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마리아는 진짜 아니라니까요?”
“너 왜 우리 애 무시하냐? 그렇게 따지면 샬롯은 애초에 그릇이 작아서 무리야.”
“이제 성장 중인 애를 왜 벌써 판단하십니까!”
“그러니까 결국엔 다이니라니까? 걔만 지금 유일하게 우리를 알잖아.”
“마리아도 별 반응 없이 받아들일 것 같은데?”
“하아.”
방으로 돌아오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고 싶어도 단원들의 목소리에 파묻힌다.
기숙사 방음이 잘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걸려도 진즉에 걸렸을 소란스러움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그나마 토론에 끼어들지 않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한나에게 슬쩍 묻는다.
이것들이 지금 내가 돌아온 것도 모르고 열성적으로 토론하고 있는 내용이 뭔지, 어디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내 물음에 한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회의감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답했다.
“누가 단장의 반려에 어울리는지 토론하는 중입니다.”
“……뭐?”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내빼고 묻자 한나는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답했다.
“누가 단장의 반려에 어울리는지 토론하는 중입니다.”
“…….”
그 말을 듣고 다시금 단원들을 훑어본다.
“무조건 다이니라니까?”
“첫 인연! 첫 만남! 샬롯이 최고입니다!”
“걔네 둘 다 저돌적이지 못해. 마리아 정도는 돼야지 이안한테 어필한다니까?”
아주 지들끼리 갈라져서는 침을 튀겨가며 외쳐대는 모습들이 참 인상적이다.
이게 무슨 검술에 대한 토론이거나 기사단의 미래를 논하는 거였으면 박수를 쳐줬을 텐데.
‘오늘 왜 이러지.’
장난이라지만 은빛사자 연구회에서 마리아랑 다이니가 벨레스를 갈군 것도 그렇고.
기사단원들이 내 애인이 될 법한 여자애를 고르고 있는 상황도 그렇고.
오늘은 내 리더십에 대한 의심이 좀 드는 날이었다.
“어? 왔어?”
그때 나를 보며 반기는 윤.
그녀는 쫄래쫄래 달려와서는 곧바로 간악한 무리라며 다른 단원들을 가리켰다.
“넌 나중에 마리아랑 사귈 거지? 들어보니까 레이로즈 가문에 간 것도 걔랑 사귄다고 얘기하고 간 거라며.”
“…….”
“얼른 으쌰으쌰 해서 애도 낳아 봐. 그러면 너랑 마리아가 낳은 애랑 또 싸워볼 수도……!”
더 이상은 들어주지 못하겠어서 그대로 윤의 머리를 잡아 침대에 내던진다.
호들갑 떨며 침대에 처박힌 윤을 내버려두고 나는 분명하게 경고했다.
“전부 딸내미 같은 애들이야. 이상하게 엮지 마라.”
“딸이라고 치기엔 지금 단장이랑 동갑인데…….”
톰이 슬쩍 반항해 봤지만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샬롯이나 마리아 그리고 다이니까지.
결국에는 나보다 한참 어린 애들이지 않은가.
기사로서 크게 성장시키기 위해 당장에는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해주고 있는 것뿐.
이성으로 여긴 적은 없었다.
“괜히 이상한 소리나 하니까 오늘은 모두 역소환이다.”
다들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내 손이 한 번 방 전체를 훑듯이 움직이자 단원들은 마나의 잔해가 되어 사라졌다.
“음? 나는?”
그중 윤만 남아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따로 해줄 말이 있었다.
“내일 주말이니까 외출할 거야. 같이 나가자.”
“뭐야? 나였어?”
로만 레이먼드에게 받아 온 장죽을 입에 물며 껄껄거리는 윤.
피울 수는 없지만 분위기라도 내려는지 입에 물곤 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테르토나한테 너 보여주고 도움 좀 받을 거니까 개선점 같은 거 생각해 놔.”
“와! 드디어!”
좋다면서 침대 위에서 방방 뛰던 윤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귀가 없으니까 너무 불편해. 인간들은 어떻게 귀가 옆에 있냐. 머리카락 때문에 괜히 쓸려서 거슬리는데.”
“……그럼 너희는 머리에 있는 귀가 끝이야?”
