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신인의 검 (3)
심의로 검을 부렸으니, 심의로 베어라.
고진무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만검귀일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러가고 있었다.
공력은 물론 심력도, 마지막 의지마저도 태울 것을 다 태운 불꽃이 서서히 시들어가듯이, 고진무 또한 눈앞이 흐려졌다.
그런 와중에 떠오른 가르침이었다.
고진무는 차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기운이 다해가는 와중이었지만, 지금 이것은 기운과 공력과는 관계가 없었다.
자신이 이제껏 벼려온 심중지검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른 일이었다.
검룡은 일만여 자루 검이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요괴는 용의 형체를 더는 이루기 어려울 정도였다.
-크어어어…….
한층 구슬프게 울었다.
검룡은 고진무나 주변을 더 보지 않고, 고개를 바짝 세우고서 저기 열린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기 달빛이 서서히 내리고 있었다.
드넓은 밤하늘, 검룡은 그곳으로 뛰쳐나가고 싶었건만, 여물지 못한 육신이 그나마도 무너지고 있었다.
검룡은 그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틀어박힌 지독한 요검이 검룡의 바탕인 요력을 잔뜩 빨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고진무는 그런 검룡의 상태를 헤아리면서, 차분하게 마지막 한 수를 준비했다.
“요검으로 힘을 빼앗고, 만검으로 육신을 멸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원령을 베어 내야 하는 것.”
셋이 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검룡을 멸할 수 없다. 언제고 다시 깨어나서 천하에 해악을 끼칠 것이다.
“검심을 깨우쳐서 상응상통, 검중지성으로 만검을 부렸으면, 거꾸로 만검으로 일검을 떨칠 수도 있겠지.”
고진무는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철검을 가볍게 돌렸다.
큰 몸을 주체할 수가 없는 것처럼 빼곡하게 틀어박힌 만검에 몸부림치던 검룡의 떨림이 딱 멈췄다. 이제는 많이 흐려진 푸른 불꽃을 돌려서 고진무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는 푸른 눈과 올려다보는 검은 눈.
요괴의 눈과 사람의 눈이 마주했다. 어느 정도랄 것도 없이, 둘의 눈빛은 한참 흐렸다.
서로 끝에 이르렀다는 건 분명했다.
검룡은 비록 육신을 잃더라도 본래에 이루고 있는 원령을 지키기만 하면 다시금 때를 기다릴 수 있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이나 길고 긴 시기를 보내야 하겠지만, 그때에는 지금처럼 자신을 얽어맬 수 있는 만검의 기운은 없을 터이다.
그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크르…….
검룡이 비로소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 앞에서 고진무는 검을 눈앞에 곧게 세웠다.
주변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검중지성의 요결을 깨닫는 순간부터 만검의 검심이 차분하게 밀려 들어왔다. 그것이 있기에 고진무는 지금 만검귀일의 신기를 펼쳐 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수.
“고맙다.”
고진무는 불현듯 나직이 속삭였다. 앞에 세운 검에게 건네는 한마디였다.
마지막 한 수, 이름은 모른다. 만검귀일 속에서 종남의 검의를 실어 내니.
그는 곧게 검을 떨쳤다. 검은 손을 떠나서 곧게 날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동시에 만검이 여기에 반응했다.
터터터터텅!
검룡의 몸에 틀어박힌 만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터져 나갔다. 검린도 박살나면서 같이 흩어졌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바깥의 수많은 검이 그에 이끌렸다.
어둑한 물결을 거스르는 한 무리의 은빛 물고기가 모여드는 듯했다.
차라라라랑!
검과 검이 스치면서 드높은 쟁명이 울렸다.
그렇게 모여든 검은 그대로 거대한 검의 형상을 이루고서 검룡을 향해 날았다.
이는 만검귀일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검룡은 흐려지는 두 눈의 불길을 확 불태웠다. 이것은 위험하다. 남은 본능이 위기를 외쳤다.
-크아아아아앙!
검룡은 마지막 힘을 모아서 온몸을 뒤틀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대로 쪼갤 듯이 떨어지는 거검을 어찌할 수 없었다.
