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263)
특성 쌓는 김전사-263화(263/300)
특성 쌓는 김전사 263화
영혼 전쟁 –2-
인지가 흔들린다.
시선이 강제로 고정된 가운데, 인식이 뒤틀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비웃음만 한 번 날려 주었다.
‘겨우 이 정도야?’
텁, 텁.
발을 끌며 걷는다.
스산한 적막 속에 내 발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렇게 옛 아버지 앞에 도착.
골프백을 대충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았다.
“안녕.”
옛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잡탕 새꺄.”
잡탕, 격식 있게 표현하자면 혼종.
외계에서 강림한 외신과 지구에서 태어난 토착신의 융합체.
그것이 옛 아버지의 정체였다.
그러니까 잡탕이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겠지.
[후후후.]옛 아버지가 입을 벌리며 웃었다.
벌린 입 사이, 묵빛 허무만 아귀 목구멍처럼 넘실거렸다.
[신기한 호칭이로군.]“불만 있어?”
[후후. 마음대로 불러라. 내 그릇, 내 미래의 동반자여.]“누가 순순히 먹혀 준대?”
양쪽 중지를 나란히 들어 올렸다.
쌍퍼큐나 먹어라.
욕을 하건 말건 옛 아버지는 흐물거리며 웃을 뿐이다.
[내 그릇께서 화가 많이 나셨군. 뭐가 그리 화가 나지?]“그릇이라고 하지 마.”
[그릇을 그릇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지?]“순순히 당해 줄 것 같아? 천만에. 내가 예언 하나 하지. 넌 날 놓치고 손가락만 빠는 신세가 될 거다. 아니, 이름도 신위도 신격도 모두 잃고 하찮은 악마 새끼가 될 거다. 꼭 그렇게 만들어 주지.”
에피소드 3의 최종 보스는 성녀다.
성녀는 페이즈 3에서 불완전하게나마 옛 아버지를 소환한다.
거기서 승리하면 옛 아버지는 신성의 조각을 떨어뜨리며 신위를 잃는다.
김사제네 신처럼 되는 거지.
일개 악마, 혹은 정령이 되고도 지금처럼 어깨에 힘 빡 줄지 한번 보자고.
[후후후.]웃음을 터뜨리는 옛 아버지.
[그릇이여. 내 미래의 동반자여.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왜. 미물 주제에 널 이길 수는 없다고 말하려고? 그거 너무 진부해. 다른 대사를 읊어 봐.”
옛 아버지가 느긋하게 상체를 기울였다.
나를 향해서.
덩치는 분명 나랑 비슷한데 압도적인 존재감이 휘몰아친다.
단지 분신, 그 단말, 무한히 뻗은 촉수 중 일부에 불과함에도 거산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
[그릇이여.]옛 아버지가 날 주시한다.
[아무리 이차원에서 특수한 방법으로 이 세상을 관측했다 한들, 일개 인간이 전지(全知)할 수는 없는 법이다.]“흥.”
[그릇이여, 그릇이여. 네가 관측한 지식이 대부분은 맞았을 것이다. 이 세상의 비밀이 네 작은 뇌 주름에 무한에 가깝게 새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릇, 네가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 느꼈지 않나? 네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그건 그렇다.
8레벨이 되면서 느꼈지.
군단장이 단전에 심어 놓은 마력 씨앗을 통해 기억을 살펴볼 때에.
정신과 시간의 방을 통해 세계 특성을 발아하던 때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릇이여.]옛 아버지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대는 운명을 바꾸었으되 숙명을 바꾸지는 못했다.]손가락이 흐물거리며 움직인다.
묘한 수인과 함께 시야가 뒤바뀐다.
당연하다는 듯 깨어나는 운명안.
보인다.
세계의 운명이.
또 내 운명이.
꿈틀꿈틀 뻗어 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
방사형으로 세계를 향해 질주하는 운명선.
끝에서는 모조리 한 점으로 수렴하고 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옛 아버지에게.
옛 아버지가 촉수 같은 손가락을 뻗어 운명선을 어루만졌다.