“그런데?”
하긴 귀가 네 개나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원래 몸일 때 머리카락을 들춘 적은 없었다.
인간의 귀가 없는 윤의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기괴하게 느껴져 몸서리친다.
“수인 차별하지 마라. 우리는 너희 귀 생긴 게 징그러워. 무슨 견과류처럼 생겼잖아.”
그러면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인형에 달린 귀를 만지작거리는 윤.
“어쨌든 생각해 두라고. 그 사람, 소환마법이랑 인형에는 진심이니까.”
“인형에 진심은 또 뭐야.”
괜히 이상한 생각을 했는지 윤이 팍 인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제 용건은 끝났기에 나는 다시 그녀도 역소환했다.
“에휴.”
밖에서도 그렇고 안에서도 그렇고 쉴 틈이 없다.
뻐근한 몸을 풀면서 책상의 가장 밑에 있는 서랍을 연다.
그곳에는 봉인이라도 된 것처럼 천에 둘둘 감싸인 약병이 하나 있었다.
레비아탄의 보옥을 갈아서 만든 호우만의 영약.
복용하고 싶은 욕망이 볼수록 치솟아 올랐으나 다시 호우만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다뤄선 안 됐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기사단을 소환해 두고 있던 이유에는 영약을 지키기 위함도 있었다.
“하아, 언제 오려나.”
설마 호우만을 기다리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생각하며 슬슬 씻고 자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오오오오!”
“만지지 마. 손가락 잘리기 싫으면.”
“아, 진짜.”
또 다시 찾아온 주말.
나와 테르토나는 다시 지난번에 봤던 카페에서 만났다.
굳이 여기서 만나야 하나 싶었지만 테르토나가 여기 케이크가 맛있었다며 꼭 다시 오고 싶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번과 다르게 인형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는 거다.
이번엔 윤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으니 주변에서는 그냥 작은 어린애 정도로 보고 있었다.
태도도 챙겨 왔지만 일단 내가 들어주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설마 네가 이렇게 바로 성공할 줄은 몰랐다!”
그것이 꽤나 기뻤는지 테르토나는 윤의 이곳저곳에 손을 대다가 결국 한 대 얻어맞았다.
“어억!”
인형의 주먹이지만, 윤이 정확하게 인중을 후려 쳤기 때문인지 눈물을 글썽이며 몸을 뒤로 빼는 테르토나.
“뒤진다고 했지.”
이번만큼은 테르토나가 무례했던 게 맞으니 굳이 말리진 않았다.
테르토나도 붉어진 눈시울을 냅킨으로 닦으며 흥분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때마침 흐름을 환기시키듯 케이크가 나왔고 우리는 먹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그래서 뭘 원한다고 했었지?”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묻는 테르토나.
가끔 호우만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테르토나가 맛있는 걸 먹고 있으면 때려주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공감이 갔다.
나는 케이크를 멀뚱히 보며 아쉬워하는 윤의 등을 툭 쳐줬고.
그녀는 정신 차린 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수인이거든? 머리 위에 귀가 좀 달렸으면 좋겠는데.”
“오오! 어렵지 않지 어렵지 않아! 마침 그런 종류의 인형들도 있지!”
“…….”
분명 소환마법을 위해서 가지고 있는 거긴 할 텐데도 왜 이렇게 믿음이 가지 않는 걸까.
케이크의 단맛으로 굳이 의심을 녹이며 계속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혀. 나도 뭐 좀 먹고 맛을 느끼고 싶어. 연초도 좀 피울 수 있으면 좋겠고.”
“허어, 음식이라.”
꽤나 난이도 있는 요구사항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앞으로 윤의 생활을 위해서라도 꼭 들어주고 싶었다.
“부탁드립니다. 이런 걸 해줄 만한 사람은 테르토나 님밖에 없어요.”
내가 정중하게 존댓말하며 부탁하자 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뭐, 그렇긴 하지! 내가 또 네 스승이지 않느냐!”
“진짜?”
슬쩍 나를 보는 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그냥 살짝 고개만 흔들며 대강 넘어간다.
“뭐, 솔직히 나 혼자라면 꽤나 힘들 것 같구나. 맛을 느끼게 한다는 건 감각과 연관되어 있는 거니까.”
