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사왕무구(死王無句) (2)
수직으로 깊게 파 내려간 동혈, 그곳에는 불빛 한 점 제대로 밝혀놓지 않았다.
떨어지는 달빛, 별빛이 전부였다. 그곳을 여러 그림자가 꾸물거리면서 동혈을 빙글빙글 돌면서 오르고 내렸다.
파낸 흙더미를 밖으로 짊어지고 올랐고, 다시 내려와서 흙더미를 담았다.
고개 숙인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톱니바퀴가 맞물려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일 뿐이었다.
다만, 그 돌아가는 움직임이 점점 파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다가, 벌써 몇이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이들을 더 급하게 채근한 탓이었다. 그렇더라도 현무사자는 그들 안위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는 문득 한쪽 무릎을 꿇고서 바닥을 향해 두꺼운 손을 뻗었다. 흙은 차갑고, 축축했다.
닿은 손끝을 타고서 저릿한 느낌이 파고들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기겁할 만한 일이겠지만, 현무사자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그래.”
그는 흙 묻은 손을 털어 내고서 몸을 일으켰다.
푸른빛이 맴도는 눈초리가 고여 있는 어둠을 어렵지 않게 꿰뚫었다.
땅을 파헤치는 일을 맡은 자들이 빠르게 땅을 파헤쳤다. 그럴 때마다 뼈마디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주저앉을 듯이 위태했다.
억지로 힘을 쓰고, 서두르니 자연히 자세는 무너지고, 몸이 뒤틀렸다.
멍하니 눈을 뜬 채,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아예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눈을 뜨고 있지만, 보는 것이 없었다. 무슨 고통을 어찌 알겠나. 그들의 정신은 깨어날 수 없는 악몽 속에 갇힌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촌민들의 처지는 참담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현무사자는 불만이 가득하여서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남은 깊이를 헤아리고 지금 땅을 파헤치는 자들의 속도를 보건대,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가 영 불안한 까닭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안선이 떠나기 전에 좀 더 재촉할 것을 그랬군. 이 정도면 아슬아슬할 수도 있겠는걸?”
인력이 부족하다.
서두르라고 재촉한 이후로, 벌써 다섯이나 되는 자들이 나가떨어졌다.
파낸 흙을 나르다가 아래로 추락한 자도 있었고, 땅을 파내다가 근육이 터지고 관절이 크게 뒤틀려서 주저앉기도 했다.
아무리 혼백을 제압하면서 잠력을 강제로 끌어내게 하였다지만, 사지가 상한 자들을 계속해서 부릴 수는 없었다.
별수 없이 구석으로 대충 치워 놓았지만, 현무사자의 눈에는 한참이나 거슬렸다.
현무사자는 팔짱 낀 채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쯧! 정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면, 마지막 수단을 써야겠지.”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한층 음험하게 두 눈을 번뜩였다. 눈가에서 푸르스름한 인광이 타올랐다.
그런데 현무사자는 잠시 의아함에 멈칫했다.
상황이 뭔가 이상했다. 땅은 묵묵히 파헤치고 있는데, 파낸 흙을 치워 내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촌민들이 흙더미를 밖으로 이고 나간 뒤로 다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톱니바퀴가 굴러가듯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던 작업이 단숨에 멈춰버렸다.
퍽, 퍽, 퍽.
삽과 곡괭이가 땅을 파내면서 울리는 둔탁한 소리만 주변에서 윙윙 맴돌 뿐이었다.
“뭐야? 뭐냐!”
설마 밖에서 무슨 일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동굴 입구 주변으로 더없이 세심하게 펼쳐 놓은 팔문금연선(八門禁聯線)에서는 아무런 신호도 없었거늘.
현무사자는 잠시 주저했다.
이대로 자리를 비우기에는 이곳의 일이 너무 중요했다. 그렇다고 마냥 밖을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파낸 흙을 치우지 못하고 있어서 속절없이 다시 쌓여 가고 있지 않은가.