[그릇이여. 너는 실로 놀라운 위업을 이뤄 냈다. 원래 이 세상은 작년 부활제에 운명이 결정되었어야 했다. 최소 수백만이 죽고, 도시의 절반이 불타고, 혼란과 무질서가 독버섯처럼 자라났어야 했지.]서울 테러 얘기다.
[그러나 너는, 그릇은 그 운명을 바꾸었다. 어디 그뿐이냐? 뒤따르는 죽음의 궐기를 완전히 지워 버렸지. 본래 핵폭탄처럼 번쩍였어야 했을 죽음은 고작 모닥불이 되어 지펴지다가 그마저도 진압당했다.]저건 좀비 사태 얘기고.
[그 결과 나는 온전한 부활을 포기했어야 했지. 보아라, 그릇이여!]옛 아버지가 손가락을 찔렀다.
두 가닥 선이 그어졌다.
더없이 파괴적으로 흔들리는 선 하나.
약간의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훨씬 안정적인 선 하나.
평행하게 달리는 선 두 가닥.
[운명이 이토록 바뀔 줄 누가 알았겠느냐? 하지만 다시 보아라, 그릇이여! 이 두 선이 결국은 어디로 이어지는지!]종착지는 똑같았다.
둘 다 옛 아버지에게 꽂히고 있었다.
내게서 뻗은 모든 선이 옛 아버지에게 수렴하듯이.
가슴이 저려 온다.
저게 정말인 것 같아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나는 납득하는 대신 코웃음만 쳐 주었다.
왜냐.
아랫배에 자리 잡은 영웅 특성이 속지 말라고 나를 콕콕 찌르고 있었으니까.
“흥. 헛소리하기는. 그 운명도 바꿔 주지.”
[후후후. 네 운명은 이미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릇.]손가락이 점점이 허공을 짚었다.
[하찮은 짐승의 종을 홀로 쓰러뜨렸을 때.] [너는 내 신국으로 초대받는 운명을 뒤집었다.] [내 성녀를 기만하고 심장에 검을 꽂았을 때.] [너는 나를 섬기는 제1 사도의 운명을 벗어났다.] [지금 내 앞에 도달한 이때.] [너는 영혼이 잠식당하는 미래를 지우게 되리라.]과거형과 미래형이 혼재한 어투.
한 사건 한 사건을 언급할 때마다 선이 그어진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옛 아버지가 손을 그러모았다.
선들이 모인다.
옛 아버지에게로.
다른 운명선들이 그러하듯이.
[네 숙명이다. 숙명적으로 너는, 그릇은 내 육체가 되고 정신이 되어 불멸을 함께하리라.]“개소리!”
더는 못 들어 주겠다.
타앗!
몸을 던졌다.
묵호검을 찔러 넣는다.
평범한 검강도 아니다.
흑백 검강이, 중첩시켜 우주처럼 보이는 검강이 옛 아버지를 관통했다.
옛 아버지는 대항하지 않았다.
심원한 안광을 발하며 날 마주 볼 뿐이다.
[반항해도 소용없다.]차분한 일성.
[도망쳐도 소용없다. 그릇이여, 네가 내 그릇이 되는 것은 모두 예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여라.]나는 묵호검을 비틀었다.
네피림의 검이 존재 자체를 흐트러뜨린다.
그게 고통스러웠던지 옛 아버지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래.
너도 고통을 느끼기는 하는구나.
“속을 것 같아?”
옛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가이아한테 이미 들었어. 난 이계인이라 이 세상의 운명에서 자유롭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느냐?]옛 아버지가 입을 벌려 웃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그릇, 너는 이계인이되 이계인이 아니다. 너는 엄연히 이 세상 출신이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 무수히 윤회를 거듭하였고 전능자의 격까지 영혼을 진화시킨, 현계인이란 말이다.]충격이 머리를 후려갈긴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내 연원은 이 세상에 있다.
아마도 이 세상 역사에 기록되었을 어느 위인.
그게 내 전생이니까.
그렇다면 큰 운명의 틀에서는 나도,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가게 되는 거 아닐까?
