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제페른에서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다. 그 말이 정말 피부로 와닿는 광경이 불과 10분 동안 펼쳐졌다.
앤의 돈주머니가 찰랑거리는 순간 수감소를 지키던 병사들이 바로 헤벌쭉하니 입꼬리가 올라가서는 바로 꼬리를 흔든다.
그들 앞에서 근엄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돈만 준다면 나라라도 팔아먹겠다는 심보가 눈에 그득히 보였다.
심지어는 돈만 충분하게 가져오면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탈옥시켜 줄 수도 있다는 제안을 넌지시 건네 오는 걸 보며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돈주머니에서 들리는 찰랑 소리.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광경을 보는 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와, 와아.”
수온 역시 혀를 내두르며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따라가기 힘들어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
이런 상황을 이용하고 있는 앤이었으나 정작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그녀는 굉장히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제페른이 조금 독특한 거지?”
면회소가 따로 없다고 해서 아예 감옥으로 향하던 와중 나는 슬그머니 앤에게 물었다.
내 휠체어를 끌어주고 있는 앤의 목소리에는 착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긴 하지만…… 다른 도시들도 사실 크게 다르진 않아. 로아 제국 자체가 지금 이런 부분에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거든.”
“으음?”
“제왕의 병세가 심해져 앓아누운 뒤부터 후계자 자리를 두고 싸운 지 벌써 몇 년이 됐거든.”
“…….”
“그래서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이런 변방은 관리 감독이 소홀한 거야. 아마 우리를 거절한 이유도 괜히 자기들 파벌 싸움에 변수가 될 수 있어서겠지.”
“우리가? 너무 강박적인데.”
고작 생도랑 마법사 몇 명이 병 때문에 찾아오는 건데 뭐가 문제인가 싶었으나.
앤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진다.
“그만큼 몇 년이고 싸워왔으니까. 차라리…….”
애처로움이 담긴 한마디.
“차라리 제왕께서 빨리 돌아가셨다면 이렇게까지 계승권 다툼이 길어지진 않았을 텐데.”
“…….”
설마 앤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정말로 내가 아는 앤이 맞는지, 만약 몸이 제대로 움직였다면 고개를 들어서 확인해 봤을 거다.
하수구에서 나와 함께 레지스탕스를 상대하던 정의감 넘치던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 걸까.
“다 왔습니다.”
돈을 쥐어주기 전까지는 반말을 해대던 간수의 간드러지는 목소리.
그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감옥에서도 가장 꼭대기였다. 양쪽 벽에 철창이 박혀 있었는데 한쪽에만 사람이 있었다.
대신 반대편 감옥을 차지하고 있는 건 백골이 되어버린 시체 한 구.
보는 순간 눈살이 팍 찌푸려졌다.
그들이 얼마나 관리를 안 하는 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럼 끝나시면 편하게 나오세요. 1층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 말한 후 그대로 밑으로 내려가는 간수.
아무리 돈을 쥐여줬다고는 해도 면회하는데 자리까지 피하는 건 무슨 생각인가 싶었다.
“낄낄, 판돈 생겼다고 좋다고 가는구나.”
감옥 안에서 울려오는 여성의 쉰 목소리.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어 있었다.
“어차피 다 잃을 게 뻔한데 말이야. 저놈은 모르지만 저것들 동료들끼리 짜고 치는 거야.”
썩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어쨌든 도박을 즐기러 간 간수가 나간 문을 뒤로한 채 우리는 천천히 그녀가 갇힌 철창 앞으로 다가간다.
검은 로브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다소 나이가 있는 여인은 심드렁하니 자신의 제자를 맞이한다.
“어서 오렴, 앤. 안 본 사이 많이도 커서 이제는 숙녀가 다 되었구나.”
“하르제 스승.”
“하, 하르제?!”
뜬금없게도 말을 내뱉은 건 내 옆에서 숨죽이고 서 있던 수온이었다.
