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폴탄 해안이라고?”
벨레스의 입에서 뜬금없는 지명이 언급되었다.
300년 전에는 없던 지명이라 내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헥토르 교수가 한마디 거든다.
“로베르담에서 좀 떨어진 장소이긴 하다. 수도인 프랑트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지. 해상과 연결된 무역도시로 왕국에선 가장 타국 사람들과의 왕래가 잦은 편이다.”
“딱 듣기만 해도 암거래하기 좋은 장소긴 하네요.”
“수인들이 활동하기에도 적합하지.”
덧붙이는 헥토르 교수.
마법사들의 도시 메이제렌처럼 수인 노예들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는 건 듣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벨레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거기에 있는 브로커에게 구할 수 있다고 해. 접선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했고.”
“……자세히 알려줬네.”
배신자라고 볼 수 있는 벨레스에게 너무 쉽게 정보를 풀어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정일 가능성이 부상한다.
벨레스 역시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거짓 정보일 수도 있지.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걸 수도 있고.”
하지만 하고 덧붙이는 그.
“나를 응원해 줬다.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에 미련과 후회가 담겨 있음이 느껴지지만 걸음은 망설임 없이 경비대를 뒤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가지고는 있더라도 벨레스의 각오가 확고하단 증거였다.
“가능하면 믿지만 판단은 내가 할 게 아니지.”
“…….”
“이안, 네 선택이다.”
당연하지만 벨레스에게 무언가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우리 동아리의 일원으로 내게 정보를 건넨 것뿐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며 다룰지는 내가 판단하고 책임질 일이었다.
“그래, 고마워.”
괴로웠을 텐데도 옛 동료들과 시간을 써준 벨레스에게 감사하며 슬쩍 헥토르를 바라본다.
함께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있는 그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 벌이면 안 된다. 너는 아직 생도야.”
“생도치고는 너무 많은 일을 해내지 않았나요?”
능글맞게 묻자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따로 반박하진 못한다.
“그래도 안 된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와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몰라도. 나는 교수야, 너희를 지킬 의무가 있다.”
강함과 약함이 이유가 아니었다.
교수니까 생도를 지킨다는 지극히 당연한 발언임에도 헥토르에게 들으니 묵직함 전해져왔다.
“뭐, 들어보니 거리도 꽤 있어 보이고. 제가 뭔가를 할 생각은 없어요.”
“…….”
“꼭 제가 움직일 필요가 있나요. 접선방식이랑 위치를 알았으니까 기사단이나 경비대에 알려주면 되는 거잖아요.”
의외로 내가 손쉽게 물러나서일까. 헥토르는 찝찝해하면서도 맞는 말이기에 따로 뒷말이 나오진 않는다.
내가 움직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벌써 자기들이 가고 싶다고 손들 단원들의 모습이 훤히 눈에 보였다.
“벨레스가 알아냈다고 말하면 위험하니까, 교수님이 알아내셨다고 해주세요.”
“그건…… 그래, 알았다.”
공을 가로채는 형태가 되는 게 가책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벨레스의 진실을 밝힐 수는 없지 않은가.
합리적인 판단이었기에 헥토르도 굳이 사족을 붙이지 않고 받아들였다.
“돌아갈 때는 담 넘어서 안 들어가도 되겠네.”
얼추 이야기가 정리되어 장난스럽게 벨레스에게 말하자 녀석도 웃는다.
그걸 옆에서 듣고 있는 헥토르는 굉장히 못 마땅해 했지만 어쨌든.
아카데미 입구에 도착해서 헥토르 교수의 뒤를 따라 안으로 향하고 있자니 아까 나오면서 지나쳤던 에디와 선도부가 보였다.
아직도 순찰 중인 건가 싶었는데 선도부원들을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온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안?”
같이 있는 2학년 선도부원이 헥토르에게 묻는 사이, 에디는 내가 여기 있는 게 뜬금없다고 생각했는지 눈살을 찌푸렸지만.
“좋은 밤.”
나는 손만 슬쩍 들고 넘어간다.
