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30)
특성 쌓는 김전사-130화(130/300)
130화 신멸제 -3-
“글쎄요.”
나는 대충 시치미를 뗐다.
“처음 뵙습니다만.”
“어머나.”
성녀의 눈에 어린 장난기가 짙어졌다.
“다 아시면서.”
성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마법등을 켜 놓아 환하던 정원.
여전히 마법등이 빛나는 중인데 갑자기 어두워진다.
그리고 둥둥 떠오르는 존재감.
코앞에서 8레벨 마력 파장이 나를 찍어 눌렀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콱 죄어오는 이 느낌.
거인의 힘, 금강체, 불사, 삼위일체 빌드를 채용 중이 아니었다면 강제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성녀님이십니까.”
이제 알았다는 듯 묻자 성녀가 하얗게 웃었다.
“그래요. 오랜만이에요.”
거만하게 정원석에 걸터앉는 성녀.
나는 일어서서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력 파장은 거둬졌으나 잔향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신멸제로 바쁘실 분이.”
“신멸제가 아니라 부활제예요. 그리고 제 위치 정도 되면 이런 사소한 일에 다 관여하지는 않죠. 제 아래 대주교들이 알아서 하지.”
“부활제가 사소한 일입니까?”
“사소한 일이죠. 정말로 큰일에 비교하면.”
성녀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먹이를 앞에 둔 하이에나의 얼굴.
나는 담담하게 눈빛을 받아 냈다.
그러자 성녀의 입에 걸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알고 계시죠? 제가 큰 배려를 하고 있다는 거.”
“배려요? 어떤 배려 말입니까?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습니다만.”
“하하하. 제가 개입하지 않았으면 진작 그 비루한 육체가 끝장났을 거예요. 이상하게 생각한 적 없어요? 우리 교단의 상급 성기사를 죽이고, 이단심문관과 그 호위기사를 죽였는데도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게?”
“그건…….”
생각해 보면 그렇다.
옛 아버지는 매우 잔인하고 옹졸한 신.
신을 닮아 신도들도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그런데 내가 사자 기사 오두식을 죽였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정당한 결투였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리고 이단심문관?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성녀가 굳이 언급하는 것을 보면.
“다아 제가 뒤에서 손을 썼기 때문이라고요. 아시겠어요?”
“왜 그러신 겁니까?”
“그래야 위대한 영혼께서 우리 교단의 구원자이자 빛이 되시니까요.”
성녀가 두 손을 모았다.
눈동자가 어둑한 하늘을 더듬고 있었다.
“부디 무럭무럭 자라시길 바라요. 제가 기꺼이 협조할게요. 위대한 영혼의 비루한 육체가 깨지지 않도록, 영혼의 격에 어울리는 위대한 그릇이 완성되도록요.”
“미친년이!”
저절로 욕이 나왔다.
8레벨이건 뭐건 상관없었다.
대놓고 자기 신을 내 몸에 강림시키겠다고 하는데 욕이라도 안 하면 화병 나서 죽겠다.
“누가 당해 준대?”
“아하하하!”
광기 어린 눈을 번들거리는 성녀.
“지겹지도 않아요? 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거요. 이 지옥 같은 지구가 만악의 근원입니다. 모든 것을 잊고 옛 아버지께 본인을 바치세요. 그리하면 비로소 소금 같은 평안과 평화를 찾으실 겁니다.”
“지랄은 너네 안방에 가서 해.”
“언젠가 위대한 영혼께서도 제 진심을 알아줄 날이 오겠지요.”
“절대 안 와!”
“아하하하.”
성녀가 몸을 일으켰다.
눈에서 광기가 싹 사라져 있었다.
무섭도록 차갑게 돌변한 얼굴.
내 옆에 나란히 서서는 하늘을 가리킨다.
“보이세요?”
“뭐가!”
“다가오는 기쁨이요.”
“제발 꺼져 주면 안 될까?”
“오늘이에요. 오늘.”
성녀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오늘부터 모든 일이 시작됩니다. 구원자님 덕이 컸어요. 구원자님께서 열심히 분탕 치고 다니셔서 혼란이 있었고, 그 혼란 사이에서 저희는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었지요.”
“뭔 소리야?”
“조금만 지나면 아실 거예요. 조금만 지나면.”
이내 내 앞에 대고 조롱하듯 고개를 숙였다.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강녕하시길. 절대로 죽으면 안 돼요. 옛 아버지의 축복이, 잊힌 신들의 가호가, 대미궁에 갇힌 마신들의 은총과 대균열 너머 이계신들의 은혜가 부디 강물처럼 내리기를.”
쏴아아.
바람이 세게 불었다.
마력 섞인 돌풍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있던 성녀는 이미 사라진 다음이었다.
“흐우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뭐지, 이년은?
날 보러 온 것 같은데 왜 왔던 거야?
혹시나 싶어 몸을 더듬었다.
성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귀안과 육감까지 동원해 내 몸을 살폈다.
뭔가 수작을 부려 놓은 것도 아닌데…….
정말 경고 하나 하려고 온 건가?