파고든 만검이 스스로 터져나가면서 겨우 남은 검린을 모두 박살 내기도 하였고, 내내 요력을 빨아들이던 귀요검이 마지막까지 발악했기 때문이었다.
고진무는 말없이 검결지 맺은 손을 한껏 내질렀다.
검과 검이 모여 이루어 낸 거대한 검의 형상이 검룡의 목을 베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지분획…….”
고진무는 나직이 읊조리면서, 유려하게 검결지를 휘둘렀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거검의 광휘가 휘황하게 번뜩였다.
하늘과 땅을 가르는 일획, 그 이름대로였다.
서걱!
거기에 큰소리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허깨비를 베어 버리듯이 그렇게, 고진무는 심의를 다하여서 육신에서 떠나는 원령을 베었다.
솟구치는 거대한 검은 그대로 사라졌다. 검룡은 크게 아가리를 벌린 채 뻣뻣하게 굳었다.
“어엇!”
“으잇!”
이게 무슨 괴변인가.
양하는 창백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다가, 자신의 검 또한 솟구쳐서 그대로 만검고를 향해 날아드는 모습을 넋 놓고 보았다.
어떻게 손 뻗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만검산장의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는데, 그것은 만검당 검객들에게 거둬들였던 여러 검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이에 검이라는 날붙이가 모조리 반응한 셈이었다.
절로 솟구치더니, 만검고 아래로 날아들었다.
“으윽! 윽! 대체 무슨 일이!”
“신, 신기다. 신기야!”
당황하는 소리가 정신없이 터졌다. 그런 중에 검룡이 크게 울부짖었다.
요괴 또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일어나는 변화는 단순히 검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부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크아아아아앙!
땅이 무너질 듯이 들썩거렸다.
격렬한 동요는 만검산장을 넘어서 검하현, 그리고 복우산 전체를 뒤흔들고도 남았다.
은육호는 멈칫하고 굳었다.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서 그는 도망하는 인파에 섞이다시피 하여서 유유히 검하현을 벗어나던 차였다.
그는 홱 고개를 돌려서 만검산장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휘감은 그림자 사이에서 살짝 드러난 두 눈이 한껏 일그러졌다.
“무엇이지? 두려움이라고? 검룡이 두려움을 느껴?”
자신이 입 밖으로 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명령받은 바가 없는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은이 아니라 금호(金號)의 반열에 올랐다면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아직 은호에 지나지 않았다.
받은 명령이 최우선이었다.
그래도 은육호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무너질 듯이 요동치는 마운곡을 한참이고 지켜보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스치면서 검하현 사람들은 도망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만검산장에서 도망 나온 군웅들은 물론이고, 산장의 제자들, 사용인들 모두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면서 검하현 전체에 위험을 알린 덕분이기도 했다.
일대 사람들을 모두 피신시킨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더구나 시기도 짧았다. 고작해야 반나절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에 수천 가구를 헤아리는 사람들이 몸을 피해야 하니, 간단한 짐 하나를 챙길 틈도 없었다.
피난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중에 일어난 변화였다.
만검산장이 아니라 복우산이 폭삭 내려앉을 듯하여서 한참이나 두려웠다.
산신이 노하셨네, 신벌(神罰)이 떨어졌네.
두려움 가득한 하소연이 연이어 맴돌았다. 무엇에 의지하면 좋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검하현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든든한 울타리인 만검산장에서 오히려 이와 같은 괴변이 일어났다.
혼돈과 두려움이 눈에 잡힐 듯했다.
은육호는 그런 이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바로 옆을 스쳤지만, 아무도 가까이 낯선 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그림자에 완전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난에 분주한 이들 옆에서 요동치는 만검산장을 한참이고 지켜보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검룡이 당했다면…….’
은육호의 눈초리가 한층 가늘어졌다.
스치는 피난민 사이에서 그는 속내를 다잡았다. 그때였다. 내내 이어지는 괴성과 요동이 뚝 끊어졌다.
은육호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마…… 정말로?”
***
불망은 허헛, 헛웃음을 가만히 흘렸다.
