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81
81. 그냥 알고 있으라고.2015.08.12.
광휘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가 점차 밝아졌지만 뚜렷하게 잘 보이지는 않았다.
눈을 감았다 뜨기를 여러 번.
그제야 눈앞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서까래다.
적당한 간격으로 마루대에 걸쳐져 널빤지를 받치고 있다.
옆에는 굵은 목조 기둥이 보인다.
‘방?’
순간 광휘의 머릿속에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산을 내려오던 중 정신을 잃지 않았던가.
광휘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셨습니까?”
그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대문으로 보이는 곳에서 낯익은 노인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방주?”
능시걸이었다.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흰 접시를 한쪽에 내려놓았다.
“원기를 북돋아주는 약을 좀 달여 봤습니다. 여기에 놔둘 테니 한번 드셔보시지요. 그런데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소. 여긴 어디요? 그보다 그 어르신은 어찌 되었소?”
광휘는 급히 그의 안부를 물었다.
“조금 전 팽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긴 팽가 근처에 있는 목옥(木屋)입니다.”
“장련 소저는…… 장련 소저는 어떻소?”
“치료하고 있는 중으로 압니다.”
몸을 반쯤 일으킨 자세로 있던 광휘가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치료하고 있는 중이다. 그 말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아.”
광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낯빛은 여전히 어두웠다.
“너무 늦은 게 아닌지 모르겠소. 독이란 것은 증상이 악화되면 고치기가 더욱 어렵지 않소.”
“늦지는 않았을 겁니다.”
광휘의 능시걸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성격은 괴팍해도 실력은 그런대로 봐줄 만한 잡니다.”
‘대체 누구이길래……’
광휘는 이유를 물으려 하다 그만두었다. 개방을 대표하는 자의 말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저나 소지하시고 계셨던 병기는 왜 버리신 겁니까.”
광휘는 능시걸이 바라보는 가장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구마도와 괴구검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괜히 수고를 끼쳐 드려 미안하오. 어르신을 업으려는 데 방해가 되어 그랬소.”
“방해라…….”
능시걸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하긴, 칼에 칼집이 있는 이유는 죽이는 데 있지 않고 감추는 데 있는 것처럼 병기의 쓰임 역시 목숨을 지키는 것에 있지요. 말씀대로 이번에는 없는 편이 더 나았겠습니다. 물론…….”
거기서 능시걸은 짧게 웃어보였다.
“광 노사가 그 장면을 봤다면 방방 뛰었을 테지만요.”
“……그건 그랬을 게요. 그러고 보니 그 허풍쟁이 영감은 잘 지내고 있소?”
갑자기 들은 이름에 광휘가 옛 기억을 되살리며 물었다.
“허풍쟁이라…… 하긴 대협은 중원 천지에서 광 노사에게 허풍쟁이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요.”
능시걸은 또다시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딱히 유일할 것도 없소. 광 노사가 부러지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칼이 몇 번이나 부러지곤 했소. 그리고 그건 딱히 나만 겪은 일도 아니오.”
“음…… 뭐, 어쨌든. 광 노사라면 천중단이 사라진 뒤로 더 이상 칼은 만들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업은 아들이 물려받았구요.”
광휘는 끄덕이며 능시걸이 가져온 탕약을 들었다.
우선 회복이 급선무였다.
녹초가 된 몸으로 팽가에 돌아갈 수 없으니.
달그락.
“며칠 뒤면 말씀드렸던 모든 조사가 끝날 것 같습니다.”
“……벌써 말이오?”
광휘가 약 그릇을 비워 내려놓자 능시걸이 말했다.
“사실은 이미 다 끝난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보관하는 건 개방이 평소부터 하던 일 아니겠습니까. 다만 이번 경우엔…….”
능시걸이 조금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정보가 있어서 시일이 좀 더 걸린 것뿐입니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정보?”
“아직은 말씀드리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꽤 큰 단체가 뒤를 봐주고 있는 것 정도입니다. 이를테면…….”
“맹이로군.”
광휘가 알겠다는 듯 말을 잘랐다.
이에 능시걸은 별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뭐 어쨌든 자세한 전말은 곧 밝혀질 겁니다. 그럼.”
능시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한 발짝 움직이려 하다 다시 멈춰 섰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
“요 몇 달 사이 모용세가와 부딪친 적이 있었습니까?”
“모용세가?”
광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요. 나와 무슨 관련이 있소?”
“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능시걸은 고개를 저었다.
“아, 한 가지 부탁이 있소만.”
그리고 다시 나가려는데 이번엔 광휘가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무엇입니까?”
“앞으로는 내게 하대를 해주시오. 존대를 해주시는 것이 부담스럽소.”
