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24
5.
한국프로야구 시즌 중 가장 중요한 달은 8월이다.
결국 8월 성적에 따라서 포스트시즌 진출팀이 가려지기에, 그렇기에 기적이 일어난다면 8월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4,5월 동안 연승을 거듭하던 팀이 8월에 연승을 거듭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4,5월 동안 중하위권에 있던 팀이 연승을 거듭하며 순위를 올리면 기적이라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2017시즌 8월, 기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엔젤스였다.
후반기 성적부터가 기적이란 단어에 어울렸다.
후반기 시작 이후 8월 13일까지 치러진 19경기에서 무려 15승 4패!
야구에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승수였다.
더욱이 이렇게 거둔 승수는 막연한 행운 덕에 거둔 것이 아닌,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었다.
– 엔젤스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는가?
ㄴ 선발이 튼튼함.
ㄴ 타선이 탄탄함.
일단 선발투수들 전부가 제몫을 완벽하게 해냈다.
이호찬이 적극적으로 포수 리드를 가져가면서 이미 능력은 충분한 투수들의 기량을 100퍼센트 끄집어낸 덕분이었다.
그리고 타선 역시 짜임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100억 원의 사나이, 홍우형이 8월에 들어서자 불타는 타격감을 자랑했으며, 슈퍼루키 박준형은 어느새 다른 타자들과 함께 타점, 홈런 경쟁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근거는 그였다.
– 이호우 또 호우했네.
– 기레기 놈들아, 이호우 후반기에 퍼진다면서? 이형세 기자, 너 말이야 너. 이진용 후반기에 퍼진다는데 언제 퍼지냐?
ㄴ 이형세 전형적인 야알못 기자임.
이진용.
후반기에는 무너지리란 몇몇 야구 전문가들, 기자들의 이야기가 무색하게, 후반기가 진행될수록 이진용의 존재감은 작아지기는커녕 더 거대해졌다.
3경기 27이닝 4피안타 2볼넷 무실점, 탈삼진 54개.
압도적이라는 표현조차 이제는 부족해 보이는 기록.
물론 그 압도적인 기록에도 이진용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게 이유였다.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8월 15일 화요일, 이진용이 홈인 잠실구장에서 맞이한 레이번스를 상대로 7회까지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피칭을 하는 이유.
“호우!”
그리고 자신이 잡은 7회 초 마지막 아웃카운트에 대해, 목이 터질 듯한 환호성을 내지르는 이유.
그런 이진용의 무자비한 포효에 이진용을 보기 위해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 엔젤스 팬들도 목이 터질 듯이 소리쳤다.
호우!
사방에서 뿜어지는 환호성에 이진용이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는 슬쩍 전광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0의 행렬들.
자신이 이룩한 성과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오늘 자신을 위해 맹타를 휘둘러준 타자들의 결과물도 보였다.
‘6이닝 동안 4점. 오늘 우리 타자들 타격감을 보면 앞으로 2점은 더 나오겠군.’
4득점.
엔젤스 타자들이 7이닝 동안 이진용을 위해 기록한 점수였고, 이진용에게 있어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한 점수였다.
“호우······.”
그러나 그 점수를 보는 이진용의 입에서는 환호성과는 전혀 다른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에 김진호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 왜? 연장 안 갈 것 같아서 실망했냐?
그 말에 이진용이 잽싸게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요.”
말을 하는 이진용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고, 그 떨림을 확인한 김진호의 미소가 진해졌다.
– 12회까지 가서 3이닝 정도 더 던지고 포인트 더 벌고 싶은데 그렇게 못 해서 실망한 거 같은데?
“제가 미쳤어요?”
– 진짜?
거듭된 김진호의 말에 이진용이 저도 모르게 속내를 말했다.
“아니, 뭐, 10이닝까지 가는 건······.”
말을 하던 이진용은 이내 입을 꽉 다물었다.
‘내가 미쳤지.’
이 순간 이진용은 진심으로 반성했다.
