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427
428화 늑대의 탈을 쓴 양 (3)
은삼호는 아직도 골이 지끈거리는 것을 참고서 주문에 한층 집중했다.
주법의 시행이 다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평소라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가능한 경지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남다르지 않은가.
자신의 부상보다도, 여기에 있는 것이 전전대의 금급살수, 염건살귀 갈사동이라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갈사동이라면, 자신의 장신술을 보고서 주법을 지녔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주법을 따로 금할 수는 없었을 테니,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자신을 감시할 터. 은삼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차례 흔들었다.
술법으로 결박은 풀었다. 내공은 아직이지만, 이 자리에서 내공의 금제를 풀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위험을 자초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이 정도면, 임무도 수행한 셈이지 않겠는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종남의 검성이 여기에 있고, 황산영 마운곡이 아예 살정에 등 돌리기로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살군이 바라는 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만, 종남의 검성 뿐만 아니라 비록 전대라고는 하나 여전히 후배들 사이에 회자되는 영검살귀가 있었다.
상황의 파악이 아니라 살행이라 한다면,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서 준비하더라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조합이었다.
‘일단 살려 둔 걸 보면, 뭔가를 캐내겠다는 뜻일 테지만. 험한 꼴은 면치 못하겠지. 개죽음당하는 것도 사양이지만, 이런 곳에서 버티다가 몸 상하는 것도 절대 사양이다.’
은삼호는 그는 퍼뜩 눈을 치떴다. 하얗게 빛나는 눈가에 요사한 푸른빛이 귀화처럼 타올랐다.
지령장신술에 살정의 은신, 보신경을 집대성한 그의 진정한 비전절학이다. 이것을 십 성 완성하는 날, 이살군의 뒷배가 아니라, 진짜 자신의 능력으로 금급에 오르리라고 장담하는 바였다.
주변에 다른 감시가 없다는 건 눈 뜨자마자 확인했다.
그는 주저 없이 몸을 숨겼다. 웅크린 몸은 동굴 속의 깊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녹아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부엔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오직 고요만 머물러 있다.
그 자리로 고진무가 슥 고개를 내밀었다. 닫힌 철문 사이로 난 들창 너머로 짙은 어둠을 꿰뚫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텅 빈 자리를 확인하고서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말씀대로 돌아가는군요.”
“후후, 분명 의심은 하겠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으니까요. 제게 붙잡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고할 건 충분할 것이고, 몸을 뺄 수 있는 틈을 보았다면 어찌 주저하겠습니까.”
“그렇군요.”
나름 계획대로였다. 미끼는 낚싯줄을 제대로 물고 심연으로 내려갔다. 이제는 줄을 살살 따라갈 일이다.
“그럼, 어디로 갈지 슬슬 따라가 보아야겠습니다.”
“검성, 무운을.”
“예, 갈 노사. 감사합니다. 마운곡에서의 경험은 참으로 귀중했습니다.”
“허허, 어디 저만 하겠습니까. 오히려 검성의 가르침으로 본류의 검풍이 더욱 견고해졌으니, 깊은 은혜는 제가 입은 셈이 아닙니까.”
갈사동은 깊이 고개 숙였다. 어둑한 동굴 속이지만, 크게 뜬 노인의 눈가에는 짙은 안광이 머물렀다. 진심이 절절했다.
고진무가 살정에 대한 여러 가지를 직접 듣고 경험하는 동시에, 남궁완을 통해서 종남파 검법의 기본을 온전하게 전한 셈이었다.
갈사동이 분명 살정에 속한 여러 지파 중 하나인 영검류의 장문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정식의 검객이라기보다는 살수에서 시작하여 검객의 반열에 이른 터라, 그 시작을 잡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때에 고진무의 도움은 가뭄의 단비 정도가 아니라, 일대의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어둑한 동굴 속에 뜨거운 눈초리를 받으려니, 고진무는 괜스레 민망했지만, 그는 다른 겸양을 하기보다 그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갈 노사. 이후의 일을 잘 부탁하겠습니다.”
“예, 믿고 맡겨주시지요.”
“이대로 남궁 소협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군요.”
“후후, 그 아이가 제대로 된 검객으로 거듭나는 날, 검성을 찾아뵐 것입니다.”
