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9)
특성 쌓는 김전사-9화(9/300)
고슴도치 -2-
눈동자가 흔들린다.
“말도 안 돼.”
그러다 시선이 내 얼굴에 못 박힌 듯 고정된다.
“초인······ 초인이셨어요?”
말투가 좀 바뀌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은.”
지금이라도 돌연변이 특성을 불러오면 당장에 초인이 된다.
문제는 후유증.
전신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머리가 얼마나 어지러운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하다.
활기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며칠은 푹 쉬어야겠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한 느낌을 억누르며, 고슴도치 괴인 시체에 다가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임시로 추출 특성을 장착한 다음 단숨에 뽑아낸다.
물컹해진 가슴뼈 사이, 작은 돌멩이가 내 손에 딸려 나왔다.
새끼손가락 크기 정도 될까?
유리처럼 투명하면서 수면 위의 기름때 같은 묘한 광택을 발하는 돌이었다.
마력핵.
1레벨이니만큼 어느 정도 가치는 있었다.
그렇다고 인생 역전할 정도는 아니고.
“뭐, 뭐야?”
“끝났어?”
“변이체가 죽었다!”
“뭐? 죽었다고?”
“우린 살았어!”
아저씨들이 슬금슬금 돌아왔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더니 하나같이 입을 쩌어억 벌린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시체를 봤다가 나를 쳐다본다.
여기에 눈치 없는 사람은 없다.
“후배님! 후배님께서 하신 겁니까?”
“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왜 이렇게 귀한 분이······”
다들 나를 초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하기야 1레벨 변이체를 잡을 수 있는 건 초인밖에 없다.
대구경 산탄총이나 자동소총이라도 들고 왔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는 굳이 아니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더 볼 일이 없는 인간들.
초인이 아니고 어쩌고 설명하려면 내 입만 아프다.
다만 노루가 다가가 뭐라고 속삭이는 게, 내가 아직은 초인이 아니라고 한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 돌아가죠.”
“예, 아! 예!”
“모두 갑시다!”
“저건 어떻게 하죠?”
시체를 보며 묻자 아저씨 하나가 쓰게 웃었다.
“공무원한테 말하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사실, 이런 일은 가끔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흠, 흠. 저기 죄송한데, 가시 몇 개만 챙겨도 되겠습니까?”
“가시요? 아, 머리카락?”
“예. 저런 거 수집하는 놈들이 있어서요.”
“마음대로 하세요.”
아저씨들이 씩 웃고는 시체에 몰려갔다.
내팽개쳤던 삽을 주워서는 시체 머리를 거칠게 내리친다.
깡! 깡!
죽어서 마력이 흩어지고 흐물흐물 연약해진 시체.
살아 있을 때는 강철 같던 금속 가시도 뿌리 부분이 썩은 살점처럼 흐물거렸다. 따라서 삽질 몇 번으로 가시를 간단히 떼어낼 수 있었다.
노루도 슬쩍 일어서더니 시체에서 금속 가시를 몇 개 가져갔다.
내가 알기로 별 가치는 없는 물건인데 수집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
“아저씨. 이젠 편히 쉬어.”
노루가 호주머니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 입에 물려주었다.
탁한 갈색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다른 아저씨들도 시체 입에 싸구려 담배니, 찌그러진 사탕 따위를 집어넣었다.
“김씨, 성불하쇼.”
“거기선 아프지 말라고.”
“잘 가.”
“옛 아버지의 축복이 있기를.”
아저씨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명복을 빌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쓴맛이 혀를 찔렀다.
격식을 차려 조문하는 것이 아니다.
희희낙락하며 고인의 유체를 약탈하던 주제에 적당히 손을 흔드는 것이다.
하긴 나라고 저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지. 내가 마력핵을 추출하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시체를 일별하고는 자리를 떴다.
걷는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습기 찬 공기가, 축축한 분위기가 진흙 뭉치처럼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마침내 출입구에 도착.
문이 열리고 침침한 형광등 빛 대신 쨍한 햇볕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공기가 얼마나 맑고 시원한지 저절로 코를 벌름거리게 된다.
“후아!”
“드디어 밖이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길었어. 정말 길었어.”
“살았다······”
“술 빨러 갈 놈?”
“김씨는 이번 달 갚을 돈이 2천이라며.”
“내일 또 청소 뛴다고 하면 되지. 쌍놈들도 돈 벌겠다고 그 지랄 하는 건데 내 배를 가르려고 하겠어? 조금이라도 더 뽑아먹으려고 하겠지.”
“오늘은 삼겹살 파티야?”
