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63)
특성 쌓는 김전사-63화(63/300)
증거 -1-
증거
‘왜지?’
나는 머리 잃은 시체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앞서 말했듯 인간 사냥꾼은 궁지에 몰리면 마지막 발악을 하거나 항복한다.
그중 항복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래서 좀 뜻밖이었다.
인간 사냥꾼은 왜 발악하는 걸 선택했을까?
그것도 특수한 마약을 사용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한 번 변이체가 되면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데도.
‘이유가 있겠지.’
인간 사냥꾼의 시체를 뒤졌다.
허리띠, 방호복 호주머니, 방호복 아래 받쳐 입은 옷을 자세히 확인한다.
건진 건 딱 하나. 얍실한 반지갑이 전부였다.
그 흔한 스마트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반지갑에는 신분증과 카드키, 신용카드가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신분증.
얼굴은 똑같은데 이름은 여럿.
카드키마다 주소와 함께 이름이 적혀 있다.
[종로구 사직동 A 스테이트 b동 cde호] [김대식]이런 식으로.
활활.
불길이 다가온다.
주유소에서 시작된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삐뽀삐뽀 하는 경보음은 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질주해야 할 소방차는 없다.
대신 주민들이, 또 험상궂은 덩치들이 나와 자체적으로 진화 작업에 나섰을 뿐이다.
“젠장! 어떤 새끼야!”
“또 개판이 났네.”
“옘병. 이 엿 같은 동네를 뜨든지 해야지.”
“뜨면 어디로 갈 건데? 강남 안 가면 다 똑같아. 정부 새끼들은 우리 같은 서민한테는 관심 하나 없다고.”
“사람 넘쳐난다 이거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나 보다.
분말 폭탄을 터뜨리고 물을 뿌리는 솜씨가 굉장히 능숙했다.
나는 은신 특성을 활성화해서 슬며시 몸을 뺐다.
괜히 저들과 마주치면 좋을 일이 없으니까.
‘진짜 무법지대구나.’
동쪽으로 한참을 걸었다.
동작구를 지나 신림동에 들어와서야 마음이 놓였다.
“후우우.”
비로소 긴장이 풀린다.
슬슬 새벽.
아직 날이 어두웠다. 길가에는 인기척 하나 없다.
굶주린 들개가 길고양이를 사냥하다 말고 날 보고 짖어댔다.
“컹컹! 컹!”
한두 마리가 아니다.
슬며시 모여드는 들개들.
최소한 열 마리 이상.
힘 빼고 앉아 있으니 내가 사냥감으로 보였나 보다.
나는 실소를 한 번 흘리고 특성을 하나 바꿨다.
[위압]“꺼져.”
목소리를 잔뜩 깔고 내뱉은 한 마디.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깨갱! 깽!”
“깨개갱!”
들개들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친 것.
그걸 보고 새삼 실감하게 된다.
여기는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을 습격하는 들개 무리?
원래 세계였다면 뉴스를 타고도 남을 일이다.
하물며 서울에서 들개가 사람을 보고 입맛을 다신다?
“쯧.”
혀를 차며 일어섰다.
이러고 늘어져 있을 때가 아니지 싶어서.
인간 사냥꾼은 기본적으로 살인청부업자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를 노릴 때는 항상 뒤에 누군가 있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넋 놓고 있다간 들개 같은 인간들에게 뜯어먹힌다.
청부살인업자들에게 몰이 사냥당하고, 결국은 목이 따이고 만다!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
나는 인간 사냥꾼에게 빼앗은 지갑을 꺼냈다.
카드키를 일일이 확인한다.
[종로] [홍대] [건대] [가디] [반포]정확히 다섯 개.
스마트폰으로 주소를 검색해 보니 모두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다섯 개 모두 쓰는 이름과 신분이 달랐다.
‘집이 다섯 개나 있어?’
안전가옥 같은 걸까?
스파이 영화에서 많이 나오잖아.
서울 곳곳에 거점을 두고 활동했으면 말이 되지.
보급하기도 편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신분 하나 버리고 다른 집으로 도망치면 되니까.
“가디로 가주세요.”
택시를 불렀다.
선글라스를 낀 택시 기사가 말없이 가산 디지털 단지로 날 옮겨준다.
현금으로 계산하고 내렸다.
이곳은 불야성.
새벽 2시 늦은 시간인데도 건물마다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도로는 넓고 가로수는 잘 관리되어 있으며, 저층 건물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멀지 않은 대림동과 또 대비되는 구역.
‘여기구나.’
마침 내가 가야 할 오피스텔이 근처에 있었다.
편의점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사서 얼굴을 가렸다.
무장은 마총만 빼고 골프백에 넣은 다음 진입.
경비는 엎드려 자느라 내가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삐익!
카드키를 대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솟구치고 꼭대기 층에 정지한다.
상당히 좋은 집에 사는 모양.
