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
그날 아침.
감옥 밖으로 끌려 나온 나는 첨탑 앞에 늘어져 있는 마차들을 확인한다.
앞에 있는 마차는 꽤나 호화스러운 게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그 뒤에 서 있는 마차는 평범했으나 한 사람 누울 정도밖에 안 되는 바퀴 달린 이동식 독방 하나가 뒤에 달려 있었다.
“설마 이거에 타고 가라고?”
손과 발이 묶인 나를 들쳐 업고 있는 기사에게 턱짓으로 물었으나 그들은 별다른 답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끼이익.
문을 열자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퍼져 들어온다. 창문 하나 달려 있지 않아서 내부는 어둠밖에 없었다.
“로아 제국은 이런 감옥이 합법으로 이용된다고?”
이건 고문용 독방 수준이지 않나 싶었으나 그들은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안으로 처넣었다.
호화스럽던 첫 번째 마차는 앤을 위해서 준비된 거였다면, 뒤에 있는 이 독방은 나를 위한 것.
“야! 수온은! 마법사는 어디 갔어!”
쾅!
수온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기에 다급하니 물었으나 문은 닫혔고, 내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질 뿐이었다.
“죄수 실었습니다!”
“출발 준비해! 바로 간다! 거리가 있으니 바쁘게 움직여야 해.”
기사들의 외침.
마차의 삐거덕거리는 소음, 자갈이 밟히는 소리 등.
독방 속 어둠으로 찾아오는 소음들은 굉장히 평범한 것들이었으나, 이런 장소에서는 오히려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이런 장소에 있어본 적은 없는데.’
천천히 앉아서 다리를 쭉 뻗어 보자 딱 반대편 벽에 닿는다. 손을 옆으로 뻗어 봐도 한손 정도만 뻗을 수 있는 넓이.
내가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피부로 확인하자, 갑갑함이 쑤욱 치고 들어온다.
눈이 아직 어둠에 적응되진 않았으나, 적응이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으음.’
눈을 감는 거랑 크게 다를까 싶어서 몇 번인가 눈을 깜빡였는데 생각과는 다른 심적 압박감이 차올랐다.
눈을 감아도, 떠도 어둠뿐이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길게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았는지도 헷갈리게 되겠지.
‘이런 경험은 처음이긴 하지만…….’
정말 고문용 독방이나 다를 바 없는 장소였다.
그렇다고 해서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생에서 쓰레기장을 전전하던 경험과 기사로서 해왔던 훈련들이 나를 견고하게 지탱해 줄 거라 믿었다.
“출발해!”
덜컹덜컹!
밖에서 들려온 거센 목소리와 동시에 독방이 거칠게 흔들린다.
바퀴 굴러가며 말의 발굽 소리가 들려 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때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으나, 곧이어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흔들리는 느낌에 잠을 자는 것도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일단은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깨어서 하르제의 강의를 들었으니까.
나는 잠깐이라도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천천히 몸을 뉘였다.
* * *
“끄으음.”
상당히 피곤했음에도 그리 오랜 시간 잠들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출발했을 당시보다 훨씬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산길 쪽을 따라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무나 숲의 파릇한 냄새라도 들어오면 좋으련만, 이 안에서는 이전 수감자들이 흘리고 간 땀과 눈물, 피가 끈적하게 뒤섞인 구린내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잠도 못 자겠네.’
찌뿌둥하니 눈두덩이 묵직하고 여전히 피곤했으나,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우웅.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가 진동하며 잔잔한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지금부터 알려드릴 건…….
어젯밤 동안 들었던 하르제의 목소리. 다시금 시작된 강의에 나는 한 번 더 집중해서 그것을 경청한다.
사령술의 기본부터 시작해서, 내게 필요한 부분까지. 이 독방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잘됐어.”
고문에 가까운 독방 생활.
나는 오히려 사령술을 배움과 더불어 마몬의 힘을 억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 * *
“밥이다.”
드륵.
퉁.
문에 달린 배식용 작은 여닫이문을 통해 빵과 물병 하나가 툭 들어온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받아들고 입에 욱여넣었다.
