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최근 분위기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도들의 하루 일과에 큰 변화는 없었다.
평소처럼 똑같이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개인훈련을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혹은 개인 여가 시간을 가진다.
주말에만 외출이 허용된 나이트 아카데미였기에 사실상 대부분의 생도는 비슷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으나.
콰아아아아앙!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하면서도 자극적인 하루가 될 것 같았다.
터져 나온 폭발음.
검은 연기가 하늘로 뻗어 가며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알려온다.
“뭐야?”
“무슨 일이야?”
“폭발이다!”
“아카데미가 조용할 날이 없네.”
생도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폭발음과 연기에 당황하는 생도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익숙하다는 듯 대응하는 생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또 특출 나게도.
“아싸아!”
폭발음이 퍼졌으며, 검은 연기가 짙게 올라오는 방향으로 옳다구나 내달리는 적발의 생도가 하나.
“야! 무슨 일인지 알고 달려!”
무슨 뼈다귀 본 개마냥 달리고 있는 그녀의 뒤를 쫓는 밤갈색 머리의 생도 하나.
“위험하다니까!”
또 그 뒤를 쫓고 있는 연푸른 머리카락의 2학년 생도 하나.
마리아를 쫓는 다이니와 그런 두 사람을 말리는 실리아.
멀찍이 떨어져서 봤을 때는 꽤나 우스운 구도.
연기가 풀풀 풍기고 있는 장소는 식당 뒤편이었는데 폭발음이 터진 직후 바로 달려온지라 세 사람 말고는 아카데미 관계자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
상당한 덩치를 가진 한 남자가 몸에 묻은 흙을 털고 있었다.
따로 무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손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건틀릿이 그가 무엇을 무기로 사용하는 전사인지 알려오고 있었다.
“와, 얘는 뭐야.”
머리 위에 우뚝 솟아오른 뿔 한 쌍을 가리키며 마리아는 헛웃음을 흘린다.
“수인이잖아?”
소의 뿔을 머리 위에 달고, 긴 머리를 뒤로 묶었으며, 구릿빛 피부를 가진 남자.
딱 보기에도 보통이 아닌 것 같은 그를 향해 마리아는 바로 자세를 잡았다.
“침입자 맞지? 제발 침입자여라.”
당장이라도 허리춤의 태도를 뽑아 들고 싶은 듯 어깨를 들썩거리는 그녀.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주변에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를 보곤 미간을 찌푸린다.
“이게 뭐지?”
폭발음과 연기가 주변에 뿌려진 조그마한 구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그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듯이.
“…….”
이 일련의 소란이 저 남자가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 실리아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싶었다.
어차피 이제 금방 교수님들이 올 것이고 저 수인은 체포될 거다.
굳이 생도인 자신들이 위험하게 나설 필요는 없었지만.
스릉.
“도망치게 둘 수는 없습니다.”
마리아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슬며시 길을 막는 실리아.
혹시라도 도주할 수도 있으니 퇴로를 미리 차단해 두는 것이었다.
“아, 뭐예요. 내가 싸울 건데.”
“수인이 아카데미에 침입했어. 대련 같은 게 아니야, 마리아.”
“검 들고 싸우면 거기서 거기지.”
실리아의 참전에 투덜거리는 마리아였으나 그녀에겐 안타깝게도 지원이 하나 더 있었다.
“여기서 한 건 더 해내면 동아리 위상이 또 한 번 올라가겠지.”
다이니 역시 그냥 지켜볼 생각은 없는지 검을 뽑아 들며 끼어든다.
“언제부터 동아리에 그렇게 충성했냐.”
“정확히는 우리 부장님한테 충성하는 거지.”
남모를 관계가 있거든 하고 의미심장하게 덧붙이는 다이니였으나, 마리아는 별 관심 없다며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이안을 위함도 있었지만 사실 다이니 역시 이런 상황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써보자.’
다이니의 손끝에서부터 은은하게 차오르는 마나의 빛이 검게 물든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 역시 핏빛으로 물들며, 마인화되어 간다.
마리아가 윤에게 배웠던 자신의 검술을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온 것처럼.
다이니 역시 최근 연습 중인 마인화를 사용해 보고 싶었다.
너무 위력적이라 생도들과의 대련에서는 금지당했으니까.
“이길 생각 말고 시간을 끈다고 생각해.”
후배 두 사람에게 실리아가 충고했으나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남자를 베어 넘기겠다는 듯 서슬 퍼런 검을 치켜 올린다.
하지만.
“어이가 없군.”
뚜둑 뚜둑.
어깨를 푸는 남자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소녀들을 향해 명백하면서도 직관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분노였다.
“너희가 나를 막는다고?”
고작 기사 생도라는 점도 화가 났고.
어린 꼬맹이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고작 인간들 주제에?”
그 한마디에는 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깊고 뜨거운 열기가 담겨 있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차라리 잘됐다.”
인간을 향한 분노와 집념.
“전부 때려죽이면 그만이니.”
그것을 담은 채 남자는 양 주먹을 쿵 부딪친다.
“이 가르덴의 분노를 어디 한번 막아봐라.”
* * *
은빛사자 연구회 부실 안.
잠깐 잠들었던 샬롯은 밖에서 들린 폭발음에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었다.
입가에 흐른 침을 훔치는 샬롯.
창문 밖으로 하늘로 퍼져 가는 검은 연기가 보였음에도.
샬롯은 의외로 그리 크게 놀라지 않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패닉에 빠져서 어떻게 도망쳐야 하냐고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침착한 스스로에게 나름대로 성장했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이쪽으로! 건물 안에 있는 생도들은 밖으로 나와!”
