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덜컹!
“후랴앗!”
빠악!
세 박자로 들려오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뜨인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머리에 손을 얹으려 했는데 뭔가가 툭 걸렸다.
“으음?”
정신을 잃고 있었기에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다시 필요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수갑에 묶인 손이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아채고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와, 돌머리라 그런가. 맞고도 웃고 있네.”
들려오는 반가운 여인의 목소리.
내 머리를 받치고 있는 게 딱딱한 독방의 바닥이 아니라, 푹신한 살결이라는 걸 알아챈 후에야 그녀가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깨울 거면 좀 친절하게 깨우면 안 되냐?”
그녀의 긴 금발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특유의 감귤향이 코끝을 은은하니 감싸온다.
“아무리 흔들어도 안 깨잖아. 너무 깊게 잠든 거 아니야?”
“네가 잠들게 한 거잖아.”
“슬립 마법을 오랜만에 사용해서 좀 과하게 쓰긴 했어.”
히히 하고 웃는 힐다.
대화하다 보니 점차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300년 전과 똑같이, 힐다는 너무나 즐겁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르간테 이후로 이렇게 일찍 나를 불러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운이 좋았지. 우연찮게도 네가 사용하던 지팡이를 얻을 수 있었거든.”
“이거?”
촉매로 사용한 지팡이를 슬쩍 들어 올리는 힐다. 양손으로 끝과 끝을 쥐고는 꾹꾹 휘어대며 말한다.
“이거 엄청 옛날에 쓰던 건데 이걸로도 촉매가 되는구나. 내 나름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던 물건이거든.”
“그거 얻는 걸로도 꽤 고생했어.”
“뭐, 그건 그거고.”
찰싹!
괜히 회초리처럼 생긴 게 아니다.
내 손목을 내려친 힐다는 짐짓 화난 듯 목소리를 깔았다.
“운이 뭐가 좋아? 너, 잘못하면 마몬한테 완전히 몸 뺏길 뻔했어.”
“작전이었어. 마나를 아끼는 척 피로 마법진을 그리고, 피로 그린 마법진의 특징을 이용한 거야.”
양손과 발이 구속되어 있고 독방이라는 협소한 공간이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만약 넓은 장소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가는 마몬이 자리를 벗어나는 걸로 싱겁게 끝났겠지.
“그래도!”
찰싹!
“아파!”
“아파라, 좀!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 내가 바로 나오지 않았으면 진짜로 마몬이 네 몸을 차지할 수도 있었어!”
“마몬의 재림은 위험하지만…… 그래도 할 만한 도박 아니었어?”
“네가 사라질 수도 있었어! 이 바보야!”
“알았으니까 그만 때려!”
계속 회초리를 내리치는 힐다를 밀어내며 몸을 일으킨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이 힐다의 등장으로 더욱 협소해졌다.
“야, 로브 좀 치워 봐.”
게다가 커다란 로브를 두르고 있는 그녀였기에 옷자락을 밟을 수밖에 없다.
“아! 밟지 마! 이게 어떤 로브인데!”
대마법사를 상징하는 로브를 다급하게 거둬가며 힐다가 나를 쏘아본다.
다소 소란스럽긴 해도 한동안 어둠 속에서 얘기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흥이 나버렸다.
밖에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어 입을 막으며 조심했으나.
힐다는 혀를 차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걱정 마, 소리는 차단해 뒀으니까. 여기서 우리가 어떤 소란을 피워도 밖에서는 못 들어.”
“……아무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이 독방은 마법에 내성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가능한 건가 싶었다.
“외부의 마나를 사용했거든. 뭐, 이건 네가 배우기엔 한참 멀었으니까 굳이 신경 쓰지 마.”
“…….”
외부의 마나?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걸 사용했다는 이야기인가?
대충 들어도 내 수준은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걸 알겠기도 했거니와.
물어봤자 힐다의 자랑질이나 들어야 했기에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넘긴다.
“그래서 마몬한테 몸을 뺏기면서까지 나를 불러낸 이유가 있겠지? 왜 이런 지독한 곳에 갇혀 있는지 지금 상황도 설명을 해야겠고.”
“아, 그래.”
그것보다는 우선 반지를 내밀려 했는데.
“어?”
새끼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없다. 혹시 바닥에 떨어졌나 주변을 살펴봤는데 반지의 은은한 빛은 힐다의 집게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 찾아?”
다소 낮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힐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잃어버린 줄 알았네.”
“너 자는 동안 봤거든. 어떤 년한테 받은 건가 싶어서 궁금했는데 그런 건 아니더라?”
“……말이 다소 거칠다?”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반지 안에 있는 내용은 너 자는 동안 전부 들었어. 흑마법과 사령술에 관련된 강의더라? 그게 마몬으로부터 네가 직접 저항하고,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그거…….”
침을 꿀꺽 삼킨다.
만약 여기서 힐다가 하르제가 말해준 흑마법에 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정말 큰일이 되지만.
힐다는 반지를 품에 쏙 집어넣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거 없던데?”
“하아아.”
지금만큼은 저 잘난 척이 너무나 반가웠다. 내가 살면서 힐다의 꺼드럭거림을 기뻐할 때가 올 줄이야.
“그래서 설마 이것 때문에 나를 부른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 이런 간단한 걸 모르진 않을 거 아니야?”
“…….”
“그치? 그러니까 말해 봐. 무슨 문제야? 이 누나가 뭘 도와줄까?”
누나는 개뿔.
히죽거리면서 얼른 대답하라고 묻는 그녀의 표정에는 짙은 장난기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말해. 응? 얼르으으은.”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내 어깨를 손으로 토닥토닥 두들기는 힐다.
