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사건 자체는 굉장히 쉽게 해결되었다.
사실상 기사들 중에서 가장 입김이 강하면서도 선망 받는 남자가 내 편을 들고 있는 거다.
루미네스 가문이든 아카데미든 따로 별 말을 할 수 없는 상황.
결국 팔레스는 신성 기사단 합격이 취소되었으며.
패거리들 역시 추후 있을 기사단 입단에 치명적인 결함이 될 큰 오점을 하나 남기게 되었다.
듣기로는 경비대에서까지 조사를 나와서 생도들이 잎담배를 어디서 구했는지 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크흠, 다 주목.”
어쨌든 사건은 쉽게 끝이 났고, 나는 지금 은빛 사자 연구회 부실에서 새로운 멤버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2학년의 실리아 위드니스 선배가 우리 부원으로 들어왔다. 2학년이라고 왕따 시키지 말고 잘 지내도록.”
짝짝짝짝!
공허한 박수소리가 울려온다.
유일하게 샬롯만이 해맑게 웃으며 박수를 쳐줬는데 주변 친구들이 조용한 걸 보더니 괜히 쭈그러들며 눈치를 살핀다.
“왜 그래?”
어떻게 보면 좋은 대련상대를 데려온 거나 다름없다.
마리아와 베런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침묵이 지속되는 와중 베런이 슬쩍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음?”
“설마 2학년 수석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다.”
그 말에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보니까 싫은 게 아니라 충격을 먹어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거였나.
탕!
마리아도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더니 환호성을 터트리며 실리아에게 외쳤다.
“바로 가서 함 뜹시다! 지난번에 졌던 거 복수나 좀 하게!”
‘그러고 보니까 2학년 여자기숙사에서 마리아가 실리아랑 싸웠었지.’
고작 반년 정도 된 이야기인데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얘들아.”
실리아는 마리아의 투기 어린 구애를 정중히 무시하고 주변을 쓱 둘러봤다.
“부실이 제공됐다고는 해도, 결국 아카데미에서 빌려준 거잖아.”
“…….”
순간 입을 다무는 생도들.
부실을 확인한 실리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팔짱을 꼈다.
“청소는 제대로 해야지. 이렇게 막 쓰면 안 돼. 빗자루랑 걸레부터 좀 가져와.”
순식간에 흐름을 휘어잡은 실리아.
“아, 넵!”
“……대단하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벌떡 일어나서는 경례를 하고 청소도구를 가지러 밖으로 나가는 샬롯.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방금과 똑같은 탄성을 내뱉는 베런.
“아, 오늘 청소당번은 너잖아.”
“그런 거 할 줄 모르는데?”
다이니와 마리아 또한 투덜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슬쩍 일어난다.
‘역시 편해.’
확실히 부실이 더럽다고 한마디 하려던 참이었는데, 실리아가 딱 짚어 주니 편하지 않은가.
여유롭게 차라도 타서 마실까 싶었는데 실리아의 잔소리의 마수는 내게도 뻗어왔다.
“이안, 살펴보니까 동아리 부장이 내야 하는 서류를 아직 안 냈던데 얼른 해줘.”
그러면서 뭔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서류를 내민다.
동아리 활동기록, 성과서, 동아리 지원금 청구서 등.
이런저런 귀찮은 서류들이 책상 위로 올라온다.
“활동기록이랑 성과서는 필수로 작성해서 달마다 제출해야 되고. 지원금 청구서는 혹시나 싶어서 일단 받아 왔어. 그리고 여기 보면…….”
“아.”
조금은 융통성 있게 부장한테는 살살하면 안 되나 싶었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내가 실리아를 데려온 것이었다.
옆에 앉은 실리아의 잔소리를 듣던 도중.
아직도 밖으로 나가지 않은 벨레스가 멀뚱히 서 있는 게 보였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싶었는데 그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더니 실리아에게 말했다.
“신입이면 스스로 인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응?”
너무 뜬금없는 발언에 나와 실리아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벨레스는 거기서 한 술 더 떴다.
