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윤의 손길에 이끌려 로베르담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온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재밌었다면서 만족하는 윤의 모습을 보니 나름 뿌듯했지만, 쓸데없는 지출이 좀 많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뭐, 돈은 나름 넉넉하니까.’
아직 메이제렌에서 지팡이를 팔고 얻은 돈도 남아 있는 데다 이번에 윤을 토벌하면서 얻은 보수금도 있다.
‘생각해 보니까 윤이 준 돈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따로 돈을 아끼진 않았지만 좀 더 사줄 걸 그랬나 싶다가도.
막상 윤이 졸라서 사준 쇼핑백 안의 내용물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대부분이 쓸데없는 잡동사니 같은 것들이었으니까.
골동품 상점에 가도 받아주지 않을 물건들이었다.
“이야, 어때?”
눈사람에나 씌워줄 것 같은 고깔모자를 푹 눌러쓰며 묻는 윤.
감상을 물었기에 솔직하게 답했다.
“험한 말 안 한 걸 감사해.”
“그거, 이미 험한 말 한 거야.”
쿵쿵!
“이안!”
그때 문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베런의 목소리.
평소 감정의 높낮이가 적은 베런의 저런 반응은 꽤나 신선했지만….
동시에 보통 상황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들어가 있어 봐.”
“날 무슨 개로 착각하는 것 같다?”
윤은 투덜거리면서도 구석으로 쏙 들어가 앉아서는 장식된 인형인 척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줬다.
꽤나 심각한 사안인지 표정이 굳어 있는 베런.
굳이 내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베런은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벨레스 테오도른이 경비대에 체포됐다.”
“……!”
당혹스러운 사안일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무거울 줄은 몰랐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벨레스라면 특히나 사안이 심각하다.
그는 정체를 숨긴 채로 아카데미에 위장 입학한 수인이었으니까.
‘만약 수인이라는 게 걸렸다면 정말 심각해진다.’
벨레스에게 어떤 좋은 의도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는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될 뿐이었다.
그것도 나이트 아카데미라는 파릇파릇한 젊은 생도들이 살아가는 장소를 고른 악질적인 인물로 둔갑되겠지.
“뭐 때문에?”
마법이라도 부린 듯 뜨겁게 달궈지며 팽팽 돌아가는 머리와는 다르게 입 밖으로는 차가운 질문이 나갔다.
이런 내 반응에 감화되었는지 다급하던 베런도 조금 차분함을 갖추며 설명했다.
“듣기로는 잎담배를 팔던 판매상과 같이 있다가 체포되었다 들었다.”
“잎담배?”
“그래, 헥토르 교수가 직접 체포했다고 하더군.”
“…….”
아카데미에서 경비대와 협력하여 3학년 차석이던 팔레스와 그의 무리들이 피우던 잎담배 공급처를 쫓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벨레스가 사건에 끼어 있다니.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헥토르 교수님은?”
헥토르와 나름의 친분이 있으니 그에게 따로 물어볼 생각이었으나 베런은 고개를 저었다.
“경비대에서 아직 안 돌아오셨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당장에 경비대로 달려가서 확인할 수도 없으니 일단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베런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그런데 이안, 벨레스가 강한 건 알고 있다.”
“음?”
좀 뜬금없는 소리.
베런은 이번 모의고사에서 벨레스에게 패배하기도 했으니 그의 강함을 인정하는 데는 거리낌 없었으나….
“네가 강한 생도들을 원하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너와 함께할 인재를 찾고 있으며, 내가 그 안에 들어간 것도 나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뭐야.”
갑자기 낯간지럽게 왜 그러나 싶었는데 그는 더없이 진중하게 답했다.
“하지만 기사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까지 받을 필요가 있나 싶다.”
“…….”
“무슨 이유인지 확실히 알아야겠지만 벨레스는 마약상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 또 1학년 1학기 동안은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네가 신념을 지닌 기사를 찾고 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성급하긴 해도 벨레스가 만약 기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인물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굳이 베런이 그 이상을 말하게 두진 않았다.
베런도 꽤나 많은 생각 끝에 이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을 테고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은 있었다.
“네 말대로야. 단순히 재능이 있고, 강하다고 나한테 필요한 인재상은 아니야.”
당장에 은빛사자 기사단만 해도 내가 고르고 골라 엄선한 기사들의 집합소였으니까.
개인의 신념이나, 인성에 문제가 있다면 애초에 받아주지도 않았다.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마음 놓아.”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자 이제야 베런의 표정이 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만 가보겠다며 떠난 베런.
그가 꽤나 진심으로 은빛사자 연구회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기뻤지만.
벨레스를 생각하면 다시금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 * *
꽤나 큰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벨레스가 어떤 경위를 통해서 신분을 위조하고 평민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조사를 받는 도중엔 들킬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래서 솔직히 그와 제대로 된 대화도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보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럴 경우 따로 기사단원들을 보내서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작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뒷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온 벨레스를 보고는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돌아왔어.”
은빛사자 연구회 동아리실로 돌아온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호들갑을 떨면서 반겨주기엔 아직 애들과 그리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물꼬를 튼 건 마리아였다.
“야 이 씨! 너 때문에 이안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는지 알아?”
질타하는 목소리였지만 입가에는 호탕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신입 주제에 말이야!”
“그래도 돌아온 거 보면 잘못한 건 아니었나 보네?”
과자를 오독오독 먹으며 묻는 다이니에게 벨레스는 어색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다.”
샬롯도 따로 반겨주었으나 베런과 실리아는 팔짱을 끼거나 턱을 괸 채로 묵묵하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무향초 잎담배 판매상이랑 같이 체포됐다고 들었어.”