“예, 남궁 소협은 분명히 훌륭한 검객이 될 겁니다.”
고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덕담이 아니었다. 그는 검법의 기본을 일러줄 때에, 남궁완의 곧은 눈길을 기억했다.
흔들림 없는 눈빛은 자신이 나아갈 길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
은삼호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뒤집어쓴 시커먼 흙을 털어 낼 생각도 못했다.
마운곡에서 간신히 벗어난 마당이었다.
일단 지하의 동굴 속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거기서 마음 놓을 수는 없었다.
땅속의 흙을 비집으면서 간신히 마운곡을 벗어나, 황산 깊은 곳까지 숨어들 때까지, 한 호흡도 허투루 내뱉지 못했다.
내가공력이 온전하지 못한 상황이니만큼, 아무리 땅속이라고 해도 한 호흡에 발각될 수 있었다.
종남의 검성까지는 몰라도, 영검살귀의 이름은 그만한 위압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조심한 끝에, 은삼호는 황산의 한 귀퉁이에서 간신히 땅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상황이라면 여기서 숨이라도 잠깐 돌릴 법했다. 그러나 은삼호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았다.
무엇보다 그를 계속 불안하게 하는 불길함이 계속해서 가슴 한 귀퉁이 남아 맴돌고 있었다.
은삼호는 직감했다. 불길함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하는 한, 마음 놓고 쉴 수 없으리라.
그런 만큼, 흙을 털어 낼 시간조차 아껴서 바로 움직였다. 도중에 억눌려 있는 내공도 풀어 낼 수 있었다.
“흐윽!”
눌려 있던 혈도를 타고서 내공기력이 맴돌았다. 새로운 힘이 치솟는 동시에 감각이 확 깨어났다. 눈앞이 아찔하고, 귀가 윙윙 울렸다.
그렇더라도 은삼호는 이를 악물고, 민감한 감각을 한층 퍼뜨리면서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험한 황산을 말 그대로 일직선으로 돌파하려는 지금이었다.
뒤에서 추적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물론이었지만, 황산 자체도 깊고 험준한 곳이었다. 감각을 제대로 깨우지 못한 채 나아갔다가는 오히려 산중에서 험한 꼴을 면치 못할 터였다.
고진무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날듯이 뛰어가는 은삼호의 종적을 조용히 쫓았다.
갈사동에게 직접 배운 추종술, 그리고 은삼호에게 슬쩍 남겨 놓은 표식이 아니었다면 놓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은삼호는 크게 서둘렀고, 보신경과 은신술이 상당한 경지였다.
고진무의 감각이라면 어떻든 흔적을 찾았겠지만, 지금보다 한참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고진무는 잠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아, 어디까지 끌어주려나.”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그렇게까지 멀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황산의 더욱 아득한 곳으로 몸을 날리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했다. 다른 안배가 없다면, 이대로 자살이라도 하려나 싶을 정도였다.
고진무는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으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직 살정의 근거지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은삼호는 쉽게 목숨을 버리는 자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호오, 과연.”
고진무의 눈초리가 한층 신중하게 번뜩였다.
***
황산의 아득한 운무, 운해대연(雲海大衍)이라고도 불리는 짙은 안개는 바다처럼 드넓었다. 마운곡 앞에 드리운 짙은 안개도 구름과 같다고 할 정도였지만, 역시 드높은 황산 일대를 휘감은 아득한 운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운해 위로 슬며시 떠오른 햇빛을 받은 구름은 오채의 빛을 발했다.
그렇게 황산의 운해가 고고하게 흐르는데, 그중에서 한 곳의 산봉이 삐죽하게 솟아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구름의 바다에 둥실 떠있는 한 척의 낡은 돛단배처럼 보였다.
돛을 올린 것처럼 긴 그림자 하나가 슬며시 솟아 있었는데, 다시 보면 늙은 노송 한 그루와 아래에 지어 올린 팔각의 정자였다. 오르내리는 길목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 어찌 정자를 지어 올렸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그곳에서 뒷짐을 진 유생 한 사람이 발밑에 흐르는 붉은 운해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는 내내 미동도 없었는데,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자신의 한쪽 어깨너머를 향해 말했다.
“이제 오는가.”