“잠깐 내가 볼 일이 있어서 생도들을 불렀었다.”
당당하고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다.
선도부원이라고 해도 헥토르가 굳이 구구절절 그들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었다.
“주의해 주시죠.”
하지만 2학년 생도의 입에서 튀어 나온 한마디가 싸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순찰 중인 선도부원들이 많습니다. 교수님이라고 해도 말은 해주셔야죠.”
냉랭하게 얼어붙는 공기.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벨레스도 슬쩍 헥토르의 눈치를 살핀다.
보통의 교수라면 노발대발하며 목소리를 높였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헥토르는 되레 무표정하게 변해서는 2학년 선도부원을 내려다본다.
“아카데미 경비는 지금까지 내가 총괄하고 있다. 너희에게 내가 굳이 보고해야 하나?”
“선도부도 함께하게 됐으니까요.”
“이미 선도부가 개편되기 전부터 선도부는 야간 순찰을 돌고 있었다. 굳이 지금 와서 너희한테 설명할 필요성은 모르겠군.”
맞는 말이었다.
실리아가 진행시켰던 야간 순찰을 지금의 선도부가 넘겨받은 것뿐이다.
특별할 건 없었다.
“게다가 너희에게 알릴 수 없는 사안이다. 생도, 선을 넘지 말도록.”
상처투성이에다가 겉으로 봤을 때는 한 성질 할 것 같은 헥토르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자 2학년 선도부원도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알겠다고 답하며 몸을 돌린다.
“가보겠습니다.”
에디도 가볍게 목례만 한 후 2학년을 따라서 가버린다.
“하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쉬는 헥토르.
“선도부원들이 좀 과하게 움직이고 있긴 한 것 같습니다.”
그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벨레스가 한마디 했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는데?”
아무리 선도부원이라고 해도 교수인 헥토르에게 따지고 들며 보고까지 요구하다니.
미쳐도 제대로 미친 행동이었다.
“너희가 몰래 나온 게 아니었다면 나도 이렇게 넘어가진 않았을 거다.”
“……그렇게 말하시면 할 말이 없죠.”
우리를 두둔하기 위해서 헥토르가 다소 억지를 부리긴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벨레스의 말대로 선도부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고 있어.”
새로운 학장이 자리에 앉으면서 나이트 아카데미의 체계가 점차 변해가고 있음은 분명했다.
“학장님은 도대체 뭘 하시려는 건지.”
한숨처럼 흘러나오는 헥토르의 푸념은 아카데미에 곧 찾아올 혼란을 미리 걱정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 * *
경비대에 다녀오고 며칠 지나지 않았건만.
나이트 아카데미에는 예견된 혼란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발적으로 시작된 소란들은 군사 작전이라도 펼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치열했다.
“야, 옆방 뺏다! 부실 옮기자! 거기가 훨씬 넓어!”
우리 옆에 있던 승마 동아리가 해체되었다는 소식을 들고 온 마리아.
옆 부실이 더 좋다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동아리 하나씩 사라지는 거 보면서 다들 아쉽다고 하는데 너는 진짜…….”
“마리아…….”
부실책상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는 카드 게임을 하던 다이니와 샬롯이 마리아를 질타한다.
최근 아카데미에 있는 동아리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중이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인원부족.
동아리 유지를 위한 최소 인원을 늘리더니 갑자기 동아리에 있는 성적 높은 생도들을 집중적으로 선도부에 영입해 나갔다.
선도부의 메리트가 이전보다 크게 올라갔다 보니 내년에 졸업해야 하는 2학년 같은 경우는 당연히 선도부에 들어가고.
1학년들도 미래를 생각해 보면 동아리보다는 선도부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결론적으로 서로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동아리는 인원부족으로 해체된다.
“참나. 어차피 동아리 하고 싶었던 마음이 그거밖에 안 되던 거잖아. 선도부에서 받아준다니까 헬렐레하고 들어가는 꼴은.”
나름 핵심을 찌른 마리아.
그렇다고 동아리로서 쌓아왔던 추억보다는 실리를 택한 걸 함부로 욕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우리 동아리 입부하겠다는 생도도 많이 줄었지?”
