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후우.”
내가 학장실 안으로 들어서서 마주한 학장의 표정은 꽤나 어두웠다.
이번에 3학년 졸업생들이 떠나가는 길을 아름답게 꾸며주지는 못할망정 똥물을 뿌린 게 나였으니까.
덕분에 아카데미의 내부 학생 평가에 관한 신용 문제.
더불어 생도 관리에도 소홀하다는 지적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차라리 나 혼자만 알고 있었으면 학장이 어련히 알아서 처리했겠지만.
로만 레이먼드라는, 왕국 최고의 기사라고 불리는 남자를 끼어들게 만들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고깝지 않게 보이긴 할 거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건지.’
나는 하염없이 당당했다.
학장도 예전에 기사였다고 들었다.
울퉁불퉁한 근육은 아직도 현역으로 뛸 수 있다며 자신감 넘치게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봤을 때, 학장은…….
“이안 아이넬.”
엄중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학장.
학장실 안으로 들어온 뒤부터 헥토르와 뭔가 수군거리더니 이제야 얘기가 끝난 모양이다.
“네.”
“은빛사자 연구회라는 동아리의 부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단다.”
“맞습니다.”
굳이 이렇게 돌려가며 말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일단은 흐름에 따라준다.
“1학년 상위권의 생도들은 전부 거기에 소속되어 있다더군. 나한테도 들려 올 정도더구나.”
“그렇게 유명해졌습니까?”
학장의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라니.
하긴 우리의 모임이 꽤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긴 하다.
최근 강의실에서도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다며 은근슬쩍 나한테 먹을 걸 가져오거나, 뒷돈을 찔러주려는 녀석들도 있었으니까.
안타깝지만 그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마이너스로 평가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1학년 차석인 벨레스 테오도른 군도 동아리 멤버라고 알고 있단다.”
“맞습니다. 이번에 동아리에 가입시켜 주었죠.”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재촉하고 싶었지만 학장도 그렇고 뒤에 있는 헥토르의 표정도 너무 심각했기에 일단 기다렸다.
“그 벨레스 군이 이번에 사건에 휘말린 건 알고 있지? 너도 알고 있는 잎담배와 관련되어 있단다.”
“잘 알죠. 제가 불씨를 키운 거니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것 같아서 굳이 못을 박아 넣자 두 사람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학장은 불쾌해했고 헥토르는 당황하며 학장의 눈치를 본다.
“벨레스에게 듣기로는 본인이 경비대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아서 체포됐다고 했습니다.”
계속 빙빙 돌리는 것도 짜증나니 입을 연 김에 대화 주도권을 가져온다.
나를 여기에 데려온 이유는 결국 벨레스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기 위함일 테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관련자인 헥토르 교수님을 찾아왔습니다.”
“…….”
“이렇게 저를 부르신 걸 보면 아무래도 제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는가 보네요.”
본론으로 쭉쭉 이야기를 빼자 두 사람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학장은 애써 헛기침하며 다시금 입을 연다.
“그래, 원래라면 알려줄 수 없지만. 헥토르 교수가 너를 워낙 신용하고 있기도 하고…….”
뒷말이 쓰다는 듯 입안에서 한 번 우물거린 학장이 툭 뱉어낸다.
“너는 보니까 타인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의 정의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생도인 것 같더구나.”
굳이 덧붙이진 않았지만 그러니까 너한텐 말을 해줘도 될 것 같다라는 말이 들린 기분이었다.
후 하고 한숨을 내뱉은 학장이 깍지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려두며 무거운 말을 내뱉는다.
“실은 벨레스 테오도른 생도는 수인이란다.”
“예?”
알고 있어요.
“놀랄 수밖에 없겠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동아리 친구가 수인이라니.”
“이럴 수가.”
역시 걸렸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아카데미로 돌아왔지?
정말 무죄라도 경비대에서 추방했거나 아니면 처벌을 기다리며 감옥에 있어야 했을 텐데.
“사실 이번 사건 때문에 벨레스의 정체를 알아낸 건 아니란다.”
또 아카데미에 대한 신용이 낮아질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학장은 미리 밑밥을 깔아놓는다.
“우리는 벨레스가 입학할 당시부터 수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단다.”
“입학할 때부터요?”
이건 좀 놀라웠다.
그 얘기는 학장과 아카데미 측에서 일부러 벨레스를 입학생으로 받아줬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벨레스가 자신했던 위장신분이 정말 하등 쓸모없었다는 소리지 않은가.
“무슨 의도로 아카데미에 입학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도 했고, 벨레스가 따로 필요하기도 했단다.”
“필요했다고요?”
“레지스탕스 중에서도 특히나 과격한 윙보드라는 단체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니?”
“들어본 적 없습니다.”
명색이 비밀단체인데 시골 출신의 생도가 알고 있으면, 그것 나름대로 쪽팔리지 않겠는가.
레지스탕스라고 해도 다 같은 동지는 아니니까.
같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 같은데 막상 그런 애들을 보면 서로 사이가 안 좋을 때도 많다.
300년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그래, 윙보드라고 굉장히 과격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단체가 있단다. 그리고 벨레스는 그곳의 간부였지.”
“간부요?”
이중소속은 안 되는데.
중첩으로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윙보드랑 벨레스를 두고 사생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
장난스러운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표정으로는 진지함을 연기한다.
“윙보드의 수장인 가르덴을 잡기 위해서 벨레스를 일부러 아카데미에 받아줬던 거란다.”
