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생각보다 골치 아프네.”
솔직히 경비대를 얕잡아 봤던 감이 있다.
툭 까놓고 말해서 그들이 최근 보여줬던 행보들은 무능하게 느껴졌으니까.
제대로 범죄자를 쫓지도 못하고, 유통책인 수인도 헥토르 교수가 대신 체포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비대를 무능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야간근무를 맡은 경비대원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경계 중이었다.
만약 내가 보통의 시민이었다면 실로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건 때문에 더 그런 건가.’
아카데미도 그렇고 경비대도 그렇고.
하나같이 크게 데인 시간이었다.
위에서 쪼았든 아니면 스스로 느꼈든, 여러 가지로 깨달은 바가 많은 시간이었을 거다.
“어떻게 할 거야?”
옆에 있는 벨레스도 경비대가 정신을 바짝 차린 채로 있는 걸 걱정한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당연하지만 방법은 있다.
하지만 가장 조용한 걸 사용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되면 약간의 소란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나.”
파직, 파지직!
손가락을 타고 사납게 울어대는 전격. 그것에 손대려던 순간.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넵! 살펴가세요!”
경비대 밖으로 나오는 덩치 큰 한 남자.
얼굴에 흉터가 인상적인 그는 이번 사건의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될 헥토르였다.
“헥토르 교수?”
그가 왜 여기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됐다.
기회라 생각한 나는 경비대 밖으로 나온 그에게 바로 다가갔다.
“교수님!”
“……이안 아이넬.”
조금은 놀랄 줄 알았는데 표정만 일그러졌을 뿐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헥토르 본인도 그게 좀 놀라웠던 모양이다.
“이젠 네가 뭔 짓을 저질러도 당연하게 여겨지는구나.”
“좋은 변화네요.”
“…….”
정작 본인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특히나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온 벨레스를 봤을 때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설명하라고 턱짓하는 그에게 너스레를 떨며 웃는다.
“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좀 알고 싶은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경비대에 잡혀 있다는 수인이랑 만나볼 생각이었어요.”
“그녀들은 아무 말도 안 한다. 윙보드 소속들은 전부 인간을 향한 증오로 똘똘 뭉쳐 있어.”
그게 참 골치 아프다며 한숨을 내쉬던 헥토르.
그러다 자연스럽게 벨레스에게로 눈이 간 그는 뭔가를 깨달았는지 퍼뜩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벨레스를 데려왔구나.”
스스로 깨달은 그에게 빙그레 웃으며 끄덕여준다.
여러 모로 맞지 않는 퍼즐이 자연스럽게 맞아 들어가는 느낌을 나와 헥토르 둘 다 느끼고 있었다.
“만나면 뭐든 될 것 같은데, 일개 생도는 범죄자랑 면회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벨레스가 그들의 동료라는 걸 밝힐 수도 없으니…… 억척스럽더라도 자리를 마련할 누군가가 있어야겠군.”
헥토르는 자신이 할 일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대로 다시 경비대 안으로 들어갔고, 몇 분 후 입구에서 손짓으로 우리를 불러들였다.
“생각보다 편하게 가게 됐네.”
“……그러게.”
꽤나 긴장했는지 경직된 벨레스의 어깨를 툭 쳐준다.
“나는 네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
“다만, 아무리 그들에게 숭고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 테러까지 옹호할 수는 없단 소리야.”
“그래, 맞는 말이야.”
물론, 수인들의 억울함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과 수인 사이에 의견이 좁혀질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든.
경비대의 미묘한 시선을 받으며 유치장으로 향한 우리.
창살 너머, 샬롯에게 패배한 고양이 수인과 유통책인 강아지 수인이 있었다.
“…….”
“…….”
서로 마주본 셋은 입을 꾹 다문다.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나와 헥토르의 눈치를 보는 두 사람.
“잠깐 자리를 비켜주죠.”
내 말에 헥토르는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어차피 우리가 입구 밖에서 틀어막고 있으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그렇게 설득하며 밖으로 나서 휴게실에나 있을 법한 긴 의자에 앉은 우리.
“어? 얘기는 벌써 끝나셨습니까?”
커피라도 타주려는지 물을 끓이고 있는 경비대원.
우리만 밖에 나와 있는 걸 이상하게 여겼으나 헥토르를 힐끗 보더니 헤실 웃으면서 컵을 준비한다.
“이게… 커피콩이랑 끓이는 도구도 전부 경비대에서 지원해 준 겁니다. 끓이는 건 쉬운데 또 미묘하게 맛이 달라요.”
갑작스레 경비대의 장점을 설명하기 시작한 경비대원.
뭔가 싶었으나 헥토르는 이미 몇 번이고 들었는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야간 근무하면 야간수당도 넉넉하게 들어오고요. 최근 사건이 많아서 그렇지 원래 로베르담은 평화로운 도시라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알고 있습니다.”
“어허, 말씀 편하게 하세요.”
친분이 꽤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런 것보다는 묘하게 경비대원의 행동에서 친숙함이 느껴진다.
마치 내가 기사단원들을 데려오려고 할 때 했던…….
“경비대로 가세요?”
“크흠.”
내 말에 헥토르는 뭔가 찔렸는지 헛기침하며 고개를 휙 돌렸고, 경비대원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주책맞게…….”
“괜찮으니까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아, 넵! 그리고 순찰조가 곧 돌아와서 시간이 넉넉하진 않습니다.”
가벼운 분위기의 경비대원이 다시 커피를 끓이러 가고.
헥토르 교수는 허벅지 위에 얹어둔 손을 깍지 꼈다. 천천히 올라가 천장에 닿은 시선에는 깊은 감정이 느껴졌다.
“전임 학장님께선 나를 꽤나 신뢰해 주셨단다.”
