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0)
특성 쌓는 김전사-10화(10/300)
고시원 탈출 -1-
고시원 탈출
“으으, 죽겠네.”
낡아빠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침대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나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전신에 알이 배어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절규를 토하고, 세상이 출렁이면서 나를 넘어뜨리려고 했다.
‘특성 전환도 만능은 아니야.’
특성을 바꾸면 몸도 바뀐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
문제는 후유증이 남는다는 사실.
단순히 근력이나 활기를 삭제할 때야 괜찮았지만, 돌연변이 삭제의 후폭풍이 뒤늦게 몰려오고 있었다.
‘고레벨에서 돌연변이를 삭제하면 죽을지도 몰라.’
하긴 변이체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나지.
앞으로도 어쩌면 한두 번은 내 목숨을 구해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늪에 잠기는 느낌이 엄습해 오고, 이내 칠흑 같은 어둠이 내게 손을 뻗었다.
“크으움······”
정말로 죽은 듯이 잤다.
괴로운 것은 그 와중에도 정신이 얕게 깨어 있었다는 점이다.
“X년이 X같X 구니X XX아 죽XX린다!”
“왜 XX테 난X야! 의사 XXX도 소개XX주X 해줄 X XX줬는X!”
“XX이 그래도!”
그래서인지 소음이 다 들렸다.
고시원의 일상.
누군가 싸우는 소리.
귀에 익은 목소리였지만 반쯤 잠든 내 정신은 누구 목소리인지 인지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끼무룩 멀어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할 뿐.
몇 시간이 더 지났을까?
섬뜩하고도 날카로운 비명이 칼날처럼 내 고막을 찢었다.
“아아아아악!”
강제로 고막을 열어젖히고 대뇌에 꽂히는, 그래서 선잠을 자는 중이든 숙면 중이든 일어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비명.
나는 퍼뜩 상체를 일으켰다.
새벽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 방. 머리맡에 놔둔 스마트폰이 오전 5시를 출력하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새벽부터 왜 이래! 잠 좀 자자, 잠 좀!”
이상함을 느낀 이웃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곧 입을 다물게 된다.
“흐아아아아아······”
바람 새는 듯한, 절망과 공포로 버무려진 신음이 길고도 낮은 음색으로 울려 퍼진 탓이다.
단순한 비명도 신음도 아니다.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불길하고 섬뜩한, 뭔가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게 하는 쇳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다들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어떤 아줌마는 부엌칼을 들고나오고, 어떤 아저씨는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어디야?”
“관리실! 관리실이었어!”
“관리실이라고?”
“뭐야, 아줌씨가 칼이라도 맞았나?”
관리실은 출입구 바로 옆에 있다.
드나드는 사람은 반드시 얼굴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곳.
우리가 관리실 앞을 막아서기 무섭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풀린 눈.
게게이 흘리는 침.
반쯤 틀어져서 장착된 강철 턱.
얼기설기 심어놓은 톱니바퀴 이빨.
미친 과학자에게 생체 실험이라도 당한 듯한 몰골.
손에 든 칼, 피가 묻어 있다!
“제, 젠장.”
“빌어먹을.”
열린 문 사이로 주인 아줌마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피 웅덩이가 잔뜩 번져가는 중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 출혈량은 이미 치명적이다. 신전의 사제가 와서 신성력을 쓰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지.
“흐흐흐!”
강철 턱, 이씨 아저씨가 푸들거리며 웃었다.
자기 손에 든 칼을 보더니 장난치듯 흔들었다.
“비, 삐껴! 따 삐껴!”
고시원 주민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새끼 약 빨았네.”
“술 안 처먹었을 때도 발광하던 인간이 약까지 빨았어?”
“비켜주자고.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저거 잡아서 뭐하게?”
괜히 설치다 칼 맞으면 나만 손해지.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나는 주먹을 살며시 쥔 채 강철 턱을 빤히 쳐다보았다.
‘잡을까?’
잡을 수는 있다.
아무리 약을 빨고 칼을 들었어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내가 비록 1레벨은 못 됐다고 하지만 근력과 밝은 눈 특성을 이용, 가구 같은 걸 몇 개 던지고 돌진하면 못 잡을 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나는 관리실 속 엎어진 아줌마를 한 번 힐끗 보았다.
자업자득.
월세 좀 연체했다고, 돈 좀 될 것 같다고 무면허 돌팔이한테 턱과 치아를 팔아넘기게 했으니 그 업보가 몰려온 것.