내 쪽을 흘기며 묻는 다이니. 나는 쓰라린 표정으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선도부.”
가르덴의 테러 사건으로 면접도 늦어졌고, 샬롯이 부실에서 싸우면서 지원서류들도 개판이 된 탓에 많이 미뤄진 새로운 부원 영입.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입부하려던 사람들이 줄어버렸다.
“근데 그냥 이안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샬롯의 말에 격하게 동의한 다이니가 잘했다며 카드 게임 하다 말고 샬롯에게 과자를 먹여준다.
그걸 또 맛있다며 헤헤거리고 받아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실에서 애완동물 하나 키우는 느낌이었다.
“에휴, 나는 동아리 대항전이나 점령전 같은 거 기대했는데. 야, 얘 다음 턴에 원카드임.”
“이년아! 이거 아침밥 내기라고!”
자리에 앉으며 눈에 들어왔는지 심드렁하게 다이니의 카드패를 말해주는 마리아.
그대로 두 사람이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걸 보는 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어쨌든.
동아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으나, 문제는 동아리뿐만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에 있는 학년간의 불문율에도 문제는 터지고 있었다.
“하아.”
짜증스러운 한숨을 달고 부실 안으로 들어오는 실리아.
두통이라도 있는지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아까 교수한테 불려갔는데 내가 방금 말했던 학년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잘 해결됐어요?”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답하는 실리아.
“전혀. 3학년은 3학년대로 화가 잔뜩 나있는데 정작 선도부원들은 본인들은 옳은 일을 했다면서 당당해.”
“에휴.”
“똑같은 멍청이들이.”
실리아의 입에서 드물게도 험한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나이트 아카데미에는 학년별 격차가 극심하다.
자연스럽게 생도들은 고학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고, 저학년에게 고학년은 일종의 성역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번에 깨진 것.
발단은 3학년 생도 중 하나가 2학년 선도부원에게 불만을 품으면서부터 시작됐다.
3학년은 본인보다 학년이 낮은 생도가 거슬리게 구니까 짜증 나고, 2학년은 선도부원으로서 평범한 생도에 불과한 그에게 제제를 먹인다.
그게 지속되다 보니 결국 3학년 생도가 2학년 선도부원에게 손찌검을 했고 그러면서 3학년과 선도부의 신경전이 시작된 것.
“특히나 동아리에 묶여 있던 3학년들이 화가 잔뜩 났나 봐.”
“이제 곧 있으면 졸업인데 부원들은 다 선도부로 떠나고. 3년 동안 머물던 동아리가 사라지니 화날 만하죠.”
새로운 선도부에서는 당연하게도 3학년은 뽑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곧 졸업하는 생도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막상 그렇게 되니 3학년들은 또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불합리하다 느끼는 중이었다.
“하아, 이놈의 아카데미는 조용히 가는 날이 없네.”
녹아내리듯 책상 위에 엎어지는 실리아의 모습을 보니 그녀가 정말로 피곤하다는 게 보였다.
2학년임에도 선도부를 거절한 실리아에게 3학년 생도들이 종종 찾아오기도 하고.
선도부는 아직 실리아 영입을 포기한 게 아니라서 거기는 또 거기대로 매일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
“고생하시네.”
“……부장님이 나 못 데려간다고 엄포를 좀 놔야 하는 거 아니야?”
엎어진 상태에서 고개만 슬쩍 돌려 째려보지만 나는 어깨만 으쓱거린다.
“어차피 안 갈 거잖아요.”
굳이 내가 나서서 그쪽 눈에 띌 필요가 있겠는가. 이미 여러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하아.”
고개를 책상에 묻으며 한숨을 내쉰다.
결국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실리아도 알고 있는 거였다.
“오?”
그때 다이니와 투닥거리다가 부실 이곳저곳을 들쑤시던 마리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창문 밖으로 향한 그녀의 시선에는 불꽃처럼 흥미가 순식간에 타오르고 있었다.
“2, 3학년 패싸움 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