상황은 이제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고 할 만했다. 그는 늘어뜨린 백양을 천천히 거두었다.
검초에 납검하니, 백양도 지쳤는지 가는 소리를 내었다.
만검은 진정 이름 그대로 만검이었다.
고진무가 심의상통의 구결을 깨닫는 순간, 상황은 끝난 셈이었다.
불망이 아무리 술가의 공부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남천궁 아래에 있었다. 약간이라지만 영안(靈眼)의 공부를 쌓았다.
파르스름한 기운이 동공 깊은 곳에서 흐리게 맴돌았다.
영안으로 보는 광경은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확실히 끝났구나.”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삼켰다.
검편으로 이루어진 검룡의 육신은 뻣뻣하게 서 있다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스스 쏟아져 내리는 검 조각, 검편으로 이루어진 검룡의 육신이 모래더미가 허물어지듯이 그렇게 내려앉았다.
동시에 불망은 검룡의 원령이 연기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만검귀일 중간에 일어난 고요한 일검이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만검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검이었다.
불망도 큰 경지를 이루어 낸 검객이었다. 그런 자신도 전혀 짐작하지 못할 정도의 검기였다.
“대체…….”
참으로 아득한 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한 모든 힘과 정신을 다 쏟아부었다. 불망은 더 고민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휘청하는 무릎을 덜컥 움켜쥐었다.
다른 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지쳐 주저앉았다. 아득한 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지만, 정히 가능한 모든 힘과 정신을 다 쏟아내었으니.
“허, 정말로 끝났나? 정말 끝난 건가?”
한참만에야 사진초가 눈을 끔벅거리면서 물었다. 사운경이 그의 아래에서 주저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초숙. 정말로. 정말로 끝났습니다. 끝나 버렸네요. 하, 하하.”
헛웃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후인의 손으로 지키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대를 이어온 만검산장의 과업을 오늘 떨쳐 내었다.
만검고는 만검산장이라는 이름을 있게 한 상징인 동시에 족쇄였다.
오직 장주만이 품고 있었던 족쇄.
사운경은 적어도 만검산장의 족쇄를 풀어냈다는 것 하나에 깊이깊이 안도하여서 폭 쓰러졌다.
눈앞이 아득했다. 지친 숨이 불쑥 튀어나왔다.
“후우…….”
“운경, 운경아!”
사진초가 다급히 사운경을 붙들었다.
고진무는 뻗은 빈손을 거두었다.
마지막의 그 일검은 대체 무어라고 하면 좋을까.
만검귀일 속에서 거듭 펼쳐낸 일검.
그러나 자신 또한 이를 어떻게 펼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흐름에 순응했고, 검심에 호응하였을 뿐.
그는 지친 숨을 어렵게 뱉어냈다.
다 허물어지는 검룡의 육신, 그 속에서 꾸물거리는 흐린 연기는 힘없이 맴돌다가 사그라졌다.
고진무는 그제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피로가 무겁게, 무겁게 몰려왔다.
일천근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다잡고, 고진무는 고개를 돌렸다.
“고 소협.”
“예, 백 소협.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고진무는 휘청거리면서 다가서는 백옥상을 돌아보면 쓴웃음을 지었다.
생사를 같이 넘었지만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는 건 지금이 처음인 셈이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저야, 저야…… 아니,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입니까!”
“하, 하하. 그도 그렇습니다. 쿨럭!”
백옥상은 잔뜩 울상 지은 얼굴로 소리를 높였다. 서로 안부를 묻고 어쩌고 하기에는 고진무의 안색이 다 죽어갈 듯이 위태했다.
고진무는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가 선홍의 핏물을 왈칵 토했다.
“으익! 고 소협!”
“고 소협!”
더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고진무는 자신이 토한 핏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흐느적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을 붙잡는 소리가 한참 멀게 들렸다.
이대로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정신을 놓을 참인데, 돌연 품속에서 급한 떨림이 일었다.
지이잉! 지이잉!
“흡!”
고진무는 젖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동시에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억지로 붙들었다.
품속에서 일어나는 떨림, 그건 귀동의 경고였다.
무엇인지 몰라도, 위험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