혼합해 제조한다.
헌데 유황과 목탄은 시중에서 어떻게든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초석은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도 없다.
그런 초석이 금목상단의 제 3광구에는 다량으로 채굴되고 있었고, 그 용도는 ‘비밀리’에 붙여지고 있었다.
거기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그들이 제조하는 벽력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벽력탄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벽력탄의 폭발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그 한계가 뚜렷해 거대한 양이 아니면 그다지 위협적인 물건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은자림은 그런 인식을 뛰어넘는 벽력탄을 제조했고, 또한 기존의 것보다 더욱 작게 만들어냈다.
개량된 벽력탄.
우리들은 그것을 폭굉(爆轟)이라 불렀다.
주먹만 한 크기 하나로 반경 삼 장을 초토화시키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벽력탄이다.
거기다 열 개, 스무 개가 동시에 폭발한다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중원 십대고수인 백중건이 죽을 때 터졌던 벽력탄들은 자그마치 반경 삼십 장을 초토화시킨 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벽력탄을 살수들이 대량으로 갖게 되는 날에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그것은 강호의 인물만이 아니라 죄 없는 수많은 민초들도 말려들 수 있는 혈겁을 의미했으니까.
“따라 오시지요.”
상념에 빠져 있던 광휘에게로 어느새 하인 한 명이 다가와 있었다.
광휘는 그를 보자 생각을 접고 길을 나섰다.
밤이 꽤 깊었는지 대부분의 불빛이 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떠들어대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적한 어둠길의 끝에 있는 것은 내원의 집보다 두세 배쯤 큰 전각이었다.
크기도 컸지만 구조도 독특했다.
목판을 엮은 것처럼 묶인 굵은 대나무들이 전각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적의 칩임을 막기 위해 만든 방책을 연상케 하는 구조였다.
“안에 계십니다.”
하인이 더는 들어가지 않은 채 광휘에게 말을 건넸다.
광휘는 간단한 목례를 한 후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릎 높이의 연무대였다. 중앙에서 대략 십 장 정도 너비의 단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연무대 너머에는 바닥과 경계를 구분지은 단상이 있었고, 그 좌우에는 중앙을 관전할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장련은 광휘와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조금 전 그녀의 방에서 나간 노인 둘은 뒤쪽 단상 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세 명의 호위무사들이 반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아, 우선 사과부터 하겠소. 대협께 본의 아니게 실수 아닌 실수를 했더이다. 이해하시오. 허허허.”
광휘가 나타나자 삼 장로는 기다렸다는 듯 밝게 웃으며 첫마디를 꺼냈다.
“그런데 듣기로 대협께서 아주 재밌는 얘기를 하셨다고 하더이다. 본인들이 초빙한 고수들과 대련을 하고 싶다고요. 허허허.”
삼 장로는 다시금 웃어댔다. 그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광휘를 보는 내내 입가의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반면 그런 그를 바라보는 광휘의 표정은 무심했다.
평정심이 뭔가를 보여주듯 그의 눈빛과 얼굴은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흠흠. 그래서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었소. 아, 나와 이 장로만 여기 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소. 사실 이건 제 작은 배려요. 무려 무림맹 출신으로 이곳에 발걸음을 해 주셨는데 좀처럼 결과가 나지 않으면 서로 조금 그렇지 않겠소.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오. 허허허.”
“삼 장로.”
삼 장로가 계속 웃음을 흘려대자 이 장로가 그를 나무라듯 말했다.
“험험.”
그의 말에 순간 삼 장로가 헛기침했다.
삼 장로가 조용해지자 이 장로는 광휘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시간 끌 것 없이 준비되었으면 바로 시작합시다.”
허락이 떨어지자 광휘 옆으로 다가온 장련이 말을 건넸다.
“준비되었어요?”
장련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부탁했기에 부르긴 했지만, 막상 광휘가 그들과 대결한다고 생각하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든 것이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무위가 그녀의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세 명의 호위무사는 목화솜을 가지고 거의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보이지 않았던가.
