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감옥에선 한창 이야기가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흑마법 중에서도 가장 깊은 어둠을 담당한다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사령술.
그것에 관해 심도 깊은 가르침이 펼쳐지고 있었다.
감옥에서 흑마법을 배운다.
나름대로 어울리는 배경이 아닌가 싶었다.
“사령술이란 타인의 영혼을 다루며 마법을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들은 마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죠.”
“음.”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당연한 부분이며, 자신의 영혼까지도 다루는 흑마법사를 일류라고 부릅니다.”
“몸까지 버리면서 영혼이 된 거면 일류 이상이라고 볼 수 있겠네, 그놈은.”
“맞습니다. 열심히도 밑에서부터 쌓아왔고 결국에는 그 경지에 도달한 거죠.”
“흐음, 더 복잡해지는데.”
결국에는 자신의 영혼을 다룰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마몬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만들어진다는 소리인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사령술의 대마법사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니까.
“다만, 저희는 그와 같은 시작점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니니까요.”
“음?”
“흑마법사들은 마법을 연마하는 도중 그곳까지 닿은 거지만, 레이먼드 님께서는 딱 그 부분만 배우시면 되는 겁니다.”
“아아.”
그렇게 들으니 막막하던 감정이 조금은 덜어진 느낌이 들었다.
내게 필요한 부분까지 가기 위해서 다른 흑마법사들과 똑같은 길을 걸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딱 원하는 부분만 배우면 된다는 소리니까.
“물론,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선행으로 배워야 할 게 있으니까요. 일종의 기본이죠.”
“그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
정말 쏙 빼 먹는 것까지 바라진 않는다. 너무 날로 먹는 행위니까.
“네, 이제 본격적으로…….”
“잠깐만.”
하르제 입을 열기 전, 나는 그녀를 저지한다.
“네?”
“누가 온다.”
계단에서 들려오는 다급하면서도 묵직한 발걸음 소리. 아까 왔던 간수의 것으로 들리진 않았기에 아무래도 뭔가 상황이 벌어진 듯싶었다.
덜컹!
예고대로 문을 부수며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
“꼼짝 마!”
“어차피 못 움직이는데.”
“나는 감옥에 있어.”
기사들의 외침에 나와 하르제는 나름대로 무고함을 증명하려 말했으나, 그게 기사들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이를 으득 문다.
“이 새끼들이 지금 장난하는 줄 아나!”
콧바람을 크게 내쉬며 가장 앞에 있던 기사가 내게 달려들려 했으나.
“가만히 있어라.”
기사들의 뒤에서 울려오는 남성의 무색무취의 목소리.
옅게 냉랭하다는 느낌 정도만 들고 있음에도 묘하니 공간을 장악해 간다.
뒤따라 걸어온 그를 위해 길을 터준 기사들. 덕분에 남자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다른 기사들과는 다르게 검은 갑주를 끼고 있으며 등에 매고 있는 건 두꺼운 장창.
장신이었으나 덩치가 크진 않은 게 딱 워즈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워즈랑 다르게 남색 머리카라락을 완전히 뒤로 젖히고 있는 게 훨씬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폴 벨크터스 기사단장…….”
“오랜만입니다, 하르제 대마법사님.”
‘대마법사?’
남자의 걸음걸이나 대강 느껴지는 기량으로 봐서 최소 기사단장 자리는 꿰차고 있을 건 예상했다.
내가 놀란 건 하르제 쪽이었다. 설마 대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릴 여인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자 살짝 윙크하며 어색하니 답했다.
“고작 두 속성을 마스터했을 뿐입니다. 힐다 님의 친우분이신데 그 앞에서 대마법사라고 말하긴 뭐하지 않습니까.”
“……뭐, 걔는 워낙 논외니까.”
한 가지 속성을 완전히 깨우친 걸 마스터라고 부르지만, 힐다는 여섯 개를 깨우쳐 대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사실 그녀와 비교하면 어떤 마법사도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소년이 앤 공주님의 복귀와 관련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
“일단 체포에 들어갑니다. 하르제 마법사께선 괜한 힘 빼지 말아주시죠.”
순간 하르제가 내 쪽을 바라본다.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이 빠르게 내밀어졌으며 나는 짧은 시간 고민에 들어갔다.
‘기사단을 소환하면 사실 여유롭게 도망칠 수는 있어.’
하르제까지 데리고 도망칠 수 있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당장에 즉흥적인 해결은 가능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있는 곳은 로아 제국.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도 없고, 내 몸의 상태 그리고 앤과 수온도 문제였다.
‘게다가 앤 공주님?’
아무래도 하르제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어 보였기에.
“저항하진 않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그들에게 투항했다.
* * *
끼이익.
쿵!
철창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구른다.
밀입국을 제외하고 무슨 혐의가 걸려 있는지 모르겠으나 기사들의 대우가 퍽이나 심상치 않다.
반나절 동안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소속은 어디인지 같은 기본적인 심문 속에서도 내가 썩 유용한 답을 주지 않았던 것도 이유인 듯했으나.
그것 말고도 앤과 관련되어 있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하는 거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감소에 남아 있는 감옥이 딱 하나.
“다시 오셨군요?”
“……그렇게 반기는 게 썩 달갑진 않은데.”