그는 다급하니 양손으로 입을 감싸며 하르제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하르제와 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간다.
사제 간의 재회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왕국 출신 친구들이냐?
“얘만.”
“남자친구? 왜 근데 묶여있냐. 누가 너한테 벌써 그렇게 성숙한 플레이를 알려준 거야.”
낄낄거리면서 저속한 농담을 쏟아내는 하르제.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내게 정면으로 꽂혀 들어오고 있었다.
“적당히 하고…….”
“호오?”
앤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나를 본 하르제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처음으로 목을 쭉 내빼고는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휙 하고 앤을 보며 웃었다.
“이야, 어쩜 이렇게 남자 보는 눈이 좋은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대양이로구나.”
아.
나는 이 반응을 몇 번인가 느껴본 적이 있다. 알프레도 교수가 처음 입학식에서 나를 봤을 때 이랬고.
전임 학장이 알프레도 교수의 반응을 의아하게 여겨 내 마나를 확인했을 때도 그렇다.
하르제의 눈에는 지금, 내 안에 잠든 거대한 양의 마나가 보이는 중이다.
‘앤의 스승이라 할 만하네.’
보랏빛 눈동자에 담긴 짙은 호기심은 꺼져 있던 그녀의 마법사로서의 욕심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야말로 선택받은 마나량. 이번 시대에 힐다의 뒤를 잇는 대마법사가 나오게 될 줄이야.”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하르제가 고개를 앞뒤로 흔들거린다.
“아아, 아쉽도다. 2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나도 네가 흘리는 마법의 잔해를 개처럼 주워 먹었을 텐데.”
호기심은 탐욕으로 변모한다.
일렁이는 보랏빛 눈동자를 향해 나는 심드렁하니 답했다.
“저 기사입니다.”
“맞아, 이안은 기사야.”
“…….”
나와 앤의 말을 듣고는 표정이 굳는 하르제. 그러더니 얇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하긴, 마나가 많다고 똑똑하다는 건 아니니까.”
“…….”
“얘야, 잘 생각하렴. 너는 지금 대륙에서 가장 마나가 많다고 자부할 수 있단다. 이런 걸 마법에 쓰지 않고 고작 검술에 쓰겠다는 건……!”
“그거 이미 몇 번이나 아카데미 교수님이 말하셨어.”
“…….”
앤이 끼어들자 다시금 입을 꾹 다무는 하르제.
입술이 삐죽 나오는 게 아쉬움이 꽤나 커 보였다.
“너도 마나량이 많다는 걸 알잖니. 근데 왜 하필이면 기사를 하는 거냐? 편한 길을 내버려두고 어려운 길로 가는 거야?”
“음.”
그 질문에 나는 별생각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마법사로서의 재능보다 기사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나니까요.”
“허…….”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량은 태생부터 정해지는 것으로 결국 가장 중요한 재능 중 하나.
모든 마법사들이 부러워 할 마나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사로서 가진 내 재능에 미치지 못한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기에.
“당돌한 미친놈이었네.”
하르제는 혀를 내두르며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 확고부동한 마음을 봤으니 아마 더 이상 마법사가 되라고 제안하진 않겠지.
“하아, 이야기가 딴 길로 새잖아. 일단 좀 들어봐.”
“스승한테 말버릇 좀 보라지. 그래, 어디 한번 말해봐라.”
기침을 한 번하고 목을 푼 후, 앤은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페른의 악령이라고 알아?”
“으음?”
뜬금없는 이름에 눈썹이 꿈틀거리는 하르제. 반응을 보면 분명 알고 있었다.
“갑자기 그놈은 왜 찾는 거니?”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는 하르제에게 앤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정이 있긴 한데. 그 녀석이 지금 이안의 몸에 들어가서 주도권을 두고 싸우고 있거든. 그걸 해결할 필요가 있어.”
“아하? 그래서 손이랑 다리를 묶고 있었구나.”
씨익 웃으면서 하르제는 팔짱을 낀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흥분된 숨소리를 흘리며.