“후우, 이제라니요.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서 내달린 참인데요.”
“후후. 딱히 늦었다고 하는 말은 아니었네.”
“크흠, 그러시다면야.”
뒤늦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서 망망의 운해 사이에 솟은 산봉에 올라선 것은 은삼호였다. 그는 흙먼지를 툭툭 털어 내고서, 잠시 숨을 돌렸다.
은삼호는 곧 정자 앞에 서서 두 손을 맞잡았다.
“이살군.”
“그래, 어찌 되었나. 마운곡은.”
“일단 제 꼴을 보면, 무슨 상황인지는 아시겠지요?”
“역시 등 돌린 건가. 갈 선배.”
뒷짐 진 유생은 잘생긴 눈썹을 서서히 일그러뜨렸다. 단지 그뿐인데, 일대에 급작스러운 그림자가 어린 것처럼 산봉 주변이 어둑해졌다. 높은 곳이니만큼 얼음조각을 품은 듯한 바람이 싸늘하게 윙윙 불어들고 있었는데, 그 바람 소리조차 딱 멎었다.
“으, 으음.”
은삼호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지독한 살기가 정자 주변만을 딱 점해서 치밀하게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견디지 못할 건 아니지만, 그렇게 편하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는 긴장한 기색으로 살기 속에 우뚝 서 있는 유생, 이살군을 한층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저어, 이살군. 아직 보고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흐음, 그래, 그렇지.”
분노를 잠깐 잠재우고서, 그는 몸을 돌렸다. 어깨너머로 흘깃 보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곳 곡주가 영검살귀라는 건 알고 계시겠죠.”
“그래.”
“그리고 그가 거기에 있더군요.”
“그?”
“검성.”
“…….”
이살군은 호흡을 끊었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팔각으로 높이 솟은 정자의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눈앞이 아찔했다. 머릿속이 잠깐이지만 복잡하게 뒤엉켰다.
여기서 검성이라는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마지막은 하동이라고 들었는데.”
“예, 저도 그렇게 들었지요.”
“그런데 여기 황산에 있다고?”
“그렇습니다.”
“확실한가.”
“의심할 바 없이.”
단순히 영검살귀의 입에서 검성이라는 말이 나와서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감각권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접근하였고, 촉박하게 펼쳤다고는 해도 자신하여 숨어든 지령장신술을 단숨에 파훼했다. 설마 발구름 따위로 땅속에 숨은 자신을 단번에 제압하고, 끄집어 내리라고는 조금도 생각 못했지만.
더 따질 것 없이, 그는 종남의 검성이었다.
이미 살정의 명부에 올라 있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명부에 올라있는 검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왔다는 건가?”
“허, 그러면요? 설마 제가 쓰임이 다했습니까? 그저 죽으라고 보낸 겁니까?”
“흐음.”
이살군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눈으로 은삼호를 흘겨보았다. 적의까지는 아니지만, 그는 분명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
내심 불쾌감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까지 이끌어준 자신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다니.
그러나 쓸 만한 패가 많이 줄어 있는 것도 사실.
이살군은 자존심 때문에 실리를 포기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일살군이었다면, 고개를 들기가 무섭게 적어도 한쪽 팔은 받아갔겠지만.
‘후우, 그런 단순 무식한 놈과 비교할 건 아니지.’
어쨌든, 지금 살정에서 최고의 살수는 의심할 것 없이 일살군이었다.
이살군도 자신의 솜씨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냉정하게 일살군과 살법을 말한다면, 반 수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후우, 은삼호가 무사히 빠져나온 것만도 다행인가. 마운곡을 정리하기에는 사람이 부족하니. 그렇다면, 역시…….’
이살군은 잠깐 고민하다가, 정자 앞에 서 있는 은삼호를 힐끔 돌아보았다. 찌푸린 눈썹 아래에서 의심의 빛이 솔직하게 맺혔다.
“그런데 종남검성까지 있었다면서, 자네는 어떻게 탈출한 건가?”
“어떻게라니요. 제 장기를 모르십니까?”
“그러니 묻는 게 아닌가.”
“예?”
“종남검성, 그는!”
이살군은 다급하게 한소리를 하려다가 말을 끊었다.
어디선가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스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