– 몸에 보조마법을 걸거나, 단순 마나로 강화시킬 때와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사실 결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빵을 입에 문 채로 반지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계속 경청한다.
마나를 이용해서 이것저것 해보고는 있으나 막상 뭔가 대단한 진보를 해내진 못했다.
“하.”
뜨거운 숨이 토해진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나름대로 해낼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마법에 있어서는 내가 범재라는 걸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마나만 많을 뿐,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신체에 마나를 부여하는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면서 마나의 흐름을 영적인 부분으로 뚫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그냥 마나를 뿌려대는 느낌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차라리 한 번 봤다면 대강 감이라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지난번 대사자깃발에 마법을 부여하던 때보다도 몇 배는 어렵다.
애초에 다른 마법보다도 흑마법은 어렵고, 그중에서도 사령술은 꼭대기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애초에 기본적인 마법만 다룰 정도로 겉핥기 수준에 불과한 내가 갑자기 이런 걸 배운다는 게 과한 욕심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꿀꺽 꿀꺽.
빵을 다 먹고, 물로 그것을 쓸어내린다. 식사라는 행위에서 어떠한 만족감도 찾을 수 없는 방식.
그런 간단한 만족감조차 집중하고 있던 내게는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 영혼에 마나를 담는 것.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면서도 가장 기초되는 부분입니다.
뛰기 위해서는 일단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가 담긴 말에 나는 다시금 마나를 안에서 퍼트려 본다.
하나, 마몬이 방해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우우우.”
지끈하고 머리가 아파온다.
답답함에 가슴을 쿵 두드려 보며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품에서 느껴지는 얇은 촉감.
나는 천천히 그것을 꺼내 든다.
회초리와 비슷하게 생긴 지팡이.
앤을 구해달라면서 하르제가 내게 건네었던 힐다의 물건.
‘차라리.’
여기서 힐다를 소환해 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
쨍그랑!
손은 이미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물이 담겼던 유리병을 깨트린다.
작은 조각들로는 가벼운 상처 밖에 낼 수 없을 테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꾸욱.
유리조각으로 검지손가락 끝에 상처를 준 후,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이용해서 바닥에 익숙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나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
평소에는 마나를 선으로 이용해서 마법진을 그렸지만 그것 역시 일정양의 마나가 소모된다.
지금부터 내가 할 건 힐다를 소환하는 일.
아주 조금의 마나 손실도 없어야 했기에 이렇게 수작업으로 직접 마법진을 그렸다.
피로 그리면 분필 같은 것보다도 훨씬 동기화도 쉽겠지.
마나를 굳이 쏟아 넣는다는 개념 없이도 알아서 반응하고 발동할 거다.
툭.
나는 조심스럽게 마법진의 정중앙에 힐다의 지팡이를 놓았다.
“후우.”
마나가 요동친다.
외부에서 알 수 없도록 바로 마법진 안으로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마나를 안으로 때려 박아댄다.
피로 그린 마법진이라 그런지 붉은빛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뭉텅이처럼 마나가 쏟아져 들어가던 그 순간.
“컥!”
두통이 찌릿하고 머리를 울리며 들어온다.
마몬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안에 담겨 있던 방대한 양의 마나가 그에게 통제당한다.
“허, 억!”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몸의 근육이 뒤틀리며 억지로 마나를 쏟아내려 했던 부작용이 그대로 밀려 왔다.
만약 손과 발이 묶여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발버둥 치면서 고통에 몸부림 쳤을 거다.
“끄어! 끄아아아아악!”
쿵! 쿵! 쿵! 쿵!
마나를 억지로 사용한 것과 더불어 마몬의 기운이 이때다 싶어서 몸을 잠식해 오기 시작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나는 괴로움에 파묻혀 머리로 바닥을 계속해서 두드리며 억지 부리듯 울부짖어 봤으나.
“히야, 이제 시작됐네.”
“생각보다 오래 버텼지?”
“최고 기록일걸? 펠릭이 이번에 돈 꽤 벌겠네.”