이래서야 설사 마지막 수단을 쓴다고 해도, 목표에 닿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야위었지만, 그래도 장대한 기골을 지닌 사내가 멍한 기색으로 나무 삽을 한껏 파냈다.
잔뜩 파낸 흙덩이가 구석으로 날아갔지만, 다시 제자리로 스르륵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래서야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다른 생각 없이 지시한 일만 하는 망혼인의 한계인 셈이었다.
현무사자는 바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굵은 어깨를 한껏 들썩였다.
“에잇, 어쩔 수가 없지!”
결국 바깥 상황을 직접 살피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는 걸친 푸른 도포를 거칠게 털어 내고서 고개를 번뜩 치켜들었다.
그러나 고개 든 그를 맞이하는 것은 동굴 밖에 드리운 검은 밤하늘이 아니었다.
치이잉.
낮은 울림이 바로 머리 위에서 울렸다. 한 자루의 고검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엇! 뭐냣!”
현무사자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정말 완벽하게 허를 찔린 셈이었지만, 이런 와중에도 현무사자의 대처는 즉각적이었다.
펼친 두 손에서 우웅! 격렬한 떨림이 일어나고, 머리 위로 족히 일 장에 이르는 거대한 귀갑(龜甲)의 형상이 떠오르면서 떨어지는 검과 강하게 충돌했다.
콰직!
“커억!”
짓누르는 천근의 거력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래도 귀갑의 형상은 푸른빛을 발하면서 떨어지는 검을 막아 냈다.
이것은 이능이면서 동시에 절세의 방호공으로, 그에게 현무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 준 인외의 비술, 귀갑방요순(龜甲防夭盾)이었다.
귀갑방요순은 실상 북방의 신수인 현무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다. 그저 귀갑의 형상에서 현무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귀갑방요순은 마도에서 비롯한 비술로, 현무사자는 이것을 품고,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족히 반백 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힘껏 뻗어 올린 두 손에서 펼쳐진 귀갑방요순은 그야말로 불괴의 방패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설령 벼락이 직격한다고 해도 받아 낼 수 있었다.
펼친 손에서 비롯한 팔각의 귀갑 모양의 신기가 연이어서 거대한 방패를 이룬다.
현무사자는 그렇게 자신을 중심으로 일대를 단숨에 에워싸다시피 했다.
이것이라면 설사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다고 해도, 조금의 피해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하였지만, 막상 그를 흔든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한 자루의 고검이었다.
검은 청명한 검광을 뿌리면서 귀갑방요순을 더욱 내리눌렀다.
현무사자는 버티면서 바삐 눈동자를 굴렸다. 누구도 없이, 검이 홀로 움직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때, 다른 쪽에서 한 인영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네놈은 뭐냐! 커윽!”
성질이 울컥 치솟으면서 당장 살기가 충전하였지만, 그는 뒷말을 더 내뱉을 수가 없었다.
짓눌러 오는 고검에서 한순간 무게를 더하였기 때문이었다.
내려선 사내가 검결지 맺은 손을 더욱 비틀었다.
‘이게 무슨 검이냐? 귀, 귀갑방요순이 빗겨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무게는 대체?’
홀로 날아오른 고검은 정확하게 귀갑방요순의 한가운데를 노리고 떨어졌다. 그 위력도 물론이지만, 검 끝이 천천히 비틀리면서 귀갑방요순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불현듯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터엉!
“큭!”
맞닿은 상태에서 더욱 깊이 밀어 넣은 고검의 검기가 귀갑방요순을 이루고 있는 현무사자의 내기를 기어코 파고든 것이었다.
고작 손가락 한 마디에 불과하여서, 몇 겹에 이르는 귀갑방요순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버티고 있는 현무사자에게 여파가 파고들었다.
현무사자는 신음과 함께 덜컥 무릎을 꿇었다.
일만 근, 어쩌면 그것을 뛰어넘는 무게가 한순간 머리 위에서 짓눌렀다. 그래도 악착같이 고개를 치켜든 채 이를 악물었다.
