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쫄았냐고.”
흉흉하니 노려보며 말하자 기사단장은 참지 못하고 곧바로 주먹을 치켜 올리며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주먹은 머리 위를 스치며 지나친다.
자연스럽게 피하며 내 발은 제대로 중심도 잡지 못하고 있는 단장의 무릎을 후려 찼다.
빠악!
“컥!”
침을 튀기며 그대로 옆으로 기우뚱 쓰러지는 단장을 보며 나는 인상을 팍 구겼다.
“자세도 제대로 못 잡아? 얼마나 훈련을 게을리 했으면 기사라는 놈의 균형 감각이 이 지경이야?!”
“너……!”
내 비난에 기사단장은 바로 다시 일어나서는 옆에 있던 거치대에서 목검을 하나 뽑아 들고는 뒤뚱뒤뚱 걸어온다.
“미쳐가지고!”
빡!
단장의 목검을 피함과 동시에 다시금 그의 무릎을 후려 차자 기사단장은 이번에도 돌탑처럼 우르르 무너져 쓰러진다.
“무릎! 무릎! 힘 꽉 주고 휘둘러야 할 거 아니야! 팔 힘으로만 휘두르는 건 어디서 배워 온 거야!”
“끄으!”
자신의 무릎을 부여잡고는 괴로워하는 단장을 보자니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목검을 휙 낚아채서는 검 끝으로 단장의 복부와 어깨를 툭툭 쳐본다.
“엉망진창이야! 이게 술집 아저씨랑 다를 게 뭐냐고! 단련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얼마나 안 썼는지 근육도 말랑해져 있고!”
후웅!
순간, 내 등 뒤로 휘둘러진 목검을 몸만 살짝 비틀어 피한다.
“아악!”
덕분에 내가 피한 목검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단장만 다시 한번 괴로워할 뿐이었다.
“어. 다, 단장 죄송합니다!”
기습을 해놓고 다급하니 단장한테 사과하는 놈을 보자니 다시금 감정이 고조되어 목검으로 놈의 팔목을 후려쳤다.
빡!
“검은 꽉 잡고 있어. 그 정도밖에 힘 못 줘?”
“어억!”
“기습할 거면 발소리를 죽여!”
빠악!
다리를 목검으로 후려치자 이번에도 기사는 인상을 팍 쓰며 아파한다.
그걸 보며 다시 한번 표정을 구겼다.
“이것들은 무슨 기사라는 놈들이 몇 대 처 맞았다고 다 아프다고 찡찡거리고 있어!”
황당한지 제대로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고 어벙하니 서 있는 기사들을 향해 목검을 내밀며 외쳤다.
“장난해? 너희가 기사라고? 개소리 하고 자빠졌네! 생도한테 처맞고 다니는 것들이 무슨 기사는 기사! 다 때려치워, 이 새끼들아!”
무엇이 문제였을까.
적어도 기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만 되었어도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을 거다.
정말 기사라는 이름을 내거는 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만, 딱 그 정도만 되었어도 나는 충분히 만족했을 거다.
“쓰레기 같은 것들! 어딜 그딴 진흙발로 기사단을 더럽히고 있어! 너희가 함부로 더럽힐 이름이 아니란 말이다!”
꾸득.
쥐고 있는 목검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살이 아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3년 뒤에 오더라도 이렇게까지 근본이 썩어 있으면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리 싹을 뽑는다.
농부가 1년을 바라보고 씨앗을 뿌리듯이, 나는 3년 뒤를 바라보며 각오를 다졌다.
근처 비치된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하나 꺼내 든다.
“그래, 말로 해서 뭐 하냐.”
그리고 목검을 쥐고 있는 손에 붕대를 둘둘 말아 검을 놓지 않게 단단히 고정한 뒤, 놈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오늘, 너희가 짊어진 이름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알려줄게.”
* * *
전투가 시작된 지 1시간.
생도들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전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난장판이라고 혀를 찰 수도 있는 장면이었으나, 또 누군가는 이것을 보고 의미 모를 벅차오름을 느끼고 있었다.
“…….”
“…….”