“와, 꼬맹이가 정신력 좋네.”
밖에서 들려오는 건 로아 제국 기사들의 조롱 섞인 목소리뿐.
그들은 내가 언제 비명을 지를지 내기를 했던 듯싶다.
내부에서 마나가 휘몰아치며 거칠게 울어대고 있으나.
“마나량 많은 거 봐라.”
“상관없어. 어차피 마법으론 이거 못 뚫어.”
“어린놈이 괜히 까불긴.”
독방을 만든 철에 반마법 관련해서 장치가 되어있는지 그들은 허허 웃어대면서 넘길 뿐이다.
“끄어! 끄어어어어억!”
그 뒤로도 나의 비명은 장시간 이어졌다.
다룰 수 있는 마나가 고갈됨에 따라 마몬의 기운이 그 자리를 더욱 깊게 잠식해 왔고.
어느새 내 몸은 마몬의 기운이 전신에 퍼져 있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한 번의 실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최악의 결말.
피로 만들어진 마법진은 여전히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분명, 가능했을 텐데.
마나량은 결국 태생부터 정해진 것이기에.
힐다가 말했던 대로라면 내가 그녀를 소환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마몬이라는 존재 때문에.
놈이 내 안에서 계속해서 마나를 좀 먹어가며 억제하고 있기에.
결국 실패했다.
“아…….”
땀? 눈물?
혹은 피일 수도 있겠다.
나는 전신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걸 느끼며, 폐쇄된 암흑의 공간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쿠당탕.
몸에 힘이 풀린다.
마몬이 나를 먹어치우겠다며 득달같이 찾아드는 게 느껴졌다.
결국.
‘그래.’
나는.
‘가져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몸이 뒤틀린다.
마몬의 기운이 전신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며, 흐릿해져 가는 의식.
몸에 힘이 들어가며 천천히 일어날 준비를 하기 시작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나라는 인물의 연극.
“후우.”
어둠속에서 묵직하니 울려오는 목소리는 내 것임과 동시에 내 것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잠에 들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걸 놈은 내 마지막 저항이라고 여겼던 걸까.
“훌륭했다, 라인 레이먼드.”
대악마와 나의 목소리가 겹쳐서 울려온다. 솔직하게 내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제 끝이다.
나의 마나와 마몬의 기운이 섞여 들어가며 당장이라도 이 작은 독방을 부숴버릴 준비를 한다.
실로 위대하다 말해도 될 정도로 거대한 힘.
“어? 뭐야?”
“뭔가 이상한데?”
밖에 있는 기사들조차 독방 안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짐에 당혹스러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첫 만찬이로군.”
혀를 날름거리며 바로 독방을 부술 힘을 응축시키는 순간.
붉은 빛이 발밑에서 퍼져 나오기 시작한다. 빛 한 점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내부.
그렇기에 밖에서는 모르겠으나.
지금 독방 안에서는 거친 붉은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 건?”
놈은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그 감정이 내게로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분명 신체의 주도권은 내게 없는데 입꼬리가 울라간 기분이 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게는 힐다를 소환할 마나가 있다.
양이 부족하지 않으나, 마몬 때문에 그걸 전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장에 내가 그 마나를 전부 사용할 수 없다면, 아예 마몬에게 몸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을 때.
모든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피로 물든 마법진이 나의 마나에 반응해서는 소용돌이처럼 마나를 흡수해 간다.
“이건……!”
당황한 마몬이 다급하니 도망치려 들었으나 이곳은 독방.
게다가 손과 발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마법진의 위에서 도망칠 수 없다.
“라인! 라인 레이먼드으으으!”
거칠게도 외쳐대는 나의 목소리. 녀석은 어떻게든 발버둥치려 해보지만.
“그만.”
붉은빛의 마나들이 응축되며 좁디좁은 방 안에 한 여인의 목소리가 잔잔하니 울려왔다.
“내 친구의 몸을 함부로 다루지 마.”
소환마법의 빛이 사라지고.
여인의 손이 앞으로 뻗자, 나와 마몬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