입술을 꽉 깨물며 순간적으로 확 짜증이 치고 올라왔으나.
“후우.”
입술을 꾸욱 깨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모르겠어, 알려줘.”
내 말을 듣는 순간 힐다는 만족스럽다며 확 다가와서는 속삭였다.
“정답. 잘 말했어.”
* * *
“아오! 이런 것도 모르냐!”
“설명을 좀 더 잘해 봐! 제대로 이해한 거 진짜 맞아?!”
“네가 이러니까 검이나 들고 전쟁터 뛰어다니면서 개고생을 하는 거야! 나처럼 뒤에서 고고하게 지팡이 휘두르는 게 아니라!”
“네가 그렇게 안전하게 지팡이 들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우리가 지켜줘서라는 거 모르냐? 하여간 마법사 나부랭이들은 지가 아는 것만 알아요.”
고요하던 독방 안은 실로 소란스러웠다.
외부의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을 정도로 힐다와 나는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는 중이었다.
“하아! 하르제라고 했나? 얘가 설명을 그렇게 잘했는데 이거 이해 못 할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네가 설명을 제대로 못 하잖아! 그냥 대강 말해두고, 띡 보여준 다음에 해보라고 말하면 할 수 있냐? 누가 하는 거 보여 달래?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란. 서로를 향해 짜증 내는 이 상황이 익숙하긴 했으나 어쨌든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
“하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조됐던 열기와 흥분을 가라앉히며 힐다가 손을 뻗는다.
그녀의 손끝이 내 가슴팍에 닿으며 뭔가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어?”
몸 안에서 마나가 꿈틀거리지만 그것이 몸을 휘젓는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다른 걸 감싸 쥐는 기분.
“솔직히 말해서 난이도가 많이 어렵긴 해. 이렇게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하는 건 어렵겠지.”
“근데 말을 그렇게 한 거야?”
“내 제자들이었으면 충분히 했을 거야.”
“…….”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내가 부족해서 그녀의 설명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건 맞으니까.
“근데 말이야. 너랑 싸우다 보니까 조금 생각이 달라지네.”
“뭐?”
“애초에 왜 네가 사령술을 익혀야 하는 거야? 흑마법 같은 추악한 걸 굳이 기사인 네가 억지로 배울 필요는 없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힐다의 손길을 통해 흘러들어 오는 마나가 내 안에서 뭔가를 만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영혼이 마나에 연결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사령술의 극의까지 간 놈이 자신의 영혼을 다루는 곳까지 간 거라며.”
“그, 렇지?”
“결국 사령술은 타인의 영혼을 다루는 거니까. 내가 너의 영혼에 마나를 불어넣고 다뤄주면 되는 거 아니야?”
“……!?”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어졌다.
맞는 말이다.
인간을, 정확히는 힐다를 소환수로 다룰 수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
망치가 아니라 무슨 건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놀랐어? 나쁘지 않은 방식이지?”
“그래, 생각도 못 했어.”
“원래 생각은 내 특기잖아.”
그리고 하고 덧붙이는 힐다.
“나를 지켜주는 게 네 특기고.”
묘한 기류가 잠시 감돌았다. 독방이라서 거리가 좀 가깝기도 했으나 힐다가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다소 적극적인 말을 해왔다.
잠깐의 침묵.
나에게 흘러 들어오는 마나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며, 일종의 방벽이 생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열심히 마법을 구성하며, 힐다는 슬그머니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마몬에게 저항할 수 있도록, 이번에도 내가 도와줄게.”
* * *
“끄, 음.”
천천히 눈을 뜬 녹색 마탑의 마법사 수온.
그의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에 자연스럽게 이곳이 병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에 깁스가 되어 있는 걸 보는 순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낸다.
‘아, 아아아.’
갑자기 날아든 검은 갑옷의 기사에게 정통으로 얻어맞은 뒤, 옥상에서 떨어졌다.
단순 타격만으로도 어딘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낙하의 충격까지 더해졌으니 연약한 마법사는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지만 따로 사람이 있지는 않다.
다만, 병실로 보이는 장소의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점.
위생적으로 너무 더러운 걸 보며 이곳이 제페른의 병원이라는 나름의 추리를 해본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수온은 눈치껏 바로 눈을 감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척을 한다.
“저 간호사 나 보는 게 야릇해. 관심 있는 거 분명하다니까?”
“딱 봐도 아닌 것 같던데?”
“네가 이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
투닥거리면서 얘기하는 두 남성의 목소리.
자연스럽게 둘은 수온의 병상 옆에 있던 의자에 앉는다.
“그런데 얘는 언제 깨는 거야.”
“얼추 치료된 것 같은데 이제 수도로 이송하면 안 되나?”
‘이송?’
“근데 그거 들었어? 이번에 흑광에서 체포한 사람 중에 실종됐던 공주님도 있었다는데?”
“엥? 실종됐던 공주님이?”
“어. 그래서 벨크터스 기사단장이 흑광 기사단까지 끌고 와서 다 체포해 간 거잖아.”
‘체포?’
눈을 감고 있는 수온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앤과 이안이 체포되어서 기사단에게 이송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것.
“하아, 슬슬 이놈도 일어나야 하는데.”
“정 안 되면 가서 말씀드려 보자 그냥 수갑만 채우고 바로 가면 되는 거잖아.”
“그것도 그래.”
두근두근.
심장이 너무 두근거린다.
혹시라도 저들이 자신의 심장고동을 듣지는 않을까.
수온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