하긴 1레벨 초인만 해도 억대 연봉은 우습다.
그런데 3레벨에 청부살인업자다.
억대가 아니라 수십 수백억을 벌고 있겠지.
띠리링.
카드키로 도어락을 열고 들어갔다.
혹시 한패가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에서는 아니었지만 여기는 현실이니까.
나는 마총을 움켜쥐고 살금살금 진입했다.
은신을 활성화한 상태.
탐지와 통찰을 최대한 발휘해서 안을 살펴본다.
전형적인 투룸형 오피스텔.
화이트톤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예쁘다.
거실 통창을 통해 바깥의 불야성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열린 방문.
언뜻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가구들.
푹신해 보이는 킹사이즈 침대 위에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이불을 다 걷어차고 몸매를 다 드러낸 채 잠든 여성.
어려 보인다.
20대 초반이나 될까 싶다.
연예인을 해도 될 법한 화려한 외모.
딸일까?
50대로 보이던 인간 사냥꾼을 생각하면 20대 초반 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속으로 냉소를 보냈다.
둘이 무슨 관계인지는 명확하다.
애인이겠지.
돈과 권력으로 맺어진.
이 세상 초인들은 애인 여럿을 만드는 게 다반사니까.
뭐, 원래 세계에서는 안 그랬나.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다.
‘잘못 왔나?’
투구에 마력을 주입해 탐지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걸리는 것은 없었다.
침대에 누운 여자가 숨을 쉬느라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 보일 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인간 사냥꾼이 자기 애인 집에 뭘 좀 숨겨놨을까?
나라면 절대 안 한다.
급할 때 쓸 현금, 총 정도는 둘 수 있지.
최악의 순간에는 그거라도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비밀 장부나 고객 명부, 거래 증거, 중화기나 폭탄, 마법 함정 같은 민감한 물건을 두려고 할까?
결혼한 것도 아니고 피가 이어진 것도 아니다.
돌아서면 그냥 남.
협박당하든 회유당하든 해서 자기 적에게 넘어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여자를 협박해서 취조할 수도 있겠으나······
아는 게 없을 확률이 99%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몸을 돌릴 때였다.
“으으응······”
여자가 길게 숨을 뱉었다.
내 기척을 느낀 걸까?
그럴 리 없다.
나는 지금 은신을 활성화하고 있으니까.
당황하지 않고 벽 너머로 몸을 숨겼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가 몸을 반대쪽으로 틀며 잠꼬대를 했다.
“흐응······ 스테이크 맛있어······”
스테이크 먹는 꿈이라도 꾸나?
속으로 열을 세고 문을 열고 나갔다.
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탄 다음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십 년 감수했네.”
주머니에 넣어둔 카드키를 만져본다.
이러면 다른 집도 비슷한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애인한테 얻어준 집이겠지.
일주일에 한두 번 가서 성욕만 풀었을 거고.
설마 진짜 집은 아예 머릿속으로만 기억해 둔 거 아냐?
‘그건 아냐.’
확실하다.
왜냐하면 게임에서 그랬거든.
인간 사냥꾼 시체를 털면 반드시 카드키가 나왔고, 그 카드키를 사용하는 것으로 인간 사냥꾼의 아지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 인간 사냥꾼이 쓰던 여러 장비와 소모품, 습격을 사주한 진범의 정체를 알아내게 되고.
게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상.
하지만 뼈대만큼은 게임과 굉장히 흡사한 만큼 이 기본 골자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반포.
여기는 집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달짝지근한 향이 풍기던 다른 네 집과 다르게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냄새가 훅 풍겼다.
화약 냄새.
또, 마약 냄새.
“빙고.”
여기서 조제 특성으로 총알을 마개조하고 독과 마약을 만든 모양이다.
현관에 서서 차분히 집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갔던 집보다 훨씬 크다.
50평대 포룸 구조.
그런데 삭막했다.
사람 사는 느낌이 안 났다. 가구는 거의 보이지도 않고 거실에 TV 하나 소파 하나 놔두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서류 더미뿐.
‘이건 너무 하네.’
설마 이 안에서 증거를 찾아야 하나?
일단 방부터 확인했다.
가장 큰 방은 총기 작업실이었다.
작업대 위에 곱게 갈린 화약과 마법 촉매, 탄피가 가득 쌓여 있었다.
진짜는 그 뒤쪽.
벽면 타공판에 총기가 촘촘히 걸려 있었다.
“쩐다.”
종류도 다양하다.
권총, 기관단총, 소총, 산탄총, 기관총, 저격총 등등.
심지어 로켓포와 유탄 발사기, 휴대용 미사일까지.
방호복과 고글, 방독면 같은 장비도 여럿 보였다.
죄다 쓸어가고 싶지만 손이 두 개라 한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방호복 한 벌에 저격총과 소총, 잡다한 소모품만 챙겼다.
‘옷 생겨서 다행이다.’
