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이걸 왜 청소해야 하는 거야?”
마리아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앞치마에 위생 두건까지 머리에 쓰고 있는 게 상당히 본격적이다.
창고 앞.
먼지가 풀풀 풍기는 것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저걸 그냥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기사단원들을 빨리 소환하는 게 필요한 지금, 저런 작은 물건들이라도 뭉치면 기사단을 소환하는데 도움은 되겠지.
‘근데 저걸로 소환된 애는 좀 기분 나쁠 수도 있겠네.’
굳이 따지자면 잡동사니들로 불러진 거니까.
뭐 어쨌든.
“은빛사자 연구회면서 기사단이 무슨 물건을 썼는지 연구하고 보존해야지.”
당당하니 말하자 마리아는 입술을 삐죽 내민다.
“나는 대련한다고 들어서 동아리 들어온 건데. 이런 건 그냥 구실 아니었어? 진심으로 한다고?”
저렇게 나올 줄 알았다.
마리아와 베런을 꼬실 때 동아리 이름은 구실이고 그냥 대련하는 동아리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으니까.
“닥치고 그냥 해. 넌 반쯤 노예야.”
레이로즈 가문에서 구해주는 대가로 마리아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으니 이렇게 억척스럽게 나갈 수도 있다.
내 말에 짜증내면서도 가장 먼저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마스크는 없어?”
“없어, 그냥 해.”
“에이 씨.”
머리에 두르고 있던 두건을 풀어 코와 입을 가리며 창고 안을 헤집기 시작한 마리아.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파이팅.”
“가위바위보 이겨서 진짜 다행이다.”
“난 저런데 못 들어간다.”
다른 녀석들은 먼지 낀 물건들을 닦을 준비를 하며 밖에서 기다린다.
“일단 안에 있는 물건들 전부 밖으로 빼자. 그러면 애들이 알아서 닦아줄 거야.”
“아, 더럽게 귀찮네.”
“그래도 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짐 옮기는 거니까 수월하잖아.”
마리아의 성격상 먼지 낀 물건들을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지는 못할 거다.
분명 참지 못하고 그냥 아작을 내버리겠지.
“귀해 보이는 물건들 위주로 해.”
“다 먼지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데 귀해 보이는 물건이 어디 있어.”
처음에는 말 몇 마디 정도는 하면서 흥겨운 분위기가 있었지만.
점점 하면 할수록 입 안에 쌓이는 먼지들 때문에 결국 입을 다물게 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물건의 대부분은 그다지 쓸모 있는 건 아니었다.
야전에 나갔을 때 사용하던 텐트부터 시작해서, 회식 때 쓰던 접시, 수통, 삽 같은 물건들.
‘넬슨이 정말 별 걸 다 들고 다녔구나.’
기본적으로 우리 기사단은 가장 위험한 장소에서 싸웠기에 종기사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필수 물품들은 개인이 잘 챙겨야 했고, 막내인 넬슨 같은 경우는 거기에 더 얹어졌을 것이다.
물론, 넬슨 혼자서 독박으로 들고 다니진 않게 마리가 잘 조율했겠지.
‘잘해줘야겠네.’
어제 새벽에 일레인 가문의 저택을 구경시켜줬으니 그렇게까지 미안하진 또 않았다.
기사단원들도 소환해서 부릴 수 있으면 좋지만 눈들이 너무 많다.
가뜩이나 눈에 띠는 애들이니까 이번에는 그냥 부원들끼리 하기로 했다.
“으음?”
대강 끝나가나 싶던 무렵.
마리아의 입에서 기묘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이건 뭐야.”
부스럭거리며 높이 올려든 물건은 먼지를 한껏 먹어 푹 쉬어버린 작은 곰인형이었다.
“샬롯이 쓰던 건가?”
놀려야겠다며 곧장 밖으로 나선 마리아. 나는 그녀가 나간 입구 쪽을 멀뚱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곰인형?’