광휘는 불편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를 만났을 때 워낙 다급하여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단둘이 마주 보고 말을 나누자 그것이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저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배분으로 따져도 대협께선 돌아가신 저희 전대 방주님과 같은 배분이시지 않습니까.”
“허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맹에서 나온 상황이오. 그리고 어르신 역시 예전 후개였던 능시걸이 아니라 개방을 대표하는 방주이지 않소.”
“허허허.”
능시걸은 머리를 긁적였다.
광휘의 말이 맞기는 했다.
허나, 한때 많은 영웅들을 거느렸던 인물에게 하대를 하는 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고려해보도록 하지요.”
잠시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걸어 나갔다.
*
“매우…… 매우 불쾌하였습니다.”
의원 유겸승은 심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대공자 팽가운에게 조금 전 있던 일을 소상히 밝힌 것이다.
“정말 고칠 수 있다고 하였소?”
하지만 팽가운은 그의 속상함보다 장련의 상태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장련의 상태를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는 그였다.
가장 뛰어난 의원 유겸승을 그리로 보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대공자님!”
“아, 미안하오.”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유겸승을 보곤 팽가운은 급히 표정을 지웠다.
하지만 입꼬리가 이따금 올라가는 것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공자님, 소생이 비록 많은 의원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든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증상을 살폈고 고칠 수 없는 독이라 판단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장련 소저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유겸승은 말을 이으려다 그만두었다.
아무리 그가 자부심이 강하다 해도, 의원은 의원이었다.
자신 덕분에 지금껏 그녀가 살아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팽가운이 표정 관리를 하고는 말했다.
“그는 누구의 소개로 온 것이오?”
“직접 묻지 못하였습니다만 이 공자의 말로는 광 호위란 자가 데려온 것으로 압니다.”
“광 호위? 호위무사?”
순간 팽가운은 장련과 함께 있던 사내를 떠올랐다.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도발을 했던 자.
동시에 중정에서의 일도 떠오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헌데, 정말 못 고치는 독이였소?”
“……?”
“누구도 못 고치는 독인지 확인을 위해 재차 묻는 거요.”
그 말에 유겸승은 단호히 대답했다.
“제 의원 생활 사십 년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소? 그럼 가봅시다.”
팽가운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일어섰다.
“네? 어디로?”
“유 의원께서 못 고치는 독이라 했으니 분명 못 고치는 독이 맞을 터. 그럼 허언을 퍼뜨린 그 노인에게는 응당 그에 맞는 처분을 내려야 하지 않겠소.”
그 말에 유겸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급히 일어나더니 방문을 먼저 열고는 힘차게 말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툭. 툭. 툭.
노천은 몸이 거멓게 변한 장련의 손을 들어 혈을 두세 번 짚은 뒤 내려놓았다.
그러다 잠시 뒤 뭔가를 계산하듯 또다시 맥(脈)에 손을 대기를 몇 번.
그리고 또다시 손을 내려놓고는 긴 숨을 토해냈다.
“후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웅과 일 장로, 묵객은 의아해했다.
마치 금(琴)을 튕기는 운지법처럼 손을 빠르게 움직이다가, 또 갑자기 뜸을 들이듯 지켜보기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노천은 장련의 팔을 들게 하고는 그녀를 옆으로 눕혔다.
“저기…….”
일 장로가 뭔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파파팟.
품속에 손을 넣던 노천이 장련 앞에서 손을 펼쳤다.
순간 수십 개의 침이 장련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그리고 다시 노천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청살혈독이 어떤 독인지 아느냐?”
“…….”
좌중은 대답이 없었다.
애초에 청살혈독이라는 말 자체를 못 들어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노천은 뭐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독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신경독(神經毒)과 용혈독(溶血毒). 신경독은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흥분시켜서 숨을 멎게 만들지. 빠르고 치명적이다. 하지만 해독만 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손을 쓰기 쉽지. 반면 용혈독은 느리다. 대신 피를 타고 몸 안 곳곳을 돌며 살을 녹이는 독이다. 여기에 당하면 십중팔구 죽는다.”
“그, 그 말씀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얼굴로 장웅이 물었다.
“방법이 없으시다는?”
“쯧. 대체 이제까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노천은 혀를 차고 툭툭 장련을 감싼 이불을 건드렸다.
“이 여아가 독에 당하자마자 쓰러졌다 했지?”
“아, 네. 그래서 극독이라고.”
“극독? 염병하고 있네. 내가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신경독은 빠르다고 안 하던? 이 여아가 중독되자마자 쓰러졌다는 건 신경독, 즉 해독할 수 있는 종류의 독이라는 뜻이야.”
“아!”
장웅의 안색이 그제야 밝아졌다.