적당히 독촉이나 하고 법원에 강제 집행이나 신청하지 그랬어?
칼침 맞은 건 불쌍하지만 정말로 불쌍한 것은 강철 턱이다.
어쩌면 강철 턱이야말로 내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틀어서 길을 비켜주었다.
강철 턱이 지나갈 수 있게.
그런데 강철 턱의 행동은 내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조용히 지나가는 대신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 것이다.
“쭈꺼!”
이 새끼가?
거리는 고작 몇 미터.
아차 하면 덮쳐질 상황.
우연처럼,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소화기가 내 눈에 들어왔다.
우지끈.
소화기는 벽 한쪽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우격다짐으로 잡아떼는 내 힘을 이겨내진 못했다.
부웅!
그대로 휘두른다.
소화기가 거칠게 강철 턱에 꽂혔다.
퍼억!
찰진 타격음.
왼쪽 관자놀이에 제대로 맞았다.
안 그래도 맛이 가 있던 두 눈이 스르륵 풀린다.
땡그랑!
칼이 떨어져 소리를 내고, 휘청이던 강철 턱이 무너져 내렸다.
단 일격.
그것으로 충분했다.
약에 취한 알콜 중독자를 처리하는 것쯤은.
“히야.”
“허어, 대단하네.”
“이씨도 젊었을 때는 한 가락 했다고 들었는데······”
“역시 전사 씨야! 이름값 하네!”
“주, 죽은 건 아니지?”
“안 죽었습니다.”
경동맥에 손을 대보니 힘차게 뛰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쫄렸다고.
아무리 나라도 사람을 때려죽이는 건 그렇잖아.
고슴도치 머리야 이미 괴물로 변했었으니 상관없지만, 강철 턱은 그게 아니니까.
“경찰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20대 초반 아가씨가 부들부들 떨면서 묻는다.
그러자 머리가 훤히 벗겨진 아저씨가 코웃음을 쳤다.
“경찰? 부르면 오기나 한대? 그치들은 신고해도 안 와! 저어기 근린공원 위로는 애초에 손 놨다고!”
“그, 그치만 사람이 죽었는데요.”
“하루에 대한민국에서 죽어 나가는 인간이 몇인데? 신고하고 싶으면 해. 대신에 알지? 경찰들이 존나 귀찮게 한다는 거. 애꿎은 신고자가 가해자로 둔갑해서 빵 들어갈 때도 있어.”
“설마요.”
“진짜라니까? 내가 직접 본 거야. 짭새들이 얼마나 실적에 눈이 멀었는지 몰라? 그리고 신고해도 좋은데 좀 있다가 해.”
“왜요?”
아저씨는 대답하는 대신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축 뻗어버린 아줌마를 보곤 혀만 몇 번 찬 뒤 주머니에서 철사 한 가닥을 꺼냈다.
다른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보쇼, 양씨. 사람이 죽었는데 그러고 싶소?”
“시발. 시체가 밥 먹여주나. 그럼 댁은 방에 들어가서 처자던가. 엔빵할 건데 받아가지 말고.”
“아니. 안 받겠다는 건 아니고······”
대머리 아저씨가 구석에 놓인 금고에 철사를 가져갔다.
자물쇠에 철사를 넣고 솜씨 좋게 몇 번 돌리자 철컥, 쇳소리가 나면서 금고가 열린다.
꿀꺽.
누군가 군침을 삼켰다.
곧 금고문이 열리고 내부가 드러났다.
안쪽에 보이는 지폐 뭉치 몇 개.
금고를 딴 대머리 아저씨가 한쪽에 가래침을 뱉었다.
“에이, 퉤! 뭐여. 악착같이 돈 받아가더니 6백이 전부야?”
“6백? 6백이라고?”
“시벌. 그냥 내가 다 가질걸.”
대머리 아저씨가 모인 사람들을 훑어본다.
워낙 시끄러운 탓에 고시원에 사는 사람은 다 모였다.
작은 고시원이지만 워낙 닭장처럼 벽을 친 탓에 적어도 20명 이상.
머릿수대로 나누면 인당 30도 안 돌아간다.
나는 먼저 손을 흔들었다.
“전 됐습니다.”
“어허. 전사 씨가 가장 많이 받아가야지.”
“그냥 월세 낸 셈 치겠습니다.”
사람이 죽은 것만도 심장이 벌렁거릴 일이다.
