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사왕교령(死王交靈) (1)
고진무는 갈라지면서 드러난 지하 동혈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크지 않은 균열이었지만, 현무사자를 단숨에 끌어내렸다. 그의 처절한 비명이 벽을 타고 윙윙 울렸지만, 그렇게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자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진무는 한숨을 낮게 흘렸다. 현무사자 하나로는 부족한 것인지, 칠흑의 사기가 스멀스멀 밀려 올라왔다.
처음처럼 폭발적으로 솟구쳤을 때와는 달랐지만, 가볍게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고진무 또한 저것의 지독함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그는 지켜보다가 힘껏 손을 흔들었다. 펑! 퍼펑! 균열 주변에서 허공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한껏 뒤엉켜 있는 사기가 서슬에 흩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으음, 역시 내려가서 근원이 되는 것을 없애버려야 하는 걸까.”
고진무는 한숨 섞인 혼잣말을 흘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손 쓸 방도가 뾰족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 균열이 생긴 이상, 아무리 수직 동혈을 다시 메워버린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지는 않을 듯했다.
황천곡 지하에서 벌어진 일처럼, 틈바구니로 사기는 계속해서 밀려 나올 것이고, 일대를 깊이 오염시킬 수도 있었다.
‘그래도, 황천곡에서처럼 시신이 벌떡 일어나는 일은 없기야 하겠지만…….’
가까이 촌락에 무슨 화가 닥칠지, 고진무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당장은 몰라도, 이것이 인세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지 않은가.
‘교’의 사자를 처리하면서 그들의 음모를 분쇄했다고 하지만, 벌어진 상황을 보고 있으면 마음 놓을 틈이 전혀 없었다.
고진무는 숨을 짧게 삼키고서, 이내 허공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지이잉!
손짓에 바로 호응하여서 청명검이 길게 울었다. 동혈의 벽을 타고서 소리가 윙윙 울렸다. 그리고 새파란 청광이 긴 꼬리를 남기면서 고진무의 손으로 얌전히 날아들었다.
파사의 검기가 주변에 흐르니, 꿈틀거리면서도 다시금 새어 나오는 진창 꼴의 사기가 더 뻗지 못했다.
일어난 바닥 균열 밑에서 주춤한 채 바쁘게 일렁거렸다.
짙은 어둠도 고진무의 눈을 가리지는 못하여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는데, 그 요악함은 황천곡에서 마주한 것보다 한층 지독했다.
“고 소협! 괜찮은 건가! 무사한 거요!”
“고 소협!”
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혈도승 불광과 도광이었다.
밖에서는 아직 안쪽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청명검이 몇 차례나 들락거리면서 아래의 마을 사람들을 밖으로 옮겼다가, 처절한 비명이 저 아래에서 울리면서 땅을 들썩거렸다.
그것도 잠깐, 주변으로 침묵이 무겁게 앉았다. 청명검이 뒤늦게 아래로 뚝 떨어지자, 두 혈도승이 부랴부랴 입구 앞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도무지 내려갈 길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현무사자가 아래에서 난동을 부린 탓에, 오르내리던 나선의 길목이 전부 끊어지고,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이, 이런…….”
“어찌 길이 없는 건가?”
목을 길게 빼고서 연신 주변을 살폈지만, 무너진 흔적만 또렷했다. 거기다가 저기 아래로 내려갈수록 불빛 한 점이 없지 않은가.
고진무가 정말 저 아래에 있을까. 의구심이 고개를 들 정도였다. 그러자 아래에서 고진무가 마주 외쳤다.
“예. 저는 무사합니다.”
“하, 하아. 다행이구려. 잠시만 기다리게. 곧 밧줄이라도!”
“아닙니다. 그보다, 흑도사를 불러주십시오. 여기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 그런가?”
촌민들을 그래도 모두 구해 낸 마당이었고, 고진무도 큰 탈이 없는지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럼에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니. 무슨 뜻이겠는가.
두 혈도승은 부랴부랴 흑건아를 찾았다.