“반응을 보니까 알고 있구나?”
재촉하듯 앤이 묻자 하르제는 박자를 맞추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거린다.
추억을 회상하는 듯 보였다.
“아, 그럼. 알고말고. 그놈은 참 괴짜였어. 사령술 쪽으로는 일류라 할 수 있었지. 흑마법은 마탑이 없어서 등급을 매기지 못하는 걸 참 아쉬워했어.”
‘역시 사령술인가.’
흑마법 중에서도 영혼을 다루는 거라면 대표적으로 사령술이다.
놈은 스스로 자살해서 영혼이 되었다고 들었으니 사령술사가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
“이게 말이야. 흑마법을 배우는 놈들은 워낙 음침해서 종종 멍청한 소리를 할 때도 있긴 했는데. 또 반대로 획기적인 발견을 해낼 때도 있었지.”
생각보다 놈과 친했던 걸까?
의외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는 느낌이 내용에서 뚝뚝 묻어나왔다.
“딱 그놈이 그랬어. 개소리를 짖어댈 때나 천재적인 발상을 해낼 때면 침을 튀겨가며 설명해 댔지.”
“친했나 봐? 보통 마법사들은 그런 거 잘 공유 안 하잖아.”
맞는 말이다.
당장에 메이제렌의 마법사들만 해도 자신들의 연구 성과가 뺏길까 노심초사하면서 눈치를 보곤 했으니까.
제페른의 마법사들 같은 경우도 그게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앤의 질문에 하르제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간다.
“친하진 않았어. 사실 나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는데 그놈이 억지로 쏟아냈던 거뿐이야. 얘기할 사람이 나밖에 없기도 했고, 내놓은 마법을 실험해 볼 수도 없었거든.”
“……?”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뭔가 늪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점점 고조되어 가는 분위기는 하르제의 의도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놈이 이런 말을 하는 거 아니냐? 영혼 상태에서도 마나를 다룰 수 있다면 결국 영생에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게 아니냐고 말이야.”
“그, 래서?”
더 듣기가 두려워 보이는 앤. 수온도 슬그머니 내 뒤로 와서는 뭔가 불안하다는 티를 낸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까 목매달고 뒤졌더라. 자기 상의랑 하의, 팬티까지 싹 묶어가지고 줄로 사용했더라고.”
그러고는 슬그머니 하르제가 손을 앞으로 가리킨다.
나와 앤을 지나쳐, 뒤에 있는 또 다른 철창.
덩그러니 놓인 백골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저놈이야.”
우리의 시선이 동시에 반대편 철장에 놓인 백골에게로 고정된다.
마법을 사용했는지 냄새조차 나지 않고 살점 하나 없었다.
“간수들이 워낙 관리를 안 해서 말이지. 내가 부탁해서 잠깐 마법을 써서 깔끔하게 백골만 남게 만들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썩은 내 때문에 살지를 못했을 거야.”
죽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빠르게 찾을 줄은 몰랐다.
백골을 보고 지을 표정은 아니지만 앤과 수온의 표정이 한껏 풀어진다.
“금방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다.”
“앤 님 덕분입니다! 실마리를 정말 빠르게 찾았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앤과 옆에서 주먹을 불끈 쥐는 수온.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실마리를 찾은 건 다행이지만 결국 놈의 사령술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일단 이름이나 거주하던 주소 같은 걸 좀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나.
“굳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 없다.”
내 생각을 알아차린 듯 하르제가 이죽거린다.
“저놈이랑 여기 수감된 게 거진 7년이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원래 연구를 못 하면 입을 놀리게 되어 있거든.”
“그렇다면……!”
눈이 떨려온다. 설마 이렇게까지 상황이 쉽게 풀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저놈이 알고 있는 사령술에 대해서는 대부분 꿰고 있다는 소리지.”
당당하니 말하는 하르제라는 늙은 여인이 처음으로 믿음직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