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밀고 들어가는 기사들의 뒷모습.
여기가 대륙인지, 천계인지. 그런 건 조금도 관계없었다.
기사단은 언제나 대의를 위해 싸워왔고,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게 분명했다.
“300년.”
지팡이를 어깨에 얹은 채로 내 옆으로 다가온 힐다가 히죽 웃는다.
“자그마치 300년의 세월 동안 지나온 대장정이 이제 끝맺음을 내려고 하는 거네?”
대악마를 막고, 대륙을 구하겠다는 목표가 어느새 천계까지 나를 인도했다.
300년이라는 세월은 생각 이상으로 길었음에도 우리는 참 한결같이 똑같은 목표를 지니고 비슷한 적과 싸우는 중이었다.
“글쎄.”
힐다의 말이 뭔가 감성을 건드린 걸까. 나는 축축하니 젖은 감상으로 답했다.
“마몬을 쓰러트렸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 천사들을 처리하면 분명 커다란 위협을 제거하는 거지만, 그렇다고 대륙이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뜬금없다고 생각한 걸까?
힐다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보더니 눈앞에서 손을 휙휙 휘두른다.
“얘가 뭐 잘못 먹었나? 아니면 악마한테 몸이라도 뺏겼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생각할 시간이 많았거든.”
어둠밖에 없던 새장에 갇힌 채로 여러 고민을 했다 보니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하게 된 걸 수도 있다.
기사들의 기세는 그치지 않았다.
천사들은 무기와 능력 자체는 빼어났으나, 그것에 너무 의존했던 나머지 실력이 형편없었고.
그런 적들은 우리 같은 베테랑 기사들에게 생선 뼈 가시 발리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거추장스럽고 귀찮긴 하지만 힘든 수준은 아니다.
딱 그 정도.
“이 바보야.”
기사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름 고민에 젖어있자 힐다가 지팡이로 머리를 툭 두들긴다.
힘을 줘서 때린 것도 아니었던지라 크게 놀라지 않고 슬쩍 고개를 돌리니 힐다는 혀를 차며 나를 바라본다.
“당연한 거 아니야? 지난번에 말했던 거 기억 안 나? 천사나 악마 같은 게 없어도 어차피 우리끼리 박 터지게 싸우는데 저것들까지 난리라고.”
“……그런 대화도 했었지.”
까먹고 있었는데 힐다가 말해서 기억났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그런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저것들 정리한다고 그냥 끝이면 얼마나 깔끔하고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
“그렇지.”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원했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자 힐다가 슬쩍 고개를 돌린다.
기사단에 눈을 둔 그녀가 의미심장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네가 있는 거야. 이번 일이 끝나도, 너는 기사로서 여전히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울 수 있는 거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보진 않았는데.”
하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검과 방패를 내려놓고 쉬는 건 좋지만, 이안 아이넬의 몸은 이제 18살인데 벌써 그렇게 쉬면 실직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이번 사탄의 공세 때문에 왕국의 수도가 무너지면서 이곳저곳에서 많이도 이빨을 내밀겠지. 너, 생각보다 바빠.”
“아직 생도인데 뭐가 이렇게 할 일이 많은지.”
뭐, 어쨌든.
“계속 가보자고. 300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1년 남짓 활약하고 은퇴하는 건 너무 아깝잖아!”
힐다의 말이 옳았다.
여기가 천사와 악마 그리고 대륙의 싸움에 있어 종착점이라고 할지라도.
내 삶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그래, 가자.”
성검을 뽑아 든다.
나 역시 앞으로 달려 나가려던 순간.
반대편에 있던 마리가 슬쩍 내게 다가와 물었다.
“저건 베면 안 됩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혼자서 일당백의 포스를 뿜어내며 천사들을 찢어발기고 있는 마몬.
우리 쪽으로 시선도 분산되었겠다 녀석은 마음대로 날뛰고 있었는데, 그것에 경쟁심이라도 느꼈는지 윤도 단독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마몬도 이제 내 소환수야.”