그런데 시체 옆에서 태연하게 금고를 따고, 금고 안의 돈을 나누자고 모의하고 있다니.
더 무서운 것은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다.
심지어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냐고 했던 아가씨도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방을 빼야겠어.’
아니, 이 동네를 아예 떠야겠다.
서울 중심가, 하다못해 중산층들 모여 사는 동네로 가면 낫지 않을까?
며칠 전 특성을 수집했던 근린공원 근처라도.
“전 가보겠습니다. 전 그냥 없었던 걸로 해주세요.”
“흐, 그러지. 뒤처리는 확실하게 해주겠네. 우리도 철권파 무서운 건 똑같거든.”
“철권파요?”
“어. 요즘 이 근방을 먹은 갱단 말이야. 거기 보스가 집요한 성격이라 괜히 얽히면 골치 아파지거든. 여기 아줌마도 거기다 상납하고 있었을 거야.”
듣고 있던 아가씨가 걱정스럽다는 듯 묻는다.
“그럼 이거 나눠 가지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무서우면 안 받으면 돼.”
“그, 그건 아니고요.”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아침에 깨보니까 죽어 있었다고 하면 돼. 나머지는 철권파에서 알아서 다 하겠지. 이 건물이 누구한테 갈지는 모르지만 철권파도 상납금만 따박따박 받으면 그만이거든. 그리고 이씨는······”
대머리 아저씨가 금고를 잠그고는 쓰러진 강철 턱을 내려다보았다.
근처의 주민들이 서로 은밀한 눈빛을 나눈다.
“우리가 적당히 알아서 처리하지.”
“그, 그러세요.”
아가씨는 겁먹은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자기 몫으로 배당된 신사임당 몇 장을 낚아채듯이 받아들고는 계단으로 뛰어간다.
대머리 아저씨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아침부터는 저 아가씨도 안 보이겠고만.”
“어디 가서 말 옮기고 다니진 않겠지?”
“그럴 리가. 또 그래봤자 뭔 소용이야. 저 아가씨도 공범인데.”
“하긴.”
“전사 씨도 아침부터는 우리랑 모르는 사이인 겁니다. 아셨죠?”
“알겠습니다.”
나도 방으로 돌아왔다.
짐은 없다. 있어 봐야 낡아빠진 옷 몇 벌에 자질구레한 것들이 전부.
대신 가방이 있었다.
현금 천이백만 원과 0레벨 마력핵 백여 개, 1레벨 마력핵 1개가 들어 있는.
묵직한 가방을 들자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젠 진짜 무겁게 잤지.’
너무 피곤해서 되레 푹 자지 못했다.
정신이 반쯤 깨어 있었지만, 제대로 외부 상황을 인지할 수가 없었고.
만약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왔다면?
조용히 내 심장에다가 칼이라도 꽂았다면?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새삼스레 방금 봤던 대머리 아저씨의 자물쇠 따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마도 좀도둑 출신인 모양.
이 고시원에, 또 이 고시원 골목에 자물쇠 딸 줄 아는 게 대머리 아저씨뿐일 리가 없다.
그리고 이 인간들은 현금 천만 원쯤 먹을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작자들이다.
‘위험해.’
단지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빨리 여길 떠야 한다.
나는 가방을 들고는 빠르게 복도를 가로질렀다.
아직도 관리실과 관리실 바깥 복도에는 고시원 주민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끈으로 목을 졸라서······”
“그러지 말고 박 선생님한테 그냥······”
“의체는 시체보다는 살아 있는······”
“······아줌마 딸이······”
“······동생이······”
“······철권파 김철권······”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 한 명은 있었다.
내 가방을 한 번 보고는 몸을 빼서 안쪽으로 걸어간다.
급히 챙기느라 남아 있을 짐을 가져가려는 모양.
이쯤 되면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어휴.”
특성을 수집했던 근린공원까지 내려와 벤치에 앉았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마귀할멈 손톱처럼 세상을 할퀴는 듯하다.
‘움직여야지.’
넋 놓고 있어 봐야 죽도 밥도 안 된다.
다짐했잖아.
살아남겠다고.
그러려면 오늘 일은 대충 넘기고 내일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다.
뭐가 힘들다고 죽상이야?
전세금 사기당하고 고시원 들어가던 때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카드빚은 좀 있지만 광질만 반복해도 금방 갚는다.
“가자.”
고시원에서 탈출했으니 집부터, 방부터 구해야지.
미리 봐두었던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향해 돌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