귀갑의 형체를 이루는 청광이 색을 달리하여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끄, 끄으윽! 대체 어느 놈이냣!”
“…….”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고진무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검결지 맺은 손을 한층 집중했다.
청명검이 대신 검명을 토해 내면서 지하의 깊은 동굴을 뒤흔들었다.
지이잉! 지이이잉!
검기를 발하면서, 묵직한 검명이 터져 나왔다.
맑은 검명은 벽을 타고서 더더욱 거세게 울려 퍼졌다. 그 아래에서 현무사자는 정신을 다잡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한 울림이 아니었다.
법보로서 검명에도 파사(破邪)의 기운이 선명하게 어려 있으니. 지금 현무사자에게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직 주변에 남아 있는 촌민들의 정신까지도 흔들었다.
“흐, 흐으…….”
“어으으…… 어으으.”
땅을 파던 손이 굳었다. 들고 있는 삽과 곡괭이를 놓치고 괴로움에 신음했다.
현무사자는 뻣뻣하게 몸을 굳혔지만, 동시에 자신을 짓누르는 만검의 무게와 귀갑방요순을 뚫어 버리겠다는 듯이 파고드는 검기를 같이 감당해야만 했다.
“크악! 빌어먹을! 당장 땅을 파지 못하겠느냐!”
현무사자는 점점 짓눌리고 있는 와중에도, 기어코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자신이 위험한 처지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곳에 숨은 사기의 원천이었다.
아무리 생각지도 못한 검객의 등장 때문에 손발이 묶였다고 해도, 저들이 손을 놓아버리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마음이 더욱 급했다.
월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주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외침은 촌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때, 고진무가 더욱 검을 밀어 넣었다.
쿠우웅!
버티는 귀갑방요순이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높은 하늘에서 뇌성이 터지는 것처럼 묵직한 소리가 버티는 현무사자를 한층 뒤흔들었다.
“끅! 이, 이놈!”
“그만, 조용히.”
고진무는 더없이 차갑게 말했다.
내뱉는 한마디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분노도, 노여움도 없었다. 그러나 짓누르고 있는 기세만큼은 진짜배기였다.
현무사자는 어깨를 들썩였다.
“끄그으으…… 이놈이 정녕…….”
비록 귀갑방요순에 검기가 침습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깨질 리가 없다. 이보다 더한 거력을 짓눌러도 귀갑은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한다.
지금의 불안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발목까지 땅속 깊이 파묻힌 채, 그는 굳어 버렸다. 그렇게까지 한 상태에서도 내리누르는 힘은 그대로였다.
“크, 크아아악!”
현무사자는 결국 가장 마땅치 않은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완력이었다.
짓눌린 상태에서 힘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현무사자는 적어도 몸 쓰는 소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력도 타고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귀갑방요순과 같은 이술을 품을 수도 없었을 터였다.
덜컥 이를 악물고서, 하체의 근육을 전력으로 쥐어짰다.
으득!
쁘득!
관절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렸지만, 이대로 짓눌려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노오옴!”
쿠르르릉!
버럭, 노갈을 터드리는 동시에 온몸을 길게 뻗었다. 이대로 귀갑방요순 위에서 누르고 있는 청명검을 떨쳐 내기 위함이었다.
“허.”
고진무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가벼운 헛웃음만 흘렸다.
만검귀일의 한 수, 그것을 버티어 내는 귀갑의 형상도 그렇지만, ‘교’의 사자는 다른 내공이나 주술의 도움도 없이 오직 타고난 신력으로 짓누르는 만검중(萬劍重)의 무게를 버티어 낼 뿐만 아니라, 다시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다른 의미로 괴물이라고 할 자였다.
허를 찌르지 않았다면, 어떠하였을지.
생사는 둘째치고 이 자리를 상대하다가 붙잡힌 마을 사람들도 화를 피하지 못할 게 뻔했다.
“그렇다고 지금 놓아줄 수는 없지.”
아직, 아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