‘연장이라니, 그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연장전은 선발투수에게 있어서나, 팀에게 있어서 가장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기더라도 정규 이닝인 9이닝 안에 이기고, 지더라도 9이닝 안에 져야 하는 것이 최선이며, 그 사실을 누구보다 이진용이 그리고 엔젤스 선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엔젤스 타자들이 이 악물고 어떻게든 이진용을 위해 점수를 뽑아준 것 아닌가?
연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내가 진짜 또라이가 됐구나.’
달리 말하면 이진용은 그렇게 해서라도, 연장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한 이닝이라도 더 던지고 싶었다.
그 정도였다.
‘미치겠네.’
이진용은 그만큼 경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4주 동안 고작 4경기라니······.’
후반기 시작 이후 4주나 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진용은 오늘 경기를 포함해 고작 4경기만을 출전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문제가 너무 없었다.
5선발 로테이션이 잘 돌아가다 못해 완벽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엔젤스가 굳이 이진용을 3일 휴식 후에 출전시키는 무리한 짓을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더욱이 이진용에게 3일 휴식을 주면 필연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이 꼬이게 된다.
여기에 우천으로 인한 경기 취소는 엔젤스 입장에서 베스트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한 주에 5선발 투수로만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다.
‘최근 3경기 동안 쌓은 포인트가 5만 포인트가 안 되네······ 골드 룰렛에서 대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체력만 나왔어.’
그 덕분에 이진용의 포인트 적립 속도는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다.
‘룰렛 이용권도 안 나오고.’
또한 이미 어지간한 신기록도 죄다 해먹은 탓에 신기록 경신을 통한 룰렛 이용권 획득도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 아, 부럽다. 이렇게 편하게 야구하다니, 나도 이렇게 편하게 야구했으면 1점대 방어율은 일도 아니었을 텐데.
반면 김진호는 최근 4주 동안 어느 때보다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진용아 너무 부럽다. 부러워 죽겠다, 죽겠어!
그런 김진호의 모습에 이진용이 뚱한 표정을 지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
– 뭐 인마? 너 지금 내가 죽었다고 놀리는 거냐?
그때였다.
툭툭!
– 어?
“어?”
그라운드 위로 불청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이진용이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고 김진호는 전력을 다해 소리쳤다.
– 호우!
“······미치겠네.”
이진용, 그가 강우 콜드로 7이닝 완봉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6.
[호우주의보 발령!]
뉴스를 보던 이진용은 고개를 돌려 호텔방 창문 너머를 가득 채운 물줄기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옆에서 김진호가 소리쳤다.
– 호우!
“시끄러워요.”
– 비 많이 온다고. 호우!
“에이, 진짜.”
– 왜? 비 온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냐? 응?
“진짜 자꾸 이러면 메이저리그 경기 안 틀어줍니다!”
– 비 오는데 그거라도 안 보면 좀 쑤실 텐데? 응? 뭐, 이대로 준비 없이 메이저리그 가서 탈탈 털려주겠다고? 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젠장.”
말을 하던 이진용은 그 말과 함께 두 주먹을 꽉 쥔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순간 이진용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힘이 넘치다 못해 터질 것 같아.’
지금 자신의 온몸에 힘이 미칠 정도로 넘친다는 사실을.
‘어중간하게 7이닝만 던지는 바람에 더 미치겠다.’
더욱이 어제 경기에서 이진용은 7이닝만 던졌다.
물론 보통 투수에게 7이닝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이닝이다.
하지만 이진용에게 있어 7이닝 피칭은 막 자동차가 예열하는 수준과 같았다.
에이스 스킬과 퀄리티 스타트, 두 스킬이 경기 시작과 동시에 주는 체력 어드밴티지는 엄청나니까.
보조 배터리를 먼저 쓰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이진용에게 7이닝을 던진 건 다른 투수들이 4이닝 정도 던진 것과 비슷했다.
‘어제 느낌 좋았는데.’
몸이 딱 알맞게 달구어질 무렵, 그 무렵에 강우콜드로 경기가 끝나버렸으니 좀이 쑤실 수밖에.
더욱이 지금 세차게 내리는 빗물은 이진용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 응, 너 이번 주도 6일 휴식이야!
그 말에 이진용이 대답 대신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김진호를 지그시 바라봤다.