‘중간 점검이라도 하러 왔나 보네.’
제물이자 그릇으로 쓸 만큼 잘 자라고 있는지.
문득 소름이 끼쳤다.
성녀가 직접 날 챙기고 있는데 과연 그 마수를 피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해내야지.’
못 하면 악신에게 잡아먹히는 거다.
성녀가 예상하는 범위를 넘어서 강해져야 한다.
8레벨보다 더.
9레벨을 넘어서 그 이상으로.
옛 아버지가 부활하더라도 이길 수 있게.
“후우우.”
다시 한숨.
천마도 버거운데 신이라니.
그것도 한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신멸 전쟁을 벌였던 옛 아버지가 상대라니.
그래도 해야지.
자살할 거 아니면.
살고 싶으면.
나는 성녀가 앉았던 정원석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성녀가 흘린 정보가 몇 개 있었다.
우선, 위대한 영혼.
성녀는 나를 보고 위대한 영혼이라고 불렀다.
처음 만났을 때는 티배깅인가 싶었는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다.
성녀는 진심으로 나를 위대한 영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전사의 육체는 비루할 뿐이라고 말했고.
‘위대한 영혼…… 날 말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절대 위대하지 않다.
원래 세계에선 널리고 널린 실패자였다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호구처럼 당하기만 했지.
일도 사랑도 인생도 모두 실패.
막노동과 상하차와 날품팔이로 연명하며 혼자 고시원에서 시들어 가는 신세였다.
‘특성 전환을 두고 한 말일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김전사의 백지 신체가 육체 귀속 능력이라면 특성 전환은 영혼 귀속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럼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지.
나는 절대 위대하지 않지만, 특성 전환은 정말로 위대한 능력이니까.
‘오늘부터 모든 일이 시작한다?’
사실 이 말이 가장 신경 쓰였다.
‘내가 분탕 쳐서 혼란이 생겼고, 그사이 많은 일을 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질 하긴 했다.
굵직한 사건만 꼽아 봐도 청소부 협회 궤멸과 사냥꾼 협회 권력 이동, 금오 그룹 승계 사건을 들 수 있지.
그밖에 자질구레한 건 셀 수도 없고.
이걸로 옛 아버지 교단이 이득을 봤다면, 그건…….
“설마?”
머리를 후려치는 가능성 하나.
벌써?
게임 본편이 시작하지도 않은 시점에, 준 확장팩급 콘텐츠였던 에피소드 1이 오늘 시작한다고?
그럼 말이 된다.
성녀는 내가 에피소드 1에 휘말려 죽을지 살지 확인하러 온 게 분명했다.
내가 픽 죽어 버리면 에피소드 1을 앞당긴 보람이 없으니까.
차라리 예정대로 몇 년 뒤에 시작하는 게 낫지.
“젠장.”
어쩌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하필이면 날짜가 12월 24일이다.
연도만 다르지 에피소드 1 서울 테러의 배경과 완벽하게 같은 날짜.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 막을 수는 없어.’
내가 8레벨, 하다못해 7레벨만 됐어도 주요 목표를 다 막을 수가 있었다.
비상 연락만 돌려도 대한민국의 모든 기관이 경각심을 가지고 경계 태세를 강화했겠지.
하지만 나는 겨우 5레벨.
대한민국의 고위층이 보기에 앞날이 유망할망정 아직은 저레벨.
내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우선 전화를 돌렸다.
[구형원 사단장]묵호검을 받을 때 연락처를 얻은 것이 있었다.
마탑주처럼 군단장 직통 전화번호가 있으면 좋겠지만 꿩 대신 닭.
한참 신호가 가고 구형원이 전화를 받았다.
[어, 자네? 어쩐 일인가? 소식은 들었네. 요즘 잘하고 있더라고. 요즘처럼만 하게.]술 한잔 걸쳤는지 꼬부라지는 혀.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했다.
“대통령이 위험합니다.”
[뭐어…….]“다시 말씀드립니다. 대통령이 위험합니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무총리, 부총리 두 명 모두 위험합니다. 제가 방금 입수한 정보대로라면 네 명 모두 오늘 밤 암살당할 겁니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나?]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내 추리가 확실한지 생각해 보느라.
확실했다.
내 판단이 아니라 성녀의 행동을 믿었다.
게임에서도 성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하거든.
처음에는 신비주의 컨셉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아니었지.
자기가 범인이어서 있어 보이는 척 흘리고 다니던 거였다.
“분명합니다. 책임질 수 있습니다.”
[알겠네. 내 직접 처리하지.]“군단장님께도 꼭 말씀 전해 주세요.”
[그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꼭 부탁드립니다. 군단장님께서도 아셔야 합니다.”
구형원 혼자 처리해서는 안 된다.
직접 발로 뛰면 모를까, 구형원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뒤에서 명령만 내리고 퀘스트나 주는 지휘관형이라고.
대통령을 습격하는 암살자는 7레벨.
구형원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 한 막지 못한다.