“미쳤어? 내가 돈이 어딨다고. 고기 국밥 정도는 사줄게.”
“또 국밥이냐.”
“싫으면 말고.”
사무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밖에서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아침에 문을 열어줬던 공무원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벌써 끝났어요? 어, 사람이 한 명 없네요.”
“변이돼서 죽었어요.”
“안쪽에서요?”
“네.”
“추가 피해자는 없고요?”
“네.”
“운이 좋으셨네요. 저번 팀은 다 죽었었는데.”
노루가 인상을 팍 썼다.
재수 없게 왜 그딴 소리를 지껄이냐는 기색.
공무원이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에 들어가 봐야겠네······ 알겠습니다. 카드키 반납하시고 귀가하세요. 나가면서 방역실 들리고요.”
“예, 고생하십니다.”
“고생요.”
자기 일이 늘어서 귀찮다는 태도.
공무원은 대충 카드키를 받고는 사무실로 쏙 들어갔다.
방역실에 들러서 마력 정화기와 오염 검사기를 거친 후 주차장으로 이동.
주차장 한쪽에는 우리를 태우고 왔던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언제 왔는지 운전수가 운전석에 누워 쿨쿨 낮잠 자는 중.
노루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퍼떡 놀라며 깨어난다.
“어? 노루 님? 빨리 끝나셨네요? 몇 시간 뒤에나 나오실 줄 알았는데요.”
“그렇게 됐어.”
“고생하셨습니다. 어디······ 하나, 둘, 셋······ 어? 한 분이 안 보이네요? 고슴도치 아재는요?”
“알잖아.”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제길.”
운전수가 자기 목덜미를 주물렀다.
그러더니 조수석 글로브 박스에서 녹색 소주병을 꺼내 나발을 분다.
미친. 음주 운전을 하겠다고?
하지만 누구도 참견하지 않는다.
“박씨! 박씨만 먹지 말고 우리도 좀 줘!”
“아, 나 먹을 것도 없어!”
“그러지 말고. 우리도 죽을 것 같다고.”
“경찰에 꼰지른다?”
“빌어먹을 인간들. 한 모금씩만 마셔.”
아저씨들이 소주 나발을 불었다.
당연히 한 병으로는 모자랐다. 운전수가 투덜거리며 소주 두 병을 꺼내 더 돌렸다.
“캬아!”
“으아, 살겠다.”
“역시 박씨밖에 없어!”
“아저씨도 좋은 거 먹네? 소주에 뭘 처넣은 거야.”
“돈 벌어서 뭐해. 좋은 술 처먹겠지. 이제 출발할 거니까 잘 잡고 있어. 신삥은 안 먹게?”
내가 머리를 흔들어 거절하자 운전수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뭐라고 말하기도 전, 아저씨들이 먼저 난리를 쳤다.
“어허! 신삥이라니!”
“후배님이라 불러, 후배님! 예비 초인님이신데, 어디서 말버릇이 그따위야?”
“우리 후배님 아니었으면 우리 다 뒈졌다고!”
“후배님? 당신들 왜 그래? 어, 잠깐만. 예비 초인이라고? 진짜야?”
“그러엄!”
“우리가 다 봤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이젠 말을 섞기도 싫다.
버스 구석에 앉아 눈을 꾹 감았다.
운전수가 새삼스럽게 나를 보는 것이 느껴진다.
부르릉.
디젤 엔진이 경운기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다.
털털거리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버스.
평일 오후라 강변북로는 한가했다. 막히는 일 없이 쭉쭉 달릴 수 있었다.
덕분에 30분 만에 인력사무소에 도착.
다른 사람들이 양보해줘서 첫 번째로 소장과 면담할 수 있었다.
소장이 번쩍이는 눈으로 나를 주시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요.”
“예.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원일이한테 들었습니다. 김민수 씨······ 술을 좋아하셔서 그렇지 아주 성실하고 쾌활한 분이었는데 안타깝게 됐습니다.”
소장이 애도하듯이 고개를 숙인다.
찌푸려진 얼굴, 일그러진 미간.
그러나 그 표정이 악어의 눈물처럼 보인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역시나 고개를 들었을 때, 애도하는 빛은 물컵에 던진 소금 한 꼬집처럼 싸악 사라진 다음이었다.
“이제 일 이야기를 하죠.”
냉철하기만 한 사업가의 얼굴.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요.”
“뭐, 그럽시다.”
나라고 다를 건 없다.
“관리국에서 연락은 받았습니다. 구역 5개를 정화하셨다고요.”
“정확합니다.”