“장기자랑 준비는 다 했나? 꽤나 고될 거다.”
“얘가 뭐라는 거야?”
“벨레스 맞지? 이런 게 부조리라는 건 알고 있니?”
실리아가 천천히 일어나서 벨레스를 노려보자 그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아니. 전…… 그냥 원래 이런 걸 해야지 친해질 수 있다고 들어서.”
수인이다 보니 가벼운 농담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래서 저는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뒷머리가 닳아서 없어질 정도로 긁적이는 벨레스.
굳이 따지자면 실리아보다 나이가 더 많지만,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벨레스의 이야기를 들은 실리아의 시선은 내게로 꽂혀 들어왔다.
동아리 부조리는 의외로 만연해 있었고, 그걸 막아왔던 게 선도부원인 실리아였다.
혹시 은빛사자 연구회에도 부조리가 있냐고 캐묻는 듯한 눈초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은 상황.
때마침 샬롯과 베런이 각자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부실로 들어왔다.
“야, 너희 얘한테 뭐 노래랑 춤 같은 거 시켰어?”
내 질문에 샬롯과 베런은 순간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쭈뼛거리며 한마디씩 툭툭 뱉는다.
“그, 신고식이라면서 다이니랑…….”
“마리아가 장난친다고 시켰다.”
또 마침.
부실 안으로 들어오는 두 소녀.
“아! 물 다 튀잖아!”
“의외로 대걸레 가지고 연습 가능하겠는데? 물에 적시면 좀 무겁기도 하니까…….”
짜증 내고 있는 다이니와 대걸레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는 마리아.
두 사람은 부실 안으로 들어온 순간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는 의아해한다.
“뭐야? 왜?”
“왜 무게 잡고 있냐.”
“니네 얘한테 신고식 시켰냐?”
내 질문에 두 사람의 몸이 흠칫 떨린다.
약아빠지게도 다이니는 이미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니, 원래는 장난이었는데 이게 흐름을 타다 보니까…….”
“진짜 할 줄 몰랐어.”
“그래, 이리 와. 너희도 신고식 좀 하자.”
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
두 사람은 바로 몸을 돌려 호들갑스럽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다이니와 마리아의 합동무대를 다 함께 관람한 이후.
다들 대련을 한다든가,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며 떠나고 나와 실리아만 부실에 남아 있었다.
“거기는 그렇게 자세하게 쓸 필요 없어. 어차피 교수님들이 잘 보시지도 않으니까.”
“그래요?”
“응, 나이트 아카데미는 따로 동아리 담당으로 교수님을 모실 필요가 없으니까. 오히려 교수님들한테 진짜 필요해 보이는 내용만 딱 적으면 되는 거야.”
“흠.”
확실히 실리아가 있으니까 막힘없이 술술 서류를 작성 중이었다. 양이 많아서 그렇지.
문득, 옛날에 부단장인 마리와도 이런 식으로 종종 시간을 보냈던 걸 떠올린다.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그때도 왕실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내버려두고 인재를 찾으러 다니거나, 단원들이랑 검만 주구장창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마리가 쫓아와서 억지로 앉혀두곤 했지.
당시만 해도 진짜로 귀찮고 싫은 일이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그리워진다.
‘다른 애들도 빨리 소환해야 하는데.’
원래 이번에 기회가 되면 새로운 단원을 소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7명으로, 기사단의 반을 소환한 게 되니까.
하지만 윤을 소환수로 만들면서 다음 소환이 조금 미뤄지게 되었다.
‘그래도 테르토나한테 조금 도와달라고 하면 금방 소환할 수 있을 것 같긴 해.’
내 소환마법에 대한 성취도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으니까.
단원의 촉매라도 좀 있으면 훨씬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이런저런 부분을 아쉬워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느새 실리아의 입이 꾹 다물어져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쩍 보자 그녀와 딱 눈이 맞았고.
실리아는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잘한 걸까?”
“예?”