“일렬로 차례차례 나오면 된다! 지난번 가르간테 사건 때 해봤으니까 그때처럼 침착하게 하면 된다!”
밖에서 들려오는 교수님들의 목소리. 마나가 담겼는지 우렁차게도 귀를 찌르고 들어온다.
샬롯 역시 짐과 검을 챙기고 부실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어느새 열려 있는 부실 문.
그리고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명의 여성.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이 순간 귀신처럼 느껴졌기에 가슴이 철렁한 샬롯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
독특한 모자와 더불어 입고 있는 옷차림새가 아카데미 소속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제 2학기가 되는 시기였기.
아카데미에 이런 사람은 없다는 걸 샬롯은 알고 있었다.
“저기…….”
게다가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 대피하기는커녕 갑자기 부실에 찾아왔다는 게 굉장히 기이하게 느껴졌다.
“누구세요?”
그리 물으면서도 샬롯은 천천히 벽에 기대어둔 자신의 검을 손에 쥔다.
하지만 여인은 히죽 웃으면서 물었다.
“벨레스가 어디 있는지 아니?”
분명 표정은 웃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에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대화하고 싶지 않아지는 말투였다.
“벨레스요?”
벨레스와 베런은 방금까지 이곳에 있었다.
샬롯이 잠들기 전, 도서관에 간다며 둘이 같이 떠났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왜인지 이 여인에게는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르는…….”
“거짓말.”
모른다고 답했지만 여인은 말을 끊으며 히죽 웃었다.
단순히 떠보는 게 아니라 확신이 담긴 목소리였다.
“나는 코가 좋아서, 거짓말 하는 걸 금방 알아차리거든.”
쿵.
여인은 슬며시 한 걸음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다.
철컥.
문이 잠긴다.
밖에서는 소란에 대응하는 교수님들의 목소리, 대피하는 생도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아카데미에 있음에도, 이상하게도 이 공간만큼은 아카데미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그 이유가 지금 앞에 있는 여인 때문임을 샬롯은 파악했다.
“벨레스가 어디 있는지만 말하면 그냥 가주려고 했는데.”
“…….”
촤륵.
여인은 품에서 따로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손톱이 전등 빛을 받아 날카로움을 과시했다.
“손톱?”
그걸 보는 순간, 샬롯은 바로 여인이 인간이 아님을 알아차린다.
“하여간 인간들은 어린놈들도 거짓말을 너무 좋아한다니까.”
답답했는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은 여인.
그러자 머리 위로 솟아 올라있는 고양이 귀가 눈에 들어왔다.
“수, 수인이 어떻게 여기에…….”
“그건 몰라도 되고.”
슬며시 나타난 꼬리.
여인은 몸을 낮추며 그대로 샬롯에게 달려들었다.
“벨레스가 어디 있는지 말해.”
* * *
“…….”
도서관 건물 옥상.
소란스러워진 아카데미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벨레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는데, 굳이 하나로 정의하자면 죄책감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팔짱을 낀 채로 대피하고 있는 생도들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식당 뒤편을 확인한다.
보이진 않지만 방금 전 같은 동아리인 마리아와 다이니 그리고 실리아가 달려가는 걸 보았다.
‘아마 가르덴과 교전 중이겠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벨레스는 세 사람의 성격상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으리란 걸 알았다.
솔직히 가르덴을 상대로 세 사람이 싸우는 건 굉장히 위험했다.
교수들도 몇몇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게 보였지만.
가르덴은 인간을 상대로는 굉장히 무자비하면서도 잔혹해진다.
게다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기에, 과연 교수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생도들이 무사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벨레스는 식당 뒤편뿐만 아니라 다른 지점으로도 윙보드의 일원들이 침투했음을 인지했다.
아마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옆에 창도 한 자루 준비해 두었지만.
덜컹.
“여기 있었군.”
막상 그를 찾아온 건, 같은 생도복을 입은 스포츠머리의 덩치 큰 소년이었다.
“베런 둠베스트.”
그의 이름을 부르며 벨레스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와 싸울 필요는 없지만.
모든 걸 밝혀도 결국에는 똑같은 결과가 펼쳐질 걸 벨레스는 알고 있었다.
“밖이 소란스럽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
“대답하지 않겠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베런의 검이 뽑혀 나온다.
둠베스트 가문에서 귀중한 외동아들에게 지원해 준 보검이었다.
“하나만 확실하게 하지. 지금 이 소란과 네가 연관된 건 맞나?”
“…….”
“하긴,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이렇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을 리가 없겠지.”
베런이 나름대로 답을 도출해 내자 벨레스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그래, 내가 관계되어 있어. 다른 변명은 하지 않을게.”
굳이 긴 설명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벨레스였기에 누군가 자신을 질타하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베런과의 대화는 마음의 짐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줬다.
벨레스가 바닥에 놓은 창끝을 뒤꿈치로 밟자, 창이 튕기듯 솟아올라 그의 손 안으로 들어온다.
“모의고사의 리매치인가?”
모의고사를 치룬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때도 벨레스는 베런을 이겼고, 솔직히 또 다시 붙는다고 해도 그에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안 아이넬이라도 오는 게 아니라면 생도 중에서는 자신을 쓰러트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벨레스의 안에서는 이미 평가가 끝난 상황.
하지만 그런 말에 일말의 동요도 없이 베런은 검을 쥐고 앞으로 향했다.
“모의고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
“그저 잘못된 걸 바로잡고, 나쁜 놈을 때려눕힐 뿐이다.”
“그래, 나쁜 놈.”
그 말에 벨레스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혀를 차며 창을 내밀었다.
“많이 바쁜 날인데. 몸풀기 정도는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