“흑도사! 흑도사!”
방대원과 흑건아도 물론 동혈 아래의 상황이 백번 걱정이었다. 그래도 구해낸 마을 사람들 안위가 먼저였다.
혼백이 제압당한 상태에, 사기에 오래도록 노출된 곳에서 혹독할 정도의 강제 노동을 반복한 탓에, 누구 하나 근기가 온전한 사람이 없었다.
특히나 청명검에 옷깃이 꿰여서 위태위태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태가 한참이나 위중했다. 단순히 몸이 쇠약하다든가, 사술에 이지를 잃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농도 짙은 사기에 하도 노출이 된 탓에,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
방대원이 말하는 황천곡의 아귀, 어쩌면 그 지경까지 갈지도 몰랐다.
일단 맥문을 눌러 놓고, 따로 술법을 집중하여서 흐려진 이목을 아예 잠재워버리는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흑건아에게는 이들을 회복시킬 방편이 지금으로서는 전혀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급하게 찾는 외침에 고개를 들었다.
방대원도 손을 멈추고서 같이 바라보았다. 두 혈도승이 급하게 달려왔다.
“아래에서 고 소협이 급히 찾는군.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정체불명의 사기가 크게 새어나오는 모양일세.”
“아이쿠. 그, 그거 큰일이군요.”
흑건아는 지친 얼굴이라도 눈을 크게 치떴다. 주저할 상황이 아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사기만으로도 사람이 이 지경인데, 그 사기가 한층 짙어지기라도 하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흑건아는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마을 사람을 술법으로 재우고서 무릎을 잡고 일어섰다.
“은공! 은공! 괜찮으십니까!”
흑건아는 동혈 입구에서 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가 벽을 타고서 윙윙 울렸다. 까마득한 어둠이 장막처럼 가려서 흑건아의 눈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기야 두 혈도승조차 꿰뚫어보지 못한 어둠이었다.
무엇을 볼 수가 있겠나.
소리만 높이는데, 곧 고진무가 답했다.
“예.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바닥이 갈리면서 큰 균열이 생겼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으음, 그건 일단 제가 직접 내려가 봐야…….”
흑건아는 말끝을 흐리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길목은 죄 끊어진 채였다.
이래서야 선뜻 움직일 수도 없었다. 깊이조차 모르는 데에 어찌 몸을 날릴 수가 있겠나.
흑건아가 주저할 참에, 도광이 같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한층 눈빛을 강하게 번뜩였다. 어슴푸레 어둠이 짙은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윤곽이나마 대강 헤아려 볼 수 있었다.
“확실히 깊긴 깊군. 길목도 대부분 무너지기도 했고. 제대로 볼 수는 없겠지만, 당장은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겠어.”
“그, 그렇겠지요? 그럼 일단 밧줄 같은 걸…….”
“밧줄은 무슨. 저 아래까지 닿을 정도의 밧줄을 여기서 언제 구하겠나. 일단 내가 돕도록 하지.”
“예? 예?”
도광은 불광에게 뒤를 부탁하고서는 바로 흑건아의 허리춤을 덜컥 붙들었다.
흑건아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비틀었지만, 저항할 틈은 조금도 없었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가세. 자자, 몸에 힘 풀고.”
“예에? 흐익! 흐에에익!”
흑건아가 무슨 상황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도광은 훌쩍 몸을 날렸다.
아래로 뚝 떨어지는데, 아무것도 없이 무저갱 속으로 투신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눈앞이 당장 새카맣게 물들었다. 스치는 바람 탓에 얼굴이 멋대로 들썩거렸다.
기겁하는 숨소리가 채 흩어지기 전에, 쿵쾅! 요란한 소리가 어둑한 동혈을 크게 뒤흔들었다.
도광은 무릎을 굽힌 채 버티고 서서 숨을 길게 흘렸다. 충격을 모두 감당하고서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으하하하, 이거 아찔하구만.”