내 말에 마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으나 우선 알겠다며 고개를 숙이곤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밀고 들어가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그냥 다 부수면서 들어갈 수는 없잖아. 어떻게 생각해?”
떠나가는 마리의 등을 보며 힐다에게 넌지시 묻자, 그녀는 턱을 괴면서 중얼거린다.
“신계를 하나의 몸으로 친다면, 우리는 그 안에 침투한 병균이나 다름없어.”
“비유하고는…….”
내가 괜히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음에도 힐다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심장이나 뇌를 노리면 한 방에 빡! 하고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왕국의 경우도 프랑트가 함락되니까 지휘체계가 와르르 무너져서 태세를 갖추는 데 시간이 좀 걸렸잖아.”
“우리가 당한 걸 그대로 해주자?”
그런데 우리는 여기 초행이었다.
아예 이런 장소가 있는 줄도 몰랐던 우리가, 천계에서 그런 곳을 어떻게 찾겠는가.
“새장에서 봤을 때, 천계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높이 솟은 건물들이 여럿 있었어. 거기로 가보면 되려나?”
“쉽잖아.”
그러더니 바로 나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힐다.
뜬금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일단 손을 들어 막는다.
“내가 주먹을 휘두르니까 네가 얼굴부터 막는 것처럼. 일단 사람은 중요한 부위부터 막는단 말이지.”
“얼굴로 휘두르니까 막은 건데.”
게다가 주먹이 아니라 솜방망이 휘두르는 줄 알았다.
“크흠, 그건 네가 싸움에 익숙한 기사라서 그런 거고!”
어색하니 헛기침하더니, 괜히 성질내는 힐다.
“대악마들의 고삐도 잡고, 설렁설렁 굴던 비둘기 자식들이 갑작스러운 침공에 대응을 잘할 리가 없어. 일단 중요한 부분으로 병력이 쏠리겠지.”
손가락을 둥글게 말더니 눈에 가져다대는 힐다. 지난번에도 봤던 정찰용 마법이었다.
“깃털이 북실하게 쌓여있는 곳을 보면 대강 나오지 않겠어?”
기사들과 싸우는 천사들의 깃털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흩날리긴 했다.
천계에 쏟아지는 빗물과 같은 느낌.
그걸 멀뚱히 보고 있자니 입꼬리를 히죽 올리는 힐다가 내 등을 팡 치며 외쳤다.
“오케이! 대충 찾은 것 같아! 알려줄 테니까 잘 봐.”
우웅!
앞으로 지팡이를 내민 힐다.
그 끝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더니 전장 위를 건너는 은하수 혹은 무지개처럼 길게 뻗어나간다.
“마법?”
“거리를 벌려라!”
천사들은 처음에는 힐다의 마법을 보고 대규모 공격인 줄 알고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으나.
“대, 대천사님의 둥지로 간다!”
“저거 막아!”
심장부를 향해 날아가는 궤도가 정확했는지 물러나던 천사들은 이제 반대로 다급하게 힐다의 마법을 향해 날아간다.
“뭐든 대를 붙이는 게 유행인 건가.”
그들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계속 마나를 쏟아내던 힐다가 인상을 팍 찌푸린다.
“뭐야, 나도 대마법사인데. 괜히 같이 엮이는 느낌이잖아.”
“대악마, 대마법사, 대천사. 쓰읍, 나도 대기사단장 이런 거 해야 하나.”
“아, 놀리지 말라고!”
손은 지팡이를 쥐고 있느라 놀리지 못해 발길질 하는 힐다.
어쨌든 가야할 곳은 대강 정해졌다.
힐다의 마나가 뻗어져 가는 걸 날개에 불붙은 것처럼 어떻게든 막으려는 천사들의 발버둥을 보니까 나름 느낌이 온다.
“대강 길은 밝혀졌지?”
