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그렇다면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언가 제안하려는 듯 로젤리아의 말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일개 생도인 나한테 학장이 뭔가 원하는 게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가르덴과 관련된 정보들을 내게 풀어도 되는 걸까 싶었다.
“이안 생도도 알겠지만 이번에 선도부와 관련해서 꽤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요?”
“그렇죠. 선도부장을 필두로 좋지 못한 일을 벌이고 있었으니까요.”
그나마 가르덴 패거리처럼 잎담배를 피운 건 아니었는지 이번 사건 사망자 명단에선 제외되긴 했다.
그렇다고 한들 선도부장의 부정을 시작으로 선도부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선도부가 메이지 아카데미 측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메이지 아카데미 선도부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준 셈이니까.
덕분에 메이지 아카데미의 학도들이 기사 생도들에게 가지는 혐오도 더 늘어났다.
이번 일주일 동안 로베르담 거리에서 만났던 학도들이 생도들을 보는 시선은 이전보다 훨씬 뒤틀려 있었다.
듣기로는 싸움도 한두 번 났다고.
“그래서 제가 새롭게 선도부를 개편할 생각입니다. 메이지 아카데미와는 별개로 말이죠.”
“흠.”
필요하긴 했다.
그게 단순히 간판을 바꾸는 행위든 아니면 정말로 뿌리부터 뽑아서 개혁을 하는 거든.
어쨌든 지금 선도부의 이미지는 생도들에게도 학도들에게도 썩 좋지 않으니까.
“이안 생도가 제가 개편할 선도부에 들어와 주시면 어떨까요?”
참, 여러 번 이런 제안을 받는구나 싶었다. 그나마 실리아를 빠르게 영입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제안은 고맙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저는 이미 은빛사자 연구회 부장으로 있어서 어디 소속이 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하자 로젤리아는 흠 하고 옅은 숨소리를 내며 고민한다.
“그럼 따로 뭔가를 알려드리긴 힘들 것 같네요. 나름 극비라.”
어색하지만 눈웃음을 보인 로젤리아가 내게 볼일은 끝났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린다.
“후회하진 않길 바라요.”
* * *
로젤리아가 말했던 생도의 책임과 선도부의 개편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실력적으로 유능한 생도들을 대량으로 선도부원으로 뽑음과 동시에 그들에게 책임을 맡긴 것.
이제 막 시작되기도 했고, 많은 생도들이 선도부로 들어가서 특혜를 받게 됨에 기뻐하기도 했으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생도들끼리도 상도덕이 있습니다! 하물며 학장님께서 이런 식으로 부원들을 빼 가시다뇨!”
“엘가! 엘가! 정말로 네가 선도부에 들어갔다고?!”
선도부실은 물론이고 학장실까지 향하려는 생도들의 발걸음을 선도부원들이 저지한다.
선도부원들은 이전처럼 완장만 걸치고 있는 게 아니라, 아예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외투를 따로 걸치고 있었다.
듣기로는 방검 처리가 되어 있어서 생도복보다 훨씬 우월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참.”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1, 2학년 생도들이 저렇게 모여서 난리를 피우는 이유는 동아리 때문이었다.
각기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던 생도들이 선도부로 넘어갔기에, 해체되거나 혹은 해체 직전까지 간 동아리의 부장들.
로젤리아는 실력이 높은 생도들을 닥치는 대로 뽑아댔다.
생도 입장에선 선도부가 되면 내신 추가점수와 각종 편의를 누릴 수 있다 보니.
취미 생활이나 다름없던 동아리를 그만두고 실리를 택한 것이었다.
“나한테도 왔었어.”
같이 부활동 관련 서류를 내러 가고 있던 실리아가 한마디 툭 내뱉는다.
내가 슬며시 그녀를 바라보자 어깨만 으쓱거릴 뿐 딱히 선도부에 미련은 없어 보였다.
“나도 구선도부 출신이니까. 괜히 내가 들어가면 물만 흐릴 거라고 거절했지만. 지금은 네 동아리에 들어있기도 하고.”
“이전 선도부원들은 전부 짤렸죠?”
“응, 물갈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가 필요하긴 했나 봐.”
새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전에 했던 것들에서 답습할 필요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실리아 위드니스는 홀로 부조리에 저항했으나 지금은 선도부 소속이 아니라는, 저들이 가장 탐스러워할 인재였다.
‘실리아를 데려온 건 정말 잘한 일이라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로 실리아가 다시 선도부로 돌아갔을 거다.
그리 생각하면 식겁할 수밖에 없다.
그녀 정도의 인재는 찾기 힘드니까.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인 부장들을 눈으로 힐끔거리며 실리아가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선도부가 개편될 필요성은 있지만 저렇게 강압적으로 부원들을 모아야 했을까?”
“뭔가 생각이 있겠죠. 하지만 그게 좋은 방향성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그건 동아리 부장으로서의 의견? 아니면 그냥 생도인 이안 아이넬의 의견?”
작게 웃음소리를 흘리며 묻는 그녀에게 별 망설임 없이 답했다.
“둘 다요.”
“둘 다?”
“부장들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저렇게 인원들을 빼앗는 형식으로 데려온 것도 거슬리긴 하는데요.”
뒷말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는 방식이었다. 아니, 오히려 뒷말이 나오게 하려고 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의도적으로 자극했다고 해야 할까.
“중요한 건 선도부원들한테 지급된 외투부터 시작해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겠죠.”
“외투가 이상하긴 했어. 특수 방검 소재라고 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빠르게 지급되었으니까.”
“미리 준비한 거겠죠.”