“확실히.”
소환마법과는 조금 동 떨어진 사안.
하지만 테르토나는 오히려 이것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했다.
“인형이니 음식을 씹고 맛을 음미한다고 해도 그것을 처리할 방법도 필요하겠지. 꽤나 흥미롭구나.”
방금까지 케이크를 먹으며 어벙한 표정을 짓던 테르토나는 어디 가고, 한 사람의 마법사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윤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도 뭔가 가늠하듯 느리게 호흡한다.
“힘드실까요?”
걱정스레 묻자 테르토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턱을 쓰다듬는다.
“솔직히 혼자라면 힘들었겠지. 하지만 운이 좋게도 지금 나는 메이지 아카데미 강사로 일하고 있으니. 다른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예를 들어 알프레도 교수님 이라며 덧붙이는 테르토나.
확실히 알프레도 교수라면 뭔가 해법을 찾아줄 것만 같았다.
테르토나는 믿고 맡기라며 다시 케이크에 손을 뻗었다.
케이크 위에 올려진 장식용 잎사귀를 옆으로 치우던 그의 시선이 문득, 그것에 꽂혔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꽤나 큰 소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3학년들 무향초 잎담배 피운 거요?”
“얘가 해결한 거다.”
왜인지 내 대신 으쓱거리는 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별말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테르토나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럴 것 같았다.”
“…….”
“워낙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녀야지.”
쩝 하고 케이크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입을 다문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경비대에서 메이지 아카데미에 지원을 요청했단다.”
“지원요청이요?”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테르토나는 별거 아니라며 포크를 살짝 돌리며 답했다.
“생도들한테 잎담배를 팔았다는 판매상을 찾기 위함이지. 어쨌든 로베르담에 마약이 유통되었다는 거니까.”
“흐음.”
“재밌겠는데? 우리가 찾아볼까?”
코를 킁킁거리며 사건이라며 흥분한 윤이었으나.
“아서라.”
이미 귀찮은 일에 너무 많이 꼬였다.
한동안은 조용히 애들을 키우면서 내실을 다질 생각이었다.
‘벨레스랑 실리아도 들어왔고.’
* * *
로베르담의 한 골목.
후드를 뒤집어쓴 여인이 다급하게 하수구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예전 샤카렌이라는 수인이 사용했던 지하수로 루트를 조금 손 봐서 사용하는 중이었다.
샤카렌 사건 이후, 지하수로에도 경비가 꽤나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느슨해지는 게 사람이었기에.
지금은 조금 길을 비튼 정도만으로 조심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단순히 경비대가 안일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하수로를 달리는 여인의 발걸음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고, 두르고 있는 로브의 색도 주변 환경에 맞춰 일렁거리며 변하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
아무래도 추격 중이던 경비대가 지하수로로 내려온 듯싶었다.
‘이제 더는 못 쓰겠네.’
쯧 하고 혀를 차는 그녀의 허리춤에는 손바닥만 한 가방이 여럿 매여 있었다.
그중 지퍼가 제대로 잠기지 않은 가방 밖으로는 잎담배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경비대의 추격이 점차 가까워지는 걸 들으며 여인은 좀 더 다리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내달렸으나.
“……!”
지하수로의 어둠 사이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검은 생도복을 입고, 곱슬한 머리를 뒤로 넘긴 그의 눈동자에는 노기가 흐르고 있었다.
“벨레스?”
여인이 그의 이름을 입에 담자 벨레스는 더욱 참지 못하겠다는 듯 주먹을 쥐고 외쳤다.
“로울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질타에도 여인은 여전히 다리를 멈추지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일단 뛰어 여기서 잡히면 진짜 끝이니까!”
“후우!”
당장이라도 로울라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벨레스였으나.
여기서 그녀가 경비대에 잡히는 건 그 역시 원치 않았다.
그렇게 로울라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 쪽으로 향하는 순간….
덜컹.
맨홀 뚜껑이 열리며 밖으로 나가는 사다리에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쬈다.
그리고 열린 맨홀 뚜껑 안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착지한 상처투성이의 덩치 큰 남성.
“잡았다.”
아카데미의 경비대장이라 불리는 남자, 헥토르가 두 사람의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