‘무섭네, 이 자식.’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전부 옛 아버지가 날 현혹하려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운명? 숙명?
그딴 게 존재한다면 모조리 찢어발기고 말겠다!
“내가 탐나긴 탐나나 봐? 이런 개소리를 지껄이고 말이야.”
[훗. 당연히 욕심나지 않겠느냐. 그릇이여, 네가 만난 신들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 같이 널 갖고 싶어 안달 내지 않더냐?]“전능자니까 당연하지.”
[흐하하하!]뭐가 그렇게 웃긴 걸까?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그러면?”
[너야말로 모든 초인의 최고봉. 고금제일좌, 승천좌이자 해탈좌이고 예비된 세상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아느냐? 네가 육신을 입었을 때 모든 신들이 전율했었고 육신을 버렸을 때 모든 신들이 안도했다는 사실을?]“뭐?”
고금제일좌? 승천좌? 해탈좌?
예비된 세상의 주인?
이건 도대체 무슨 거창한 칭호야.
도무지 이 질문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전생에 누구였는데?”
짧게 비웃는 옛 아버지.
[그걸 내가 말해 줄 것 같으냐? 그러다 그릇, 네가 전생을 각성이라도 하게? 잘 찾아보아라. 운명을 한 번은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숙명은 바꾸지 못하겠지만, 잠깐은 좋은 꿈을 꾸겠지.]머릿속에 저장된 모든 별명을 검색한다.
나오는 건 없었다.
아마 신들 사이에서 불리던 별명인 모양.
“그렇게 잘 아는 새끼가, 성녀가 칼침 맞게 놔두셨어?”
검에 힘을 더하며 빈정거렸다.
“내가 너였으면 말이야. 그렇게 운명과 숙명을 다 보고 있으면 함정 완벽하게 파서 네 신전에서 도망치지도 못하게 했겠다.”
[왜 그래야 하느냐?]“뭐?”
[어차피 망가질 장난감이다. 길어 봐야 1년도 못 살 가축. 적당한 시점에 폐기 처분 하여 마력으로 바꾸어야 마땅하지. 그런 점에선 성녀, 그 최상급 고기는 내가 특별히 기억해 주기로 했다. 하찮은 고깃덩어리 주제에 정말로 큰 공을 세웠으니.]“와…… 너는 진짜……”
역대급이네 이 새끼.
성녀는 인류 구하겠다고 자기 육체에 영혼에 미래까지 다 바쳤는데 저따위로 나와?
이 세상 신격이 다 그렇지.
토르나 가이아 정도면 아주 훌륭하신 인격자라고.
이미 죽은 오딘이나 제우스도 옛 아버지랑 비교하면 선녀로 보일 지경이야.
“이거 완전 개 같은 새끼네. 성녀가 불쌍하지도 않냐? 성녀는 너한테 몸도 정신도 영혼도 다 바쳤잖아.”
[훗.]옛 아버지가 짧게 비웃었다.
“뭐?”
[그 고기는 내게 그다지 신실하지 않다. 대안이 없어 나를 섬길 뿐이지. 그러니 내가 가축 취급한다 해도 억울하지는 않을 터.]말하는 거 보면 완전 광신도 그 자체였는데?
옛 아버지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비록 계획이 심하게 틀어졌지만 대계에는 영향이 없다. 성녀, 그 고기가 계획한 대로 널 내 그릇으로 삼고 부활할 것이다. 이 세계를 방주로 만들어 성녀가 관측하여 내게 보고한 세계로, 네가 살던 평행 세계 지구로 항해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신이 없는 세계를 정복하고 한 세계의 유일한 신격으로 우뚝 서리라!]뭐지 이놈?
왜 자기 계획을 술술 떠벌리지?
기만과 현혹이 일상인 옛 아버지.
뭔가 의도가 있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옛 아버지가 워낙 충격적인 말을 늘어놔서일까?
마력이 날 잠식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골프백을 타고, 다리를 타고 기어오른 시커먼 마력.
어느새 내 허리까지 까맣게 물들었다.