– 아무리 봐도 오늘 그칠 비가 아니잖아? 이래서 돔구장이 필요하다니까. 안 그래? 전국에 돔구장이 네 개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이래서 인프라가 중요한 거야. 이렇게 비 내린다고 경기 취소되면 결국 죄다 10월에 야구하잖아? 아니, 메이저리그보다 경기 20경기나 적은 한국프로야구에서 페넌트레이스가 메이저리그보다 늦게 끝난다는 게 말이 돼? 인프라가 문제라니까.
반면 이미 흥에 취한 김진호는 야구 인프라 확장에 대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 아, 돔구장 이야기하니까 체이스 필드 때 생각나네.
물론 그 연설의 끝은 자기 자랑이었다.
– 1998년에 만들어진 돔구장인데, 여기가 디백스 홈구장이거든. 내가 여기 처음 던진 게 1999년이었어. 디백스 상대로 원정 뛴 거지. 상대는? 야, 내가 나오는데 디백스 애들이 누구를 내놓았겠냐? 당연히 빅유닛이 나왔지. 캬! 그때 랜디 존슨은 정말 끝내줬어. 내가 더그아웃에서 그 양반 공보고 엄지 들었다니까? 따봉!
그 말에 이진용은 대답했다.
“저기, 그 이야기 이번이 세 번째이거든요? 그리고 분명 앞선 두 번에서는 엄지가 아니라 중지라고 하셨거든요?”
– 아, 그래? 내가 기억이 긴가민가해서 말이야. 아! 그보다 진용아.
“또 뭡니까?”
– 내일 경기 우천취소, 너 6일 휴식 확정 축하해. 으하하하!
“에이, 진짜! 혹시 모르잖아요? 내일 아침 일어났는데 맑을지도!”
꽈과광!
그 순간 섬뜩하기 그지없는 벼락 한 줄기가 이진용과 김진호 사이를 지나갔다.
깔리는 적막감.
그 적막감 뒤로 더 거세진 빗줄기 소리가 이진용과 김진호의 귀를 두드렸다.
– 어이쿠, 이거 내일 아침은 누구 소원대로 아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겠는걸?
그 빗줄기 앞에서 이진용이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는 못 해. 어떻게든 마운드에 올라간다.’
7.
8월 16일 수요일의 하늘은 구멍이 뚫린 듯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졌다.
당연히 8월 16일 고척 돔 구장에서 치러지는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됐다.
그리고 17일 목요일이 됐을 때, 그제야 하늘은 하늘다운 청아함과 푸름을 선보였다.
“어휴, 진짜 날씨 왜 이러냐?”
“날씨 미쳤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은 청아한 하늘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오늘 몇 도야? 뭐? 37도라고?”
“아스팔트에 계란 후라이 해먹을 날씨네.”
“아니, 올해 여름은 왜 이래?”
드디어 절정을 찌르기 시작한 여름 더위 탓이었다.
37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들기에 부족하기 없는 기온, 그 기온에 이틀 새 쉴 새 없이 내린 비가 만들어낸 습도가 더해지자 그야말로 지옥 같은 날이 만들어졌다.
“사우나가 따로 없네.”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날씨에 잠실구장에 와서 이 고생인지······.”
그저 밖에 나온다는 것이 고행이나, 고역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8월 17일 잠실구장에서 치러진 엔젤스와 레이번스의 3차전이 졸전이 된 이유였다.
일단 양 팀의 선발투수들의 컨디션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 아, 벤자민 선수 결국 4회를 버티지 못하고 내려갑니다.
엔젤스의 선발투수인 벤자민은 3.1이닝 6실점을 기록하며 먼저 마운드를 내려갔고, 그 뒤를 이어 레이번스의 선발투수인 카를로스 역시 4이닝 8실점으로 이닝을 마쳤지만 5회에 올라오지 못했다.
– 오늘 양 팀 선발투수들이 제 힘을 못 쓰네요.
– 날씨가 정말 괴로운 날씨이니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오늘 양 팀의 야수 수비가 굉장히 불안합니다.