제페른의 악령이 사용하던 감옥이었기에 다시 하르제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휠체어에서 내려 몸이 구속당한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을 뿐이지만.
“앤은 무사합니까?”
“모르지, 만나지를 못했는데.”
“…….”
“오늘은 심문 때문에 날이 늦어서 일단 여기에 가둔다고 하더라. 대신 내일 바로 수도로 간다고 들었어.”
앤뿐만 아니라 수온도 보지 못해서 솔직히 좀 걱정되긴 했으나.
‘공주와 연관된 사람이니까 그래도 함부로 대하진 않겠지.’
확신할 수는 없다.
사실 이 상황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쨌든 말이야. 운이 좋게도 강의를 들을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끌려갔을 때만 해도 어떻게 상황을 모면해야 할까 고민했으나, 이렇게 된다면 일단 흐름에 맡기는 게 정답이었다.
앤이나 수온을 구하고 싶어도 몸을 움직일 방법은 좀 얻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말을 들은 하르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양손을 들어 올린다.
그녀의 손목에는 마법을 제한하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벨크터스 기사단장이 이런 것도 가지고 있더군요. 덕분에 실습으로 보여드리는 건 어렵고 이론으로만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곤란하네.”
시간이 늘었다고 생각했더니 배우는 방식이 어려워졌다.
마법을 피부로 체험하고 배우는 게 아니라 단순히 말로만 들으면서 익히는 건 꽤나 난해했다.
“일단 그렇게라도 해야지.”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온다. 우리의 소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는 뜻이었고.
그걸 본 하르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철창에 달라붙어서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알려드릴 건…….”
* * *
이른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첨탑 형태의 높디높은 감옥의 아침에 유일하게 허락된 것이었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피로하긴 했으나 나와 하르제의 눈동자는 감기지 않았고, 입 또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응축하고 압축한 사령술 이론의 정수.
“이게…….”
그 끝에 도달하고 나서야 하르제는 식은땀을 닦고, 쉬어버린 목을 가다듬으며 웃었다.
“끝입니다.”
“……고생했어.”
새벽 내내 강의를 들었다.
만약 이게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면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하면서 웃어줬을 텐데.
오히려 내 안에는 다소 묵직한 절망만이 들어앉아 있었다.
“이해가 잘 안 되시는군요.”
하르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으나 이건 무조건 받아들였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난해하고 복잡했으며, 애초에 내가 마나를 다루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영혼에 마나를 불어넣게 된다.
하르제가 직접 예시를 보여주면서 설명했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웠겠으나.
검술을 말로만 설명할 수는 없듯, 마법도 말로만 설명하는 건 지독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웠다.
“일단…… 노력은 해볼게. 내용은 전부 반지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힘내시길 바랍니다. 분명 하실 수 있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하르제. 이제 슬슬 나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 기사들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촉박한 시간, 여기서 하르제에게 최대한 물어볼 수 있는 걸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해졌으나.
그녀는 오히려 몸을 돌려 감옥 안쪽으로 향한다.
그러더니 바닥에 깔린 벽돌 중 하나를 쑤욱 뽑아낸다.
“7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비상사태를 늘 대비해 왔죠.”
족쇄를 손에 차고 있는 상태에서도 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건 작은 지팡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회초리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묘한 마나가 안에 담겨 있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탈옥할 수 있으면서도 일부러 안 하는 게 맞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했던 걸 확신하며 다시 지팡이에 집중한다.
갑자기 무슨 의도인가 의문이 들었으나 하르제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다시 내 쪽으로 걸어왔다.
“레이먼드 님.”
진중하니 나를 부르는 목소리.
밤을 세워가며 강의를 한 턱에 목이 따가울 텐데도 그녀가 저리 부르는 걸 보면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흑마법을 가르쳐 드리며, 마몬에게 저항할 수 있는 마법까지 알려드렸습니다. 이 정도면 300년 전 대륙을 구하신 당신의 은혜에 제 나름대로 보답해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응, 맞아. 갑작스러운 상황일 텐데도 너는 충분히 나를 도와줬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의 문제였다. 깔끔하게 설명해 준 그녀를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하르제는 긴장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동등한 관계 속에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탁……?”
“예, 그렇습니다.”
철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감옥에 드리운 어둠 때문에만 어두워 보이는 건 아니었다.
“앤 공주님을 구해주세요.”
“…….”
“시간이 없어 많은 걸 설명 드리진 못합니다. 하나, 앤 공주님께서는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위험한 상황?”
하르제는 고개를 끄덕인다.
“제국의 뱀들로부터 앤 공주님을 구해주세요.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신다면 제국에서도 당장에는 어떻게 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슬그머니 하르제가 방금 꺼낸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회초리라 봐도 무방한 그것.
그것에서.
“어……?”
미세하지만 힐다의 마나가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아차린 하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앤 공주님을 구해주신다면, 이것. 먼 옛날 대마법사 힐다 님께서 견습 마법사 때 사용하셨다 알려진 이 지팡이를 드리겠습니다.”
“아.”
“제가 경매로 아주 어렵게 구한 물건입니다.”
힐다가 사용하던 지팡이.
그녀가 남기고 갔던 마석을 통해서 느꼈던 마나와 엇비슷한 것이 저 지팡이에 미세하게 남아있었다.
‘저거라면 분명히.’
힐다를 소환할 촉매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