심드렁하니 말하긴 했으나 사실 그렇게까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로젤리아가 아카데미에 학장으로 내정된 이후 사건의 전말을 듣고 이런 식으로 행동할 걸 준비해 왔다는 소리였으니까.
아마 한동안 나이트 아카데미는 로젤리아라는 여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중요한 건 특수 방검 소재라는 점이에요.”
“생각보다 선도부원들이 생도랑 부딪칠 일은 거의 없는데 말이야.”
결국 어린 나이의 생도들일 뿐이다. 벌점만 부과해도 덜컥 겁을 먹고 큰일이 났다며 죄송하다고 빌겠지.
정말 막나가거나 가문의 뒷배에 자신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선도부원이였던 실리아의 말이니 당연히 믿을 수 있으나, 내게는 저 방검소재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었다.
“저한테는 저런 소재가 필요할 정도로 강하게 나가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은데요.”
“……방검 소재가 필요하단 건 칼부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소리인데?”
“그렇죠.”
로젤리아라는 여인이 짜놓은 그림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으나.
그녀가 취임식에서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라는 책임을 강조하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귓가에 맴돌았다.
* * *
“하음, 긴장돼서 어제 한숨도 못 잤다.”
하품하는 벨레스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레지스탕스였다는 놈이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늦은 밤.
나와 벨레스는 기숙사 창문을 통해서 빠져 나와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눈에 띄니 자연스럽게 담벼락 그림자 밑에 숨은 채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로젤리아가 말했던 녹색 연기는 나도 거슬렸다.
단순하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으니까.
‘연기를 흡입했을 때 가르덴의 반응은 마인화처럼도 보였다.’
악마의 기운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혹시 또 모른다.
잎담배를 통해서 생도들이 흡입했고 또 생도들을 통해서 강당에 분출되었다.
이미 두 번이나 걸러진 상황이었기에 악마의 기운이 희석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
잎담배를 유통한 가르덴 일당을 만나보는 것.
마침 지금 로베르담 감옥에는 처음 헥토르에게 체포되었던 유통책과 샬롯에게 패배한 교란담당 고양이 수인이 있었다.
대놓고 가서 면회를 왔다고 할 수도 없고, 곧 있으면 수도 쪽으로 이송될 가능성이 있으니 움직이려면 빠른 게 중요했다.
“…….”
게다가 벨레스가 이전 동료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썩 환영받지는 못하겠지.
결국 작전을 방해하고 가르덴의 위치를 아카데미에 알린 건 벨레스니까.
그래도 벨레스는 내가 이 계획을 말했을 때, 동행하겠다고 답했다.
게다가 그들이 벨레스의 정체에 대해서 밝히지 않은 걸 보면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
손을 뻗어 벨레스의 걸음을 멈춘다.
운동장 쪽을 가로지르며 걷고 있는 두 생도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있어서 이쪽을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그들은 로젤리아의 선도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선도부가 아직도 야간 순찰을 하고 있나?’
한번 개편됐기에 이전과는 다르게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걸까?
의아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좀 더 멀어지면 움직이려 잠시 몸을 숙였는데.
‘에디잖아?’
또렷하게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1학년 에디 브릴리언임은 확실했다.
확실히 에디 정도면 지금 1학년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매물이긴 했다.
조금 아쉽지만 딱 그 정도일 뿐.
떠나가는 에디를 눈으로 힐끗 쳐다본 후,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정문으로는 당연히 갈 수 없으니 슬슬 담장을 넘어가려고 했는데.
“전격 마법?”
담장 위로 은은하니 펼쳐진 전격마법이 눈에 들어온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통구이가 될 수도 있었다.
“아카데미 보안을 철저하게 한다고 듣긴 했는데 과격하게도 바꿔놨네.”
벨레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느낀 점을 가감 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나도 동의했다.
자칫 잘못했다가 생도가 휘말리면 어쩌려고 이런 방식을 취했는지.
‘뭐, 담장을 넘어가는 생도는 생도로 취급도 안 한다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결국 담장을 넘어가는 건 생도가 부정적인 행위를 한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아직 어린애들한테…….’
이런 게 설치되었다는 공지도 없었다.
이래서야 아카데미가 아니라 감옥이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할 거야? 기숙사로 돌아갈 거야?”
여러 생각이 들었으나 벨레스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현실로 되돌렸다.
확실히 전격의 벽은 꽤나 높았으며, 기사 생도들에게는 직관적으로 통용되는 마법이 가장 효율이 좋다.
그리 생각하면 생도들을 억제하기엔 옳은 선택이었으나.
“넘어가야지.”
안타깝게도 이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 생도가 바로 여기 있었다.
벽에 손을 대고 마나를 흘려 보낸다.
마치 한 마리의 물뱀처럼 검은 마나가 벽면을 타고 올라가더니 전격마법을 천천히 뒤틀기 시작했고.
곧이어 전격마법이 내 마나에 먹혀가며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가자.”
“뭐라 해야 할지, 대단하네.”
벨레스는 내 마법을 보고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재빠르게 뒤를 따라 담벼락을 넘었다.
새벽에 아카데미 밖으로 나오니 묘한 쾌감과 함께 의도치 않은 자유와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뿐만 아니라 벨레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코로 숨을 깊게 마시고는 그대로 우리는 로베르담 시내를 향해 내달렸다.
“수도인 프랑트로 이송한다고 했으니까, 경비대 구치소 같은 곳에 수감되어 있을 거야.”
벨레스는 옛 동료의 무거운 미래에 텁텁한 표정을 짓는다.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