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종남무비(終南武備) (3)
언예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신 두툼한 입술을 꽉 다물었다.
입꼬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리고 코앞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고진무의 눈초리가 한껏 가늘어졌다.
‘이것 봐라.’
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언예진은 그 눈초리를 더는 마주하지 못하고서 슬그머니 눈동자를 굴렸다.
저기 높은 곳을 헤아리듯이 바라보는데, 영락없이 딴청이었다. 그러나 때늦은 딴청이었다.
솔직히 할 말은 다 해 버린 셈이었으니까.
다른 이들이 모르는 사정을 언예진이 알고 있다. 심지어는 유운관에서도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모양새였는데, 송영관에 있는 언예진이 혼자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따로 소식을 주고받았던 듯하다.
이 무슨 의심스러운 정황이란 말인가.
고진무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너, 너 말이다.”
“아냐,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거 아니야.”
“흐음?”
“정말이라니까. 이게 그 뭐랄까. 어, 그래. 알다시피 우리 집안도 야, 응? 군문 사람이 아니냐. 뭐, 종남파 누구, 누구 얘기가 돌고 돌다가 듣게 된 것이지. 그럼, 그런 거야.”
묘하게 구체적으로 둘러대는 말이지만, 가만히 들으면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고 있었다.
언예진의 부친이 금군교두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세월이 수년, 부친은 물러나시고, 그 형제들이 금군에 투신하여서 남다른 직위에 올랐다. 문제는 그것과 송아영의 가문과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었다.
송아영 가문은 경조부에서 유명한 무인이다.
아무리 군관이 어떻고 하더라도, 경조부 일을 황도 금군이 안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설명 때문에 고진무의 눈초리가 더욱 예리해졌다.
더듬거리던 언예진이 멈칫했다. 그는 입술을 꽉 말아 물었다가, 재차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삼켰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아주 이상하게 들리는 거지?”
“그렇지.”
“에효, 젠장. 이 핑계는 역시 안 먹힐 줄 알았어.”
언예진은 제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퍽, 소리가 울릴 정도였다.
고진무는 쓰게 웃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말하기 부끄럽거나 어려운 일이라면 굳이 캐물을 것 있겠나.
“말하기 어렵다면, 괜찮아. 그냥, 그렇다고 알고 있지 뭐.”
“지, 진무야.”
“하지만 정말 큰 일이 벌어지면 꼭 말해 달라고.”
“으음.”
언예진은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어찌 보면 뻔한 일이겠지만, 고진무는 뻣뻣한 언예진을 오히려 위로했다.
남은 언예진은 괜히 복잡한 심경으로 삐죽 솟은 검자루를 애꿎게 매만지기만 했다. 검자루에 늘어뜨린 수실은 검수를 곱게 매듭지었는데, 그 모양새가 어째 남달랐다.
고진무는 그 수실 매듭을 흘깃 보았다.
‘으음…….’
지금 모습이나 저기 수실을 매만지고 있는 모습이나. 고진무는 일단 별말은 않고 고개를 돌렸지만, 한숨이 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감추려면 잘 좀 하든가.’
가만 생각하면, 송영관 다른 제자들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듯하다.
“다들 모르는 척해 주고 있는 거로구만.”
“응, 뭐라고?”
“아, 아니야. 그럼. 언 대협.”
“어, 뭐.”
고진무는 바로 두 손을 맞잡았다. 포권을 취하니, 언예진도 약간은 떨떠름한 기색이었지만 따라서 포권했다.
급하게 마무리하는 모양새였다.
언예진은 어쩐지 석연치 않았지만 차마 돌아가는 고진무를 붙잡지는 못했다. 말하면 할수록 말이 꼬일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언예진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검수를 연신 만지작거렸다.
고진무는 언예진, 그리고 송아영 생각을 할 때마다 헛웃음이 피식피식 튀어나왔다.
생각하면, 가장 안 맞지만, 가장 잘 맞는 둘이었다.