지난번에 내게 말했던 대로 베런은 벨레스를 동료로 받아도 되는지 의심하는 중이었고, 이건 잎담배 관련해서 민감한 실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끝자리에 앉은 벨레스는 차분하니 이야기를 풀어 갔다.
“실은 별거 아니었어. 단순히 경비대에서 사람을 쫓던 걸 도와주려고 했던 것뿐이야.”
벨레스가 설명하기론 이랬다.
주말 외출을 나왔는데 경비대와 헥토르 교수가 누군가를 쫓고 있는 걸 봤고.
그 사람이 골목에서 지하수로로 들어가는 걸 확인.
판매상이 올 법한 경로로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덤덤하지만 자세하게 풀어내는 이야기.
애초에 그가 이 자리에 이렇게 당당하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경비대에서는 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뭐야? 그럼 오히려 잘했네?”
“신입이 한 건 했네.”
마리아와 다이니는 꽤 한다면서 벨레스를 칭찬했고, 샬롯도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네가 이번 사건의 마무리를 지어줬구나, 의심해서 미안해.”
“……미안하다.”
감사와 사과를 전하는 실리아. 잠자코 듣던 베런 역시 고개를 숙이며 벨레스에게 사과했다.
“아냐, 의심할 만해.”
쓴웃음을 지으며 벨레스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것보다 손 하나 더 늘어서 다행이다. 너도 도와. 입부신청서 겁나 많아.”
어색한 기류는 탑처럼 쌓인 입부 신청서에 짓눌리며 금세 사라졌다.
마리아의 부름에 벨레스도 어리둥정한 표정으로 책상 위를 둘러본다.
“이게……?”
갑자기 서류에 파묻히게 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
그런 벨레스에게 샬롯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설명했다.
“이번에 우리가 모의고사에 성적이 잘 나왔잖아. 그래서 우리 동아리에 입부하고 싶다는 생도들이 많아.”
“실리아 선배까지 왔으니까. 2학년 중에도 좀 있는 것 같더라.”
다이니의 말대로 실리아가 온 덕분도 있었고, 나와 벨레스가 모의고사에서 2학년을 이긴 덕택도 꽤나 컸다.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부장인 나 혼자서 처리할 수가 없어서 부원들한테도 나눠준 상태였다.
“그냥 중간고사랑 모의고사 성적만 봐. 그거면 돼.”
시답지 않은 일이라면서 휙휙 서류를 넘기는 마리아.
하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었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인재를 놓칠 수도 있지만, 당장에는 실력이 좋은 애들부터 우선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렇게 분류를 한 다음에는 또 인성이나 태도 등으로 면접을 볼 생각이지만.
그렇게 양옆에서 서류 보는 법을 배우며 벨레스는 자연스럽게 합류했고.
서류를 보고 있던 내 시선은 슬며시 그에게로 향했다.
* * *
‘정말 아무것도 들키지 않았다고?’
벨레스가 잎담배를 취급하던 판매상과 따로 접점이 없었다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가 말한 대로 경비대를 도와주려고 했다면 의로운 일을 했으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벨레스의 입장을 알고 있는 내 시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인이 굳이?’
수인 노예를 마음껏 다루는 메이제렌과는 다르게 수인의 출입 자체가 금지된 도시가 이곳 로베르담이다.
어린 학생들이 머무는 아카데미가 있다 보니 더 철두철미하게 관리되는 장소.
아무리 벨레스가 선하다고 해도, 경비대와 연루되는 건 피할 필요가 있었다.
돕더라도 눈에 띠지 않게 자연스럽게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거다.
그래서일까.
나는 벨레스가 저렇게 쉽게 돌아온 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크흠.”
결국 내가 찾아온 건 판매상을 체포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는 헥토르였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나이트 아카데미의 입구에 서 있던 그에게 다가가자 괜히 헛기침으로 맞이한다.
뭔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느낌에 나는 더욱 확신을 얻으며 헥토르에게 물었다.
“이번에 잎담배 판매상을 체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괜히 단출하게 답하며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 헥토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나중에 답해주겠다.”
“벨레스에게 정말로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까?”
내 질문에 헥토르의 표정이 굳는다.
찔리고 싶지 않은 급소를 정확히 맞은 듯 몸이 살짝 굳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한 반응들에서부터 이미 무엇이 정답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은빛사자 연구회라고, 이번에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벨레스도 부원이고요.”
“그래, 1학년의 상위권이 만든 일종의 스터디그룹이라고 들었다.”
“……그런 걸로 칩시다.”
뭐 대련하고, 실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긴 할 테니까 크게 다르진 않다.
“최근 생도들 사이에서 뜨겁더구나. 다들 거기에 들어가고 싶다고 난리다.”
모의고사 수석, 차석부터 시작해서 바로 밑의 석차도 나열된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2학년 수석 실리아도 들어왔다.
성적에 목매는 생도들에게 있어서는 꼭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일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긴 했지만.
“말씀드렸듯 벨레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1학년 차석이었으니 많은 생도들이 그에게 도움을 받고, 영향도 받을 겁니다.”
“큼.”
뭔가 불만인지 헥토르가 팔짱을 끼며 표정을 굳혔다.
“지금 말씀 안 해주시면 저는 벨레스를 믿을 거고요.”
“이안 아이넬.”
내 이름을 곱씹듯 부르며 나를 바라보는 헥토르.
고민이 짙은 표정으로 침묵이 지속되었으나 결국.
“하아.”
헥토르 교수는 항복을 선언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차라리 생도 중에도 알고 있는 녀석이 있다면 좋겠지.”
게다가 너는 벨레스도 이겼으니까 하고 덧붙이며 헥토르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예?”
어디를 가는 건가 했는데 의외로 멀지 않은 장소를 헥토르는 입에 담았다.
“학장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