– 그렇지요. 벌써 5회까지 양 팀 합쳐 실책만 4개가 나왔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평소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투수들은 물론 야수들 역시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심지어 그라운드의 상태도 좋지 못했다.
설상가상.
그런 상황에서 급하게 몸을 풀고 올라온 양 팀의 추격조 불펜 투수들이라고 잘 던질 수 있을 리 만무.
“아, 또 점수 나왔네.”
“야, 그걸 못 잡냐!”
“니들이 프로냐? 프로야?”
불펜 투수들이 올라오는 족족 1이닝을 버티지 못하는 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양 팀은 13대11이란 참담한 성적표를 든 채 7회 초를 맞이해야 했다.
경기 내용이 너무 참담해서 양 팀 합쳐서 실책 6개라는 더 처참한 꼬리표는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7회 초를 맞이한 엔젤스는 당연히 이제 필승조를 대기시켰다.
“뭐라고?”
엔젤스에 비보가 날아온 건 그 무렵이었다.
“성균이가 어깨가 아프답니다.”
우성균.
엔젤스의 마무리투수인 그가 불펜 피칭 도중에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심각한가?”
봉준식 감독은 애써 표정을 감춘 채 입을 열었고, 송재만 수석코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본인은 던질 수 있다고 합니다만, 바로 스톱시켰습니다. 지금 1세이브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
“일단 불펜 피칭은 멈추되, 불펜에서 대기만 시켜두고 있습니다. 조만간 병원으로 갈 준비가 되면 곧바로 병원으로 보내겠습니다.”
“잘했네.”
당연한 말이지만 엔젤스 입장에서는 지금 1세이브를 거두는 것보다 마무리투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마무리투수 없이 포스트시즌을 치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역시 그동안 승리가 독이 됐군.’
더불어 이 비보는 어느 정도 예상된 비보이기도 했다.
최근 엔젤스는 20경기에서 16승 4패라는 8할 승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건 달리 말하면 그만큼 필승조가 나오는 경기가 더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모든 투수가 이진용처럼 완봉을 하는 건 아니니까.
‘이럴 때 더블스토퍼 체제를 갖추었다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더블스토퍼, 두 명의 마무리투수를 번갈아 가면서 기용하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도 없겠지.’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제대로 된 마무리투수 한 명만 있어도 감사해야 하는 판에 새로운 마무리투수를 바란다?
차라리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길 기대하는 게 나을 일.
‘어떻게든 막는다.’
때문에 봉준식 감독은 조금 전 자신이 품은 아쉬움을 단숨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일단 마무리는 성현이를 올려야겠지.’
혹시 모를 우성균의 긴 부재를 메우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성현이도 피로감이 상당하다. 결국 새로운 투수를 한두 경기라도 넣어서 필승조의 피로도를 줄여야 해.’
조금이나마 필승조의 부담을 덜어줄 새로운 불펜 자원을 뽑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 투수코치가 다가왔다.
“감독님.”
“무슨 일인가?”
“저기······.”
머뭇거리던 투수코치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봉준식 감독의 시선도 자연스레 투수코치를 따랐다.
그런 그 둘의 시선의 끝에는 이진용이 있었다.
눈빛이 반짝이다 못해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뱀처럼 광기마저 어리고 있는 이진용이.
그 순간 봉준식 감독은 직감했다.
“이진용이 설마 마무리투수로 자기 올려달라고 했나?”
“예, 잘 아시는군요.”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이진용이 또 한 번 또라이 짓을 준비했다는 것을.
“그래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
“눈빛을 보니까······ 올리지 않으면 정말 상상도 못할 또라이 짓을 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말에 봉준식 감독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사실 계산이고 뭐고 없었다.
3일 휴식 후에도 등판을 자처하던 이진용에게 일주일에 한 번 등판이라는 최근의 나날들은 편하기보다는 지루한 나날들이었을 테니까.
때문에 봉준식 감독은 금방 답을 내놓았다.
봉준식 감독이 이진용에게 불펜 방향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 말에 이진용이 눈빛을 반짝이며 활짝 웃었고 옆에 있던 김진호가 어처구니가 없는 눈으로 이진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이진용, 그의 마무리투수 데뷔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