분명 곰인형 관련해서 기사단에서 뭔가 일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자 마리아가 벌써 샬롯에게 곰인형을 내밀고 있었다.
“야, 샬롯. 네 꺼다.”
“으음?”
아예 물이 담긴 양동이를 가져와서 거기에 물건을 넣고 씻고 있던 샬롯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꺼 아닌데?”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마리아는 히죽거리며 손을 빼지 않는다.
“네 방에 인형들 몇 개 있었잖아. 이것도 그중 하나인가보지.”
“나는 인형 안 버려. 어렸을 때부터 쭉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야.”
“…….”
“근데 이건 직접 만든 물건인 거 같은데? 마감 같은 게 좀 별로다. 아니면 옛날 물건이라 그런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잠시 몸이 굳은 마리아. 샬롯이 인형을 좋아한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그렇게 뜻밖이지도 않았다.
“이것도 기사단 물건이라고?”
마리아가 집게손으로 곰인형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리자 샬롯이 닦은 접시에서 물기를 털어내던 다이니가 슬며시 내 쪽을 바라본다.
아니라고 딱 잘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쓰읍, 이거 물어보면 알 것도 같은데.’
일단 넬슨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니까 녀석한테 물어보면 알 것도 같았다.
“나 잠깐 방에 좀 다녀올 테니까 그거 어디 잘 둬 봐.”
“왜? 이거 가지려고?”
마리아의 쓸데없는 말을 무시하며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넬슨이 창문을 통해서 버들바람 마을을 보고 있었다.
“단장? 청소 다 하셨습니까?”
창고는 이쪽에서 보이지 않다 보니 내가 왜 왔는지 모르는 넬슨.
일단 녀석의 소지품에서 나왔으니 뭔가 알지 않을까 싶어 묻는다.
“저기에 작은 곰인형 하나 있던데 그거 뭔지 아냐?”
분명 관련해서 누가 말했던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손이 닿지 않는 등이 가려운 기분.
다행인 건 질문에 대한 답이 넬슨에게서 금방 나왔다는 점이었다.
“고, 고, 곰인형 말씀이십니까?!”
퍼뜩 놀라면서 눈이 동그랗게 뜨인 녀석은 말까지 절면서 물어왔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정말로 넬슨이 가지고 있던 물건은 맞긴 한데.
“어, 곰인형. 창고에서 나왔는데?”
짐짓 별거 아닌 척하며 말하자 녀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머뭇거린다.
“아, 그…… 으음.”
“뭔데.”
이제는 기사단 소환이 아니라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퍼져 간다.
“저기, 그게.”
넬슨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으나 나는 팔짱을 끼고 문에 등을 기대어 말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다른 물자들이랑 같이 발견될 정도면 꽤나 소중한 물건이란 건데.
내가 아는 바로는 넬슨이 곰인형 같은 걸 그렇게 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하아.”
결국 한숨을 내쉬며 넬슨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엠버 선배가…… 주신 겁니다.”
“엠버가?”
마리와 한나 그리고 도로시 다음가는 우리 기사단의 여성 기사.
또한 몇 없는 방패와 칼을 함께 쓰는 우리 기사단의 전위 중 하나였다.
“엠버가 왜 너한테 그걸 줘?”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되는 일인데 이상하게 머리가 굳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런 내 질문에 넬슨은 더욱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답했다.
“사, 겼었습니다.”
“…….”
“그, 지금은 아니고요. 300년 전에 헤어졌습니다! 이래저래 돌아다니다가 곰인형 버릴 타이밍을 놓쳐서…….”
넬슨이 뭐라고 설명하고 있었으나 나는 이제야 내가 왜 곰인형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마리가 말해줬었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악마의 군세를 몰아내고 막사 텐트에 있을 때 갑자기 마리가 찾아왔었다.
기사단 내부에서 곰인형 같은 걸 주고 받으며 이성교제를 하는 단원들이 있는 것 같다고.