원래 쓰던 방호복은 오늘밤 전투로 다 망가진지 오래.
조철이 마법 방호복을 완성할 때까지 임시로 쓰기 딱 좋다.
“이 새낀 돈도 많네.
그리고 타공판 옆에 탑처럼 설치한 투명 보관함.
노란색 보석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은은한 마력향을 풍기는 그것들.
다름 아닌 마법 함정.
인간 사냥꾼이 엎드려 있다가 이탈하면서 내게 던졌던 물건.
대지 속성 마법 함정은 내게도 유용하다.
묶어놓고 패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어?
내 골프백이 빵빵하게 차올랐다.
오늘 소모한 모든 자원을 채우고도 모자라 플러스 알파가 되었다.
최고급 방호복에 총 여러 자루, 마법 함정까지 확보했으니까.
마개조 탄환도 나쁘진 않지만······
‘공산품 쓰는 게 낫지.’
당장 화력은 올릴 수 있어도 총기에 악영향을 주잖아.
부족한 화력은 내 특성으로 보충하면 된다.
골프백은 잠깐 내려놓고 다음 방으로 향했다.
두 번째 방은 약 조제실이었다.
플라스크마다 독액이 끓고 밀봉한 유리 실린더에서는 오색 마력광이 깜빡였다.
마약.
얼굴을 찌푸리고 지나치려다 말고 멈칫했다.
‘비약은 괜찮지 않나?’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제작, 개조, 수리 특성.
인간 사냥꾼은 조제 하나만 가지고 마법 함정도 만들고 총알도 개조하고 독과 마약도 제작했다.
나도 충분히 가능하다.
조제 특성은 가져오면 그만이고.
마약은 부작용이 심하니 그렇다 쳐도 중요할 때 비약 복용 정도는 괜찮지.
전에 박대엽과 싸울 때도 광분 안경알을 썼었잖아.
‘독은······ 안 쓰는 게 낫겠다.’
독보다 더 좋은 게 있으니까.
내가 암살자 빌드를 탄다면 생각해 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이거랑, 이거랑, 이거.’
완성품은 놔두고 철저히 재료만 챙겼다.
게임할 때 필수로 썼던 비약 레시피 정도는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
그것만 만들어도 조제 특성이 생길 거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
세 번째 방은 침실이었다.
작은방에 커다란 침대 하나가 전부.
다른 가구는 아예 없었다.
눈으로 힐끗 한 번 본 후 지나쳤다.
대망의 마지막 방.
서재처럼 꾸며놓았다.
한쪽 벽면을 고급 원목 책장이 온통 차지했다.
책장에는 가죽 표지 한자 제목 서적이 꽉 차 있다.
그리고 책장을 배경처럼 서 있는 원목 책상, 날렵한 노트북 하나, 마지막으로 방문 바로 옆에 설치된 카메라.
뭔지 알겠다.
화상회의용 장소다.
그렇다면······
저 노트북 안에 증거가 숨겨져 있겠지.
무심코 노트북을 잡으려 손을 뻗었는데, 갑작스레 머리카락이 쭈뼛 솟으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
왼손 검지에 낀 반지가 낮게 진동하고 있었다.
위기 감지 특성이 발동한 것.
급히 통찰을 장착하니 비로소 느낌이 왔다.
노트북에 손을 대는 순간 치명적인 결과가 있을 거라고.
함정을 설치한 걸까?
하지만 노트북 말고 다른 곳에서 느껴지는 위험 요소는 없다.
함정 특성을 장착하고 살펴봐도 그랬다.
한참 서재를 뒤지고 확인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와, 음흉한 새끼 봐라.”
노트북 자체가 함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노트북처럼 생긴 폭탄.
손을 대기만 하면 폭발해서 집 전체를 날려 버린다고.
위기 감지 아니었으면 진짜 죽었겠다.
누가 봐도 업무용 물건처럼 연출해 놓고 함정을 설치했을 줄이야.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팔짱을 끼고 서재를 한 번 본 후 난잡한 거실과 이미 방문했던 총기 작업실, 약 조제실, 침실에 차례대로 시선을 던졌다.
과연 어디 있을까?
이럴 때 쓸만한 특성이 하나 있었다.
[추적] 특성 활성화.인간 사냥꾼이 선물한 특성.
머릿속에서 작은 화살표가 떴다.
처음에는 갈피를 못 잡고 팽그르르 돌아가던 화살표.
내가 인간 사냥꾼에게, 인간 사냥꾼이 남겼을 증거에 정신을 집중하자 이내 한쪽으로 고정되었다.
침실.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
덩그러니 놓여 있는 킹사이즈 침대를 향해서.
과연 거기 있었다.
푹신하고 두꺼운 매트리스 안.
손으로 더듬어서는 못 찾고, 매트리스를 뜯은 다음 팔을 들이밀어야 잡히는 깊숙한 지점.
작은 USB 하나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