그리고 구형원이나 7레벨 초인을 대통령에게 보내려면 군단장이 이번 일을 알아야 한다.
구형원이 기분이 상했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기껏 따 놓은 호감도가 내려가는 느낌.
별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돌렸다.
두 번째는 태양 마탑주.
[테러? 서울 전역에? 허허, 이보게. 서울이 그리 만만한 도시인 줄 아나? 그건 불가능해. 우리 마탑도 그렇게는 못 한다네.]“뒷골목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개인적으로 99% 신뢰도를 확신합니다.”
[고작해야 뒷골목…….]“불사조 계곡 정보 출처가 어디였는지 기억하시죠?”
잠시 말이 없던 마탑주.
곧 수긍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듣고 보니 그렇군. 좋아. 내 지금껏 자네 말을 들어 손해 본 적이 없지. 단, 각오하게. 만약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할 거야.]“당연하지요. 약속드리겠습니다.”
[서울에서 보세.]세 번째는 금오 그룹 성희영.
[안 그래도 요즘 뒷골목이 소란스럽다는 보고는 받았는데, 테러라고요?]“예. 미리 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초인탑, 광화문역, 강남 백화점, 한강대교들이 목표라고 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받으셨어요?]“비밀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무시하겠는데…….]성희영은 실연의 감정은 다 털어 버린 목소리였다.
[좋아요.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았는데 대비하도록 하죠.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해요.]“좋습니다.”
[그때 봐요.]성희영이 명랑해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전화한 곳은 토르 교단과 가이아 교단이었다.
별로 기대는 안 했다.
신멸제에 진심인 두 교단이라 이미 흥청망청 취해 있어서.
토르 교단 대주교도 가이아 교단 대주교도 적당히 알겠다고 하곤 넘어갔다.
내가 할 건 다했다.
나머지는 전화 받은 사람들, 특히 셋에게 기대를 걸어 봐야지.
시간이 별로 없다.
완벽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고 딱 한 명만 지켜도 된다.
대통령.
게임에서는 대통령, 국무총리, 부총리 둘이 연달아 암살당했다.
마도과학부 장관이 임시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지만 제대로 대응하진 못했지.
국회의원들도 많이 죽어서 여야 당쟁에 불이 붙었거든.
나중에야 당쟁의 핵심이었던 [윤병진 국회의원]이 성녀의 지령을 받았다는 것도, 서울 테러의 한 축이었던 암살 조직 보스였다는 것도 밝혀지지만 에피소드 3은 가야 벌어지는 일.
생각해 보니 윤병진은, 사냥꾼 협회 전 협회장은 나한테 죽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차이는 없겠지.
게임에서도 크게 비중 있는 빌런은 아니었어.
전 협회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초인 빌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다.
‘일단은…….’
슬슬 자정이 가까워진다.
마음이 급해졌다.
서울 전역을 무차별적으로 타격한 에피소드 1 서울 테러.
그 공격권에는 바로 이곳, 인도 대사관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칼리의 부모님이 공격받아 사경을 헤매고, 어떻게든 살아남긴 하지만 이때의 트라우마로 칼리가 초인이 되는 것이 배경 설정이었다.
“소린아! 쟈네트!”
급히 대사관 건물로 뛰어들었다.
칼리랑 하하호호 수다 떨던 둘이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잠깐 이쪽으로 와 봐.”
으슥한 곳.
칼리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둘에게 당부했다.
“너희 둘 다 지금부터 칼리 옆에 꼭 붙어 있어.”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무슨 일 있어요?”
“내가 발이 넓은 건 알지?”
“그럼요. 선생님 인맥 진짜 화려하시잖아요.”
“우연히 얻은 정보가 있는데, 대사관이 곧 공격받을 거란다.”
“네에?”
“에에?”
백소린도 쟈네트도 화들짝 놀랐다.
“거의 확실한 정보니까 꼭 칼리 옆에 있어. 누가 오든 조금만 시간을 끌어. 내가 금방 처리하고 갈 거니까.”
“선생님은요?”
“정문을 지켜야지.”
인도 대사관 공격의 진짜 전력은 정문에서 온다.
대사 부부가 공격당한 것은 암살자들이 저지르는 일.
백소린과 쟈네트라면 시간은 끌어 줄 것이다.
따로 경호원도 있으니까.
둘이 알았다고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칼리와 어울리는데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
칼리도 이상함을 느끼고 왜 그러냐고 물을 지경.
나는 셋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화려한 정원 중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커먼 하늘.
마력 구름에 가려 오늘따라 더 어두워 보이는 밤하늘.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자정.
00시이자 12시.
“후읍.”
심호흡하며 무장 상태 점검.
허리에 찬 묵호검과 묠니르를 한 번씩 쓰다듬고 권총 두 자루, 등에 멘 저격총과 산탄총을 점검한다.
그리고 축제를 즐기면서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던 공간 확장 골프백도.
꽈과광!
대폭발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때.
“꺄아악!”
“엄마아아!”
“뭐, 뭐야! 뭔 일이야?”
비명과 혼란을 신호로.
에피소드 1, 서울 테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