노천은 끌끌 혀를 두어 번 더 차 댄 다음 설명을 이었다.
“청살혈독은 폐맥에 작용하는 독이다. 몸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숨을 못 쉬게 만들어 안색이 퍼렇게 질리지. 그래서 청살혈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그러든 어쩌든 신속하게 작용하는 독은 결국은 신경독의 한 갈래.”
그는 손을 잠시 멈추고, 이전 의원이 가져온 탕에 놓인 숟가락을 들었다.
노천은 그것을 장련의 입으로 흘려 넣고는 말했다.
“숨만 잘 쉬게 하고, 몸에 깃든 독만 제거하고 나면 큰 위험은 없다. 뭐, 그걸 잘 못해서 문제이지만……. 이봐, 약방문 쓰게 지필묵 좀 가져와 봐.”
“예.”
장웅이 일어나려 하자 일 장로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는 한쪽에 놓인 수납장을 찾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붓과 종이를 노천 앞에 내려놓았다.
슥슥슥.
노천이 뭔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글을 쓴 그는 손을 놓더니 일 장로를 향해 건넸다.
“여기 있는 약재대로 가지고 오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옙.”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나갔다.
팟. 팟. 파파팟!
얼마 후, 뭔가 시간을 재던 노천이 다시금 침술을 펼쳤다. 신체 대맥 중 여섯 군데에 침을 놓던 그가 얼마 후 손을 떼며 가만히 있었다.
“살 수 있겠소이까?”
묵객이 궁금증 어린 말투로 말했다.
노천은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들어봐라.”
그 말에 묵객과 장웅이 귀를 기울였다.
“하아. 하아.”
“숨을 쉬오. 정말 숨을 쉬오!”
장웅이 반색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간 미약하여 죽은 듯 가만히 있던 그녀가 숨소리를 냈다.
“이 정도 독도 못 고칠 거면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없잖아.”
“허어!”
자신감 어린 말에 묵객이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장웅이 그를 살피며 말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로군요. 팽가의 고명한 의원도 방법을 못 찾고 손을 놓으려고 하였습니다. 헌데 어떻게 이리 쉽게 손을 쓰시는…….”
“뭐야? 돌팔이를 나랑 같은 급으로 취급을 해?”
“아, 아닙니다!”
장웅이 입을 급히 닫았다.
딴에는 찬사를 보낸다고 한 것인데, 어째 그 말이 노천의 심기를 상하게 한 것 아닌가.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뭐, 청살혈독이 분명히 신경독의 한 갈래이기는 하나, 말처럼 그냥저냥 쉽게 해독될 독이라면 저 돌팔이가 그만큼 고생하지도 않았을 것이야. 여독(餘毒)이라고는 하나 남은 독 기운 또한 방심할 것이 못된다. 시간이 좀 걸려.”
노천은 주절주절 기나긴 잔소리를 늘어놓고 난 후, 뻣뻣하게 굳은 뒷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니 그런데…… 나자빠졌던 지가 언젠데 그놈은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예? 누굴 말씀하시는지…….”
노인이 화를 내자 장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였다.
드르르륵!
“이자입니다. 이자가 매우 불쾌한 기색을 쏟아냈습니다.”
문이 열리며 노천의 눈에 낯선 사내와 낯익은 노인이 들어왔다.
방 안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유겸승이었다.
“실례하겠소. 귀인은 누구시기에 갑자기 이곳으로 온 것이요?”
팽가운은 침상 위에 앉아 있는 노천을 발견하고는 성큼 다가서며 말했다.
“야. 이 무식하게 생긴 놈은 또 누구냐?”
노천이 장웅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순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장웅이 급히 일어나 팽가운을 향해 읍을 했다.
“팽 공자님, 무슨 일인지 저에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본가의 의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자가 있다고 하여 묻고자 왔소. 독을 고치지 못하는 자가 허풍을 늘어놓고 있다 하던데, 사실이오?”
그 말에 장웅은 유겸승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유겸승은 짐짓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장씨세가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성정이 조금 거친 분이시지요. 저희도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장웅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이 손을 쓰자 갑자기 차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허언을 늘어놓으시는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예?”
팽가운이 눈을 껌뻑였다.
그 말을 들은 유겸승이 급히 장련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맥을 짚으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그때 노천이 노려보며 말했다.
“이런 일은 무슨 이런 일? 이것이 돌팔이인 너와 나의 차이인 게지.”
유겸승은 너무나 당황했는지 노천의 말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정말 차도가 있는 게요?”
팽가운은 한 발 다가가며 물었다.
그 역시 매우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놈들이, 아직 위험하다니까 그러네.”
그 말에 팽가운이 노천을 바라보고는 포권을 했다.