시무관 때를 생각하면서 고진무는 한층 가벼운 걸음으로 정검관에 닿았다.
석량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사형들 어찌?”
“왔느냐.”
“진무야.”
우문화청, 그리고 유운관 주약현과 시무관 도기홍까지 있었다.
막 송영관으로 돌아간 황부를 제외하고는 다들 모인 셈이었다.
“황부는 어떤가?”
“예, 지금 송영관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상태는?”
“마기의 침습은 모두 제거하였다고 하는군요. 다만 기력이 크게 쇠하여서 요양이 필수라고 합니다.”
“그 정도라니. 천우신조가 따로 없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안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약현이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살짝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쯧, 그것 하나를 대책 없이 당하다니.”
“아아, 다들 주 사저 같지는 않은 일이 아닙니까.”
“그래도 그렇지.”
도기홍이 쓴웃음 지으면서 말하자 주약현은 여전히 툴툴거렸다.
상황은 들어 알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사기의 폭발, 거기에 남천궁 제자를 살폈어야 할 상황이라니까.
불가항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도 주약현이 보기에는 보신경의 성취를 생각한다면, 남천궁 도고를 붙들고서도 능히 몸을 뺄 수 있었을 터였다.
주약현은 찰나의 주저함을 꾸짖었다.
다른 사형들은 모르겠지만, 고진무와 석량은 그냥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진무가 석량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그런데 무슨 자리인가요?”
“음, 아무래도. 정리가 우리끼리만으로 끝이 없겠다 싶어서 말이지.”
“그건, 예, 그러네요.”
고진무도 공감하여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설마 관을 맡은 사형들을 전부 불러서 앉혀 놓다니.
대단도 하셔라.
그 눈치에 석량이 부랴부랴 말을 덧붙였다.
“아니, 나는 우문 사형한테만 말했는데 말이야.”
“에잇, 뭘 속닥거리고 있느냐. 어서 서두르자.”
주약현이 시원스럽게 소리쳤다. 그놈의 풍운삼세를 꺼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약현에게는 이미 소리 한번 들은 마당이었다.
보나마나.
다들 닦달을 하여서는 한자리에 끌어모은 건 저기 있는 주약현이다. 그는 빤히 보는 석량, 고진무의 눈초리에 되레 턱 끝을 치켜들었다.
“예, 사저. 그럼…….”
석량이 부랴부랴 챙긴 서책을 꺼내 들었다. 고진무와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겉에 적은 풍운삼세의 네 글자, 문자가 참 단정하였다.
우문화청이 글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지나가듯 물었다.
“쓰기는 진무가 쓴 거냐?”
“예, 사형. 제가 정리하였습니다.”
“그렇군.”
바로 납득하면서 표지를 넘긴다.
석량은 우문화청 모습에 괜스레 걸쩍지근한 기분이 들었다. 딱 꼬집어서 글자를 누가 썼는지를 확인하다니.
“대사형, 그걸 왜 굳이 확인하십니까?”
“왜겠냐?”
우문화청이 확 이를 드러냈다.
석량이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혼쭐이 난 데에는 성의 없는 글자도 크게 한몫하였음을 아직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고진무가 어색한 얼굴로 석량을 잡아당기면서 나직이 속삭였다.
글자 때문에 더 혼이 났다는 말을 이제야 듣고서 석량은 새삼 아연했지만,
“그, 그 정도였다고?”
“절반 정도는…….”
달랑 몇 줄에 불과한 전서였는데, 그나마도 대충 휘갈긴 글씨로 날아왔으니.
사형들 눈에서 불이 쏟아지지 않았던가.
석량의 전서를 전했을 때에 흥분한 우문화청이나 사형들 모습을 생각하면 석량이 지금이나마 몸 성한 게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형들 성질이야 석량도 익히 아는 바이니.
석량은 더 말 못 하고 그냥 고개를 돌렸다. 하기야 석량이 어쩌고 있든 간에 세 사형은 정리한 풍운삼세의 비급을 묵묵히 살폈다.