쿵.
이제 마나가 나아가는 걸 멈춘 힐다가 지팡이로 바닥을 쿵 찍자.
콰아아아아아아앙!
마나가 만들었던 길을 따라 대규모 폭발이 번져간다.
그녀의 마법을 막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갔던 천사들은 깃털 정도만 남긴 채로 사라졌다.
“마나를 효율적으로 써야지.”
그냥 길만 밝히는 용도는 아니었구나. 나는 잘했다고 끄덕여 주며 앞으로 나섰다.
전선을 지휘하고 있던 마리는 내가 오자 곧바로 지휘권을 넘겨준다.
“대부단장 잘했어.”
“……그게 이 시대의 유머입니까?”
“하지 말라고!”
뒤에서 주먹으로 내 등을 두들겨대는 힐다를 무시한 채로 전황을 살핀다.
유머감각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마리도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천사들 개개인의 실력은 크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저들 말로는 신성이라는 힘을 사용하고는 있는데…… 그냥 반짝이는 마나 정도입니다.”
“신성…….”
추락한 천사였던 세리안과 싸웠을 당시에도 그는 자신의 신성을 흩뿌려가며 싸웠었다.
당시, 그걸 상대하는 게 꽤나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마몬의 기운이 빠져서 그런 것 같네.”
당시에는 마나에 마몬의 기운이 섞여서 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원들에게도 마몬의 기운이 섞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의 마나는 전부 내게서 나오는 거니까.
그런데 마몬이 아예 소환수로서 실체화되면서 기운을 전부 가져가니, 온전히 내 마나로 이루어진 기사단원들.
“대악마라는 것들이 왜 천사들한테 쪽을 못 썼는지 알겠어.”
극상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밀렸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저 녀석은 잘 버티고 있습니다.”
마리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몬을 가리켰다.
다른 대악마들을 모조리 삼키면서 상성 차이마저도 터프하게 극복하고 있는 녀석.
덕분에 저쪽으로 천사들의 시선이 많이 쏠려서 우리 쪽이 좀 여유롭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천사들에겐 인간인 우리보다는 대악마들을 집어삼킨 마몬 쪽이 훨씬 위협적으로 느껴질 테니까.
“문제는 놈들이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 역시,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상에서 싸우는 천사들은 어리숙한 실력으로 인해 제대로 무기를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쓰러졌으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에서 투창하거나, 창을 찔러대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요격할 수 있는 게 한나밖에 없어서 일단 한나를 지키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레잔이 전선이 아니라 한나의 앞을 지키고 서 있다는 게 그녀의 중요도를 와닿게 해주었다.
한나는 정말 팔이 떨어져라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는데, 한 발로는 부족했는지 세 발씩 동시에 활에 겨눈다.
“내가 좀 나서야겠네.”
옆에서 듣던 힐다가 앞으로 나선다.
마리도 은근히 그녀가 참전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기에 별말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끼어들었다.
“어차피 천사들은 다 날개가 있어. 결국 힐다 혼자 상대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날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없나?”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날 수만 없게 만들어 달라는 거지?”
“어, 그것만 되면 우리 애들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후후, 기사랑 같이 다니면 확실히 좋은 점이 있다니까.”
그녀가 혼자서 전부 정리해야 했던 옛날과는 다르게 우리가 기다려주고 있다.
힐다는 보조 역할로 빠져도 충분했다.
“시간이랑 마나 좀 줘봐. 아주 대단한 걸로 준비해 줄 테니까.”
양손으로 지팡이를 쥔 힐다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다른 대 들어가는 것들이랑 다르게, 대마법사가 얼마나 위대한 지 보여줄게.”
마음에 두고 있었나.
마나를 끌어 모으며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한 힐다의 앞에 선다.
거대한 마나가 모이기 시작한 걸 느낀 천사들이 이쪽을 확인했으나.
늘 마법사를 지키는 건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