그는 껄껄 웃으면서 흑건아를 바닥에 내렸다. 그는 바짝 움츠러든 채 굳어버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흑건아는 그냥 풀썩 주저앉아서, 멍한 얼굴로 흐어어, 신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깊이 내뱉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뚝 떨어지는 듯했다.
도광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때에 물러섰던 고진무가 다가섰다.
“이런, 너무 서두르셨습니다.”
“그렇기야 하지. 내 부정하지 않겠네만, 뭐 상황이 상황 아니겠나.”
도광은 곧 눈빛을 강하게 번뜩였다. 그 또한 낮게 고여 가는 사기를 헤아릴 수 있었다.
“이것은 서둘러서 처리해야 할 일이니.”
“그렇기야 하지만…… 흑도사께서 지금 이런 상태이니.”
“크흠, 크흠.”
고진무는 주저앉은 흑건아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오히려 시간을 더 지체하는 형국이지 않은가.
“좀 과하긴 했군.”
도광은 흑건아를 힐끔 보고서 혀를 찼다. 안광이 번뜩이는 눈빛으로도 확연하게 알 수 있을 만큼, 흑건아는 잔뜩 굳어 있었다.
주춤거리면서 시간을 끌 바에야 단번에 확 내려가는 게 백번 낫지 않겠나. 도광은 나름대로 궁리한 끝에 같이 움직였지만, 역시 눈 감을 틈도 없이 몸을 날린 게 아무래도 문제였던 모양이다.
고진무도 상황을 보았던 터라, 잠시 쓴웃음을 그렸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정신 차리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흑건아는 넋을 놓고서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목을 바짝 세우면서 당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격한 진저리가 일었다.
“으흐! 으흐흐흐!”
전신을 관통하는 오한에 덜덜 떨리는 입술 사이로 신음을 쥐어짰다. 그제야 고진무가 다가서서 그를 부축했다.
“흑도사, 괜찮으시오?”
“흐윽, 으, 은공. 예에. 이제, 이제 괜찮습니다.”
흑건아는 숨을 어렵게 삼키고서, 더듬더듬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더라도 전혀 괜찮아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렵게 일어섰다.
그는 이내 소매에서 부적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급급여율령…….”
집중해서 주문을 읊조리자, 부적이 화르르 타들어 가면서 주변 어둠을 밀어냈다.
부적은 작은 불덩이가 되어서, 머리 위에 둥실 떠올랐다. 그것으로 비로소 주변 광경을 대강이나마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흑건아는 눈을 끔뻑거리고서, 바닥에 일어난 깊은 균열을 바라보았다.
쉽게 다가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확실히 바닥에 맞닥뜨린 사기는 한참이나 짙어서, 손끝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밖에서 마주하였던 사기는 전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두렵군요. 저 정도의 사기라니. 대체 몇이나 되는 목숨이 저곳에 파묻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흑건아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보다 더욱 짙은 칠흑이고, 묘지보다 더한 사기가 뒤엉켜 있었다. 저런 곳이 명부가 아니라면 또 어디가 명부와 같을까.
“후읍, 후읍.”
흑건아는 차분하게 숨결을 다잡았다.
하도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진 터라, 심장이 여전히 벌렁벌렁 뛰었지만, 명부의 입구인 듯한 곳을 딱 마주한 지금에는 정신을 단단히 다잡아야 했다.
흑건아는 머리 위에, 염화주를 띄우고서 슬금슬금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뚜렷한 것은 사기, 맴도는 것은 오래도록 고여서 넘쳐흐르는 장독. 이런 곳이 발생하는 건 그만한 살육의 현장이기 때문이지만, 분명 원혼과 사기를 붙들고 있는 마물이 있기 때문일 터.’
고진무는 청명검을 앞에 세운 채 흑건아의 뒷모습을 한층 신중하게 지켜보았다.
흑건아의 움츠린 뒷모습에 집중하는 한편, 주변의 흐름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진창이 꿈틀거리며 사자를 낚아채서 끌고 내려갔던 것처럼 흑건아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얼핏 보아도 황천곡 지하보다 더욱 지독한 곳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