“네, 그렇게 보였습니다.”
“다른 교수들과는 다르게 나는 태생적으로 마나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했고,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셨지.”
헥토르 교수만큼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람도 드물다.
오죽하면 교수인 그에게 경비대장이라는 별명이 붙겠는가.
“하지만 이번 학장님께서는 내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던 듯하구나.”
“…….”
“유능한 기사를 가르치는 데 있어, 유능하지 못한 교수는…… 필요 없겠지.”
유능하지 못하다?
“이번 사건의 최고 공로자가 교수님인데요?”
헥토르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가르덴의 손에 당했을지 알수 없다.
그가 시선을 끌어준 덕분에 내가 도달할 시간이 벌린 거지 않은가.
“그것과 이건 별개란다.”
하지만 쓰게 웃으며 헥토르는 담담하니 답했다.
“게다가 전임 학장님은 책임을 안고 내려가셨으니 그분과 함께하던 나도 같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지.”
“그래서 이 늦은 시간까지 경비대에 있었던 거예요? 다음 직장 알아보려고?”
어이가 없어서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헥토르는 피식 웃으면서 끄덕였다.
“그래, 맞다. 지난번에 수인 체포에 도움을 준 게 있다 보니 경비대장께서 좋게 봐주셨더구나.”
그걸 연으로 경비대로 들어가려 했다?
“처음에는 나도 별로 내키지 않았단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이트 아카데미의 교수니까.”
자신의 위치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한껏 드러나는 목소리.
그러나 그것도 금방 작아졌다.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누군가 다른 유능한 사람이 오면 너희가 더 안전할 수도, 더 많은 걸 보고 배울 수도 있을 텐데.”
“…….”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체질 탓에 내 검술을 너희에게 온전히 가르치기에도 어색한 부분이 많이 있지.”
“…….”
“차라리 경비대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이곳은 나를 반겨주고는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나는 그를 책임질 것도 아니고, 방금 전에 사연을 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했을 테니까.
아카데미에서 헥토르를 다른 교수들이 은근히 무시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경비대장이라는 건 사실 교수들의 비아냥에서 시작된 별명이니까.
또한 헥토르가 가지고 있는 실전경험을 그냥 썩히는 게 아깝기도 했다.
결국.
“그게 교수님의 선택이면, 그렇게 하세요.”
나는 등을 밀어주지도, 당기지도 않는다.
“후회만 하지 마세요.”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가 후회하지만 않길 바랄 뿐이었다.
얼음장 같은 침묵이 이어진다.
자신의 거친 손을 내려다보며 헥토르의 고민이 깊어졌지만.
“……얘기, 다 했어.”
벨레스가 어색하니 밖으로 나왔다.
* * *
“부어라아아아!”
“마셔라아아아아!”
“파티다! 파티! 파티야아아아!”
노란 전등 아래.
거대한 주점에서 펼쳐진 파티.
하나같이 소란스러운 이들은 잔을 들어 올리며 고성을 질러댄다.
과할 정도로 높은 분위기.
정상적인 집단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각기 다른 무기들을 차고 있었고, 차림새들도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내가 머리를 쪼개줬다니까?!”
“개소리하고 있네! 그때 내가 다 봤는데……!”
말투들은 하나같이 경박했고, 얼마나 험하게 굴렀는지 옷들도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술잔이 오가길 몇 번.
“이 새끼가!”
“저번부터 넌 마음에 안 들었어!”
주먹이 오가는데 걸린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싸워라! 싸워!”
“키야아! 재밌다아!”
그런 개판을 하나의 공연 삼아 흥분에 흥분이 덧씌워지는 광란의 시간.
끼이익.
그때 주점의 문이 열리며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가 들어선다.
워낙 내부고 소란스러웠기에 다들 눈길 한번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불청객의 등장에 고요해진 주점.
침묵 마법이라도 사용한 것만 같은 분위기에 오히려 안으로 들어온 불청객은 미간을 찌푸렸다.
“넌 뭐야.”
“하학! 미쳤네! 미쳤어!”
하나같이 자신을 보며 비웃는 모습.
남자는 그걸 무시한 채로 곧장 카운터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도달했다.
바다가 연상되는 청색 머리카락.
턱을 괸 채로 술을 홀짝이는 여인은 슬쩍 눈을 흘겨 남자를 바라봤고.
“해적여제 바레타 님을 뵙습니다.”
“아앙?”
흥이 끊긴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바레타의 인상이 한껏 구겨진다.
하지만 그걸 본 남자는 로브 속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하나 꺼내 들었다.
녹색 잎을 둘둘 만 담배.
“이걸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
바레타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다.
흐름이 넘어왔다 생각했는지 남자는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이미 미끼를 문 물고기를 당기듯.
“저를 따라오시면 더 드릴 수 있습니다. 벨페고르 님께서는 당신을…….”
텅!
묵직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그것이 자신의 머리임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고.
넘어가는 시체와 바닥에 고인 피웅덩이.
“난 얼굴 가린 놈이랑 얘기 안 해.”
재빠르게 휘두른 커틀러스를 바닥에 꽂아 놓은 후, 핏물이 튄 잎담배를 주워 든다.
“벨페고르?”
해적질을 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녀온 바레타였기에, 벨페고르라는 이름도 기억 속에 있었다.
“악마 뭐시기였던 것 같긴 한데.”
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토록 찾던 잎담배를 얻었고, 벨페고르라는 힌트도 찾았다.
갈 곳이 금방 떠올랐기에 바레타는 망설임 없이 남자를 베어 넘길 수 있었다.
바레타는 아까까지 마시던 술잔을 낚아채며 외쳤다.
“입에 털어 넣어! 출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