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폐관이후 (3)
고진무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하산할 일은 빠르게 찾아왔다. 그것도 우문화청이 직접 명분을 챙겨 왔다.
“대사형.”
“아이고, 정말이지.”
우문화청은 고진무를 마주하기가 무섭게 앓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일이 참 고약하다. 폐관을 마무리하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지.”
“하, 하하. 예, 뭐.”
“에이, 썩을 것들.”
이를 가는 대사형 앞에서 고진무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향한 짜증인지 뻔히 짐작할 만했다.
유운이나, 송영이나.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외면할 생각은 없다. 이제는 동문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으윽! 반쯤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고!”
우문화청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들이닥친 둘, 주약현과 황부가 어깨를 나란히 하여서는 동시에 압박하는데.
주약현은 그 좋은 말솜씨로 몰아붙이고, 황부는 입 딱 다물고서 무시무시한 눈으로 빤히 바라만 보았다.
물론 고진무를 붙잡고서 내내 하소연할 일은 아니지만, 하여튼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고진무는 우문화청에게 대강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두 분 사형께서 어지간히 급하셨군요.”
“나도 나지만, 네가 고생이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동문이고, 동기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딴은 그렇다고 하겠지만. 이거야 원.”
거푸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선 장문인께는 말씀을 드렸다. 바로 움직이거라. 언예진, 그놈이 또 무슨 허튼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예.”
여기서는 차마 언예진 편을 들 수는 없겠다.
솔직히 막무가내로 산을 뛰쳐나간 녀석인지라 무슨 짓을 저지른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등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문화청은 다른 둘과 함께 세 장문인을 찾아가서 유운관 제자 송아영이 한참 소식이 없는 것이 너무 걱정이라, 다른 두 관 제자를 보내어서 살피게 해 달라 청했다.
마침 고진무를 앞에 내세웠다.
시무관 때에 각별한 사이였다는 훌륭한 핑계가 있기도 하였거니와, 막 폐관을 벗어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언예진이 자리에 없는 것을 어떻게든 둘러대기 위해서 한참 머리를 맞댄 끝에 겨우 둘러대는 말이었다.
세 장문인은 그렇지 않아도 경조부 무림이 근래에 심상치 않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터였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경조부 상황도 잘 살피라 당부하시더구나.”
“음, 그럼 경조부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는 한 것이군요.”
“근 며칠 동안 들어오는 소식이 확 줄어들었다고 하였어.”
“음.”
고진무는 잠시 미간을 모았다.
우문화청은 그러고도 한참 할 말이 남았지만 대강 혀를 차고 말았다. 그러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는 듯이 고개를 세웠다.
“아, 그러고 보니.”
“네, 대사형.”
“이번에 단청 사매와도 같이 다녀오도록 해라.”
“……네?”
고진무는 순간 멈칫했다. 지금 이 마당에 여기서 단청이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 것인지.
“단청 사매가 아직 강호 경험이 전혀 없다시피 하지 않으냐. 마침 경조부 정도라고 하면 가까운 곳이 아니냐. 경험으로 다녀오기에는 딱 좋을 터이고. 네 녀석이 같이 움직이면 훨씬 믿을 만하고 말이다.”
우문화청이 편히 말했다. 물론 고진무는 전혀 편한 마음이 아니었다.
“대, 대사형? 아무리 그래도.”
“가타부타할 것 없다. 청과 도고께서도 허락하셨다고 하더구나.”
“언제 허락을 하셨답니까?”
하산을 허락받은 것이 고작해야 반 시진 전이다.
꽤 다급한 상황일 터인데, 취화봉, 저기 너머에 있을 청과 도고에게 언제 찾아가서 여쭐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뭐, 단청 사매가 알겠지. 하하.”
우문화청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편하게 말하고서 시원하게 웃었다. 고진무는 차마 대꾸는 못하겠는지라 입술을 꽉 말아 물었다.
‘이런…… 어쩐지 하산 여부는 왜 묻나 싶었더니.’
경조부는 본래에 역사가 지극한 고도(古都) 중의 고도이다.
진조, 한조를 거쳐서 특히 당조(唐朝) 때에는 번성함이 끝에 이르렀다.
당조의 장안은 감히 말하건대 중원제일이었고, 천하제일의 도읍이었으니. 그러나 아름다운 세월도 벌써 수백 년 전이어라.
고진무는 그곳으로 서둘렀다.
바로 뒤에서 단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바로 따라붙었다. 말을 준비할 틈도 없어서 종남봉을 내려오기가 무섭게 둘은 경공으로 재게 발을 놀렸다.
고진무는 그러면서 변명처럼 말했다.
“이것도 보신경 수련이라고 생각하자고.”
“예, 뭐, 저는 괜찮아요.”
단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산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 하나로 마음이 꽤 들뜨기도 했고, 달리는 건 좋았다.
유운비보, 이제 막 성취를 이루어 낸 종남파 신법을 마음껏 시험해 볼 수 있으니까.
단청은 타고난 유연성과 표홀함을 장기로 삼아서 유운비보를 더욱 발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몇 호흡이 채 지나지도 않았지만 단청은 쑥쑥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틈엔가 단청이 고진무를 추월할 정도였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화드드득! 화드득!
옷자락이 세차게 펄럭거렸다. 그만큼 단청이 속도를 내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혼자 달리다가 불현듯 멈춰 섰다.
“어, 어어.”
단청은 잠시 머뭇거렸다. 종남산은 시원하게 벗어났다고 하지만 길눈이 어두웠다.