마리아와 다이니한테 신고식 시킨 걸 말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긁적이며 실리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우리 때문이 나이트 아카데미의 평가 방식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졌어. 신성 기사단을 시작으로 아마 다른 기사단까지 아카데미의 평가에 의문을 가지겠지.”
그리고 이건 다른 아카데미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나이트 아카데미는 명실상부 최고의 기사를 키우는 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메이지 아카데미 쪽에서도 벌써부터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들었어. 아무래도 두 아카데미를 묶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이트와 메이지.
두 아카데미가 같이 붙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나이트 쪽에 문제가 터지면 자연스럽게 메이지 쪽으로도 의심의 눈초리가 향하게 된다.
“사실 우리 아카데미에서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야. 그렇지만 모든 생도를 제어하긴 힘드니까 덮어뒀던 것뿐.”
“…….”
“그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건 알지만, 반대로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생도들도 있으니까.”
특히나 3학년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은 건 나도 느끼고 있었다.
오늘 쉬는 시간에 몇몇 3학년이 우리 강의실까지 찾아와서 나를 확인하고 갔다고 다이니가 전해줬으니까.
규칙에 얽매이며 열심히 그것을 지켜온 실리아.
그래서일까 반대로 다른 생도들이 피해를 보는 걸 보고는 딜레마에 빠진 듯싶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
하지만 나는 그런 고민이 정말 하등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면 안 되는 짓을 지적했어요. 아카데미의 생활기록부가 썩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도 알리게 됐죠.”
“…….”
“스스로의 신념을 지켰다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세요. 기사는 그런 맛이 있어야죠.”
당연한 거 아니냐며 내가 웃으며 말하자 실리아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은 기분이 풀렸는지 턱으로 서류를 가리켰다.
“계속하자. 금방 끝날 거야.”
* * *
“아, 얘 언제 오냐.”
심심하다면서 침대에 누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윤.
인형의 모습인지라 하는 행동 자체는 작고 귀여웠지만 말투는 너무나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내 육포가 어디 갔지?”
“좀 가만히 있어라. 정신 사납다.”
“톰 선배, 제 육포 못 보셨어요?”
1시간 전부터 숨겨뒀던 육포가 사라졌다면서 이곳저곳 뒤지는 도로시.
목소리와 표정이 이제는 거의 집착에 가까워졌기에, 범인인 윤은 괜히 몸을 비틀며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샬롯한테 이런 느낌으로 검술을 가르쳐 보는 건 어떨까요?”
막대기를 하나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는 넬슨. 그리고 그걸 양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엘빈과 켈빈.
“너무 어렵지 않으려나?”
“좀 쉽게 바꿔야 할 것 같은데?”
꽤나 복작해진 이안의 방.
창틀에 기대어 턱을 괴고 있던 한나는 길을 따라 자신들의 단장이 오는 걸 확인한다.
“단장 오신다.”
그 말에 바로 방 정리를 시작하는 단원들.
꽤나 빠르고 분주하며 전문적인 것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했는데.
“실리아 위드니스?”
새로운 부원으로 받았다던 실리아와 대화를 나누며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꽤나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지나가던 넬슨이 딱 이안과 실리아를 보더니 탄식한다.
“아, 샬롯은 어디에 두고.”
단장이 샬롯이 아니라 다른 여인과 함께 오고 있다는 것에 실망한 넬슨.
그런데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도로시가 어이없다며 한마디 한다.
“샬롯은 무슨 샬롯. 다이니지.”
“아니, 다이니는 좀 아니죠. 그래도 샬롯이 단장님 첫 친구인데.”
“어허.”
침대 위에서 들려오는 혀를 차는 목소리.
청소는 안 하면서 침대 위에 앉아 팔짱을 낀 윤이 단호히 선언했다.
“내 제자, 마리아가 있는데 무슨.”
“마리아? 마리아는 진짜 아니다.”
“맞아, 차라리 샬롯이 낫지.”
“음? 다이니 쪽이 더 좋지 않나.”
드물게도 의견이 갈린 엘빈과 켈빈.
어느새 단원들은 청소도 잊은 채로 목소리를 높이며 이안의 반려로 누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