반면, 대전 때 보인 그들의 실책 역시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상대의 무위가 뛰어난 탓도 있긴 했으나, 어쨌든 패배하지 않았던가.
물론 광휘의 입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두 명 정도는 이겨야 해요.”
“…….”
“그러지 않으면 비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다시금 건네는 장련의 말에 광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곧장 연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
투웅!
광휘가 느릿한 걸음으로 연무대로 올라가는 순간, 단상 위에 있던 한 사내가 크게 도약하더니 단번에 연무대를 밟고 섰다.
상황을 미루어보건대, 그가 먼저 나서기로 약속한 모양이었다.
“능자진이오. 언젠가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이리 기회가 있어 먼저 나서게 되었소. 대협께서 과연 불명귀를 알아본 식견만큼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오.”
그는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조금 전, 세 명이 차례대로 그를 상대할 거라 한 장로들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카앙.
능자진은 세차게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사선으로 검을 내밀며 기수식을 취하고선 광휘를 바라보았다.
‘뭐지?’
헌데, 그는 처음 올라왔던 자세 그대로였다.
뻣뻣한 자세로 능자진을 보며 서 있었던 것이다.
“뭐요? 당황하신 게요? 아니면 갑자기 겁이라도 집어먹으신 게요?”
광휘의 태도에 능자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겨뤄보자고 해놓고 이게 무슨 작태인가?
설마하니, 칼을 꺼내자마자 얼어붙은 것인가?
그 순간, 광휘가 말을 꺼냈다.
“미리 말씀을 전하지 못했소. 난 이런 대결을 원한 게 아니오.”
“무슨 말이오?”
능자진이 반문하자 광휘가 시선을 돌렸다. 그가 향한 곳은 장로들이 자리 잡은 단상이었다.
“이 대결,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소.”
광휘의 말에 지켜보던 삼 장로는 어리둥절해졌다. 이 장로와 호위무사, 아래에 있는 장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이오? 어차피 다 한 번씩 겨뤄 보겠다면서 굳이 원하는 순서가 있소?”
이 장로였다.
“그냥 겁이 났으면 알아서 내려오시오. 어디서 괜히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이번엔 삼 장로였다. 그의 언성이 높아질 때쯤 장련이 끼어들었다.
“누구 원하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그 말에 광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호위무사들 쪽이었다.
“남은 두 분도 다 올라오시오. 한 번에 전부 상대하겠소.”
*
“허……!”
“저, 저런 무례한!”
이 장로의 신음과 삼 장로의 외침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지켜보던 두 명의 호위무사의 표정 역시 단번에 구겨졌다.
능자진이 가장 압권이었다.
처음엔 당황한 표정을 짓다 이빨을 갈더니 급기야 나중엔 들고 있던 검까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분노를 표출했다.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밑에서 지켜보던 장련이 속삭이듯 물었다.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급히 중재하려 몸을 돌렸지만, 그보다 더 빠른 이들이 있었다.
타닥!
장로들 앞에 있던 호위무사 둘이 단번에 연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버린 것이다.
“하자면 하지. 허나, 지금부터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원망치 마시오.”
“뱉은 말에는 책임을 지셔야 할 게요.”
장련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늦었어. 이젠 말리지도 못해.’
그녀는 취소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황진수와 곡전풍이 날카로운 살기를 띤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된 자는 언제든 덤비시오.”
하지만 연무대 밑의 반응과 달리 광휘는 태연했다.
그는 세 명의 무사들을 한 번씩 일별한 후 담담하게 서 있었다.
“이노옴!”
채앵!
광휘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을 먼저 빼든 능자진이 질풍처럼 달려 나갔다.
쇄애애액.
단순한 찌르기임에도 검 끝에는 암석을 분쇄해 버릴 만큼의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내기를 실은 찌르기라 더 강렬했다.