“쯧쯧, 그래 먼저 앞서가더라니.”
“헤, 헤헤.”
단청은 어색하게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냥 쭉 뻗은 길로 달리는 것이라면야 문제랄 것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해서 느긋하게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서둘러야 하는 마당이라.
종남산을 내려왔다고 끝이 아니라 다른 산세를 타 넘으면서 곧게 나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고진무와 새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쪽이다. 경조부까지는 그리 먼 길도 아니니까. 지금 서두르면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에 닿고도 남을 거야. 조금만 서두르자고.”
“예, 고 사형. 전 걱정하지 마세요.”
단청은 참 드물게도 얌전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숨을 한껏 밀어 넣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달리기 시작하는데,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세차게 울렸다. 수풀이 발걸음에 스쳐서 흩날렸다.
그렇게 내달리다가 문득 단청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고 사형!”
“응?”
단청은 목청을 한층 높여서 바람 소리를 뚫고 물었다.
“언 사형은 한참 먼저 산에서 내려갔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찾을 것도 없이, 송 사저라는 분 가문에 있겠지요?”
“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마, 아마 아닐 거다.”
“네에?”
고진무는 고개를 흔들었다.
언에진은 그렇게 단순한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이면 지금쯤.”
말끝을 흐리면서도 고진무는 산길 너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종남산에서 경조부까지는 아무리 멀어도 하루면 오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보신경을 발휘하여 험한 길로 서두른다면 더욱 짧아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곳을 무려 닷새나 먼저 움직인 언예진이다. 그러나 고진무는 그가 바로 송아영을 찾아가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확신에 가까웠다.
불안을 이겨 내지 못해서 뛰쳐나갔다고는 하지만, 언예진은 신중한 녀석이었다.
욱하는 것과 신중함이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겠는가만, 언예진은 항상 신중한 중에도 과감할 때에는 다른 누구보다 과감했다.
일을 저지르고서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일단 소식이 없는 송아영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 뛰쳐나갔겠지만, 그렇다고 송아영을 바로 찾아가는 게 아니라, 주변을 탐문하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할 게 분명했다.
고진무와 단청은 해가 미처 높이 뜨기도 전에 경조부에 이르렀다.
걸음을 재촉한 것도 있지만, 워낙에 가까웠다.
단청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고도의 흔적을 둘러보았다. 옛 영화의 흔적이라 할지.
일대에 대강 두른 성벽, 성루는 한참 낡아서 곳곳이 허물어진 모습으로 있었지만, 규모만큼은 드높았고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아득한 경조부 성벽 앞에서는 눈이 동그랗게 뜨일 정도였다.
“우와…….”
“경조부는 처음이냐?”
“아뇨. 아주 처음은 아니지만…… 헤헤.”
단청은 말끝을 흐렸다. 기억하지 못하니 처음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까.
한참 어렸을 적에 청과 도고의 손을 잡고서 경조부를 지나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때는 너무 어렸을 때라서요. 그런데 사람이 진짜, 정말로 많네요.”
“음.”
고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단청과 함께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딜 가나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물결, 인파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찾는다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서 이리 있다고 해서 언예진 녀석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들어가자.”
“예, 사형.”
고진무와 단청은 한숨을 삼키고서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은 먼지 잔뜩 뒤집어쓴 채 달랑 등짐 하나를 단출하게 짊어진 모습이었다.
둘 다 검은 둘둘 말아 감추어서 별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언뜻 보아서는 둘을 무인으로 알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덕분에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별 어려움 없이 성 안으로 들어섰다.
본래에는 들고 날 때마다 호패, 노인 따위를 살피기 마련이지만, 황성이 있는 동경도 아닌 바에야 그렇게 엄중하게 검문하는 일은 잘 없었다.
문을 지키는 관병은 몇이 전부인데, 다들 나른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 내내 찬바람이 불다가 모처럼 햇볕이 따사롭게 비추는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경조부 안으로 들어서 큰 대로를 따라 묵묵히 걸었다.
덜커덩!
큰 소리와 함께 마차 바퀴가 옆을 스치듯이 달렸다.
대로에 들어서자, 사람들 소란이 더욱 압도하여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사방에서 맴돌았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먼지 냄새가 짙게 났다.
고진무는 소란함을 대강 흘려 내어서 별로 어려움은 없었지만, 단청은 정신이 쏙 빠진 모습이었다.
걸음이 주춤주춤했다.
사람은 많고, 점포는 그보다 더 많으며, 별별 신기한 것들이 자꾸 눈을 잡았다.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멈칫거렸다. 고진무는 서너 걸음을 앞서서 걷다가 그만 멈춰 서서 단청을 돌아보았다.
“이런…….”
호기심 넘치는 모습을 두고서 뭐라고 타박하기도 어렵다.
“어? 헤헤헤.”
단청은 기다리는 고진무의 모습에 머쓱하게 웃었다. 그는 서둘러서 기다리는 고진무에게 다가섰다.
“이렇게까지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은 건 정말 처음 봤습니다.”
“여기가 문 앞 대로라서 더욱 그렇지. 조금 더 들어가면 그래도 소란은 좀 덜할 거다.”
“네, 사형.”
단청은 밝게 웃었다. 얼굴이 약간은 불긋 달아올랐다. 고진무는 그런 단청을 물끄러미 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전낭은 잘 챙기고 있어?”
“전낭이요? 아무렴요. 여기…… 어?”
허리 뒤로 손을 돌리기가 무섭게 멈칫했다. 들떠 있던 얼굴이 싹 굳었다.
“아이고,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