영웅 특성이 아니었으면 진작 잡아먹혔겠지.
더는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역천 특성 사용.
[끄아아악!]즉시 옛 아버지가 증발하며 비명을 지른다.
존재의 99%가 사라져 버린 것.
남은 것은 망령처럼 희끄무레한 흔적 한 줌이 전부.
옛 아버지가 꺼질 듯 깜빡거리며 말했다.
[후후후…… 역천의 권능으로 운명은 뒤집을지언정 숙명은 건드리지 못한다…… 발악해 보아라…… 그릇이여, 내 동반자여…… 너는 ‘우리’에게 먹혀 삼극신좌의 마지막 일좌가 되리라…….]“어, 꺼져.”
끝까지 재수 없는 소릴 하네.
세계 특성으로 역천을 복제.
마지막으로 터뜨리려는 순간, 옛 아버지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힘 또한 내 것이 되겠구나…… 그날만을 고대하고 있으마…… 승천좌여…… 해탈좌, 내 그릇이여…….]“꺼지라고.”
두 번째 역천 발동.
과아아앙!
웅장한 소리가 울린다.
세계가 붕괴한다.
아차원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옛 아버지가 흩어져 가루가 되고, 그 가루마저도 소멸하고 있다.
나도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어디론가 빨려 가는 감각.
이 세계로 이동해 올 때 느꼈던 감각이 또다시 나를 엄습해 오고 있었다.
반대로 천천히 부유하는 의식.
정신은 더욱 선명하게 맑아진다.
그리하여 눈을 떴을 때.
나는 익숙한 천장을 발견했다.
“휴.”
머리가 무겁다.
가슴에 박힌 단말은 완벽히 제거되었지만 찜찜함은 남았다.
옛 아버지가 남긴 비웃음이 날 어지럽히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정신을 집중해 본다.
운명안 개안.
내게서 뻗어 가나는 운명선을 귀안으로, 또 육감으로 추적했다.
“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진실.
옛 아버지의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었다.
내 운명선은 모두 한 지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도 어느 한 아차원에.
옛 아버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어느 세계에.
즉, 옛 아버지의 신국에.
“흥.”
그래서 어쩌라고?
난 주먹을 꽉 쥐고 콧방귀를 뀌었다.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든, 단순히 운명의 교차점이든 알 게 뭐냐.
거듭 말하지만 맥없이 죽어 줄 거면 이 세상에 떨어진 거 알았던 그때 이미 자살하고 끝냈다.
발버둥 칠 거다.
저항할 거다.
끝까지 대거리하고, 욕을 하고, 맞서 싸울 거다.
두고 보자.
누가 끝에 가서 웃는지.
과연 누가 상대 시체를 밟고 서 있을지.
[네가 이겼구나.]“걱정하셨습니까?”
[조금은. 옛 아버지는 결코 한미한 신이 아니지 않느냐. 그 단말이라 해도 인간에게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능자라 해도 마찬가지지.]하늘강의 여신이 팔랑팔랑 다가왔다.
고요한 어투를 들으니 비로소 안심이 된다.
그래. 나를 믿자.
아수라장을 헤쳐 온 나를.
그동안 쌓아 온 특성을.
또, 앞으로도 쌓을 특성도.
쿵쿵쿵!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여신님! 여신님! 검성님께서는 아직도 안 깨셨습니까?”
뭐야? 왜 저래?
아직도 안 깼냐니?
짚이는 것이 있었다.
급히 용의 군주관을 작동시켰다.
휴거를 사용해서 정신세계로 이동할 때는 분명히 8월 말이었는데, 어느새 9월로 변해 버린 날짜가 눈에 들어온다.
눈 한 번 감았다가 떴더니 거의 일주일이 지난 것.
튕기듯이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잠시 정적.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최선수의 목소리가 문을 뚫고 들렸다.
“맙소사, 지금 깨신 겁니까? 큰일 났습니다! 검성님!”
“왜 그래?”
“광주, 광주시가!”
경기도 광주.
옛 아버지 교단의 그림자 신전이 있는 곳.
“통째로 봉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