“이름이 가르덴? 이름 특이하네요.”
“……그게 중요하니?”
그렇진 않지.
어쨌든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알겠다.
벨레스 테오도른을 의도적으로 아카데미에 받아줬고, 그를 이용해서 더 윗선을 잡으려 했으나.
지금까지 벨레스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 걸로 봐서는 썩 효과는 없었던 듯하다.
“반년간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벨레스가 이번에 철의 열기 기사단이 윙보드를 소탕하면서 도망친 일원 중 하나와 접촉했다. 그게 바로 로울라. 잎담배 판매상이란다.”
“…….”
“하지만 벨레스와 입을 맞췄는지 그에 대해서는 따로 불지 않더구나.”
그러니까 다시 벨레스를 아카데미로 받아들여서 하던 걸 계속 이어 가는 건가.
경비대에서 쉽게 풀어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벨레스는 일종의 미끼였다.
더 큰 대어를 낚기 위해서 풀어준 것뿐이겠지.
‘좀 확인할 필요가 있겠는데.’
벨레스의 진위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내게는 수인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초석이 되고자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소속되어 있는 곳은 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극단적인 폭력집단이지 않은가.
그 뒤에도 몇 마디 설명이 더 이어졌지만 내겐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잡힌 수인이 어떤 방식으로 잎담배를 팔았는지 같은 설명들이었으니까.
“뭐 어쨌든 우리가 네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란다.”
“벨레스의 감시를 더 늘릴 필요가 있으니까요. 제게 도와달라는 소리군요?”
얘기가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학장이 빙그레 미소 짓는다.
“정답이다. 윙보드는 무너졌지만 아직 주요 리더인 가르덴은 잡히지 않았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단다.”
생도인 나는 벨레스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으면서도, 모의고사에서 승리한 전적도 있으니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거겠지.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묘한 조급함이 느껴진다.
벨레스가 분명 무언가를 할 거라는, 아니, 해야 한다는 듯이.
“……그냥 경비대에 넘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솔직하게 내가 묻자 학장의 입이 꾹 다물어진다.
묵묵하니 서있던 헥토르도 슬쩍 눈치를 본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찝찝한 진실을 알아차린다.
“확실히 아카데미에서 주도해서 과격파 레지스탕스의 리더를 잡았다고 하면 아카데미 입지는 꽤 올라가겠네요.”
핵심을 찌르고 들어가자 학장은 뭔가 변명하려 했으나.
“이번에 저 때문에 아카데미 평판도 떨어졌으니까 그걸 단숨에 복구는 물론이고, 반등까지 시킬 절호의 기회네요?”
“…….”
반박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거짓말이겠지.
“레지스탕스인 벨레스가 무슨 마음을 먹을지도 모르는데 지금까지도 생도들 사이에 둔 채로요.”
“우리 생도들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저 빼고는 모의고사에서 다 졌는데요?”
“…….”
꾹 다문 입은 이제 열릴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도와는 드리겠습니다. 저도 벨레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요.”
나는 안타까운 눈초리로 학장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 교육을 받으러 온 건데…….”
끼이익.
“사업가가 학장으로 앉아있었네요.”
쿵.
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벨레스를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안 아이넬이 밖으로 나가고.
적막만이 남은 학장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학장의 옆에 서 있던 헥토르가 답지 않게 위로를 건네 왔다.
“어, 어린 생도가 뭘 몰라서 그런 겁니다. 제가 따끔하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헥토르 자신도 어느새 학장을 기사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됐네, 그만 가보게.”
학장의 축객령에 헥토르는 곧장 인사하며 밖으로 나섰다.
아무리 이안이 맞는 말을 했더라도 예의가 없는 행동이었기에. 나가는 대로 한마디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나간 문을 묵묵히 바라보던 학장은 몰려오는 피로감에 자신의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눈을 감으니, 방금 전 이안 아이넬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고.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더없이 실망스럽다는 반응.
‘사업가가 학장으로 앉아있었네요.’
“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지금은 나이가 들어 기사는 은퇴했지만 유명한 철의 열기 기사단의 단장까지 했던 명예로운 기사이지 않은가.
아직도 우람한 근육들은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라는 듯 불끈거렸다.
고작 생도가 뭘 알고 지껄이냐고 그냥 무시하고 업무를 보면 될 수도 있지만.
은발의 소년이 했던 말은 계속 자신의 심장을 쿡쿡 찌르고 들어왔다.
앞에 있는 소년이 단순한 생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지.
아직도 입학식 날 처음 그를 본 순간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날에 느낀 선명한 감각.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으나.
어쨌든 소년에겐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에서 비롯된 통찰로 지금도 핵심을 아프게 찔러 오고 있었으니까.
‘로만 님의 말이 맞았군.’
휴가가 끝나 아카데미를 떠나기 전.
이안 아이넬에 대해서 굳이 한마디를 남기고 갔던 로만.
‘은발 때문인지 몰라도 이상하게 라인 레이먼드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나.’
물론 로만은 이안의 검술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그런 감상이 튀어나온 거였지만.
학장은 방금 전의 이안을 곱씹고 있자니 의외로 동의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소년의 은발이 찰랑거릴 때마다, 마치 되살아난 라인 레이먼드에게 질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우습지만.
또한 맞는 말이었기에.
“오랜만에 검이라도 휘둘러 볼까.”
학장이 업무를 잠시 미뤄두고 관리가 소홀해진 자신의 검을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콰아아아앙!
창문 밖에서 폭음이 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