광휘는 그가 도약하는 모습을 보며 왼쪽 다리를 미리 한 발짝 뒤로 빼놓았다.
그리고 능자진의 검이 반듯한 선을 그릴 때쯤 몸을 옆으로 뒤틀었다.
휘우웅.
일순간, 능자진의 검은 어이없게 허공을 갈라버렸다.
분명 지척이었다. 헌데 너무 가까운 곳에서 거리가 급변하자 공격이 너무나 쉽게 실패해 버린 것이다.
휘청!
이후, 힘이 너무 들어갔던 탓인지 능자진의 자세가 급격히 무너졌다.
광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그의 왼손 주먹은 작렬하듯 능자진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러자 능자진의 몸이 쭈욱 밀려 뒤로 날아갔다. 정확히 그가 달려온 거리만큼 되돌아간 것이었다.
“커억. 커어억.”
몸이 멈추자 능자진은 곧장 배를 부여잡고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고통스러운지 배를 잡고 한참이나 일어서지 못했다.
“참고로 온 힘을 다하셔야 할 게요.”
광휘는 나직이 말을 했다. 그리고 두 사내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에게도 중요한 사람이 걸려 있는 대결이니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이 장로와 삼 장로는 눈을 치켜뜨며 능자진과 광휘를 번갈아 바라봤다.
입 안이 텁텁할 만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황진수와 곡전풍의 표정은 뜨겁게 달아올랐던 조금 전과는 달리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광휘의 움직임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는 강하다, 힘을 합치지 않고는 이길 수 없을 만큼.
“능 형. 괜찮으시오?”
“괜찮소. 그보다 진형을 짜야겠소. 저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소.”
자리에서 일어선 능자진이 힘겹게 말했다.
그는 대전에서 보았던 광휘의 행동을 기억했다.
광휘는 짧은 순간 눈부신 움직임을 보였다.
능자진은 조금 전 그가 보인 행동을 통해 그때의 일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뒤이어 몇 마디를 무어라 주고받은 그들은 곧 광휘의 주위를 다가가며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정면, 좌, 우 세 방향으로 광휘를 둘러싼 것이다.
스르릉.
진지한 눈빛으로 변한 세 무사가 검을 꺼내 들자,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영내에 돌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적막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광휘도 그걸 느꼈는지 검자루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검을 꺼내 들지 않았다.
단지, 눈을 감은 채 엄지손톱으로 자루 받침만 슬쩍 들어 올릴 뿐이었다.
한정당에서 목화솜을 벨 때와 흡사한 동작을 취했던 것이다.
– 사실 말일세. 장씨세가에서 자네 말고도 세 명의 손님을 더 초빙해 왔네. 마침 아침에 시연회가 열렸는데 엄청난 솜씨를 뽐냈었네.
능자진과 황진수, 곡전풍은 서로 눈을 맞췄다.
호흡을 맞추고 시간을 재려는 의도였다.
한 번에 세 개의 검이 완벽한 순간에 들어가면 제아무리 고수라도 막아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광휘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 한 명은 이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열 개 이상의 목화솜을 날려 베었네. 또 한 명은 목화솜을 열 개 이상을 띄운 후 머리카락 정도로 세세하게 잘라냈고. 마지막 한 명은 세 개의 목화솜으로 매화꽃을 만들어냈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대체 어느 경지에 올라야 그것이 가능한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네.”
그들의 시선이 점점 빠르게 교차되었다.
보폭과 검을 세운 간격이 서서히 일정하게 맞아떨어져 갔다.
– 자네도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한번 해 보게나. 혹시 결과가 좋으면 몇 개나 벴는지 나에게도 좀 알려주고. 나도 사람인지라 괜스레 자네 자랑 좀 해보고 싶어져서…….
파파팟.
그렇게 잠시 정적이 일던 순간.
셋은 정확히 합을 맞춘 움직임으로 광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광휘의 검집에서도 굽은 검 하나가 빛살처럼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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