서로 넘기고, 넘기면서 정리한다.
한참 집중하고, 신중했다. 그들은 한 글자, 한 문장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말로는 이놈, 저놈이라 하지만, 종남파 무공에 큰 획을 그은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우문화청이나 도기홍은 물론이고, 약간 언질을 하였던 주약현조차 이렇게 풍운삼세 본래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단청과 함께 있을 때에 주약현이 살폈던 것은 어디까지나 입문 과정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지금 풍운삼세는 주약현의 말을 받아들여서 과감하게 입문요결에 대한 것은 종남에 맡겼다.
그리고 남긴 것이 이 한 권이었다.
덕분에 확 줄어서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내용은 알차다고 자부하는 바였다.
“이걸 이런 식으로 연환했다? 이건 현무권 망운창개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럼 유운보에서 엇나갈 텐데.”
“망운창개라고 하기보다는…… 태조권. 태조권의 창운박파가 아닌가? 보라고, 이런 식으로.”
“어느 쪽이든 효과는 전혀 딴판이네요. 둘 중 어느 것과도 이어지지도 않으니.”
신중한 토론을 석량과 고진무는 약간 멀찍이 앉아서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예 벌떡 일어나서는 각자가 떠오르는 대로 손발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여튼 세상 무공에 대한 견식은 확실히 놀랍다. 강호 경험으로는 어느 노강호에 못지않은 세 사람이었다.
여기에 황부까지 있다면 참 볼만하겠다.
가만히 있다가 석량이 문득 속삭였다.
“망운창개, 창운박파를 다 같이 섞었는데 말이지.”
“예, 사형.”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참고했고, 버릴 것은 모두 버렸다. 그런 끝에 이루어 낸 풍운삼세인지라.
좋게 말하면 다변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칫 근본이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리는 꽤 중요한 자리였다.
정리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위함도 있었지만, 다변 속에서 근본을 바르게 지켰느냐, 그리고 종남 무공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나아갈 길을 정리하는 것과 더불어서 의문을 해소하는 자리인 셈이었다.
어찌 가슴 졸이지 않을 수가 있겠나.
“후우. 어, 어어?”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뱉다가 보니, 퍼뜩 돌아가는 상황이 사뭇 기이하다.
우문화청이 벌떡 일어나고, 주약현도 벌떡 일어났다.
“뭐야! 지금 시비냐?”
“오호, 해 보겠다는 거냐?”
“허헛!”
우문화청은 헛웃음을 크게 내질렀다. 말뿐만은 아니었다.
당장 마당으로 몸을 날려서는 소매를 척척 걷었다. 불끈, 근육질 팔뚝이 드러난다. 두 손을 교차하여서 십자수, 그리고 하압! 기합성과 함께 딱 자세를 잡았다.
주약현은 싸늘하게 조소를 흘리더니, 장삼 앞단을 홱 걷어서 허리 뒤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곧장 발끝을 앞으로 홱 그어서는 그대로 쌍장을 좌우로 떨쳐 냈다.
두 사람 모두 제대로 붙어 보겠다고 작정한 모습이다. 그나마 검은 들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서로 풍운삼세에 대해서 떠들다가 저 지경이다.
석량은 에효, 한숨을 흘리면서 그냥 고개를 흔들었다.
“어, 어어? 어어?”
고진무만 당황해서는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이건 뛰어들어서 말려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만류해야 할 듯한데.
석량은 자포자기한 듯이 두 손을 놓아 버렸고, 도기홍은 둘이서 어쩌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비급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아니, 도 사형, 석 사형. 어떻게든 해야.”
“아아, 내버려 둬. 내버려 둬. 저건…… 뭐…… 그런 거야.”
“예?”
도기홍이 마당 앞으로 뛰쳐나가서 대치하는 둘을 두고는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슬쩍 두 사람 사이에 고개를 들이밀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이를테면, 사랑싸움이라고 하겠지.”
“……예에?”
“꽤 오랜 인연이라고, 우문 사형과 주 사저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