누가 어떤 감정을 느끼던 간에 모두가 동일했던 건, 자신들은 감히 이 전투에 어떠한 사족도 붙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은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전장을 누비던 전설 속 기사를 보고, 당시 왕은 한 마리의 사자와 같다 말하며 그의 기사단에 은빛의 사자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영광스러운 왕국의 기사였던 그는,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홀로 전장을 누비며 악마들을 막아낸 방패이자 검이 되었다.
지금 생도들은 그러한 광경의 재림을 보고 있는 듯했다.
수많은 기사들을 향해서,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안 아이넬.
그가 기사단을 향해 일갈하던 모습은, 정말로 라인 레이먼드가 다시 태어나 후배들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쿵!
정확하게 머리에 일격을 허용한 이안이 바닥을 구른다.
핏물이 바닥을 주욱 길게 적시지만, 이안은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벌떡 일어났다.
처음 그가 넘어졌을 때.
모두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다시 일어났다.
두 번째로 그가 넘어졌을 때.
생도들은 충분히 훌륭하다고 박수를 쳐주었다.
세 번째로 그가 넘어졌을 때.
이제는 기사단원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전력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이번으로 일곱 번.
생도들은 그를 향해 경외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이안 아이넬이 뛰어난 생도라도 40명은 족히 되는 기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은빛사자 기사단의 반절 이상을 쓰러뜨린 상태.
반대로 그는 몇 번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맞부딪친다.
이안 아이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도들은 가슴에서 뭔가 끓어오름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툭.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다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하지만 다른 생도들 또한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틀린 것에 휩쓸리지 않으며.
꿋꿋하게 일어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며 싸운다.
시야를 멀리 둘 필요는 없었다.
동화나, 역사 속 책을 볼 필요도 없었다.
바로 앞에.
땀과 피를 흘리고 온 몸을 부대끼며, 꼴사납지만 그럼에도 일어나 검을 휘두르는….
저게 바로, 기사라는 꿈을 꾸며 생도가 된 이들이 바라마지 않던 이상의 모습이었다.
또한 당연히 그의 행동이 생도들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그와 함께 검을 맞대고 있는 기사들은 정말 오랜만에 열정이라는 걸 불태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까부는 생도 하나 손봐 줄 생각이었다.
우르르 달려들어서 때리는 것도 볼품없으니 몇 명만 가서 대충 버릇을 고쳐주려 했으나.
3명이 달려들었다 쓰러졌다.
5명이 또 달려들었다가 쓰러졌다.
10명이 달려들어 드디어 제대로 일격을 먹이며 넘어트리는 데 성공했으나….
소년은 너무나 터프하게 입에 고인 핏물을 툭 뱉더니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게 일곱 번이 되었을 때.
“밀어! 밀어붙여! 일단 숫자로 밀어!”
“포위망을 펼쳐! 거리를 주면서 싸우지 말라…… 포위진형 배웠던 거 어디 갔다 버렸어!”
기사단이 하나가 되어 소년과 싸우고 있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본인들도 느낀다. 몸이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검 몇 번 휘둘렀을 뿐인데 자신들의 손이 떨리는 걸 본 기사들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놓치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생도는 은빛사자 기사단의 현 실태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이미 다 망해가는 은빛사자에 왔으니까.
결국 여기서 뭘 해도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니까.
검을 쥐고 맞서는 상대가 너무 강했으니까.
원인을 본인이 아닌, 남에게로 돌린다.
스스로가 못난 이유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자위했었다.
하지만 기사생도라는 소년의 위치가, 젊음과 함께 담겨 있는 투지와 열정이….
누가 잘못했는지를 명백하게 가리키고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타인을 향하던 손가락 끝이 갈 곳을 잃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검을 놓고, 기사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걸치고 있는 무뢰배가 되었다.
어디서부터 자신들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은, 재능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자신을 향한 의문도 던져본다.
하지만.
빠악!
검을 휘두르며 치고 나오는 은발 머리의 소년은, 그딴 고민할 시간 있으면 자신을 마주보라는 듯이 사납게 밀고 들어온다.
젊지만 노련한 맹수는 날렵하게 비틀고 들어오며 기사단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을 주지 않았고.