“아시다시피 전리품은 모두 습득자 몫이고, 구역 1개 정화당 정화비 천만 원이 지급됩니다. 총 5천만 원에서 제 수수료 20%가 빠지고, 나머지 4천만 원에서 여덟 분이 나누니까 5백만 원을 드려야 합니다만······ 오늘처럼 특수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그럴 수가 없죠.”
소장이 한쪽에 손짓을 했다.
철컥.
보란 듯이 전시된 금고가 열리고 신사임당 두 뭉치가 춤추듯 허공을 겅중겅중 뛰어왔다.
뭐야? 염동력이야? 아니면 마법?
신사임당 두 뭉치······ 아마도 천만 원이 내 앞에 안착한다.
“받으십쇼.”
소장이 손을 들어 지폐 뭉치를 가리켰다.
“김전사 님 몫입니다.”
천만 원.
내가 원래 세계에서조차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지 못했던 거금.
떨리는 손으로 지폐 뭉치를 집어 들었다.
소장이 묘하게 웃더니 또 한 번 손을 휘젓는다.
“초인, 예비 초인이라고는 들었습니다만 어쨌든 김전사 님을 다른 청소부들과 똑같이 대우할 수는 없지요. 김전사 님께는 수수료를 10%, 아니 5%만 받겠습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고요.”
열려 있던 금고 문이 한 번 파르르 떤다.
그와 함께 날아오르는 지폐 뭉치.
세종대왕님 한 다발.
아니, 두 다발.
이거면 분명히 2백만 원이다.
“조금 많은데요?”
지폐 뭉치를 받고 엉겁결에 입을 열자 소장이 씨이익 웃는다.
“그냥 조금 더 넣었습니다. 천원 단위, 백원 단위까지 따져서 가르면 정 없지 않습니까?”
“전 괜찮습니다만······”
“어허. 그냥 넣어두십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에서 드리는 뇌물입니다. 저랑 계속 거래하시면 절대 금전적으로 섭섭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소장이 수더분하게 웃어 보였다.
어제 면담했을 때와 비슷한, 그때보다 더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미소.
그래서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형만 믿어라!] [내가 다 알아서 해준다니까?]그렇게 호언장담하던 인간들이 했던 짓이 떠올라서.
하기야 냉정히 생각해 보면 소장이라고 다를 게 없다.
당장 말투부터 달라지지 않았나.
존대와 하대를 묘하게 섞어 쓰던 말투에서 철저한 존대로.
왜 그러겠어?
당연히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나는 차가워진 눈빛을 감추고 빙그레 웃었다.
“좋습니다. 이렇게 신경 써주시는데 소장님과 계속 거래해야지요. 믿고 있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김전사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든든합니다. 아직 식전이시죠? 제가 좋은 곳을 압니다. 같이 식사하면서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요?”
밥 먹이고 술 먹이면서 할 얘기는 뻔하다.
전속 계약서라도 쓰자고 하겠지.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아, 그럼 언제쯤······”
“글쎄요? 조만간 찾아오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연락 한 번 드리겠습니다.”
“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약서를 다시 쓰긴 해야지.
맨정신에.
내가 초인이 된 다음에.
만약에 그때 수를 쓴다?
그럼 끝이다. 죽은 고슴도치 머리 몫을 나한테 챙겨주고 자기 수수료까지 줄인 것은 고맙지만 비즈니스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돈 좀 더 줬다고 해서 노예 계약서를 쓸 생각은 없다고.
소장과 악수하고 인력사무소를 빠져나왔다.
흥얼흥얼.
생전 처음으로 천이백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어서일까?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그걸 자각하고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뭐 별수 없지.’
사람이 죽었다.
흉측하게 변이해서는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되레 그 잿밥에만, 전리품에만, 정화비나 수수료에만 관심이 있었다.
나 역시 그렇잖은가.
솔직히 말하면 내게도 소장을, 아저씨들을 욕할 권리는 없었다.
어쩌면 세파에 찌들어 닳고 닳은 나야말로 이 막장 세계에 어울리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흥.’
상관없다.
이름도 제대로 몰랐던 아저씨보다야 내 목숨이 훨씬 소중하다.
살아남는다.
그 한마디 명제를 가슴에 품으며, 얼굴을 새하얗게 굳혔다.
“후배님······”
대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날 보고는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수많은 시선이 내가 든 가방에 꽂힌다.
마력핵 백여 개와 현금다발로 불룩해진 가방.
나는 그들의 눈에서 아주 익숙한 감정을 읽어냈다.
탐욕, 그리고 질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