“고인의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여쭈지 마. 이 병만 고치면 곧장 여길 뜰 거니까.”
“…….”
팽가운은 포권을 한 자세 그대로 잠시 굳어 버렸다.
명문세가인 팽가의 대공자가 이름을 묻는데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이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 으, 으, 흠.”
하지만 팽가의 의원도 포기했던, 다 죽어가던 사람을 한순간에 살려냈다는 사실에 다들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의원이 왔다고?”
그때 한 사내가 들어오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손에 약재를 가득 들고 있는 명호였다.
“응?”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명호는 처음 보는 노인과 마주쳤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후드득. 투둑.
가져온 약봉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명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고 노천의 얼굴에는 찌푸림이 펴졌다.
“독, 독선 어르신!”
곧이어 명호의 비명같은 커다란 목소리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
“그간 어디 계셨던 겁니까?”
모두를 물린 후 노천과 둘만 남은 명호가 말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녔지. 그러다 거지들과 함께 몇 년간 있었다.”
“왜 거기는…….”
“일 좀 시키러 갔지 뭐. 거긴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놈들 천지가 아니냐. 덕분에 구하기 힘든 독초들로 연구를 할 수 있었지.”
명호는 씨익 웃었다.
생각해보니 그럴 법했다.
강호를 은퇴한 것도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독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니까.
“천중단에 들어가 활약이 대단했다는 얘길 들었다.”
“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
명호는 또다시 웃었다.
속세를 벗어난다고 해놓고 개방 옆에 있어서 비밀 정보란 정보는 다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운도 실력이지. 그곳에 있던 놈들은 죄다 죽지 않았느냐.”
“몇 명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럼 그놈들도 실력자인 게지.”
노천은 얼버무리며 장련의 상태를 살폈다.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놈은 대체 누구이기에 여기로 날 부른 거냐?”
“그놈이라면……?”
“등에 도를 멘 놈 있지 않느냐.”
“아!”
명호가 크게 눈을 뜨다 이내 당황하며 말했다.
“혹시 듣지 못하셨습니까?”
“뭘 말이냐?”
“조금 전에 말한 그분 말입니다. 그분이…….”
명호는 광휘에 대해 말을 할까 말까 잠시 뜸을 들였다.
그 모습에 노천은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흥! 너의 말투를 보니 그가 마치 혈영신마(血影神魔)나 칠절신군(七絶神君)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리는군.”
혈영신마와 칠절신군은 십 년 전 사파를 주름잡던 희대의 고수들이었다.
노천이 그들을 언급한 것이다.
“혈영신마와 칠절신군은 아닙니다만…….”
“당연히 그렇지. 그놈이 어디서 그만한 실력을…….”
“그들을 죽였던 잡니다.”
“뭐!”
노천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마터면 침상에 살짝 걸쳐놓은 탕약을 엎지를 뻔했다.
“혹시…… 그럼 그가…….”
“예. 제가 모시던 분입니다.”
“단장은, 천중단 단장은 모두 죽지 않았더냐!”
“유일하게 살아남으신 분입니다. 강호의 기억 속에 잊혀진 분이기도 하구요.”
“아!”
노천의 낯빛이 굳었다.
며칠 전 기억을 더듬자 점점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그렇습니까?”
“아, 아니다.”
노천은 급히 표정을 지우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놓칠 명호가 아니었다.
“혹시…….”
“혹시 뭐?”
“실수라도 하셨습니까?”
“누가! 누가 실수를 했다고 그러느냐!”
노천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성을…….”
“거지 놈들과 오랫동안 있었으니까! 거지 녀석들이 날 이리 만든 거라고!”
그의 말을 끝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명호가 눈치를 보며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명호야.”
장련의 상태를 천천히 살피던 노천이 명호를 슬쩍 곁눈질하다 입을 열었다.
“예, 어르신.”
“지금 내가 고치는 이 독이 원래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것인지 알고 있지?”
“예? 아, 예. 그렇지요. 물론이지요.”
“그래, 그렇다. 오직 나만 고칠 수 있느니라.”
“예…….”
명호가 잠시 의미를 생각하다 되물었다.
“헌데, 그것을 왜?”
“그냥 알고 있으라고. 혹여나 모를 수도 있으니.”
“아, 예…….”
“그리고…….”
노천이 또다시 곁눈질을 슬며시 했다. 그러고는 괜히 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놈 아, 아니, 그분을 먼저 보게 되면 알려주고.”
명호는 뻔히 보이는 노천의 속내를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그는 표정을 굳히고, 그가 원하는 대로 답을 했다.
“되도록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 독이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 해독하신 독선 어르신이 얼마나 빼어난 인물이신지도.”
“험! 허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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