그러한 투지를 맞상대하다 보니 생도를 향한 분노는 점차 타오르는 의욕으로 변해간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몸 곳곳에 찌들었던 피로가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시작이 어렵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기사로서의 삶이, 막상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들은 정말 오랜만에, 자신들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고 있었다.
* * *
‘이제야 좀 정신을 차렸군.’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던 나는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걸 느꼈다.
이미 전신이 욱신거리고 이마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눈이 젖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며, 검을 쥘 힘도 없었으나….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뿌듯함이 차고 올라왔다.
방금까지 신념 없이, 그저 나태함과 욕심에 찌들어 있던 저들의 사고를 나의 핏물로 씻어냈다고 생각하니 실실 웃음이 흘러 나왔다.
“아주 멋들어진 눈들이야.”
승리를 위한 갈망과 패배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버무려진 훌륭한 눈동자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쏟아지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자신들이 망가져 있었는지 깨닫는 건 물론이고 오랜 시간 꺼져 있던 의지도 활할 타오른 것이다.
이미 내 목적은 이뤘다고 봐야 했으나.
“그렇다고 져줄 생각은 없어.”
화악!
다시금 몸에 생기가 불어넣어진다. 차고 넘치는 나의 마나가 또 한 번 몸을 억지로 깨운다.
거기에 더불어 샤카렌에게서 흡수한 마몬의 기운이 기존의 마나와 함께 공명하며 신체능력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었다.
솔직히 마몬의 기운을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패배했을 것이다.
빠악!
앞에 있는 기사의 정수리에 정확하게 검을 내려친다.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그를 발로 차서 뒤에 있는 기사들의 움직임을 제한시킨다.
‘일 대 다수의 싸움은 이쪽이 전문가란 말이다.’
자그마치 마몬의 군대와 홀로 싸워서 승리한 전적이 있는 나이다.
물론 몸은 당시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울 정도로 부족하다.
하지만 정신과 경험은 전투를 이어갈수록 더욱 또렷하고 맑아져 갔기에….
몸도 성치 않은 퇴물들을 상대로 바닥을 나뒹굴 생각은 없었다.
“옆에 막아!”
“동시에 덤벼들어!”
후우웅!
거칠게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지는 검을 여유롭게 피한다.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합을 맞추려 해도 그 의도가 고스라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빡!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공격하느라 틈이 생긴 두 기사를 다시금 쓰러트린다.
그렇게.
한 사람.
“밀리지 마!”
또 한 사람.
“넘어지거나 기절한 놈들도 다시 깨워!”
그렇게 다시 한 사람.
“지지 말라고! 쪽팔리게 누워서 아파할 시간에 싸우라고!”
계속해서 쓰러트리고 쓰러트리며.
또 나아간다.
언제나 내가 해왔던 일이다.
전생에 쓰레기장에서 생활할 때도, 평민으로 수많은 차별을 받으며 기사생활을 할 때도 그랬으며.
마몬을 쓰러트릴 때도 마찬가지로.
“아.”
어느새 주변에는 쓰러진 기사들이 즐비해 있었다.
무아지경으로 휘둘러지던 검은 어느새 막바지에 닿아 있음을 알아챘는지 쩔거덕거리며 한계라 말해왔다.
축 늘어진 어깨와 굽은 무릎.
무게를 앞으로 기울여 억지로 버티고 서 있는 내 눈앞에는 이제 마지막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두툼한 배를 가리듯 검을 양손으로 쥐고 앞으로 내밀고 있는 기사단장.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다른 수많은 단원들이 전부 쓰러졌음에도.
그는 기사단의 중심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게도 당당하니 서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무릎에 힘이 강하게 들어가 있었고, 살이 쪄서 기울었으나 전반적인 자세만큼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
“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으아아아아!”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곧은 자세로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른 단장.
피할 생각도, 힘도 없었다.
그저 맞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를 힘을 쥐어짜낼 뿐이었고….
빠아악!
빠아악!
풀썩.
경쾌한 타격음이 동시에 울려왔으나, 쓰러지는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하면…….”
그대로 뒤로 뻗은 기사단장을 내려 본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의 달빛이 승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되잖아, 이 자식들아.”