뭐, 우리가 애도 아니고.
당시에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그냥 알아서하게 두라고 말했었으나.
“그게 너희였구나.”
살짝 충격 받은 표정으로 넬슨을 보자 녀석이 다급하게 손을 휘젓는다.
“근데 지금은 진짜 아닙니다! 성격 차이로 그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고요!”
“그런데 미련이 남아서 곰인형은 못 버렸고?”
“아니, 진짜 아닙니다. 300년이나 지났는데 미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역소환되면 엠버랑 같이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넬슨이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로 마음은 남지 않은 듯 보였다.
“다른 단원들은 알아?”
“……부단장님만 아시고 아무도 모르십니다.”
“하긴, 알았으면 걔네가 그냥 있었을 리가 없지.”
아마 난리를 치면서 열과 성을 다해서 놀려댔을 거다.
“엠버면 한나 바로 아래였나?”
“맞습니다. 도로시 선배랑 한나 선배 사이입니다.”
“새끼, 잘도 꼬셨네.”
“……제가 꼬신 건 아닙니다.”
뭐 어쨌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알려줘서 고마워.”
“근데…… 곰인형 그냥 처분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인지 넬슨이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나는 당연히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뭔 소리야. 저걸로 엠버 소환해야지.”
“……예?”
“아니, 엠버가 직접 선물해 준 거라며. 저거 보니까 수작업한 것 같다고 샬롯이 그러던데?”
엠버가 직접 만든 거라면 꽤나 손때가 많이 묻어 있겠지. 소환하기 어렵지 않을 거다.
당연한 소리를 해주자 넬슨이 다급하게 내게 달려온다.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옛 남자친구한테 준 선물로 소환되면 엠버 선배가 얼마나 화를 낼지 저는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아, 확실히. 엠버는 좀 드센 면이 있었지.”
여자 단원들 중에서는 가장 화끈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전위에서 늘 방패를 들고 활약해 줬고.
근데.
“그 정도는 감수해라.”
기사단원을 추가로 소환할 수 있는 기회인데 사소한 관계성 때문에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준 후, 그대로 밖으로 빠져 나왔다.
절규하듯 무릎 꿇는 넬슨의 모습은 다소 꼴사나웠다.
당연하지만 일은 굉장히 빠르게 치러졌다.
내가 다시 돌아갔을 때, 샬롯이 먼지 쌓인 곰인형을 다시 깔끔하게 털어내고 있었다.
“어때? 나름대로 깔끔해졌지?”
완벽하게 깨끗해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썩 볼만하게 된 곰인형.
샬롯에게 감사하고 나는 그걸 쥔 채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손톱을 깨물고 있는 넬슨을 내버려둔 채. 나는 곧장 마나로 마법진을 그렸다.
화사하게 쏟아지는 푸른빛.
내 손에 쥐고 있는 곰인형이 촉매가 되어주며 마법진 안으로 자신이 담고 있는 시간과 역사를 흘러 넣었고.
곧이어 푸른빛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여인의 외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밖에 내려오지 않는 단발머리의 여성.
기사라고 보기엔 체형이 조금 작은 편이었고, 실제로 우리 기사단의 최단신이었으나.
누구도 그녀의 견고함을 무시하지 않는다.
두꺼운 갑옷.
왼손에 걸치고 있는 원형의 방패와 허리춤에 매고 있는 한손 검.
“엠버?”
내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러보자, 빛에 감싸여 있던 여인은 천천히 내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은빛 사자 기사단의 작은 방패, 엠버. 300년 만에 단장을 뵙습니다.”
워즈가 가르친다고 들은 멘트다.
나를 오랜만에 볼 때만큼은 충분히 예의를 지키라고 녀석이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소리치며 가르쳤다고 들었다.
“엠버, 오랜만에 본다.”
대답을 듣자 엠버 역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으나.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곰인형과 그 옆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넬슨을 본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